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24 노동부에 갔더니 노무사 홍보실이네 by 파비 정부권 (14)
  2. 2008.11.13 21세기 혹사당하는 전태일, 비정규직 by 파비 정부권 (2)

노동청에 갔다. 체불임금 때문에 구제책을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잘 아는 동네형님이 다니던 회사로부터 거의 1년이 넘게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다니다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함께 다니던 여러 명의 아줌마들과 함께. 아줌마들은 모두 50대 초반이다. 그 형님이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야, 이거 도대체 우짜면 좋겄노? 10년을 다녔는데 퇴직금도 못 받았다. 당장 급해서 뛰쳐나와 갖고 다른 직장 구해 다니고 있기는 한데, 얼마라도 받아내야 안 되겄나? 니가 좀 도와다오. 우리는 시간도 없지만 잘 알지도 못하고….”


듣고 보니 기가 찼다. “그런데 형님, 근로기준법에 임금은 최우선적으로 전액 변제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그리고 듣자하니 체당금 제도란 게 있던데요. 정부에서 미리 최종 3개월분 임금과 3년분 퇴직금을 주고 대위권을 행사하는 제도라더군요. 해당되는지 알아볼게요.”


그러나 알아본 결과 임금채권전액우선변제조항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망하는 회사가 질권, 저당권 기타 금융권 등에 채권이 잡혀있지 않을 리가 없는 현실에서 근로자들은 고스란히 임금을 떼이게 되어 있었다. 이 조항만 사라진 게 아니고 중간착취금지조항도 변형이 이루어져 중간착취가 사실상 가능하도록 되어있었다. 근로기준법이 휴지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 회사는 한 달 전에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다. 체당금을 받으려면 우선 회사가 파산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기업회생절차개시결정은 파산에 준하는 결정이다. 법적으로 파산을 선고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노동부에 사실상 파산을 인정해달라고 신청을 하여야 한다.

노동부에 들어서니 "열린마음"이란 글귀가 눈에 선명하다. 안심이 된다.


우선 근로기준법과 임금채권보장법 등 관련법규를 검토하고 인터넷에서 필요한 서류를 프린트했다. 그런 다음 노동부에 방문하여 최종적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창원에 있는 노동청으로 갔다. 건물에 들어서니 1층에 민원실이 있었다. 민원실 입구에는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민원실에 들어서자 젊은 여직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무슨 일로 오셨지요?” “아, 예. 체당금 신청 때문에 상담을 좀 하러 왔는데요.” “아, 네. 그러시면 저쪽에 과장님에게 가서 상담하셔야겠네요.” 민원실 과장이라는 분을 소개받아 그쪽으로 갔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네. 체당금 신청 때문에요. 필요한 서류가 무엇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그 과장이란 분은 이렇게 말했다. “체당금은 개인이 신청할 수가 없는 건데요. 노무사한테 안 가시고요?” “월급 백만 원도 안 되는 거 같고 노무사니 변호사니 우리가 찾아갈 수가 있습니까. 마, 노동부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하니 할 수 없다는 듯 민원업무지침서 같은 것을 들고 여기저기 뒤적거렸다.


그러나 한참을 뒤적거려도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던지, “아, 이거 참… 아까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혼잣말을 하다가 “음…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하겠네요. 여기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근로감독관실이 있는데 거기 윤○○ 감독관을 찾아가보세요. 내가 전화해놓을 테니, 그리로 가면 잘 가르쳐 줄 겁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 다시 안심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민원실을 나와 근로감독관실로 갔다. 감독관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저, 체당금 신청 때문에 그러는데요. 제출해야할 서류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그 감독관은 매우 귀찮은 일이라는 듯이 “그런 건 노무사한테 가셔야 되는데요. 거기 가면 다 알아서 해주고, 또 개인은 할 수가 없어요.”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서식작성이 너무 어려워 개인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형님도 사실은 노동청에 상담하러 왔다가 나와 똑같은 일을 당하고서 내게 부탁했던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표시 낼 수도 없었다. 민원실에서 했던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역시 그 감독관은 할 수 없다는 듯 지침서 같은 것을 찾아 뒤지더니 서류 한 장을 복사해서 내게 내밀었다.


“이거 써내면 됩니다.” 미리 확인한 서류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짐짓 모르는 척 다시 물었다. “이거 말고 다른 서류는 없습니까? 이거만 써내면 되는 게 확실합니까?” 그러자 그 여자 감독관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노무사한테 가시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줄 거예요.” 속으로 욕이 나왔다. ‘젠장, 그럼 이건 뭣 하러 복사해주는 거야!’ 


