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구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한 회 한 회가 긴장의 연속이었고 마지막회마저도 그 긴장은 줄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보기 힘든 드라마였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김탁구지만, 사실은 김탁구만 주인공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마준도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승재입니다. 한승재. 그는 이 드라마에서 김탁구를 괴롭히는 악당이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악당들과는 달랐습니다. 눈물겨운 사연을 가진 슬픈 악당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보면 "저 나쁜 놈" 하면서도 또 한편 가슴 시린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런 그를 거두어준 것은 거성가였습니다. 구일중의 어머니 홍여사가 그를 거두어 키우고 대학 교육까지 시켜 거성맨으로 만들었습니다.


한승재의 콤플렉스는 종놈 의식에서 나온 것?

아마도 한승재에겐 말 못할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홍여사 밑에서 구일중과 함께 자라고 친구가 되고 공부도 해서 매우 영특한 인재가 되었지만, 구일중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일중의 밑에서 비서실장으로 2인자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그는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홍여사가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구일중을 위해 거성에 남아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구일중도 그런 한승재가 누구보다 미더웠을 것입니다. 형제같은 친구이자 비서실장 한승재가 든든했을 것입니다. 

한승재가 서인숙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또는 한승재와 서인숙이 어느 정도의 관계였기에 마치 구일중이 한승재가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았다고 했는지는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불만스런 것이었지만, 제작진이 왜 그랬는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한승재는 서인숙의 꾐에 넘어가―처음에 그는 매우 머뭇거렸습니다. 그런 점으로 보아 그의 사랑이 홍여사에 대한 보은의 감정보다 크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불륜을 저질렀고, 그 결과 구마준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한승재가 악당이 되는 씨앗인 셈이었습니다.

한승재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아주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실부모하고 홍여사 밑에서 구일중과 형제처럼, 친구처럼 자랐지만 늘 콤플렉스에 시달렸을 겁니다. 마치 문간방에 빌어먹는 종 신세가 바로 자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콤플렉스는 역으로 스스로를 더 종이란 인식에 가두었을지 모릅니다.

아들 마준은 외로운 한승재에겐 인생의 목표

그렇게 체념과 순종에 익숙한 그에게도 목표가 생겼습니다. 아들이 생긴 것입니다. 비록 떳떳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그는 아들을 거성가의 후계자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생겼습니다. 서인숙과 동일한 이 야심이 달성되면 서인숙도 자기 품으로 올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틀어졌습니다. 최후에 그의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구마준이 교도소에 수감된 한승재를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단 한 번이라도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어요.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되었을 거에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하는 구마준이야말로 참으로 미운 말만 골라서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마준은 알고 있습니다. 한승재가 왜 그토록 악독한 인간이 되었는지를. 그것은 모두 구마준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으므로 친아들 마준과 서인숙이 전부요 목표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모습은 숭고한 것입니다. 비록 한승재가 살인미수, 강간사주, 폭력, 아동유괴, 횡령 등 갖가지 범죄를 다 저지른 악당이지만, 구마준은 아버지를 그런 눈으로 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최소한 마준에게 한승재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은 절실한 것이었으니까요. 

한승재가 구일중에게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 가슴에 닿습니다. "나는 평생을 네 밑에서 2인자로 살아왔어. 그런데 날 봐. 내가 뭘 가지고 있지? 종처럼 부려먹고 내게 해 준게 뭐냐고. 누군가가 가지게 되면 누군가는 빼앗기게 돼 있어. 이 세상은 이기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생존경쟁에 내몰린 아버지들이 존경받는 삶, 쉽지 않다

한승재의 부정은 삐뚤어진 것이었지만, 그 삐둘어진 부정의 배경에는 이 사회의 냉혹한 현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승재가 말한 현실, 곧 누군가가 가지게 되면 누군가는 빼앗기게 되어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대체 구마준은 어떤 존경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일까요?  

저 역시도 한승재의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에 찾아가 한승재를 향해 "왜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느냐?" 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과연 자식들에게 얼마나 존경스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말로는, 정치사회적으로는 진보니 민주니 하고 떠들면서도 막상 직장에 나가면 살기 위해 신념과는 다른 행동을 하도록 강요받는 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4대강사업 반대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사업을 하는 어떤 아버지는 살기 위해 권력자들을 만나면 웃음을 팔아야 합니다.  

어찌보면 이 사회에서 진정 존경받을 수 있는 아버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물론 한승재는 벌 받을 만한 짓을 했습니다. 한승재는 비열했으며, 잔인했고, 부도덕했습니다.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이유는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가지게 되면 누군가가 빼앗기게 되는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나는 내 아들에겐 절대로 빼앗기는 서름을 당하게 하지 않겠다. 이기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이 세상에서 내 아들 만큼은 기필코 승자의 삶을 살도록 해주겠다."  

한승재의 삐둘어진 아들 사랑은 그의 탓만은 아니다

한승재의 비장하기까지 한 이 이유가 오로지 그의 탓만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승재의 아들을 향한 삐뚤어진 부정은 실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온 것입니다. 만약 이 사회가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가진자가 되어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였다면 한승재의 불행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얼마 전 봉하마을에 블로거 간담회를 갔다가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김경수 전 비서관이 한 말인지 김정호 전 비서관이 한 말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퇴임 후 고향에 정착한 전직 대통령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한결 같이 노 전 대통령에게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덕담 한마디 해주세요." 그러면 노 전 대통령은 진지하게 고민하다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쎄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우리 세대는 그럴 말 들으며 자랐잖아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런 생각을 해야만 했던 그런 사회가, 그런 시절이 그만큼 불행했던 것이죠. 그런 사회는 미래가 없어요. 그런 사회를 물려주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별 생각없이 메모만 하고 말았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사람 사는 세상'이란 어떤 것인지 또 그런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어른들의 할 도리가 아니겠냐 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면 한승재 같은 인물은 없어질까?

노무현은 매우 진지한 사람이어서 어쩌면 아이들에게 그저 "착하고 건강하게 크세요"라거나 "공부 열심히 하세요" 같은 상투적인 덕담은 하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른들에게 덕담을 해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정반대의 방향에 있는 모난 돌과 한승재를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어떻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그게 어떤 세상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어보긴 했는데 시원한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모난 돌도 한승재 같은 인간도 나타나지 않겠지요.

어떻게 마무리를 하다 보니 한승재를 위해 변명을 한다는 것이 엉뚱하게 한승재를 욕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한승재가 악당이기는 하지만 그가 삐둘어지게 된 배경에는 치열하게 경쟁을 조장하는 이 사회의 탓이 더 크지 않겠나 그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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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팔봉선생의 인정서를 받기 위한 경합은 모두 3차였습니다. 그중 2차는 마쳤지만 3차는 아직 치르지 못했습니다. 2차 경합이가 끝나고 마준이 팔봉제빵점에 불을 지른 다음 발효일지를 훔쳐 도주했기 때문이지요.

아시는 대로 3차 경합을 통과하면 팔봉선생의 인정서가 수여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팔봉선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자, 그럼 팔봉선생의 경합은 중도에 무산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셨다시피 팔봉선생은 죽기 전에 탁구와 마준에게 경합의 과제를 주었습니다.

저는 좀 의아했습니다. 탁구가 경합의 과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2차 경합에서 탈락한(1차에서도 사실은 탈락했지만, 특별히 선처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한 거였죠) 마준에게도 경합 과제를 주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 팔봉선생의 3차경합 과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이다.


물론 마준에게 편지로 말한 것이 경합의 과제를 준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팔봉선생은 두 사람 모두에게 3차 과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만들기를 주문한 것만은 확실합니다. 탁구에게는 1, 2차와 마찬가지로 과제문이 적힌 족자가 주어졌으니 더욱 확실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3차 경합은 대체 어디에서 치루어지는 것일까? 그런데 보아하니 그 장소가 실로 아이러니합니다. 3차 경합이 치루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거성식품이었습니다. 팔봉선생은 마치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가장 행복한 빵'을 과제로 내놓았습니다.

구일중의 위임장을 들고 거성식품 대표가 된 김탁구. 그런 김탁구를 마뜩찮게 생각하는 이사들은 김탁구에게 하나의 숙제를 줍니다. 곧 문을 닫기로 예정돼 있는 청산공장에 내려가 신제품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표로 인정하겠다고. 동시에 마준은 제품개발실장으로 임명합니다. 경합이 시작된 것입니다.  

▲ 이사회는 김탁구에게 청산공장에 내려가 신제품을 만들어 보이라고 요구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준은 제품개발실장이 됐다.


두 사람, 즉 탁구와 마준이 과제를 풀기 위해 움직이는 것도 팔봉제빵점의 제빵실에서 하던 것과 비슷합니다. 마준은 늘 그렇듯 고급 옷을 입고 정장을 한 부하직원들과 고급 사무실의 고급 소파에 앉아 회의를 합니다. 그는 마치 경영이란 이런 거야 하고 탁구에게 뽐내는 듯이 굽니다. 

그럼 탁구는? 탁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탁구는 고민입니다. 도대체 경영의 경자도 모릅니다. 사무실 탁자 위에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까막눈입니다. 그때 귓가에 양미순이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탁구야, 너는 너답게 해. 그러면 되는 거야. 김탁구답게!"

탁구는 깨닫습니다. "그래, 김탁구답게. 나답게 하는 거야." 모든 서류를 내팽개친 김탁구는 비서들에게 일러 그동안 거성이 만든 모든 빵을 가져오게 합니다. 탁구는 빵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성식품이 별 겁니까? 그냥 빵장사일 뿐이죠.

사실 탁구가 약간의 경영지식은 필수이겠습니다만, 도사가 될 필요는 하등 없습니다. 그에겐 훌륭한 비서팀이 있으니까요. 믿을 만한 확실한 사람 몇 명이면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신 탁구가 할 일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말을 듣고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빵을 잘 만드는 것입니다. 

▲ 계략으로 쓰러진 척하는 구일중. 결국 구일중의 식물인간 계획은 탁구와 마준의 3차경합을 만든다.


결국 3차 경합에서도 탁구가 이길 것은 자명합니다. 마준이 하는 경영은 똑똑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것만으로 경영을 할 수 있다면 유수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MBA 코스를 밟은 사람을 데려오면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는 이제부터 탁구가 보여주려는 감동을 줄 수는 없습니다.

팔봉선생이 던진 3차 경합 과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 그 승패를 거성식품에서 다투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미 승자와 패자는 정해져 있습니다. 마준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결코 '가장 행복한 빵'을 만들지 못합니다. 더불어 거성식품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만들기 위해 내려간 청산공장에서 탁구는 회사 경비가 된 유경의 아버지를 만난다.

