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9.12.28 정리해고 농성장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 by 파비 정부권 (7)
  2. 2009.09.20 치킨을 공짜로 주는 교회, 어떻게 생각하세요? by 파비 정부권 (24)
  3. 2009.07.30 낙동강 도보길에 만난 탱크와 자주포 by 파비 정부권 (11)
  4. 2009.06.06 종교지도자들, MB가 경제와 외교를 아주 잘했다고? by 파비 정부권 (10)
  5. 2009.02.16 심산선생 무덤에 절하던 김추기경, 시대의 선구자 by 파비 정부권 (4)
  6. 2008.12.22 교회광고판이 된 시청광장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by 파비 정부권 (8)

웬 농성장에 크리스마스트리냐고요? 사실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황금연휴를 맞아 사방이 고요한 이곳에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나는 불빛이 있습니다. 바로 대림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이 만들어 정문 앞에 달아놓은 ‘정리해고박살’이란 네온사인(네온사인도 아닌데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군요) 불빛이 그것입니다.

회사에서 해고된 사람들에겐 크리스마스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 리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크리스마스는 이들에게 매우 불편한 날입니다. 남들은 가족들과 따뜻한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이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의 탄생으로 온 세상이 은총을 받은 듯 환하지만, 이곳만큼은 어둡고 쓸쓸합니다.


올 크리스마스는 3일 동안의 황금연휴가 되다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저녁이면 지원 방문을 오던 지역 노동자(주로 노조간부들)의 숫자도 크게 줄었습니다. 그들도 황금연휴를 함께 즐겨야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휴일도 없이 집에도 가지 못하고 농성장을 지켜야 하는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마음은 더욱 차갑기만 합니다.


그래도 비록 회사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물론,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라고 말하지만, 그 경영상 이유란 게 대체 뭔지―쫓겨나 난장에서 떨며 밥을 먹고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는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회사 정문 아스팔트 위에 술자리를 펼쳐놓고 술잔을 들며 어느 노동자가 말합니다.


“야~! 크리마스트리... 멋지네.”

“일마야, 크리스마스트리가 예 어디 있단 말이고?”

“저 안 있나.”

“오데.”

“저 정문 옆에 담에 안 만들어 놨나.”

“어? 그라고 보니 저거 진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이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나이 지긋한 노동자 한 분이 그럴 듯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저게 아마도 우리 눈에는 ‘정리해고박살’이라도, 남들이 지나가면서 보면 희미한 게 무슨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일기다.”


그 시간 이곳 밖에서는 주님의 은총을 찬미하는 노래가 성당과 예배당의 담장을 넘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었겠지요. 또는 상남동과 창동의 번쩍거리는 거리를 왁자한 웃음들이 누비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삭막한 이곳에서도 은총과 웃음은 역시 만들어지고 있었답니다. 그건 누구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쁨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저녁, 정리해고자들이 회사정문 도로변에서 식사중이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님은 미리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일자리 창출보다 중요한 게 없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역설했다고 하는군요. 신년사란 게 보통 연초에 발표하는 게 보통일 테지만 이렇게 미리 크리스마스 전에 발표하는 걸 보면 대개 똥줄이 탔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겠다고요?


그럼 이명박 대통령님, 아니 이명박 장로님, 여기 이곳 회사로부터 아무런 잘못도 없이 정리해고 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현장으로 한번 와보세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세요. 정말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소망교회 목사님을 대신해 이명박 장로님은 진정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씀드리지요.


교회에 가서 ‘나는 주님의 종’이라고 말로만 하지 말고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장로님은 대림그룹 회장님과 꽤 친하시다지요? 옛날에 같은 업계에서 함께 일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이런, 그런 장로님한테 되지도 않을 부탁을 했으니 저도 참 바보로군요. 가제는 게편이라는데.

그렇다고 제가 감히 장로 대통령님을 가제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통 가제가 아니라는 거 잘 알거든요. 어쨌든 당신이 믿는(다는) 주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향해 칼부림만 하는 당신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룩하게 기도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는군요. 아, 정말 속이 불편하네요. 찬물이라도 마셔야할까 봐요.