그러나 대놓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서류를 접수시키면 결국 이분들이 다시 심사를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왔다. 그래도 그냥 나오기는 뭔가 허전했다. “감독관님, 이런 정도는요. 노동부에 요령서 같은 걸 비치해놓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보니까 별로 어려워보이지도 않는데… 한 4~5분만 시간 내주시면 될 거 같은데….”


그러자 그때까지 내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말하던 감독관은 그제야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마 그녀에겐 특이한 민원인이었던 모양이다.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렇지만 우리도 너무 바쁘고 시간도 없고 하다 보니까, 이해를 좀 해주셔야지요.” 그런데 내가 한참을 지켜보았지만―여기저기 사진도 찍으면서―, 전혀 바쁜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그곳에 있던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이 흐를 동안 나 이외에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하필 그날만 한가한 날이었을까? 그리고 며칠 후 체당금 신청서류를 접수하기 위해 다시 노동청을 찾았다. 서류를 제출하고 접수증을 받으며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더니 접수원 옆에 앉아있던 감독관이 말했다.


“노무사 선임 안하셨어요? 그런 건 노무사한테 가면 다 가르쳐줄텐데….” 하면서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7월 1일이 민원 처리기한이다. 내일쯤 업무처리는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들러보아야겠다. 너무 바쁘신 분들이라 내가 제출한 서류는 제대로 읽어보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아, 그러고 보니 민원실에 계시던 분들도 모두 감독관님이라고 부르던데….
근로감독관들이 어째서 체당금 신청절차도 몰랐을까? 요즘은 태평성대라서 임금 떼이는 노동자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일까? …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1970년 11월 13일, 22살의 한 청년이 온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밝혔다. 이 불은 평화시장만이 아니라 온 나라로 퍼져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이 등불은 김근태, 장기표, 조영래 같은 재야 민주인사를 인도하는 등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그마한 등불은 들불이 되어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타올랐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한 손에 근로기준법을 부여잡은 채 불길 속에 타들어가면서 외쳤던 그의 함성은 영원한 메아리가 되어 세상에 울렸다. 그리고 세상은 변했고 발전했다.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고자 스스로 일어섰다. 민주노총도 결성했다. 그리고 매년 11월 이때가 되면 민주노총은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전태일이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나의 나’인 전태일들이 아직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혹사당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보편적 노동시간 주 35시간 이하인 점에 비교하면 아직 턱없이 모자라는 기준이다.

사진=레디앙

주 5일제 근무로 알고 있는 주당 40시간 노동제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다. 우리나라는 주 40시간 노동제의 나라가 아니다. 아직도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제에서 해방된 후에 만들었던 주 48시간제 노동시간법이 엄존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굶어죽을 자유만 얻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 40시간 노동법'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 노동법을 만들면서 토요일 근무에 대한 임금지급에 관한 문제는 단체협약으로 노사가 따로 정하도록 하는 편법을 자행했다. 노동시간에 대한 강행규정을 임의규정으로 바꾸는 정부와 자본의 고도의 계산이 깔린 이 편법에 ‘노’의 대표인 민주노총도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은 얼마든지 단체협약을 통해 실질적인 주 5일 근무제를 관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노총을 이끄는 대기업 노동조합들의 이야기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못한 90%의 노동자들, 하청업체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토요일에 무급으로 쉴 자유만 얻었다. 즉, 굶어죽을 자유만 얻은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 중에 월급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 25%에 달한다고 한다.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연봉도 1500만원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한 통계에 의하면 평균 월급이 120만원 수준이다.) 이들 노동자들은 부족한 임금을 채우기 위해 무급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나가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세상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아니 거꾸로 70년대로 돌아갔다.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이나 민주노총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유인물을 복사해서 비밀리에 배포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비밀결사들이 공장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들의 눈에는 하찮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이 땅에는 전태일이 ‘나를 죽이고’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하여 다가가겠다고 말한 ‘나의 나’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열악한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는 ‘나의 나’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아직도 너무나 크다.

여전히 유효한 전태일의 외침,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지난 일요일,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한 민주노총은 대규모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전태일이 죽음으로 다가가고자 했던 ‘나의 나’들은 얼마나 있었던가?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나약한 생명체들’을 향한 외침과 결의는 얼마나 있었던가?

그래서 나는 오늘,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던 전태일 열사의 피맺힌 목소리를 자본가들이 아니라 민주노총에게 다시금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1970년 8월 9일, 전태일의 일기 중에서>

전태일과 전태일의 어머니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2008. 11. 13.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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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