그러나 탁구 주변의 거성식품 식구들은 벌써 행복한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굳은 얼굴로 거성식품 대표가 된 김탁구를 따라다니는 차비서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성식품 식구들이 행복해져야 만인을 행복하게 만들 빵을 만들 수 있겠지요.

그나저나 제빵왕 김탁구, 이제 막판으로 가고 있습니다. 서인숙과 한승재, 구마준은 어떻게 될까요? 다른 게 아니고 그들이 저지른 형사적 범죄에 관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살인, 방화, 살인미수, 미성년자 유괴, 납치, 강간, 폭력, 절도, 기술(회사기밀)유출 등 갖가지 범죄를 저지른 그들이죠.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들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피엔딩? 그건 좀 그렇겠군요. 정의사회구현이란 측면에서…, 헉,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요? 아무튼, 그냥 지나치기엔 주먹이 운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정의의 주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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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란 실로 눈앞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똑같은 물건을 보고도 서러 다른 답을 내놓기 일쑤다. 제빵왕 김탁구의 구일중이 그렇다. 그는 매우 차분하고 이지적이며 사려 깊은 아버지의 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또 다르게 보인다.

어떤 다른 이가 본 구일중은 매우 냉혹하고 이기적이며 자식에 대한 배려가 한푼도 없는 못된 아버지일 뿐이다. 그런데 어제밤엔 느닷없이 구일중이 전에 없이 따스한 말로 구마준을 걱정한다는 듯이 구니 그게 못마땅한가보다. 이렇게 오락가락 일부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캐릭터는 또 있다.

서인숙. 구일중의 아내요, 구마준의 어머니다. 한승재의 정부이기도 하다. 실로 이 여인은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표상이다. 그녀에게 사랑 따위는 없다. 그녀는 아들 마준에게 외친다. "사랑? 그런 게 있기라도 하단 말이냐? 그런 것은 없어. 결혼은 오로지 정력과 비즈니스일 뿐이야!" 

▲ 서인숙
"결혼은 정략이요 비즈니스"
라 믿는 서인숙도 순정은 있어


그렇다. 그녀에게 결혼은 정략이요 비즈니스다. 서인숙은 그런 비즈니스가 위험에 처하자 즉시 한승재를 정부로 만들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바로 구마준이다. 구마준은 바로 결혼은 곧 정략이요 비즈니스라는 서인숙이 신봉한는 철학의 결정판이다. 

그런 아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신유경이란 출신성분이 떨어지는 여자애와 사랑이란 걸 하겠단다. 그러나 알고 보면 구마준도 실은 서인숙의 사랑론, 결혼관과 별로 다르진 않은 철학을 갖고 있다. 마준이 신유경과 결혼하겠다고 하는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김탁구에 대한 경쟁심리다. 탁구가 가진 것은 모두 빼앗아야겠다는 것이 그의 인생 목표처럼 돼 버렸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안다. 바로 자기 출생의 비밀, 생부가 구일중이 아니라 한승재란 사실, 그걸 알고나서부터다. 마준에게 탁구는 영원한 콤플렉스요 트라우마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와 생부에 대한 복수심이다. 그는 자기를 이렇게 만든 두 사람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 복수의 도구로 신유경을 택했다. 그러나 이 두가지 외에도 달리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에 시작은 이 두가지였다. 그리고 서서히 마준의 마음속에 진짜 사랑이 생겼을 수도 있다. 

아무튼, 서인숙은 그런 마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인숙은 사람다운 구석이라곤 한치도 없다. 그녀는 처음에 남아선호사상이랄지, 고부갈등이랄지, 무심한 남편이랄지 이런 것들로 애처로운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갈수록 그녀의 본색이 드러나면서 이런 위로들은 철회되기 시작했고 남은 것은 비난과 증오뿐이었다. 

캐릭터의 혼란? 천만에 그들은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어제밤, 그녀는 다시 그녀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구일중에 대한 순정을 드러내보임으로써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녀가 원래 저런 여자였던가? 그래서 어떤 이는 그녀의 캐릭터가 왜 갑자기 돌변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하나의 눈이 말하는 의견일 뿐이다. 

▲ 구일중(위), 한승재(아래)

서인숙은 구일중처럼 변한 것이 전혀 없다. 그녀는 처음부터 구일중을 사랑했다. 아마 그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결혼이 정략과 비즈니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비극일 뿐. 만약 서인숙이 구일중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애가 터지게 아들을 얻고자 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럼 한승재와 내연의 관계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서인숙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두려운 거요? 당신은 모든 걸 다 가졌소. 그런 당신이 뭘 두려워한단 말이요?" 하고 구일중이 묻자 서인숙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을 잃을까 두려워요. 당신이 떠나갈까 그게 두려워요." 이 말은 일관된 그녀의 진심이다.

그러나 혹자는 서인숙의 이 말이 불편하다. 그가 그이 눈으로 본 서인숙은 이런 여자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불편함도 틀린 것은 아니다. 세상은 저마다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오해도 생기고 그래서 사단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또 그래서 세상은 각양각색의 다양한 눈으로 당양하게 해석되고 채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승재는 어떨까? 나는 늘 한승재 이 사람이 참으로 불쌍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한승재야말로 철저한 이방인이다. 그는 어떤 것도 가지지 못했다. 아내도, 아들도 그에겐 만질 수 없는 머나먼 존재들이다. 그는 처음에 서인숙의 꾐에 넘어가 그녀의 명령에 따라 악을 실행하는 입장이 되지만 늘 고뇌했다. 

착한 것이 이긴다고 믿는 팔봉선생의 제자들

그러다 어느날부터 진짜 악의 화신으로 변해버렸다. 그는 이제 무슨 짓이든 못할 것이 없는 악당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겐 아픔이 없을까? 자기를 아버지로 인정해주지도 않는 아들, 그저 이용하기 위해 내연의 관계를 만들었을 뿐인 서인숙. 남편 구일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한승재는 안다. 

그런 한승재야말로 가장 불쌍한 캐릭터이다. 그도 언젠가는 후회의 아픔에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도 절대 의외가 아니다. 원래 인간은 이중적이다.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어떤 경우에 인간은 매우 선한 모습이다가도 어떤 경우에 인간은 매우 악한 모습으로 변한다. 

▲ 팔봉선생의 죽음 앞에 숙연한 그의 제자들. 장항선의 퇴장에 아쉬운 시청자들이 많다.

한승재가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 두 모습이 어떻게 충돌하며 하나의 면모가 다른 면모를 누르고 승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제빵왕 김탁구. 실로 다양한 캐릭터들의 경연장이다. 구일중과 서인숙이 보여주는 모습에 느닷없다고 불평하는 모습들이 그래서 이해도 가고 나쁘게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야말로 제빵왕 김탁구가 캐릭터전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마준을 놓고 동정과 비난이 동시에 있는 것도 매우 재미있는 현상 아닌가? 물론 나는 구마준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주기 싫은 편이지만, 그를 이해하고 그와 아픔을 함께 하려는 편에 선 분들이 더 가상하다.

그분들이야말로 팔봉선생의 진정한 제자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든 서인숙과 한승재, 구마준이 단죄 받기를 원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정말로 허탈해질 것 같다. 역시 나는 팔봉선생의 제자는 못될까보다. 그래도 좋다. 현재로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그래도 착한 것이 이긴다고 믿는 팔봉선생의 제자들이 부럽다. 기다림의 미학을 이해할 줄 아는 김탁구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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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구마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발효일지를 훔치기 위해 팔봉제빵 건물에 불을 질렀습니다. 구마준은 이제 방화범이 된 것입니다. 마준의 생부는 납치, 폭력, 미성년자 유괴, 살인, 살인미수 등 온갖 범죄를 저질렀지요. 물론 이런 범죄들의 대부분의 마준의 어머니와 합작 내지는 방조 하에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마준은 그의 생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의 생부도 처음엔 죄를 범하기 전에 머뭇거렸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양심이 악마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미순을 강제 낙태시키기 위해 산부인과로 데려갔을 때 조금만 더 악독했다면 놓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닥터 윤이 근무하던 보건소에서 김미순을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그때가지만 해도 완벽한 악마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는 구일중 회장의 비서실장이었으므로 구일중의 말만을 들어야겠지만, 서인숙과의 묘한 인연과 그녀의 카리스마 때문에 서인숙을 주인처럼 모시는 듯합니다. 

.............. △ 이 사진만 보면 마준도 꽤 착해 보인다.


한 건도 성공 못시키는 한심한 범죄자 한승재와 구마준?  

막다른 골목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김미순이 한승재의 눈에도 애처롭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는 그녀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차츰 그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습니다. 제 친아들 마준이 성장해가는 만큼 그의 야망도 커져갔습니다. 그의 야망이 커지는 만큼 그의 악마성도 점점 부풀었습니다. 


한승재는 이제 살인계획 하나쯤 세우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목적을 위해 자기가 평생을 보필했던 구일중 회장마저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구일중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한승재가 참 안타깝다고 말하는 네티즌들도 많습니다. 그는 왜 하는 짓마다 모두 실패만 하는 건지.  

하하, 한승재로선 참으로 비통한 일이겠습니다만, 김미순도, 김탁구도 그리고 구일중도 숱하게 살해 계획을 세우고 시도했건만 단 한 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긴 그 중 하나라도 성공했다면 세 사람 중에 하나는 지금 드라마에 나올 수 없겠지요. 중도 하차. 아마 다음 주엔 팔봉선생이 돌아가시게 돼 하차하신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부전자전이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승재의 운명을 그대로 따라가는 구마준도 하는 일마다 실패하기는 마찬가집니다. 마준은 열두 살 때 구일중과 서인숙 그리고 두 누나가 보는 앞에서 김탁구를 도둑으로 몰아세운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훔친 돈과 패물을 훔친 것은 탁구였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거짓말은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일중이 마준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겁하게 거짓말을 하며 모두가 속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가 속아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거짓말에 넘어간 적이 없습니다. 참 한심한 악당이지요.

△ 라이타에 불을 켜 쓰레기통을 이용 방화하는 구마준.


그런데 그런 구마준도 이번엔 제대로 한 번 악당 노릇을 하려나 봅니다. 불을 질러 팔봉선생을 확실히 쓰러뜨렸습니다. 그럼 이번에 불을 지르고 책(발효일지)을 훔쳐간 구마준의 행동은 얼마나 중한 범죄에 해당할까요? 제가 변호사 자격증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충 알아보면 이렇습니다.