아무튼 대림자동차 정리해고반대 농성장에는 아직도 크리스마스트리가 빛나고 있습니다. 이 빛이 지역 노동자들과 진보적 시민단체들과 정당들의 연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만약, 그리하여 정리해고를 철회시키지 못한다면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지역 노동사회로 확산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보면 쌍용차에서 배운 경험을 이곳 창원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아닌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시범케이스가 확실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대림자동차 경영진은 250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을 강제퇴직, 정리해고의 방식으로 길거리로 내몰아놓고도 자기들끼리 부서별 회식을 만들어 흥청망청 연말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군요. 

세상 참 더럽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오늘밤 이곳에선 여전히 크리스마스트리가 밝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 딸애는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작년에 1학년에 갓 입학했을 때는 가끔 엄마를 대신해서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곤 했었는데요. 놀랍게도 저보다 먼저 아이를 기다리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답니다. 그분들은 학교 인근 교회에서 나온 신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사탕이 잔뜩 들려있었고 이것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말했습니다.

"얘들아, 이거 먹고 요 위에 ○○교회 보이지? 그리로 가렴. 그럼 과자도 주고 아이스크림도 준단다. 자, 어서 빨리…"


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을 사탕 하나에 팔 수 있지? 사탕 얻어먹고 교회에 나오는 아이를 보고 예수님이 기뻐할까? 자기를 사탕에 팔았다고 화를 내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학교 교문 안에까지 들어와서 사탕을 나눠주며 자기 교회 홍보에 열심인 그들을 나무라기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딸의 손을 잡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오는 내내 마음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왠지 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글쎄 제가 왜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저는 학교 안에까지 들어와 사탕을 나눠주는 그분들이 그렇게 곱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딸애가 더 희한한 걸 들고 왔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게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처음에 통닭집에서 광고용으로 돌린 홍보전단으로 생각했습니다. 명함과 같은 두께에 명함의 세 배 정도 되는 크기였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제작비용이 만만지 않아 보이는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군요.

양념이냐? 후라이드냐?

치킨 쿠폰 5장을 친구들과 함께 가져오면 원하는 치킨을 한 마리 드립니다.

I ♡ Jeasus! 너를 초대할께~
○○교회 유초등부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빅 이벤트 소개도 있었습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저도 가끔 우리 동네 시립도서관 앞에서 커피를 나눠주는 그분들을 가끔 만난답니다. 커피뿐만 아니라 일회용 물티슈 등도 공짜로 나눠주는 그분들은 늘 웃는 얼굴로 "우리 교회 나오세요!" 하고 인사를 하지만 역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장난기가 발동한 제가 그분들에게 이런 타박을 준 일도 있습니다.

"이런 거 나눠준다고 사람들이 교회 다니겠어요? 그러지 마시고 이명박 장로나 회개 하라고 하시는 게 훨씬 선교에 도움이 될 텐데요. 여러분들 아무리 고생하셔도 이 장로님 헛발질 때문에 기독교가 개독교 소리 듣는 건 어쩔 수 없다니까요."

가끔 허락도 없이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든지, 대한민국의 절간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기도한다든지 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에 대한 썩 좋지 않은 감정으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변함없이 도서관 앞에서 선교운동을 하는 그분들을 볼 때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야!' 하고 감탄을 하곤 했답니다. 

그렇지만 이건 좀 심한 것 아닌가요? 아무리 선교운동도 좋지만 아이들에게까지 이럴 필요가 있을까요? "치킨 쿠폰 5장을 친구들과 함께 가져오면 원하는 치킨을 한 마리 드립니다." 이 말은 5명을 모아서 오라는 말이로군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얄팍한 상술을 가르치는게 과연 신의 뜻인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곳은 우리가 낙동강 5차 도보기행을 위해 베이스캠프로 준비한 구미청소년수련원입니다. 마침 휴가철이라 낙동강 일대의 숙박시설이 꽉 차는 바람에 이곳을 잡았는데 시설이 엉망이었습니다. 하루에 30km를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샤워시설이었지만,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첫날밤은 대구 모 교회의 캠프 때문에 밤새도록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내가 도착해 아래 사진을 찍은 시간이 9시 무렵인데, 이미 한창이었던 집회는 밤 12시가 넘도록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며 울기도 하고 하는 바람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거의 새벽 2시가 되어 기도가 끝났지만, 이번에 아이들이 새벽5시 가까이까지 복도를 뛰어다니며 노는 통에 완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답니다.

