'김훤주기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7.13 김훤주기자의 블로그강좌, "어떻게 쓸까?" by 파비 정부권 (1)
  2. 2009.12.16 백지수표로 꽃들에게 주는 희망 by 파비 정부권 (5)
  3. 2009.08.30 노무현·김대중 조문하지 않은 김기자를 위한 변명 by 파비 정부권 (12)
7월 시민을위한무료블로그강좌, 7월 22일에 열려

경블공 블로그강좌,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경블공(경남블로그공동체)과 100인닷컴이 시민을 위한 무료 블로그 강좌를 시작한지도 벌써 4회째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블로그 강좌를 맡아주실 분은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님입니다.

1회와 2회는 민중의소리 구자환 기자와 생태블로거 크리스탈님이 동영상과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노하우를 전수해주셨고, 3회는 당시 100인닷컴 대표이면서 현재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으로 있는 김주완 기자가 블로그 글쓰기에 대해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이번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김훤주 기자는 블로그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많은 블로거들이, 또는 블로그에 입문하고자 하는 지망생(?)들이 블로그에 글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시사블로거, 연예블로거, 생태블로거, 여행블로거들의 글쓰는 방식이나 색깔이 다 다릅니다. 역사블로거, 종교블로거도 있을 수 있는데 이들의 글쓰기 유형도 다를 것입니다.

김훤주 기자는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를 시작으로 경남도민일보에서 10년 넘게 일하기까지 거의 인생의 대부분을 글쓰는 일을 노동으로 삼은 분입니다. 그는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학보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87년 노동자투쟁과 마창노련의 함성을 담은 마창노련신문을 만들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는 문화부 기자로서 문화재, 여행지, 생태에 관한 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들을 섭렵한 인물입니다. 김주완 기자와 더불어 팀블로그를 운영한지도 2년이 넘었습니다. 최근엔 「습지와 인간」이란 책도 냈습니다.

김주완 도민일보 편집국장과 팀블로그를 하고 있지만, 그와는 블로그 글쓰기에 대해 어떤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이 이번 강좌의 주안입니다. 실제로 같은 블로그 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색깔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줄로 압니다. 궁금하신 분은 7월 22일(목)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으로 오시면 됩니다. 

6월 경블공/백인닷컴 블로그 강좌

일시 : 2010년 7월 22일(목) 오후 7시
장소 :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 (마산 양덕동/ 옆에 홈플러스가 있음)
강사 : 경남도민일보 기자 / 블로거(지역에서 보는 세상)
주제 : "블로그 글쓰기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나"
주최 : 경남블로거공동체/백인닷컴

아울러 하나 더 공지사항을 말씀드리면 7월 27일에는 갱상도블로그(갱블)가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가 있습니다. 이날 강사는 한글로(정광현)님께서 훌륭한 강의를 해주실 계획이라고 합니다.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활용 방안, SNS 상호 연동을 통해 어떻게 소통이 활성화되는지에 대해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역시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합니다. 시간도 늘 오후 7시로 같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블로그/ 돼지털의 아날로그 파일

관심 있는 여러분의, 또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많은 분들의 격려와 참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마산시 양덕2동 | 경남도민일보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꽃들에게 희망을?” 김훤주 기자가 이곳에서 여는 행사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나는 그것이 어떤 단체의 이름일 거라곤 퍼뜩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단체의 이름인 걸 알고 나서는 “아, 어린이들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인 모양이군!” 하거나 “소년소녀 가장 돕기 자선행사를 같은 걸 하는 모양이야!” 하고 생각 했답니다. 

사진 속의 사진에 들어가 계신 분들이 아마 '꽃들에게 희망을' 희망지기들인가 보다.


비슷하긴 했습니다만, 꼭 맞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어떤 단체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체가 자선단체 비슷하다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쌀이든, 돈이든, 현물이든, 반찬이든, 심지어 배추 한 포기까지도 근갈(!) 치듯이 지원받아서 이것을 다시 꼭 필요한 가정이나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갈 치듯이’라고 불경스런 말을 써서 미안하긴 하지만, 다음 말을 들어보면 “별로 틀린 말도 아니네!” 하실 겁니다. 김 기자와 수정만 트라피스트수녀원에 취재차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역시 이처럼 근갈 비슷한 부탁을 받고 “그래, 가자” 했지만, 쥐어주는 초대장을 제대로 읽어볼 틈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 기자를 따라간 행사는 자선행사는 아니었습니다.  

비슷하긴 하지만 꼭 맞는 것도 아니라고 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날 행사는 자선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꽃들에게 희망을> 탄생 10주년을 축하하는 생일잔치였던 것입니다. 행사는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눈물겹게 재미있었는데, 시민단체의 행사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날 알았답니다. 뭐, 이 말에 공감하실 분은 하실 겁니다.  