구마준이 범한 방화사건은 실형 몇 년이나 받을까? 

그러나 알만한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거 알아볼 필요도 없이 엄청난 중범죄입니다.
소위 4대 강력범죄 중 하나죠.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대한민국 형법

제13장 방화와 실화의 죄

제164조 (현주건조물등에의 방화) ①불을 놓아 사람이 주거로 사용하거나 사람이 현존하는 건조물, 기차, 전차, 자동차, 선박, 항공기 또는 광갱을 소훼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제1항의 죄를 범하여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전문개정 1995.12.29]

제165조 (공용건조물등에의 방화) 불을 놓아 공용 또는 공익에 공하는 건조물, 기차, 전차, 자동차, 선박, 항공기 또는 광갱을 소훼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166조 (일반건조물등에의 방화) ①불을 놓아 전2조에 기재한 이외의 건조물, 기차, 전차, 자동차, 선박, 항공기 또는 광갱을 소훼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②자기 소유에 속하는 제1항의 물건을 소훼하여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제167조 (일반물건에의 방화)
[[[[[①불을 놓아 전3조에 기재한 이외의 물건을 소훼하여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②제1항의 물건이 자기의 소유에 속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대략 살펴보기만 해도 형량이 장난들이 아닙니다. 대체로 '몇 년 이상의 징역', 이런 식입니다. 우선 구마준이 불을 지른 건물이 현주건조물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일반건조물에 해당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현주건조물이란 사람이 주거로 사용하거나 사람이 현존하는 건조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팔봉제빵 건물은 어디에 해당할까요? 

△ 불이 난 팔봉제빵점. 소방차도 오고 사람들이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보아하니 팔봉제빵 건물 1층은 제빵점, 2층은 제빵실입니다. 마준이 불을 지른 곳은 2층 제빵실입니다. 팔봉제빵 사람들은 제빵점 건물 앞에 있는 건물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현주건조물방화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일까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제빵점이나 제빵실 내에 숙직실이나 기타 사람이 휴게 등 목적으로 거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면 현주건조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또 방화시점에 직원들이 퇴근하지 아니하고 있었다면 사람이 현존하는 건조물이 되어 현주건조물이 됩니다. 

이럴 경우에 보시다시피 형법 제 164조 1항의 적용을 받아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때 사람이 다쳤다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죽은 사람이 생겼을 때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어 그 양형의 정도가 무겁습니다.

그럼 현주건조물이 아닐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팔봉제빵점이 공용건조물은 아니니 일반건조물에 해당하게 되겠지요. 이때에도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그 형량을 과중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구마준이 저지른 범죄가 매우 위험하고 중대한 범죄란 말입니다.

(제가 볼 땐 구마준이 초범이고 다친 사람이 없기는 하나 그 죄질이 매우 악독하므로 최소한 3년에서 5년 정도의 형은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효일지를 훔친 행위는 단순 절도가 아닌 기술유출 범죄   

자, 그렇다면 이번엔 마준이가 팔봉선생의 발효일지를 훔친 사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발효일지는 한권의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오늘날 팔봉빵집이 있게 한 제조기술을 담은 책입니다. 무협지로 말하자면 비급,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로 말하자면 일급 제조기밀입니다.  

△ 발효일지를 훔쳐가는 구마준, 이는 기술유출범죄.


만약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이 담긴 책을 이 회사 내 어떤 연구원이 훔쳐서 중국이나 인도의 어떤 전자회사에 팔아넘겼다고 생각해봅시다. 과연 이런 범죄행위는 얼마나 처벌을 받게 될까요? 가끔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나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마준이 저지른 범죄는 단순한 절도행위가 아닙니다. 팔봉선생의 발효일지는 봉빵의 제조기밀이 담긴 팔봉빵집의 일급 기밀문서입니다. 현대자동차로 말하자면 소나타 승용차 설계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훔쳐서 경쟁자에게 넘긴다면 회사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됩니다.

만에 하나 이로 인해 삼성전자가 기업존폐의 위기에까지 몰린다면 이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게 됩니다. 참담한 고용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화폐를 위조 또는 변조한 자는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어 위에 보신 방화범과 비슷한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위폐범이 저지른 행위가 자칫 국민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쳐 사회적 안전을 해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회적 안전을 해하는 행위에 전쟁, 변란 같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기술유출 범죄는 어떻습니까? 이 또한 사회적 안전을 해치는 행위에 해당된다 할 수 없을까요? 

최근 기술유출범죄에 대해 너무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불평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기술유출범죄는 국가정보원(과거 그 무시무시한 중앙정보부 또는 안기부가 바로 이 국정원이죠)에서 다루고 있는 국가적 중대 범죄입니다. 마준이가 바로 그 기술유출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 제조기밀을 빼낸 것도 모자라 팔봉선생의 명장타이틀까지 빼앗으려는 구마준.


구마준의 형량? 증거불충분으로 처벌하기가 힘들 것! 

이나저나 구마준, 구원 받기는 참 힘들게 됐습니다. 김탁구나 구일중 기타 시청자 및 네티즌 여러분이 용서해주신다고 하더라도 현행법상으로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사법기관이 구마준을 처벌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문제는 아닙니다.

증거주의, 공판중심주의를 재판의 원칙으로 채용하는 요즘 방화범의 범행을 입증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게 됐습니다. 방화사건의 특성상 모든 것이 불타 버린 상태란 모든 증거가 인멸된 상태와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마준 방화범이란 것은 오로지 심증에 의존할 뿐이고, 발효일지를 훔친 기술유출범죄도 마찬가집니다. 

참고로 저도 몇 년 전 서울 잠실에서 일어난 건물화재사건 때 현장에 있었는데, 그때 열 명이 현장에서 죽고 열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저는 2층 우리 사무실에 있었는데, 아래로 뛰어내려 다리만 다치는 부상을 입었을 뿐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끔찍한 일이었죠. 지금도 모텔 같은 곳에는 무서워 못갑니다.

그러나 당시 그 건물 방화 피의자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2심에선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심증은 가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거였지요. 살인 기타 중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증거인멸의 수단으로 방화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불이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니까요.

최근 부쩍 그런 추세가 많다고 하는군요. 실로 참혹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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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탁구의 가장 훌륭한 스승은? 다름 아닌 구마준!!

구마준이 탁구가 설빙초를 마시기 전에 제지하기를 바랐습니다만, 마준은 결국 막지 않았군요. 양미순이 약 숟가락을 탁구의 입으로 가져가는 걸 지켜보면서 마준은 그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야. 어디까지나 이건 너의 운명일 뿐이야. 내가 아니어도 운명이 너에게 독약을 먹이고 있지 않니."
 
구마준은 가만 보면 핑계의 대가입니다. 그는 늘 나쁜 짓을 할 때마다 이럽니다. "이건 내 탓이 아니야. 다 네가 못난 탓이지. 너는 결국 누군가에게 이렇게 당하도록 되어 있어. 그걸 운명이라고 하지." 마치 성폭력 범죄자가 이렇게 말하는 거 하고 같습니다. "이게 어디 내 탓이야? 만약 네가 싫었다면 나는 할 수 없었다고."

사람을 개 패듯이 무차별 폭행을 해놓고도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상대가 있는 법이야.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지." 그런 견지에서 아마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과 아나운서를 꿈꾸는 젊은 여대생들을 빗대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강모 의원도 굉장히 억울할 겁니다.

"아니 내가 한 말이 뭐 틀린 거 있어? 원래 다 그런 거 아니야? 자기들도 다 알면서, 괜히들 난리야."


이런 것은 성희롱당으로 놀림 받는 한나라당이나 보수파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진보단체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로 일어납니다. 심지어 수배된 민주노총 위원장을 수행하던 민주노총의 한 간부가 전교조 여교사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사자는 징역 3년형인가를 선고 받았지만, 민주노총은 아직도 이에 대해 공식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튼 구마준이 바로 이런 인간입니다. 자기가 일을 저질러놓고도 그것은 모두 너의 운명 탓이야 이러면서 철저하게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실로 무서운 겁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마치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자기도 매우 괴로운 무엇이 있다는 듯이 비련의 주인공처럼 행세합니다.

구마준이 바로 그런 인간인 것입니다. 차라리 무식하게 악행을 저지르는 야차 같은 인물이라면 동정의 여지도 없으니 우리가 그렇게까지 고민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구마준의 악행 덕분에 김탁구가 제빵왕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제빵왕 김탁구>. 제목이 말하듯이 누가 뭐래도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줄거리는 김탁구가 갖은 어려움을 겪고 마침내 제빵계의 큰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시는 분은 하시겠지만, 김탁구는 빵 만드는 데는 영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어머니를 찾는 일만을 생각하며 삽니다.

그런 김탁구가 빵을 만들도록 만든 인물은 누구도 아닌 구마준이었습니다. 이들이 12년 만에 재회한 곳은 팔봉빵집입니다. 탁구가 팔봉빵집에 머물게 된 이유는 다만 바람개비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람개비 문신을 한 남자. 조진구였습니다. 그를 찾으면 엄마를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가 탁구에겐 있었던 것입니다.

마준과 탁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유경. 그러나 그녀는 결국 돈냄새를 따라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기대는 조진구를 만난 순간 깨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탁구는 팔봉빵집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탁구에게 빵을 만들 이유를 만들어준 것은 구마준이었습니다. 구마준은 탁구에게 경찰서에 잡혀간 신유경을 빼내 줄 터이니 앞으로 2년간 절대 신유경을 만나지 말 것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2년 후에 자기와 경합을 해야 한다고 조건을 겁니다. 물론 탁구는 이에 응했습니다. 신유경을 구하기 위해서. 탁구가 빵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준 사람은 구마준만이 아니었습니다. 구마준의 생부. 한승재가 있습니다. 그는 팔봉빵집의 고재복을 매수해서 제빵실 폭발사고를 사주합니다.

당연히 김탁구를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계획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김탁구는 실명만 한 채 살아남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김탁구. 그때 김탁구는 자기가 얼마나 간절하게 빵을 만들길 원하는지 알았습니다. 딱 한 번 보았을 뿐인 아버지의 빵 만드는 모습이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 속에 살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결국 한승재가 김탁구를 해치려고 한 계획이 탁구로 하여금 구일중이 걸어간 길을 걷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구마준은 김탁구에게 팔봉선생의 경합에서 자기를 이기려면 수단방법 가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라면서.