기도도 좋지만 이왕 아이들 여름방학을 이용해 캠프를 왔으면 기도는 짧게 하고 재미있게 노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신나게 놀게 해주고 일찍 재우는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 사는 방법도 믿는 방법도 가지가지라지만 이건 너무 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왜 조용히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신을 찬미하면 신도 좋아 하실텐데 말입니다.

신이 귀가 먹은 것도 아니고 너무 시끄럽게 굴면 싫어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긴 이건 제가 간섭할 사항이 아니로군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일은 가급적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런데 제가 시끄러운 기도소리에 잠 못드는 밤을 괴로워하며 마당에 나와 있자니 희한한 광고썬팅을 한 차가 한 대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그 교회 팀의 일원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광고 문구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VIP경호, 행사경호, 주주총회, 노사대립, 개인경호…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건 개인경호와 VIP경호뿐이었습니다. 주주총회를 하고 행사를 하는데 무슨 경호가 필요하다는 건지, 파업현장에 경호회사 요원들을 투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광고썬팅을 보니 섬뜩하군요. 무섭습니다.


어렵게 새벽 3시가 거의 다 되어 잠을 청하고 다음날 새벽 5시 반에 기상해서 아침을 먹고 낙동강 도보기행 길을 떠났습니다. 이번 도보기행의 시작점은 상주 강창나루입니다. 강창나루에서 시작해 토진나루를 지나고 낙동나루를 거쳐 구미시 해평면(청소년수련원이 있는 곳)까지 걷게 됩니다.

옛날 이곳 강창나루에는 소금배가 드나들었던 모양입니다. 강창나루 나들목에 소금배란 간판을 단 식당이 있습니다.


나루배로 건너던 강에는 이제 배는 사라지고 대신 다리가 길게 낙동강을 가로지릅니다.


다리위에서 찍은 낙동강의 모습입니다. 강 중간에 모래톱이 섬을 만들었습니다.


낙동강둑길로 올라서니 고추잠자리들(고추잠자린지 배추잠자린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축하비행을 해줍니다.


강둑으로 나가려면 이렇게 논둑을 가로질러 가야 합니다. 미안했지만, 농부 아저씨들은 우리를 보고 밝게 웃으며 고생이 많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느낀 바이지만, 태백, 봉화, 안동, 예천, 상주를 거쳐 오는 동안 정말 인심들이 좋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풋풋한 경북 북부지방 사투리는 결코 사람을 밀어내는 법이 없었답니다.  


이슬을 머금은 달맞이꽃… 밤새 활짝 가슴을 벌려 달을 애무했을 꽃들은 이제 아침을 맞아 몸을 오무리고 잠을 청하려나 봅니다.


토진나루에 닿았습니다. 이곳에서 모두들 휴식을 취했습니다.


토진나루 위쪽에서 강물은 줄기차게 흘러내려 오고…


나루터를 지난 강물은 우리가 쉬든말든 지치지 않고 흐릅니다. 정말 유장하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우리는 강창나루를 지나 토진나루로 오는 길에 이렇게 담배 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미류나무 옆에 뭔가 심상찮은 물건이 보입니다. 뭘까요?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155미리 자주포와 탱크가 서 있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혹시 저거 6·25 때 쓰다가 저렇게 버려진 거 아닐까요?" 그는 여자 회원이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가던 남자 회원이 말했습니다. "에이~ 그때는 저런 대포나 탱크도 없었네. 저건 최근에 쓰던 걸 여기다 갖다 놓은 거야. 그런데 저걸 왜 여기다 전시해 놓았을까?"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었습니다. 저 흉칙한 무기들의 오른편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그 옆과 앞과 뒤는 온통 논과 밭 뿐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저거 고철로 팔아먹으면 돈 꽤 되겠는데!" 그러자 다시 옆에서 누군가 말을 받았습니다. "고철로 팔어먹고 싶어도 저거 끌고 갈 차가 들어올 길이 없어요, 여기는."