특히 감동 깊게 좋았던 것은 행사가 군더더기 없이 간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기획을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대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맨 아래에 동영상을 달아두었습니다. 행사 중 일부랍니다. 꼭 눌러 보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작이란 평이 많더군요.  

자, 그러면 다시 왜 ‘근갈 치듯이’라고 했을까?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날 생일잔치에서 나는 구경도 잘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습니다. 술 이름이 ‘시월애’였던가요? 제조회사는 모르겠는데 술 맛이 참 기가 막혔습니다. 단감으로 만든 와인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회사가 만든 ‘쌀막걸리’도 있었는데, 역시 근갈 쳐서 들고 왔다고 하더군요. 사실은 매우 자발적인 협찬이었겠습니다만. 

어쨌든 <꽃들에게 희망을> 대표(확실히는 모르지만, 대충 내 짐작임)인 설미정 씨는 여기 차려놓은 술과 음식들 중에 자기들이 준비한 건 하나도 없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모두 다른 개인이나 단체, 가게, 기업에서 협조 받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기들이 준비한 것은 오로지 마음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 하나만 가지고 10년을 지켜왔다고 말입니다.  

마이크 든 분이 설미정 씨

정말 그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마음을 지녔기에 이토록 여러 사람들이 기쁘게 흔쾌히 근갈 당하기로 마음먹었을까? 나도 그건 잘 모르므로 그걸 알고 싶다면 시험삼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 번 스스로 당해보심이 어떨까요? 그러면 혹시 모르지요. 여러분도 그들 희망지기(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에요)처럼 천상의 기쁨을 누리게 될는지.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주제를 <근갈>이란 불경스런 단어를 정하기로 한 데는 달리 이유가 있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미처 펼쳐보지 못한 초대장을 꺼내 읽어보았을 때, 다시 한 번 통쾌하게 웃었답니다. ‘통쾌하다’란 표현은 그렇게 과장도 아니랍니다. ‘재미있다’라기보다는 ‘통쾌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일은 이렇게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초대장은 매우 친절하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 언제 : 2009년 12월 11일 저녁 7시 상남동 삼원회관 5층

찾아오는 구체적 방법 ▶ 차는 ‘시민생활체육관’ 뒤 주차장에 세운다.

▶ 상남동에서 아주 유명한 ‘야구연습장’을 찾는다.

▶ 야구장 입구에 등을 지고 본 맞은편 건물이다.

다른 건물에 비해 약간 오래된 느낌.

▶ 1층 ‘빠리바게트’를 찾아주셔요. 이 건물 5층.

▶ 그래도 찾기가 어렵다면 016-808-8216을 꾹~


얼마나 친절합니까? 나는 이렇게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는 초대장을 아직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네? 많이 받아보셨다고요? 그렇다면 그건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그런 모양이군요. 아무튼 참 친절한 초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문구를 읽는 순간, 아, 이 친절의 배후에 숨어 있는 <근갈>을 발견하고 통쾌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 뭐 갖고 : 여유 있는 시간, 여유 있는 마음, 여유 있는 지갑 (일명, 삼여) 

 
그리고 <근갈>은 초대장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로 화룡점정이 무엇인지 그 진정한 경지를 보여주었습니다.

♥ 백지수표 한 장을 끼워서 보냅니다.

(사용방법 : 볼펜을 들고 잠시 고민하시다가 쌀, 돈, 봉사기간, 현물, 모든 나눔 가능한 것 을 적으시면 됩니다. 자녀들도 함께 하시면 됩니다.)

부페식으로 마련된 음식을 행사 전에 미리 나누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그리고 뒷장에다 백지수표의 용도에 대해 상세히 기재해 놓았습니다. 대충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겨울나기 사랑의 쌀독을 채우기 위해서, 둘째, 앞치마 제작을 위해, 셋째, 집이나 차에 붙일 스티커 제작을 위해(이건 아마도 내 짐작에 보다 대규모적인 <근갈공세>를 위한 것으로 보임), 넷째, 미리 챙기는 자원활동을 약정해주세요, 가만 이것도 <근갈>이네요. 

가만, 그런데 말입니다. 초대장을 다 읽고 난 다음 봉투 속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백지수표가 안 보이는 겁니다. 어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이놈의 백지수표가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하, 그러고 보니 생각납니다. 김 기자가 초대장 봉투를 줄 때 무언가 한 장을 빼고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 우리의 김 기자가 백지수표를 빼돌렸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김 기자, 아직 여린 마음이 굳어지려면 더 많은 세월을 살아야하나 봅니다. ‘근갈 치는’ 게 부담스러워 백지수표를 빼돌렸겠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본인은 자기가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늘 강변(혹은 변명)하지만, 안 착할는지는 몰라도 심성이 너무 여린 건 사실입니다. 실비단안개님과 함께 달그리메님을 태우러 가면서 그런 얘기들을 나누었었지요. 