역시 한승재의 사주를 받은 고재복이 경합자들의 밀가루 반죽에 소다를 뿌려 못쓰게 만드는 사고를 쳤습니다. 구마준은 이것이 김탁구의 짓이라고 모함을 하고 결국 김탁구는 다른 경합자들을에게 밀가루를 양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맙니다. 1차 경합에서 김탁구는 탈락할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탁구에게 기회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탁구는 모자란 밀가루 대신에 옥수수와 보리를 이용해 보리밥빵이란 특별한 빵을 만들어냈습니다. 가장 배부른 빵. 탁구는 팔봉선생으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반면에 구마준은 탈락시켜야겠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팔봉선생의 말로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구마준의 악마성을 알면서도 따라가는 신유경에 비해 양미순은 사람냄새가 나는 김탁구에 이끌린다. 역시 미각의 천재.


2차 경합. 갈등하던 마준은 결국 악마의 유혹을 삼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이번엔 매우 중대한 범죄행위를 계획합니다. 김탁구에게 독을 먹이기로 한 것입니다. 설빙초. 이걸 먹으면 맛과 냄새를 느끼지 못합니다. 미각과 후각이 없이 빵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김탁구. 이번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미각과 후각을 잃은 탁구는 제빵사로선 식물인간입니다. 그런 그는 오로지 손의 감각만으로 빵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탁구는 실패한 빵들을 경합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 실패의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은 오로지 손의 감각만으로 이룬 것입니다. 김탁구가 마신 독초의 양은 한 숟갈 정도였으므로 곧 다시 미각과 후각을 되찾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럼 이제 탁구에겐 미각, 후각 외에 또 하나의 무기가 더해지는 셈입니다. 바로 뛰어난 손의 감각. 이 삼박자가 김탁구를 제빵왕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탁구가 이런 비장의 무기들을 개발하도록 힘써준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구마준입니다. 구마준이 호의로 그런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튼 김탁구는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꼭 비급 한 권을 얻어오거나, 기화요초를 얻어 임독양맥이 타동되는 기연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삼화취정, 오기조원을 거쳐 등복조극에 이르고 마침내 입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대개 자기를 낭떠러지에 밀어 떨어뜨린 악인을 찾아내 기어이 복수를 합니다. 가끔 용서를 하는 경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기억나는 것이 전혀 없으니 아마도 복수가 대체적인 결말인 듯싶습니다.

김탁구는 어떨 것 같습니까? 자기를 낭떠러지에 밀어 떨어뜨린 구마준, 그리하여 기연을 얻어 제빵왕의 길로 인도해준 구마준을 어떻게 대할 것 같습니가? 역시 늘 그렇게 기대하듯이 처절하게 복수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합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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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준, 과연 미순 엄마의 손에 든 독초병을 막을 것인가, 말 것인가!  

아, 김탁구가 마침내 독초를 먹었습니다. 다행한 것은 마준이가 직접 먹이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독초병을 들고 서있는 마준에게 그게 뭐냐고 팔봉빵집 식구들이 물어보자 엉겁결에 감기약이라고 둘러댔는데, 그걸 양미순의 어머니가 쓰러져 고열로 힘들어하고 있는 탁구에게 먹인 것인입니다.

다행히 아직 한 숟갈밖에 먹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다음 주입니다. 마준이 미순이 엄마를 제지하기만 한다면 당장 미각과 후각이 마비는 되겠지만, 영원히 미각과 후각을 잃는 불행은 피할 수 있겠지요. 마준에게 독초를 판 가게 주인이 말했었지요. "이거 한 병을 다 먹게 되면 영원히 미각과 후각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준에게 남아있는 인간성이 최후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만약 마준이 미순 엄마를 향해 "그거 독초니까 더 이상 먹이면 안 된다"고 제지한다면, 마준의 인간성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는 겁니다. 비록 이미 먹은 독초로 인해 탁구가 당분간 미각과 후각이 마비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영원한 불행은 막을 수 있습니다.

.... ▲ 쓰러진 김탁구. 감기에 걸린 줄 알고 미순 엄마가 탁구에게 마준이 숨겨둔 독초를 먹이게 된다.


탁구, 결국 냄새와 맛을 잃겠지만 마준의 양심엔 마지막 기회

더불어 구마준은 팔봉빵집 식구들에게 약간의 핀잔은 듣겠지만, 악당으로 매도당할 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구마준이 이 결정적 순간에 미순 엄마를 제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안 한다면 탁구는 몇 모금의 독초를 더 마시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 되면 마준은 팔봉빵집 식구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신을 안겨줄 겁니다. 특히 진구는 미리부터 마준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마준이가 물병에 뭔가를 타지 않았을까 의심을 품고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물병의 물을 모두 씽크대에 쏟아 버렸습니다.

비록 다른 팔봉빵집 식구들은 탁구가 독초병 속의 설빙초를 먹고 미각과 후각을 잃더라도 그것이 마준이 보관하고 있던 독초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탁구는 미순 엄마로부터 약을 받아먹고 잠이 들었고, 한참 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미각과 후각을 잃고 힘들어 하겠지만, 그것이 독초 때문인지는 탁구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진구와 더불어 또 한명의 날카롭고 예리한 눈매를 지닌 사람, 다름 아닌 팔봉선생에 의해 밝혀지고야 말 것입니다. 팔봉선생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투로 보입니다.

.... ▲ 구마준과 신유경은 포옹으로 그들의 거래를 확인하고, 김탁구는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게다가 그는 마준이 팔봉빵집 식구들 앞에서 독초병을 뒤로 감출 때 손에 쥔 예의 그 병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유심히. 마치 "마준아, 네가 그걸 정녕 쓸 셈이냐?" 이렇게 속으로 말하면서 말입니다. 아마 마준이 미순 엄마를 제지하지 않는다면 마준은 팔봉선생으로부터 영원히 신뢰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준, 너는 이제 어찌 할 테냐?

어쩌면 팔봉선생은 마준의 본성과 정체를 알면서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팔봉선생이 14년 전 탁구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착한 아이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착한 사람은 누구를 미워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거란다." 팔봉선생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사람만이 좋은 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마준. 절체절명의 기로에 섰습니다. 그에겐 아직 양심이 남아있습니다. 그의 속에선 끊임없이 양심의 소리가 나쁜 짓을 해선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한편에선 욕망과 분노, 좌절감이 그를 몰아세웁니다. 거성가를 가져야겠다는 욕망, 출생의 비밀에 대한 분노, 탁구를 향한 질투심과 좌절이 그의 양심을 마비시킬 듯이 덤벼듭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미순 엄마가 탁구에게 더 독초를 먹이지 못하도록 제지하게 되면 마준은 탁구가 내민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탁구는 마음이 매우 넓은 친구입니다. 그는 비록 마준이 신유경을 빼앗았더라도 마준을 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준의 비아냥거림처럼 형으로서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할 수 도 있는 것이 탁구의 본성입니다.

또는 사랑하는 신유경을 위해 깨끗이 물러설 수도 있을 겁니다. 눈물을 머금고. 마준이 미순 엄마를 제지하는 순간, 마준과 탁구에겐 아직 기회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준이 미순 엄마를 제지하지 않거나 못하게 되면, 그때는, 누구 때문도 아니고 바로 마준 스스로 악마의 길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겁니다.

.... ▲ 시험대에 선 구마준. 어떻게 할 것인가? "마준아, 이제 넌 어찌 할 테냐?"


결국 어떤 선택이든 결정이든 마준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준에게 달렸습니다. 마준은 순간의 이 작은 선택으로 인해 마침내 인생에 중대한 결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겠지요. 과연 마준은 이 시험대를 어떻게 통과할까요?

마준, 과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인가?

마준. 미순 엄마를 제지하고 그녀의 손에서 독초병을 빼앗아 탁구를 구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모른 척 넘어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모두들 마준이 탁구가 내민 손을 잡길 원하고 있을 테지만, 결국 모든 것은 마준의 손에 달렸습니다. 마준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현재로선 작가 외에는 아무도 없을 성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준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군요. 사실은 팔봉선생이 은밀히 마준을 지켜보며 속으로 뇌까린 말입니다.

"마준아, 이제 너는 어찌 할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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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버지를 앞에 두고도 부르지 못하는 김탁구, 대체 왜? 
















늘 그게 궁금했습니다. 왜 탁구는 집으로 안 돌아갈까? 열두 살 어린 아이가 집을 버리고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녔던 것일까? 물론 탁구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한승재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죠. 엄마(김미순)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는 대가로 거성가를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탁구는 왜 집으로 안 돌아가나?
 
그러나 그 약속은 이미 휴지조각이 된 지가 오랩니다. 한승재는 틈만 나면 김미순과 김탁구를 죽이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주로 돈을 이용해 폭력배들을 동원하는 좀 전근대적이고 비열한 수법들이 사용되었던 것이죠. 그러니 김탁구가 한승재에게 거성가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약속 따위는 원인무효인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최소한 김탁구는 한승재가 자기 엄마를 해치려고 시도했었고, 14년의 실종에도 깊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어릴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스물여섯 살이 된 지금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게다가 탁구는 한승재가 보낸 조폭들에게 죽을 뻔 했지 않습니까? 

인적 없는 으슥한 창고에서 조폭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김탁구 앞에 한승재가 나타났었죠. 그리고 이렇게 말했잖습니까. "왜 경고를 무시하고 다시 나타난 거냐?" 사실 김탁구가 그들 앞에 나타나려고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우연히 한승재가 김탁구를 발견한 것뿐이었지요. 

한승재는 조폭들에게(이들이 한승재가 거느린 부하들인지, 돈을 주고 산 깡패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처리하라고(죽이라고) 지시하고는 자리를 떴습니다. 승합차에 어디론가 끌려가던 김탁구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지요. 그리고 얼마 후, 팔봉빵집에서 다시 만난 김탁구와 한승재. 저는 기절할 뻔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불과 얼마 전에 자기를 살해하려 했던 자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한적한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물론 대화 내용은 날이 서 있었지만. 당장 신고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아무튼, 제 상식으로는 좀 거시기 했습니다. 이쯤 되면 김탁구는 알았어야 하는 겁니다. 

"한승재. 니가 우리 엄마를 죽였지? 어떻게 한 거냐, 어서 바른대로 대!" 

왜 한승재를 그냥 놔두고 있는 걸까?