155미리 자주포와 탱크와 한대의 기관총(아마 캬라바 50인 듯)은 우리가 걸어온 북쪽 하늘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왠지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기를 보고 외롭게 보인다는 저도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외로워 보이지 않나요?


무기를 지나 조금 내려오니 사람들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농사일에 바쁜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풀립니다. 대포와 탱크와 기관총 옆에서도 농촌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저 평화롭기만 합니다. 트랙터가 바쁘게 땅을 갈고 있습니다. 방금 전에 보았던 탱크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평화로움입니다.
 

동네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너무 반갑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막 손을 흔듭니다. 하하~ 역시 경북북부지방 사투리를 쓰면서… "오데 가니껴~" "예, 낙동강 따라 걷습니다. 태백에서 부산까지 갑니다." "아이고~ 차말로 고생이 많게니더." 우리 일행과 헤어진 이분들도 잠시 후면 들에 세워져 하늘을 노려보고 서있는 자주포와 탱크와 기관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도 이렇게 똑같이 반갑다고 인사할까요? "거기 뭐 한다꼬 서 있는교? 하루 젱일 땡비테 서 있을라카므 차말로 고생이 많겠니더~ 누가 그러라꼬 시키던고? 차말로 얄궂데이~"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이명박이 종교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즐겼다고 한다. 이 자리에 모인 종교계 지도자―이들을 지도자로 부르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은 언론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당근과 채찍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대체 그 당근과 채찍이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서 들여다보았다. 우선 당근에 대해서 알아보자. 당근이란 다름 아닌 이명박에 대한 칭찬으로 침을 튀기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외교와 경제를 아주 잘하셔서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단다.
 

사진출처- 불교포커스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57573


이명박이 외교와 경제를 아주 잘해서 뿌듯하다고? 이 무슨 염장 지르는 소리란 말인가.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기도나 염불만 외는데 정신이 팔려 세상일은 눈에 보이지 않더란 말인가. 아니면 헌금이나 시주가 늘어 교회나 절의 재정이 늘어나니 배가 부르더란 말인가. 1년 만에 나라경제를 다 거덜 낸 자에게 경제를 아주 잘하셨다고? 통미봉남에 휘둘려 국제무대에서 왕따 당하고 일왕에게 굽실대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던 자에게 외교를 아주 잘하셨다고? 참 똑똑한 지도자들이다. 


그래도 이분들이 당근만 준 것이 아니라 채찍도 함께 들었다고 하니 나름대로 위안은 된다. 그럼 그 채찍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대통령이 외교와 경제는 A학점인데 정치는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 소통을 위해 노력하시라.” 이게 채찍이었다. 이들은 종교지도자란 이름에 어울리게 그 채찍에 아름다운 장식을 다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은 불철주야 일하고 있지만 심장부가 잘해야 한다.” 결국 정치를 잘하라는 채찍도 ‘대통령은 잘하는데 참모들이 문제다’란 식으로 이명박 봐주기다.


물론 이분들이 청와대에서 식사대접을 잘 받았으니 그에 대한 보답은 응당 했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들은 한 술 더 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런 저런 말씀 중에 한 분이 이번 노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의 일부 방송의 보도태도에 대해 근본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지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종교지도자(?)란 사람들이 정부의 보도통제를 요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니 기가 찬다.


그래도 명색이 일 종교계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상식은 달고 말을 해도 해야지 않겠는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를 권하는 것이 종교지도자들이 할 일인가. 참 한심한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종교지도자, 이런 식의 표현은 좀 삼가했으면 한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지도자란 말인가. 그냥 종교계 대표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참석자들 중에 일부 쓴소리도 있었다고 한 언론은 전했다.  

한 참석자가 “세간에는 대통령이 6·15 및 10·4 선언에 반대한다는 오해가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에 이명박은 “나는 그동안 일관되게 6·15와 10·4 선언을 포함해 모든 남북간 합의를 존중해야 하고 이것의 이행 방안을 만나서 협의하자고 이야기해왔다”며 모든 남북간 합의의 이행 방안 논의를 위한 북한 당국과의 대화 의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발언을 구체적으로 누가 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밝히지 않았고 또 MB어천가를 부르는 분위기에 묻혀 사소한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았다.   