이제 이야기가 너무 길었으므로 대충 정리하고자 합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매우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하는 일도 당연히 아름답고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회원 중 어느 분(가만, 이분이 회장님이라고 하셨던 거 같기도 한데, 헛갈리네)이 말씀하시길, “우리가 하는 일이 빨리 망해서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더군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더 많은 분들이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근갈>에 넘어가주는 아름다운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근갈>은 별로 좋은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꽃들에게 희망을>이 하는 일은 <근갈>도 아닙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매우 숭고한 일이며 사회를 희망으로 살찌우는 보람찬 일입니다. 

나는 비록 능력이 없지만, 김 기자가 빼돌린 백지수표는 알아서 챙겨 내 주변에 능력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 나누어주고 <근갈>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근갈>은 치면 칠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지리라고 확신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풍요로운 마음을 갖기를 소원하는 분이 계시다면, 아래 연락처로 백지수표를 날리시면 소원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저번 블로거 모임 때 실비단님께서 텃밭에 배추 수백포기가 그냥 있는데 뽑아가고 싶은 만큼 뽑아가라고 하셨는데, 벌써 한파가 닥쳤으니 늦었겠지요? 내년엔 꼭 실비단님 밭에 가서 백지수표를 채울 거리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거는 <근갈> 아닙니다. 실비단님은 그런 거 안 쳐도 워낙 마음이 고우셔서…, ㅋㅋ

저소득층 가정을 지원하는 작은 모임

꽃들에게 희망을

경남 창원시 사파동 72-2 사파복지회관 2층

TEL. 055-263-7014, 016-808-8216

http://hope4u.or.kr

(우편번호) 641-826


자, 그럼 지금부터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작을 감상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아래 동영상을 틀어보시면 제목도 나오겠지요? 엄청 재미있습니다. 보증합니다. 재미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물론 당연히 그건 절대 책임 못 집니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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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김훤주 기자의 글 <내가 노무현·김대중을 조문하지 않을 까닭> 때문에 좀 시끄러웠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많은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악플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인신공격성 댓글도 많았습니다. 익명을 이용한 광기의 수준이 도를 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집단적 광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일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도 매우 심하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에 이 집단적 광기는 거의 폭발 수준입니다. 얼마 전 티벳과 위구르 사태 때 서울에서 보여준 중국 극우파 유학생들의 난동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나라의 유학생을 극우파라고 하는 것이 좀 생뚱맞긴 합니다만, 저는 그들이 극우파로 보였습니다. 

사진출처=경남도민일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무장한 극우세력. 어쨌든 말이 좀 새긴 했습니다만, 저는 모든 지나친 행동은 탈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김훤주 기자가 굳이 '나는 김대중을 조문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가 모두들 조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김대중 선생(!)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김대중이 30년 가까이 싸워왔던 바도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생각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한 사람의 발언을 두고 거의 집단적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낼 때 김대중 선생이 추구했던 가치들이 하나씩 부서진다는 생각들은 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저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 또는 악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진정으로 김대중을 평가하고 그의 업적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훤주란 사실을 말입니다. 집단적 광기 수준으로 분노를 뿜어대는 지지자들보다 김훤주야말로 제대로 김대중을 추모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말입니다.

도대체 민주당이야 김대중이 결단한 혁명적 사회복지에 대해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고 하더라도―그들의 정체성은 역시 한나라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수우파가 대부분이다―진보정당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추모논평을 보더라도 매우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민주와 평화를 빼고 복지에 대한 평가를 한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훤주는 그걸 했지 않습니까? 조문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김대중의 업적을 제대로 바라보고 공정하게 평가를 해주었지 않습니까? 비난성 악플을 다는 여러분 중에 김대중의 업적 중에 사회복지의 혁명적인 단초를 마련한 사실을 짚어주신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좀 과격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모두 허깨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사실 김훤주는 김대중을 조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김대중의 지지자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와는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공인도 아닙니다. 어떤 정당의 당직자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조문하는 분위기에서 "나는 조문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대중 선생을 조문한 어떤 사람들보다 김대중의 높은 업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이쯤에서 제 추억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편을 잡았던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박정희는 비명에 갔습니다. 그때 우리 반 부실장이었던 기종이는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습니다.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덜컥 겁이 났습니다. '혹시 전쟁이라도 터지는 거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도 전쟁은 나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열린 비상조회에서 교장 선생님은 면사무소에 마련된 분향소에 가서 조문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네, 제 귀엔 지시였습니다.