이렇게 몰아붙였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니냐는 거죠. 그러나 김탁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조진구도 그렇습니다. 김탁구는 12년 동안이나 조진구를 찾아 헤맸습니다. 오로지 바람개비 문신이 팔뚝에 새겨진 남자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그리고 바람개비 문신의 주인공 조진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김탁구는 조진구에게서 아무것도 얻어낸 것이 없습니다. 누가 사주한 것이냐? 어떻게 했느냐? 우리 엄마는 어떻게 됐느냐? 죽었느냐, 살았느냐? 아마 탁구는 조진구로부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만을 보았을 뿐 그 이후엔 흔적도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말이 나오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느낌이 그렇습니다.

이건 완전 이율배반입니다. 12년이나 엄마를 찾아 헤매던 탁구가, 오로지 엄마를 찾기 위해 부잣집 아들 자리까지 포기한 탁구가 유일한 단서라고 믿었던 바람개비 문신을 찾았는데도 그렇게 허무하게 주저앉고 말다니. 최소한 누가 사주했는지는 알아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탁구는 조진구에게서 사건 정황에 대해 자세히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일을 시킨 사람은 니 아버지 구일중이다, 그는 니 엄마를 해치라고 시킨 것이 아니라 한승재의 손아귀에서 구해 멀리 도망치라고 시킨 것이다, 그렇게 말해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은 어제 오후에 썼다가 약속시간 때문에 발행을 미루었는데, 오늘 드라마를 보니 실제로 그랬다는 구일중의 회상이 나오더군요.)

그렇다면 김탁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구일중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일중에게 따졌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함께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 겁니다. 한승재가 자기에게 벌인 흉계에 대해서도 폭로했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사태를 지켜보면서 비밀을 캐내려고 할 것인지 결정했어야 하는 겁니다. 

왜 아버지를 보고도 모른 척 하는 걸까?

김탁구는 소리만 버럭버럭 지를 줄밖에 모르는 바보인 것일까요? 제가 보기엔 틀림없이 바보입니다. 그는 어제 구일중을 만났습니다. 팔봉빵집 제빵실에서 마주친 김탁구와 구일중. 14년만의 부자상봉입니다. 구일중은 김탁구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 같으면 얼른 알아 볼 텐데, 좀 그렇더군요. 

그러나 김탁구는 구일중이 자기 아버지인 줄 잘 압니다. 늘 그리워했던 아버지가 아닙니까? 12년 동안 팔도를 전전하면서 빵 반죽을 만들었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때문이었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었지요. 그런데 왜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혹시 안 하는 것일까요? 기분 나빠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버지를 만난 감동이 탁구의 흐려진 눈동자를 촉촉이 적셔주고 있는 것이 보였거든요. 그럼 왜 김탁구는 자기를 숨기는 것일까요? 이름을 물어보는 아버지에게 그저 김군이라고 부르면 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빠져나갔습니다. 왜 그랬던 것일까요?  

그날 밤, 김탁구는 구마준에게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만, 아버지 앞에 나타나고 싶지만 이런 모습으로는 싫다, 좀 더 당당한 모습으로 떳떳하게 아버지 앞에 서고 싶다는 말을 하는 김탁구를 보며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탁구야, 참 훌륭한 생각이다. 역시 넌 훌륭해. 그러나 그건 아니잖아? 니가 왜 이렇게 살아왔던 거니? 니 엄마, 엄마를 잊은 거니? 엄마를 생각한다면 당장 니 아버지에게 너의 존재를 밝히고 지금까지의 일들을 모두 설명 드려. 그리고 니 아버지와 함께 니 엄마의 행바을 찾아. 그게 옳지 않니?"

탁구는 엄마 찾기를 포기한 걸까? 그렇다면 왜 집을 나온 걸까?

모르겠습니다. 저도 지금 탁구의 마음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무튼, 김미순은 굳이 탁구가 찾지 않아도 탁구 앞에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거성식품의 대주주가 되어 탁구에게 큰 힘이 되겠지요. 그리고 탁구는 인간경영을 하게 될 겁니다.

팔봉선생의 첫 번째 경합 과제처럼, 배를 부르게 해주는 빵을 만들게 되겠지요. 그러나 어떻든 저로서는 김탁구가 왜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인지에 대해선 요해가 잘 안 됩니다.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군요. 간단하게 모든 것을 밝히고 엄마를 찾는 것이 순리일 것 같은데…, 뭔가 심오한 뜻이 있겠지요.
 
하여간 갈수록 재미있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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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편지로 깨지기 시작하는 불안한 동맹

 

결국 서인숙은 한승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드라마 속 한승재조차도 서인숙의 마음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륜과 야심으로 맺어진, 그러나 허술한 동맹

그러다 서인숙의 구일중에 대한 마음을 보게 되면 질투심에 온몸이 타들어갑니다.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질투심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 무모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몸을 낮추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는 서인숙을 절대 배신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진짜로 서인숙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한승재 비서실장의 방에 들어간 서인숙, 우연히 결재서류 속에서 의문의 편지를 발견하고...


이 두 사람의 불안한 동맹이 시작된 것은 순전히 서인숙의 야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 거성가 안주인의 자리를 지키고야 말겠다는(당시는 1960년대란 사실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야심에 한승재를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동맹한 결과로 구일중의 법률적 아들이요 거성식품의 후계자가 될 구마준이 태어났습니다.  

구마준은 이 두 사람의 흔들릴 수 없는 동맹을 확인시켜주는 존재입니다. 구마준으로 인해 서인숙과 한승재는 진짜 부부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들만이 있을 때, 실제로 그들은 정말 부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때면 오히려 구일중이야말로 이들의 틈에 끼어있는 불편한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절대 깨질 수 없는, 깨져서도 안 되는 동맹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서인숙이 한승재 비서실장의 방에서 자기에게 배달 됐던 의문의 편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재서류들 틈에 숨어있던 편지에는 똑같은 필체로 다음과 같이 씌어있었습니다.

▲ 이 협박편지를 보낸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운명은 이제 더 이상 당신 편이 아닙니다.”

이 편지에 앞서 배달 됐던 편지에는 <살인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죠. <살인자>와 “운명은 이제 더 이상 당신 편이 아닙니다”, 이 두개의 문장을 놓고 서인숙은 시어머니 홍여사의 죽음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자의 소행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필체의 편지가 한승재의 책상 위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공범이며 동맹자인
한승재를 의심하는 서인숙


당장 서인숙은 한승재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한승재와 자기가 14년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해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당신과 나 두 사람밖에 없소. 그러니 아무 일 없을 거요.”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금 자기에게 배달된 것과 똑같은 편지가 한승재의 책상에 놓여있습니다.

사실 서인숙이 무턱대고 한승재를 의심부터 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편지를 보낸 자가 자기에게 배달된 것과 똑같은 편지를 공범인 한승재에게도 보낸 것이라고. 그러나 왜 서인숙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한승재를 의심부터 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그것은 한승재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마음이 약간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쉽사리 사람을 의심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설령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믿어보려는 마음이 앞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인숙에겐 그런 마음이 단 1초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서인숙의 심경을 한승재는 이미 꿰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서인숙의 이런 태도를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을 굴립니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는 자신과 서인숙의 관계가 불안한 동맹 위에 지어진 모래성 같은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편지를 보낸 사람이 김미순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은사모님’이란 호칭을 알고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성가의 가정부와 김미순, 그리고 한승재 말고는 없습니다. 아마도 <살인자>란 문구와 “운명은 이제 더 이상 당신 편이 아닙니다”란 문장은 탁구와 자기를 해치려 한 두 사람을 겨냥한 것일 수 있습니다. 

▲ 한승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서인숙. 이토록 허술해 보이는 이들의 관계가 실은 오른쪽처럼...


아무도 못 믿는 불행한 사람

김미순은 탁구 할머니가 죽는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거성가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허술한 곳이 아닙니다. 탁구와 마준이 열두 살 때 몰래 집을 빠져 나올 때도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나올 정도였습니다. 가정부가 보았을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홍여사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서인숙의 한승재에 대한 의심으로 두 사람의 동맹전선에는 심각한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승재가 아무리 봉합하려고 노력하더라도 한번 금이 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서인숙의 동맹자에 대한 의심은 어쩌면 자승자박의 길로 자신을 인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입니다. 서인숙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녀는 남편 구일중도 믿을 수 없고, 남편보다 가까운 정부요 동맹자인 한승재도 믿을 수 없게 됐습니다. 믿을 만한 측근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가정부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매일 밤마다 나타나는 시어머니에게 시달리는 그녀는 결국 스스로의 입으로 죄를 실토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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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가 아니라 엄마 김미순이 시력을 잃을 듯…
















김탁구가 실명을 했군요. 그러나 곧 다시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천만 다행입니다. 그렇죠. 주인공이 시력을 잃으면 안 되죠. 시력을 잃은 사람들 중에도 훌륭한 명인들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제빵왕도 되고 본래의 자리도 찾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드라마를 보다가 그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아니, 갑자기 왜 김탁구를 실명 위기로 내모는 거야, 왜? 무엇 때문에? 물론 탁구의 실명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탁구는 잠깐이지만 실명 상태에서 자기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제빵왕의 면모를 발견했습니다. 

빵을 향한 열정. 그것은 단순한 추억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빵은 탁구에게 생명이요 진리였던 것입니다. 탁구는 아버지 구일중이 빵 만드는 모습을 딱 한 번 보고 그 모습을 평생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지금 탁구가 다양한 빵 모양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소질을 계발하게 된 것도 그 추억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탁구는 이미 아버지를 만나기 전부터 유독 빵에 대한 후각과 관심이 남달랐습니다. 극 초반 탁구가 초등학교 동무들과 어울려 빵가게 앞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던 장면을 모두들 기억하시겠지요. 탁구는 천부적으로 빵에 대한 소질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뭐 구일중으로부터 유전된 것일 수도 있지요. 

탁구의 실명은 빵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으니 무의미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주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탁구 엄마의 등장과 탁구의 실명은 뭔가 심상찮은 반전을 예감하게 했습니다. 엔딩샷에 클로즈업 된 탁구 엄마와 탁구. 제작진은 이 엔딩샷으로 무엇을 예고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는 그저 단순하게 김미순이 나타나자마자 김탁구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드라마를 보면서는 김탁구가 실명하게 되면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탁구에게 있어서 살아야 할 모든 가치를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상황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탁구는 시력을 되찾았습니다. 탁구가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절망적인 상황은 비켜갔습니다. 그러다가 무심결에 들었던 탁구 엄마와 닥터 윤이 나누는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그때까지 제 눈이 버텨줄란가 모르겠네예." 그리고 물잔을 잡으려고 내민 그녀의 손이 컵에 못 미쳐 허공을 가르는 걸 보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던 당시에는 그냥 무심결에 지나쳤지만 그건 예사로운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어? 탁구가 아니라 탁구 엄마가 실명한 거 아냐?" 하고 생각했지만, 곧 그런 생각은 그냥 드라마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탁구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병자처럼 보이긴 했지만) 걸어 다녔거든요. 