참고로 종교계 대표들 중 유일하게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만이 이날 청와대 오찬에 불참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조계종이 MB정권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렇다. 엄신형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운산 태고종 총무원장, 김희중 천주교 주교, 최근덕 성균관장, 이성택 원불교 교정원장, 김동환 천도교 교령,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 7대 종단 대표들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교회 담장 헐어낸 참 성직자,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그는 1969년 로마교황 요한바오로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됐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었다. 또 그는 최연소의 나이에 추기경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최고령 추기경으로서 오늘 영면의 길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어떤 기록들보다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에 기록된 그의 모습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교회의 담장을 헐었던 참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1981년. 마더 테레사 수녀와 김수환 추기경. /「다음까페」『성직자가사는이야기』아래 사진들도 모두.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70년대 박정희 철권통치에 저항하던 수많은 지식인들과 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싸우던 학생, 노동자들에게 명동성당은 따뜻한 품이었다. 김 추기경은 "교회의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는 소신을 몸소 실천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무덤을 찾은 김추기경
몇 년 전이었던가? 김수환 추기경은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김창숙 선생은 행동하는 유림으로 이 시대 마지막 선비로 일컬어지는 분이다. 그는 이승만에 맞서 반독재의 선봉에 섰던 진정한 선비로서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김 추기경이 움직이자 기자들이 구름처럼 모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기자들은 이미 곳곳에다 사진기를 설치해놓고 후레쉬를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과연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심산 김창숙은 단지 위대한 선각자일 뿐만 아니라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언론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니 나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절을 할까?

김 추기경은 묵묵히 산을 올라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정중히 절을 했다. 그것도 두 번 했다. 나중에 하신 말씀이지만, “돌아가신 분에게는 두 번 절하는 것이라고 해서 두 번 했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는 또 존경하는 분에게 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세인들의 관심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매우 흡족했다. 

 그 전에 나는 혹시나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을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다. 물론 내가 할 필요가 없는 부질없는 걱정이다. 천주교는 전래 초기에 조상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든지, 반상의 법도를 깨트린다든지 하여 왕조로부터 무수한 탄압을 받았다. 순교자가 수만에 이르렀고, 이를 피하여 깊은 산에 들어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으나 이들 중 절반이 호랑이 밥이 되었다 한다.

1972년. 정부의 8·3 긴급조치에 대한 시국메시지를 발표하는 김추기경. "7·4공동성명을 평화를 위장한 전쟁준비와 정치기만술로 이용하지 말 것" …… "온갖 특혜에도 경제를 파탄낸 정부와 기업가들에게 항의와 맹성을 촉구" ……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교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강경한 어조가 생소하지 않다. 한 세대가 흘렀건만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일까?


예수를 닮는 것은 가난한 자들 편에서 평등사상을 실천하는 것   
그러나 오늘날 천주교는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반상과 적서의 차별을 없이 한 선열들의 정신은 훌륭한 것이었으나 조상을 공경하는 풍속까지 배격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반성을 내놓았다. 매우 옳은 처사다. 그러므로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하등 주저할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나 역시 그 결과가 궁금했다.   

김 추기경은 역시 대범하고 거칠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불교로 말하자면 마치 도를 터득한 경지에 올랐다고나 할까. 물론 그는 자서전에서 “평생을 노력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며, 예수를 닮는 사제가 되지도 못했다.”고 자책했지만. 그는 최고의 성직자였다.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으며 스스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중요한 고비마다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1977년. 철거민촌의 김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을 은퇴하고 명동성당을 떠난 그가 몇 차례 가진 인터뷰 등에서 밝힌 변화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놓고 과거 민주화시대의 잣대로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감정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어놓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우리가 너무나 세속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 그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있을 때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는 장애인과 철거민, 빈민들과 만나고 대화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는 독재와 불평등한 현실에 강경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우리 곁을 떠나는 지금 이 순간, 명동성당은 달라지고 있다.  

며칠 전, 명동성당은 용산참사 철거민들의 농성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이란 것을 했다. 철거민들과 만나지 않기 위해, 그들이 교회의 담장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경찰을 불러 철의 장막을 쌓은 것이다.   교회의 벽을 헐어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고자 했던, 장애인과 철거민, 빈민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했던, 그리하여 고립된 담장 안이 아니라 사회 속에 교회를 심고자 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고귀한 정신이 마치 녹슨 철로변의 빈 역사(驛舍)처럼 버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직 그가 완전히 떠나기도 전에….