물론 저는 조문을 갔습니다. 헌화하고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들 훌쩍훌쩍 울었습니다만, 역시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려웠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분이 일제시대에 교편을 잡았던 문경국민학교 교정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신문에도 났습니다. 모두들 영웅이 비명에 가 하늘이 노한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지난 7월 말, 낙동강 5차 도보기행 때 구미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구미시 해평면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청국장이 참 맛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식당 건물에서 고향 냄새가 났습니다. 게다가 식당 벽에 걸려있는 십자고상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사진과 달력이 또 하나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달력에 "평화통일의 대도"란 쓴 글이 이채롭다. 박정희가 평화통일의 대도를 걸었을까? 또 김일성은 어땠을까?


박정희 대통령 일가의 사진이었습니다. 박정희가 비록 독재를 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했지만 경제를 잘 해서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해방시켰다, 이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이 오늘날 결국 대기업 위주의 재벌공화국을 탄생시킨 원흉이다 이런 평가도 있지만, 아직 국민들이 그런 진실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 정책과 더불어 의료보험제도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생활보호법도 만들었습니다. 협동조합을 본 딴 농협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제도들은 북유럽을 모방한 제도들입니다. 군사독재의 힘으로 사회주의적 제도들을 이 땅에 수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만든 사회보장제도들은 시혜적인 것이었습니다. 불쌍한 국민들에게 정부가 나누어주는….

그러니 그 범위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보장의 효시는 독일의 비스마르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철혈재상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지요.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와 생활보호대상자 제도를 도입한 박정희와 유사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아마 이 두 독재자들이 이런 제도를 도입한 이유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무늬만 입혀놓은 사회보장제도를 김대중이 혁명적으로 바꿨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를 정당한 권리자란 의미의 수급권자로 바꿨습니다. 법 이름도 생활보호법이 아니라 기초생활보장법으로, 즉 국가가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김대중이 결단하지 않았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반대했다고 하니까요. 그들 중 대다수는 김대중과 달리 한나라당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노무현에 비해 김대중이 역시 거목이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김대중은 자기 칼을 잘 다루고 쓸 줄 알았지만, 노무현은 자기에게 주어진 칼을 잘 쓰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간수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노무현이 만약 탄핵정국 이후 주어진 사상 최고의 권력을 제대로만 썼더라면,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을 없앨 수도 있었을 것이고, 민주주의를 완성한 그는 가장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이름을 길이 새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쉬움입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 그래서 늘 공부하며 새롭게 진화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노무현의 죽음이 더 슬픈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김대중은 충분히 꿈을 꾸었고 또 대부분 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천수를 다했습니다. 

식당과 붙어있는 안채. 할머니가 토마토도 내주시고 무척 고운 분이었다. 어린 시절 생각이 나게 하는 집 풍경이다.


이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박정희 일가의 사진을 걸어놓았던 구미의 어느 시골 식당의 풍경으로부터 저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였습니다. 인민군 장교가 동막골의 늙은 촌장에게 묻습니다.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도 나오는 그 영명한 지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겁네까?" 노인이 먼 산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합니다. 

"그저 뭘 많이 먹이야지 뭐." 네, 맞습니다. 그저 많이 먹여야 합니다. 아프지 않게 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고, 돈이 없어서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도 나올 수 있는 영명한 지도력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김대중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정작 보지 못하는 영명한 지도력을 김훤주 기자가 보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자고로 정치지도자란 이런 일을 해야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거 아니겠습니까? 이명박이 지금 민주주의를 압살한다고 하지만 이는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에 하나의 작은 소일 뿐입니다.

물결은 휘어지기도 하고 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거대한 강줄기가 되어 바다로 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줄기가 얼마나 주변의 대지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며 바다로 가는가 하는 것이지요. 저는 김훤주 기자의 목소리에서 그걸 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지지자가 아닌 그가 김대중을 가장 잘 추모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고요.

횡설수설 한 것 같지만, 강호제현의 보살핌을 바라마지않습니다. 하하. 저는 김훤주보다 간이 많이 작습니다. 고재열 기자가 말한 맷집도 약하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이 두 분 대통령 김대중과 노무현의 사진을 당사에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다고 두 분의 유지를 받들 수 있을까요? 

두 분의 생각이 뭔지도 모르면서 유훈을 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거는 것을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노무현이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말한 것처럼 제대로 두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그 공부는 오히려 조문도 하지 않은 김훤주가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슬픈 일이지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