탁구 할머니 홍여사의 무덤에 나타났을 때도 김미순은 차안에서 구일중이 성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니 탁구 엄마가 당장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제 탁구 엄마가 보여준 모습은 분명 시력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물잔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치료하러 서울의 어느 병원에 온 탁구와 우연히 마주쳤지요. 이때 김미순은 닥터 윤의 부축을 받기 위해 손을 잡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 역시 김미순이 실명했구나!' 했지만 잠시 후 스스로 의자에 앉는 모습을 보며 다시 '아닌가?'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다가 약간 옆에 떨어져 앉아있는 탁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요. 


김미순의 시선이 탁구에게 한참 머물렀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뭔가 초자연적인 느낌 같은 것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탁구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렇게 생각했지요. '탁구가 안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탁구를 못 알아보는 것일까?'

글쎄요.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저녁에 다시 김미순씨가 나올 테니 그때 한 번 물어보는 수밖에요. 어제 탁구 옆에 앉아서 한참 동안 탁구를 바라보셨는데 안 보이셨던 거예요? 아니면 탁구일 줄 모르셨던 거예요?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탁구 엄마가 탁구를 못 알아볼 리는 절대 없습니다.

보통의 엄마들이라도 아무리 열두 살 때 헤어진 아들이 스물네 살이 되어 앞에 나타났다 해서 못 알아보진 않습니다. 특히 김탁구 엄마 김미순은 보통의 엄마가 아닙니다. 그녀는 오직 탁구 하나만 보며 살아온 여자입니다. 그녀는 탁구를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김미순이 탁구를 못 알아본다? 탁구도 마찬가집니다. 12년 동안 오로지 엄마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평생 편안한 삶이 보장되는 거성가까지 버렸습니다. 그러나 김탁구는 시력을 다쳐 눈에 붕대를 감고 있는 상태, 엄마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김탁구가 그 상태가 아니었다면 당장 "엄마!' 하고 외치며 달려갔을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미순은 지금 서서히 시력이 상실되어 가는 중입니다. 아마 12년 전 도망치다 사고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사경을 헤매던 김미순은 닥터 윤이 하던 보건소로 찾아갔을 것이고 닥터 윤이 지금껏 김미순을 보살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24년 전 닥터 윤의 김미순에 대한 감정이 언뜻 우리 눈에 비쳤었지요.

이들은 거성식품의 주식을 사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이 두 사람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복수를 위해 회사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하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들은 서인숙과 한승재가 홍여사를 죽였고, 거성식품의 경영권을 넘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단 우리 쪽 투자를 받겠답니다."
"투자를 하는 대신 지분 보유를 원한다는 데도 합의를 했구요?"
"처음엔 강하게 거부감을 보였지만 저희 쪽이 내민 조건이 나쁘지 않은 터라."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에서 3년이면 충분합니다."

닥터 윤이 이들의 대리인과 하는 얘기를 은밀히 듣고 있던 김미순이 이렇게 말했지요.

"2년에서 3년이라…. 그때까지 제 눈이 버텨줄란가 모르겠네예."

2년에서 3년이면 탁구가 팔봉선생으로부터 제빵 비법을 전수 받고 제빵계의 1인자가 될 때쯤이겠는데 제발 탁구를 만날 때까지라도 시력을 잃어서는 안 될 텐데, 운명이란 참으로 얄궂습니다. 어떻게 12년 만에 만난 모자가 모두 시력을 잃어 병원에 치료받으러 온 상태였다니.

그렇군요. 김미순도 병원에 눈 치료를 받기 위해 나타났던 것입니다. 실명 위기는 탁구가 아니라 김미순이 더 심각한 모양입니다. 그녀의 실명은 이미 날짜를 받아놓은 것처럼 보이니…, 오호, 통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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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순. 참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나오는 말마다 명언입니다. 사나이는 주먹을 가장 마지막에 써야 한다고 엄마와 똑같은 말을 해서 탁구를 감동시키기도 했던 그녀는 이번에도 명언을 내놓았습니다. "자고로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높은 곳을 오르려면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물론 이 말은 팔봉선생이 손녀인 양미순에게 해준 말입니다. 이 단순한 말 속에는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빵을 만들려면 가장 기초적인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의 성질부터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1차적인 과제는 반죽입니다. 이들 네 가지의 기본 요소들을 얼마나 잘 배합하느냐에 따라 빵이 잘 만들어지느냐 잘못 만들어지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려는 마음. 그 마음은 선배들과 동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신으로 나타납니다. 김탁구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팔봉빵집 식구들이 생활하는 숙소 마루를 걸레로 깨끗이 닦습니다. 빵판을 닦고 물기를 제거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입니다. 그것도 신이 나서. 

탁구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것을 빵의 기초재료들을 제대로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위해 열심히 숙소를 청소하고 빵판을 닦는 일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동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탁구는 우선 제빵사들이 행복해야 사람들에게 맛있는 빵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여기에 비해 구마준은 어떻습니까? 저는 그가 빗자루 한 번 드는 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분명 탁구와 거의 동시에 팔봉빵집에 들어왔습니다. 그가 아무리 파리에 유학까지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팔봉빵집에서는 신참입니다. 구마준은 선배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밑에서부터 일하면서 배우려는 마음은 더욱 없습니다.   


자만심으로 똘똘뭉친 구마준에게 없는 것은?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구마준에게 팔봉선생을 제외한 팔봉빵집의 제빵사들은 그저 하찮고 귀찮은 존재들에 불과합니다. 그에겐 빵을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의지보다는 하루 빨리 팔봉선생의 인정서를 받아 돌아가겠다는 욕심뿐입니다. 그에게 팔봉선생의 비법 따위는 소용없습니다. 오직 인정서만 필요할 뿐.

팔봉빵집의 대장 양인목이 김탁구를 제빵실에 거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처음에 김탁구를 들일 수 없다며 길길이 뛰었습니다. 그러나 양인목은 김탁구에게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탁구가 타고난 후각으로 빵이 쉬었다는 것을 알아냈었지요? 그래서 빵은 모두 폐기처분되고 말았습니다.

급히 새로 만든 빵을 배달하는 일을 자청하면서 탁구가 그랬지요. "소아병동의 아이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겠어요. 빨리 갖다 줘야지." 그런 탁구를 지켜보며 양인목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음, 사람에 대한 애정은 있는 녀석이군. 제빵사의 제1 조건이 바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인데, 기본은 된 녀석이야.'

여러분은 12년 전에 팔봉선생이 탁구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너 그렇다면 착하게 살아온 것이 아니었구나. 착하게 산다는 게 무엇이겠느냐. 남을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 그게 남아 있으면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아마 팔봉선생도 빵을 만드는 사람은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있어선 안 된다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빵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움과 분노로 가득한 사람이 과연 사람들의 마음을 살찌우는 빵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팔봉선생은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빵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깃들지 않은 빵은 죽은 빵이라는 거죠. 그런 빵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낮은 곳에 설 수 없는 마준, 절대 탁구를 이길 수 없어

구마준. 그의 마음속엔 오로지 야심만이 가득합니다. 그의 마음속엔 타인을 위한 약간의 자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탁구를 짓밟기 위해 도둑 누명을 씌우는가 하면 제빵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그걸 탁구가 한 것처럼 꾸미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우월의식이 뼛속까지 박힌 그의 어머니 서인숙처럼 구마준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찮기만 합니다. 그런 구마준이 가장 낮은 곳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포도주가 솟아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신유경은 그런 구마준을 꿰뚫어보았던 것일까요?

그녀는 구마준에게 이렇게 말했었지요. "너는 절대 탁구를 이길 수 없어!" 12년 전에 했던 이 말을 그녀는 구마준에게 다시 했습니다. "너는 절대 탁구를 이길 수 없어!" 그리고 팔봉선생도 알고 있습니다. 구마준이 절대 김탁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팔봉선생은 탁구와 마준이 대결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를 즐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겐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친 마준이가 아무것도 모르던 탁구에게 깨지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탁구에게 빵을 만들게 해준 사람은 마준입니다.  

구마준의 비행을 모두 알고 있는 팔봉선생이 구마준을 쫓아내지 않고 2년의 시간을 준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탁구 안에 든 그 타고난 재능을 끌어내 구경(?)하고 싶은 욕심, 그런 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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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양미순, 서로 이름이 같았네!
     양미순에게서 엄마를 발견한 김탁구
















김탁구, 이제 본격적으로 빵을 만들 모양이군요. 지난 12년 동안 탁구의 머릿속엔 오로지 엄마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빵만을 생각하겠다고 합니다. 물론 김탁구가 제 스스로 깨달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탁구에게 빵을 만들도록 계몽한 사람이 구마준?

아이러니하게도 탁구를 계몽시킨 사람은 탁구와는 필연적으로 원수 같은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구마준이었습니다. 구마준이 갑자기 왜 탁구에게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일까요? 이미 현명한 독자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구마준의 열등감 때문입니다.


저는 구마준이 <제빵왕 김탁구>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가장 불쌍한 캐릭터라고 생각되는데요.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쌍한 인물 말입니다. 그건 일단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오늘은 김탁구가 왜 양미순에게 뜬금없이 자기 엄마 사진을 보여줬을까 그걸 말하고 싶습니다.
 

유치장에서 나온 탁구에게 두부를 먹이던 양미순은 탁구와 엄마의 사진을 보게 된다.


왜 그랬을까요? 역시 현명한 독자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탁구도 그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자기 엄마와 양미순의 이름이 같기 때문입니다. 탁구 엄마의 이름은 김미순.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팔봉빵집 손녀딸의 이름이 미순이었다는 사실, 탁구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여자의 이름이 미순이였다는 거.

탁구는 한 가지 이유를 더 말했습니다.

탁구 엄마와 팔봉빵집 양미순, 이름이 같았어!

"우리 엄마 이름도 미순이야. 김미순. 우리 엄마도 예전에 너랑 같은 말을 했었어. 주먹은 가장 마지막에 써야 하는 거라고. 그래야 진짜 사나이라고. 이제 두 번 다시 주먹 같은 거 안 쓸 거야. 우리 엄마 이름을 걸고 맹세해."