1995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영화「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관람.

 

교회의 높은 담장을 헐어낸 참 성직자, 김수환 
오늘 김수환 추기경의 영면 소식을 접하며 더욱 슬픈 것은 갈 수록 변해가는 교회의 보수화 바람 때문이다. 교회는 보수적일 필요도 진보적일 필요도 없다. 다만, 가난하고 핍박 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것, 그들의 편에 서서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간 진리다.  그러나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천주교, 너 마저도!”

이럴 때일 수록 가톨릭 뿐아니라 이 사회에는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이 절실하다. 이제 누가 있어 성당의 담을 헐고 가난한 사람들과 핍박받는 사람들 속에 교회를 세울 것인가.

2009. 2. 16.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매년 이때가 되면 캐롤송이 울려 퍼지는 밤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연인들에겐 더없이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평생을 간직할 추억들이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지요. 아이들에게도 최고 행복한 시간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데에는 단지 성탄이라는 사건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인들에게 성탄은 특별한 메시지이며 복음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연말연시에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는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의 축제가 된지 이미 오래이지요.

창원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빨간 십자가가 빛난다.


크리스마스의 기원

크리스마스란 크리스트Christ와 마스mas의 합성어입니다. 크리스트를 우리나라에선 그리스도라 발음하고 예수를 이름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마스는 라틴어의 미사missa가 고대영어에서 mass로 변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사는 가톨릭에서 매주 주일에 치르는 전례를 의미하지만, 원래는 축일, 축제일이란 뜻입니다. 즉 크리스마스란 ‘메시아의 제전’이란 뜻이라 하는군요.

역사에 의하면, 로마황제로부터 기독교가 공인된 초기에 로마가톨릭은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하였고, 이때부터 세계(물론 기독교의 영향이 미치는)는 성탄절을 성대하게 기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톨릭 교황이 만든 그레고리력을 쓰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고집하는 러시아정교회는 1월 7일을 성탄절로 기념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세계는 12월 25일이 성탄절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이 분열된 이후 개신교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불과 백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는 이교도의 축일이라 하여 배척하였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최고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사실은 아기 예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이교도의 축제로 배척하던 시절도...

이러한 관점이 있었던 것은 개혁의 기치를 걸고 가톨릭에 반기를 들었던 프로테스탄트의 지도자들, 루터나 칼뱅, 쯔빙글리 등이 크리스마스가 제정된 4세기경이 가톨릭이 이교도화하는 계기였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세상에 오기 이전부터 태양신을 숭배하던 이교도들의 축제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도 개신교파 중 일부 교단에서는 12월 25일은 성탄절이 아니라며 배척하고 기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12월 25일이 동짓날이었고, 이 동짓날은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다시 부활하는 날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메시아의 제전’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정한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이점을 고려하였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동지에 태어났든 하지에 태어났든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탄절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꿈과 기쁨과 희망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마가톨릭이나 칼뱅이나 예수에게 바라는 것은 사랑과 평화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일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오늘날 교회가 사람들에게 꿈과 기쁨과 희망은커녕 위안이나 주고 있는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입니다. 위에 보시는 사진은 한 보름 전 창원시청 로타리에 갔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로타리를 삥 둘러친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빛나는 시설물에는 각 교회와 담임목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청광장 트리에 달린 교회광고판도 물신숭배란 이교도처럼 보여