"설마 너 어젯밤에 이걸 가지러 나갔었던 거니, 그럼?"
"내가 이 사진 보여주지 않으면 니가 내 말 안 믿을 거 같아서. 주먹 같은 거 쓰지 않아도 이 집에서 살 수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아, 그랬군요. 탁구는 양미순에게 엄마 사진을 보여주며 신유경의 거처를 마련해주면 앞으로 양미순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듣겠다는 약속을 증명해보이려 했던 것이군요. 그러나 양미순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신유경은 다음날 경찰에 잡혀갔습니다. 구마준의 누나 구자림이 고문 위협에 불었기 때문이지요.

(위)사나이는 주먹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말하는 두 미순 (아래)갈등하던 탁구, 결국 경찰을 때려눕히고.


신유경을 잡아가는 경찰을 향해 주먹을 날린 김탁구, 함께 끌려가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팔봉선생이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김탁구를 빼왔고 지금 양미순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김탁구는 양미순이 준비한 두부를 입 안 가득 씹어 먹으며 양미순에게 다시금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다. 내가 아까 유경이 앞에서 휘두른 그 주먹, 그게 내 마지막 주먹이라구."

이 대화를 통해 양미순이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김탁구가 매우 정직한 청년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에 반해 서태조란 이름으로 행세하는 구마준은 매우 영악하며 비열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말입니다. 신유경이 팔봉빵집에서 묵던 그날밤, 팔봉빵집 제빵실이 난장판이 됐고 그 범인으로 김탁구가 지목 되었죠.

구마준, 아무리 탁구가 밉기로 애꿎은 제빵실은 왜 부수는 거니?

구마준이 김탁구가 전날 밤 오랜 시간 밖에 나갔다 왔다는 사실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마준의 의도였습니다. 제빵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반죽을 못 쓰게 한 것은 구마준이었습니다. 김탁구가 나가는 것을 보고 재빨리 일을 치른 것입니다. 역시 그 부모에 그 자식입니다. 음모와 범죄를 행하는 것이 아주 몸에 익었습니다.


팔봉선생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뿐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양미순은 김탁구가 보여주는 엄마 사진을 통해 김탁구가 범인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동시에 구마준의 비열한 행동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탁구에 대한 야릇한 모성애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탁구가 본래 양미순에게 엄마 사진을 보여주려던 이유는 신유경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유경이 이미 경찰에 체포되어 팔봉빵집을 떠난 지금 굳이 양미순에게 엄마 사진을 보여주며 앞으로는 절대로 주먹을 쓰지 않겠노라고 약속하는 이유는 뭘까요?

김탁구는 신유경을 재워주는 대가로 양미순에게 무슨 말이든 복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신유경이 경찰에 연행될 때 김탁구가 주먹을 쓰려 하다가 양미순의 눈과 마주쳤지요. 그때 양미순이 고개를 저으며 탁구에게 주먹 쓰지 마라는 눈짓을 보냈습니다. 갈등하던 김탁구. 그러나 결국 주먹을 날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탁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두 미순씨

지금 이 순간 탁구가 양미순에게 그때 경찰에게 날렸던 그 주먹이 마지막이라고 맹세를 하는 이유는 주먹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주먹을 날려 약속을 못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는 이런 것이지요. 앞으로도 계속 양미순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듣겠다고 한 계약은 유효하다, 그런 거 말입니다.


양미순은 오히려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주먹을 날린 김탁구의 행동을 통해 그가 얼마나 의기있는 사람인지, 정직한 사람인지, 따뜻한 사람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감동과 함께 탁구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탁구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이미 탁구의 마음속에 양미순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에 연행되는 신유경과 신유경을 빼달라고 빽을 쓰는 구마준


탁구의 인생은 엄마 그 자체입니다. 탁구에게 엄마는 인생입니다. 그 엄마가 했던 말을 양미순의 입에서 들었습니다. 게다가 양미순은 엄마와 이름도 똑같습니다. 양미순과 김미순. 이 얼마나 기막힌 우연입니까. 양미순은 엄마처럼 탁구를 가르치려드는 것도 닮았습니다. 앞으로 김탁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은 양미순과 김미순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김탁구와 양미순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다름 아닌 신유경과 구마준이란 사실도 참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로군요. 신유경은 구마준이 빽을 써서 경찰에서 풀려났습니다. 김탁구는 구마준에게 그 대가로 앞으로 2년 동안 신유경을 절대 만나지 않고 빵만 생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빵 만들기 대회가 시작 되려나 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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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구는 범죄스릴러? 
'스릴러와 맛있는 빵을 버무린 독특한 장르'


<제빵왕 김탁구>, 제목만 보면 음식드라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김탁구가 갖은 역경을 뚫고 제빵 기술자로 성공한다는 뭐 그런 줄거리를 생각했습니다. 물론 김탁구(윤시윤)는 팔봉선생(장항선) 밑에서 훌륭한 기술을 배워 한국 제일의 제빵 고수가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꼭 그렇게 되겠지요.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그런데 제빵왕 김탁구가 지금까지 보여준 이야기는 음식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빵과 빵집, 빵공장 같은 것들은 그저 김탁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와 암투를 잘 보여주기 위한 무대장치에 불과했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된 주제는 범죄였습니다. 범죄 스릴러, 그게 이 드라마의 장르였던 것입니다.

어쩐지 처음부터 배경음악이 너무 음산하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최명길, 전인화, 박예진 등이 연기대결을 펼쳤던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들었던 효과음악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미워도 다시 한번> 제작진이 김탁구를 만든 게 아닐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거성가의 안주인 서인숙(전인화)과 거성식품 비서실장 한승재(정성모)는 공범입니다. 그들은 구일중(전광렬) 거성 회장의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고의적으로 죽인 건 아닙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겁니다. 홍여사(김용림)가 구마준이 구일중의 아들이 아니라 한승재와 서인숙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아버렸던 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홍여사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서인숙과 한승재에겐 절체절명의 위기. 그들의 야심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질 순간입니다. 서인숙이 홍여사의 팔을 잡고 제발 눈감아달라고 애원했지만, 그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두 사람은 거성가를 말아먹을 계략을 꾸몄던 것이고, 그 중심에 손자라고 여겼던 구마준이 있었던 것입니다. 

억수처럼 쏟아지는 폭우 속에 서인숙이 잡은 팔을 뿌리치던 홍여사는 쓰러졌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지요. 아마 어쩌면 서인숙이 홍여사를 강하게 잡아당겼거나 밀쳤거나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노인은 쓰러졌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두 사람은 방치했습니다. 아니, 죽으라고 그랬겠지요.  

그리고 이 미필적 고의성이 짙은 살인행각에는 구마준(주원)도 끼여 있었습니다. 어린 구마준은 모든 것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믿었던 사람의 비서의 아들이란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불륜의 씨앗. 욕망덩어리. 그게 바로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빗속에 쓰러져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더니, 그래, 내 할머니가 아니었어." 그러나 아직 어린 구마준의 가슴 속엔 양심의 소리가 살아 있습니다. 할머니를 흔들며 말합니다. "내 어머니를 용서한다고 약속하세요. 그러면 도와줄 수 있어요. 도와주겠어요. 약속만 하세요."

테이블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편이 갈라져 있군요. 팔봉선생이 가운데 있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할머니에게 거래를 제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래가 성사되었다고 혼자서 인정한 구마준은 집안으로 들어가 할머니의 방문을 열어놓고 아버지 구일중의 방문을 세게 두드립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들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할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중에 서인숙은 이렇게 독백하듯 외칩니다. 

"하늘은 내 편이었어!"

이들의 범죄행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집요하게 김탁구를 몰아내기 위한 음모를 꾸몄고 성공했습니다. 탁구의 생모도 그 과정에서 실종돼 지금껏 생사를 알 길이 없습니다. 탁구는 엄마를 찾기 위해 거성가를 뛰쳐나와 돌아다닌 지가 12년이 되었습니다. 

한승재는 12년만에 다시 돌아온(사실은 탁구가 스스로 돌아온 것도 아니었고, 단지 한승재의 눈에 뜨인 것뿐이다) 탁구를 죽이기 위해 폭력배들을 동원했지만,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한 탁구는 극적으로 탈출합니다. 자, 그럼 구마준은 어떨까요? 그는 원래부터 범죄형 인간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구마준이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할머니의 죽음에 어떤 형식으로든 관여한 순간, 그는 이미 그의 부모들(서인숙과 한승재)과 공범입니다. 구마준의 마음속에는 좌절과 분노에 이어 그의 친부모들과 같은 욕망과 야심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구일중의 마음에 들어 그의 후계자로 인정받아 거성식품을 차지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구마준은 유럽과 일본을 거쳐 팔봉빵집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서태조란 가명으로. 왜 서태조란 이름을 썼을까? 한태조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구마준에게 친아버지란 존재는 계급적으로 열등한 천박한 존재일 뿐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잠재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구마준은 왜 팔봉빵집에 들어왔을까요? 물론 이미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팔봉선생의 봉빵 레시피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구마준이 그 레시피를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란 것입니다. 구마준은 이미 12년 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위가 김탁구, 아래가 구마준


이곳에서 부모들에게 잘 배운 범죄행각이 과연 어떻게 드러날 것인지도 재밌는 관전 포인틉니다.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신유경(유진). 신유경은 김탁구의 어릴 적 친굽니다. 12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났고 이들은 늘 가슴에 품어왔던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곧 깨져버릴 운명입니다.

이미 제작진은 신유경이 김탁구를 배신하는 것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신유경은 명문대학에 진학해서 운동권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열두 살 때 어려운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계기란 것이, 아버지에게서 훔친 돈봉투를 거지 가족에게 전해주고 받은 모자를 머리에 쓰면서 한 것입니다.

그때 그 거지 가족의 가장이 유경에게 그랬거든요. "나중에 커서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는 그런 사람이 되어 다오." 이것이 그녀가 운동권이 된(최소한 드라마에서 주장하는) 계기였는데, 내가 볼 땐 그게 비극이었습니다. 운동권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누군가를 돕기 위해 운동권이 된 사람들은 거의 백이면 백 다 변절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주도권을 쥐고 나라를 쥐락펴락 하는 사람들치고 왕년에 운동권 아니었던 사람  거의 없다는 사실만 봐도 내 말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불쌍한 구마준이 나중에 어떻게 될까 그게 가장 궁금한 대목입니다. 서인숙과 한승재는 지은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인간의 법은 피해갈지 몰라도 천벌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마준은 어떻게 될까? 팔봉선생이 김탁구에게 한 말 속에 어쩌면 답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 그렇다면 착하게 살아온 것이 아니었구나. 착하게 산다는 게 무엇이겠느냐. 남을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 그게 남아 있으면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아직 3분지 1밖에 지나지 않은 드라마를 놓고 왈가왈부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앞으로도 <제빵왕 김탁구>는 범죄드라마의 포스에서 벗어나기는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 그리 생각합니다. 아무튼 김탁구, 아주 재밌는 드라맙니다. 스릴러와 맛있는 빵을 버무린 독특한 장르가 현재로선 매우 성공적입니다. 