얼마 전, 한 블로거가 창원시청광장에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달린 십자가를 비판한 기사를 봤습니다. 성탄절에만 잠깐 전시하는 것도 아니고 11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무려 한 달이 넘는 긴 시간을 그것도 시청광장이라는 공공시설에 설치하는 것이라면 십자가보다는 별을 달아놓는 게 어떠냐는 지적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야 트집이라고 했겠지만, 그러나 저는 상당히 공감이 가는 주장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어 본 저는 일부러 시청광장에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블로거가 트집 잡은 십자가는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눈에는 다른 것이 더 커다랗게 보였습니다. 시청광장을 전세 낸 듯한 크리마스 트리용 전등시설물은 창원시내의 모든 교회들과 담임목사들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꼭 저렇게 자기들 교회이름과 목사들 이름을 광고하듯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요? 그냥 크리스마스 트리만 만들어놓아도 다 교회에서 만들어놓았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굳이 저렇게 경쟁적으로 상업적으로 보이는 광고판을 달아야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청광장을 빙 둘러친 광고판을 보면서 몇 달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시청광장에 설치된 대형트리의 아래쪽은 이렇게 교회와 목사의 이름들이 적힌 광고판으로 빙 둘러쳐져 있었다.

사탕 하나에 하느님을 파는 신도들 

서너 달 전에 딸애를 데리러 학교에 간적이 있습니다.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걸어오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먼저 아이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두 분이었는데요. 딸아이에게 사탕과 과자봉지를 건네주면서 그러더군요.

“얘야. 조금 있다가 요 위에 교회 있지? 거기로 오면 사탕하고 과자 더 많이 준다. 그리고 선물도 줄 거야. 그러니까 교회로 꼭 와야 된다. 알았지?”

두 사람은 우리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사탕과 과자를 나누어주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제가 가서 아주머니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교회가 참모습을 보이며 열심히 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다 모일 텐데, 학교 앞에서 애들한테 왜들 이러십니까? 어린 아이들 눈에 예수님이 무엇으로 보이겠습니까? 하느님이 고작 사탕 하나에 자기를 판다는 걸 어떻게 이해할까요?”

그랬더니 그분들은 저에게도 말하기를, ‘교회의 사명이 어떻고, 믿지 않으면 모두 지옥에 가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구원하는 일이니 복 받을 일’이라며 제게도 교회에 나오라고 열심히 권했습니다. 얼굴이 벌개져서 더는 말을 못하겠더군요. 저는 따지듯이 말했는데 그분들은 화도 안내면서 계속 말을 거니 제가 당해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더욱 오만해진 기독교


어쨌든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노라면 기독교의 부정적인 모습만 자꾸 연상되어 마음이 몹시 편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연이어 벌어졌던 희극 같은 기독교인들의 난센스도 자꾸 떠오릅니다.

부산지역 기독교인들이 대규모 기도집회에서 세상의 모든 절간을 불태워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라든지 어청수 경찰청장의 전국 경찰 복음화 발언은  그것만으로도 오만한 현대 기독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굳이 절간에 똥물을 투척한다거나 단군상의 목을 베는 무시무시한 행태까지 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 서울시장 재직시절에 서울시를 들어 하나님께 봉헌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이제는 대한민국을 들어 하나님께 봉헌할 차례가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들이 시중에 많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어청수 경찰청장 같은 분들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행태들이야 이런 대통령의 의중을 미리 알아서 모신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직접 뽑은 창원시장이 대통령의 심중을 미리 헤아려 공공장소를 교회와 목사들의 광고판으로 내어주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무슨 의중으로 그리 하셨을까요? 혹시 교회단체로부터 거액의 광고비라도 접수하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운 겨울에 놀고 있는 광장을 이용해 세수를 확보하는 게 그리 나쁜 일도 아니겠지요.

예수. 6세기경 모자이크/ 다음백과


그 내막이야 제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성탄절을 맞이하여 남모르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또 그 말씀을 몸소 모범을 보이신 예수의 참뜻을 만분의 일이라도 생각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돌적인 선교운동을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선교는 어느 종교인이든 그 의무요 사명입니다. 선교란 또한 신앙인의 기쁨이며 목적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업주의에 빠진 교회의 모습 버리고 사랑의 교회로 다시 태어나기를...

그러나 진정 선교하는 신앙인의 자세에 선다면 자기 교회 이름과 목사의 이름을 광고하기보다는 자기를 희생해 이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몸을 내맡긴 예수의 사랑을 알리는 데 더 노력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교회와 목사의 이름 대신 경제난으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염원을 담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바람은 물신숭배에 빠진 듯한 한국교회에 가지는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요?

그래도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런 정도의 소박한 기대를 가져보는 것이 그리 큰 죄는 아니겠지요.

2008. 12. 2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