빵 속에 든 베이킹 파우다의 야릇한 중독성처럼 그런 재미가 느껴지는 <제빵왕 김탁구>, <로드넘버원>의 물량 공세와 전쟁바람마저 잠재운 걸 보면 실로 대단하단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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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린 김탁구가 퇴장하고 청년 김탁구가 등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린 김탁구에게 반했던 저로서는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아니 본격적으로 등장한 윤시윤이 진짜 김탁구이니 뭐 그리 불평할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생긴 것도 늘씬하니 시원하게 잘 생긴 것이 기분 좋게 생겼습니다.

<김탁구>에는 전광렬, 전인화, 정성모, 정혜선, 장항선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베테랑 연기자들이 출연했습니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 놓고 보자면 하등 손색없는 드라맙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처음 카메라 앞에 선다는 어린 김탁구의 연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새로, 아니 본격 등장한 윤시윤의 연기도 물론 장난이 아닙니다. 어린 김탁구와 큰 김탁구의 연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것이겠지만, 어린 김탁구의 연기가 워낙 능청스러웠던지라…. 윤시윤의 연기는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오열하며 비통해 할 땐 비통한 대로, 코믹스러울 땐 또 그때대로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모습이 참 마음에 듭니다.

드라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녀석은 울기도 잘 하고, 웃기도 잘 하고, 놀리기도 잘 하고, 참 못하는 것이 없네. 앞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친구야." 그런데 말입니다.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어린 김탁구는 분명히 경상도 사투리를 썼는데 왜 큰 김탁구는 서울말을 쓸까요?


서울에서 오래 살아서 서울말을 배워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만 제가 알기로 김탁구 정도의 나이면 아무리 서울말을 배우려고 해도 그게 그렇게 잘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탁구는 유달리 적응력이 뛰어난 특별한 사람이라서 그게 가능했던 것인지. 아무튼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린 김탁구의 사투리가 대단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드라마를 보면 늘 주인공들은 반듯한 서울말을 쓰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인공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 뭐랄까 신선하다고나 할까, 식상한 서울말보다 훨씬 정감이 가더군요. 사실 전인화가 연기는 잘 하지만 그 딱딱하고 또렷한 서울말은 좀 질리잖아요?

어찌 되었거나 어린 김탁구가 느닷없이 고향 사투리를 버리고 서울말을 쓰는 것이(아무리 12녀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저로서는 이해도 안 되고 기분도 떨떠름하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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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의 기준? 이런 식이면 모든 드라마는 다 막장이다 

제가 <제빵왕 김탁구>에 대해 좀 호의적으로 말했더니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너무 ‘예찬적(!)’이라고요. 뭐 별로 그렇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군요. 이 분은 <김탁구>에 대해 매우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세기의 막장드라마라고 혹평을 하시더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막장드라마란 표현에 대해 별로 바람직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제 친구들 중에도 어린 나이에 막장으로 간 친구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지요. 어려웠던 지난 시절에 막장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서민들이 따뜻한 아룻묵에서 겨울을 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오히려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장드라마가 이제 마치 불량한 드라마를 대변하는 말처럼 쓰이고 있으므로 오래 전 헤어져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그 말을 쓸 수밖에 없겠군요. 그런데 이 분은 <김탁구>를 막장드라마고 하는 이유에 대해 지역감정을 들었어요.

막장의 기준이 선량한 소재를 쓰지 않았기 때문?

경상도 사람은 착하게 보이게 하고 전라도 사람은 강간범으로 만들어 지역차별 조장하는 게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보여주는 거냐고 반박하더군요. 제가 그랬거든요. <김탁구>의 초기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이고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가 주요 무대가 된다, 그래서 지금의 기준으로 그때를 바라보면 안 된다, 라고 말이지요.  

남아선호사상이니 불륜이니 출생의 비밀이니 하는 코드로 막장을 연출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려다가 그런 얘기가 나왔던 건데 왜 이분은 엉뚱하게 지역감정 얘기를 하신 건지 모르겠어요. 아, 주인공 김탁구와 그의 어머니 김미순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군요. 

그러고 보니 한승재의 사주에 의해 김미순을 겁탈하려고 했던 신유경의 아버지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네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이건 지나친 피해의식 아닐까 싶네요. 우연히 작가가 김탁구의 어머니를 경상도 사람으로, 신유경의 아버지를 전라도 사람으로 그린 것을 놓고 그럴 필요까지야 있을까요.


그런 피해의식으로 제 얘기를 보자면 지나친 예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저는 아직도 <김탁구>가 막장이라고 비난하는 데 대해선 절대 동의할 수 없답니다. 그렇게 보면 정말 우리나라 드라마 치고 막장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우선 국민드라마로 칭송 받았던 <불멸의 이순신>도 막장 아닐까요?  

<불멸의 이순신>에도 요즘 흔히들 막장코드라 불릴 만한 소재들이 무궁무진했었지요. 물론 강간 장면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전쟁신으로 피를 뿌리는 장면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지요. 세상에 무자비한 살인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한 막장코드가 있을까요? 1000만 관객 돌파로 유명한 <태극기 휘날리며>도 마찬가지지요. 

'불멸의 이순신'과 '김탁구'의 차이는 뭘까?

그런 것들은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니 막장이 아니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김탁구>에 나오는 남호선호사상이나 불륜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일까요? 물론 바람직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다 이유가 있는 것들이죠. 차라리 전쟁코드보다는 훨씬 나은 소재들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저도 사실 막장드라마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김탁구> 같은 드라마를 막장으로 분류하진 않았어요. 제가 막장으로 찍은 드라마들은 <너는 내 운명>, <수상한 삼형제> 같은 드라마였는데요. 이런 드라마들의 특성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불륜, 살인 등 반사회적 소재들을 버무린다는 거죠.

예를 들어 이런 거랍니다. <너는 내 운명> 같은 경우에 극 중간에 느닷없이 50대의 주부가 임신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몇 회가 가다가(당연히 임신한 50대 부부는 창피하면서도 행복해했겠죠) 어느 날 갑자기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달밤에 체조하던 50대 임신부는 유산을 하는 겁니다. 아마도 그때는 임신도 아이도 필요없어졌던 것이겠죠.

<수상한 삼형제>도 더 말할 나위 없이 온통 이런 식이었어요. 잘 나가다가 갑자기 김순경(주인공 김이상 경감의 아버지)과 함께 근무하던 파출소 직원의 아들(전투경찰이었나봐요)이 시위 진압에 앞장서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실명 상태에 빠지는 거예요. 울면서 외치는 거지요. "왜 죄 없는 우리 아들의 눈을 뺏아가는 겁니까? 원통합니다."

이 장면은 정말 황당했는데, 아무도 왜 갑자기 그런 시츄에이션이 등장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후에도 이런 류의 설정들은 수도 없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다지요. 저는 중간에 끊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들의 특성은 마지막은 늘 행복, 화해모드로 평화를 달성한다는 거예요. <수삼>도 그렇게 끝났겠지요.

아무데나 막장 딱지 붙이면 진짜 막장이 울고 간다

<김탁구>가 그런가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1960년대의 남아선호사상을 말씀하시는데 그땐 그런 시대였어요. 그건 우리 집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평생을 부엌에 한 번 들어가보지 않고 자랐어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는 것 중에 한 가지는 제가 결혼한 후 부엌 출입을 자주 한다는 거였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김탁구>는 남아선호사상을 그냥 맹목적으로 전파하는 그런 내용도 아니었어요. 탁구의 누이인 구자경은 매우 진취적인 여성이죠. 그녀는 남아선호사상에 대해 맹렬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요. 그녀는 이렇게 결심하죠. "마준이나 탁구가 아빠 회사를 이어받도록 놔두지는 않을 거야. 이 집의 장녀는 나야. 내가 이어받을 거라고."  

저는 오히려 이런 설정이야말로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1960년대의 여성이 그런 정도의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걸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그런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우리는 사극 속에서도 오늘날 우리의 사고를 대입시킨 것을 많이 볼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김탁구> 같은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함부로 이름 짓지는 말아주세요. 그럼 진짜 막장드라마가 눈물짓는다니까요. 억울해서요. 막장은 난데 왜 엉뚱한 데 가서 난리야, 이러면서 말이죠. 사실 <김탁구>엔 남아선호사상, 불륜, 아동학대, 강간, 거기다 재산을 둘러싼 비열한 음모 등 온갖 것들이 망라돼 있어요.


아마 이 드라마의 주제를 김탁구가 제빵왕으로 성공하는 과정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런 이야기 장치들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드라마는 제가 보기에 성장드라마가 아니에요.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1960년대로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사회의 격변기를 통해 보여주려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탁구'는 성장드라마가 아니라 갈등을 그린 드라마

가장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장치들이었다는 거죠. 극이 이제 본궤도에 올랐으니 더 이상 그토록 무자비한 장면들은 필요 없을 거예요. 이제부턴 보기가 한결 부드러워지겠죠. 아동학대의 당사자인 신유경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도 큰 관심거리로군요. 그녀의 피해의식이 성장한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상도 사람은 선량한 사람(탁구와 탁구 엄마)으로, 전라도 사람은 악독한 사람(딸 폭행을 낙으로 삼는 술주정뱅이로 한승재의 사주를 받아 강간음모에 동참하는 신유경의 아버지)으로 그린 <김탁구>야말로 지역차별을 조장하는 세기의 막장이라고 항의하실 어느 독자에겐 할 말이 없군요. 

지금이라도 역할을 바꿔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만, 그러긴 이미 너무 늦었잖아요. 그냥 그렇게 이해하면 안 될까요? 탁구로 캐스팅 된 오재무인가 하는 어린 친구가, 전라도 사투리보다는 경상도 사투리를 하는 게 더 쉬워서 그래서 그렇게 된 거라고 말이에요. 경상도 사투리는 너무 단순해서 아무래도 전라도 사투리보다는 배우기가 쉽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또 너무 예찬적(!)으로 나갔다고 그분한테 욕먹겠는데요. 하하~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