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2.19 전두환은 오바마와 닮았다? by 파비 정부권 (10)
  2. 2009.02.16 심산선생 무덤에 절하던 김추기경, 시대의 선구자 by 파비 정부권 (4)

누가 그랬던가요?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였던가요? 전두환을 전직 대통령으로 부르면 안된다고 했던 거 말입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그래서 그냥 전두환이라고 하죠. 전두환이가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하기 위해 명동성당에 들렀습니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김수환 추기경과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했다고 하는군요. 

뭐, 그 사람 특기가 뭡니까? 남들이 물어보지도 않는데 제자랑 늘어놓는 거 아닙니까? 문득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10년도 훨씬 더 오래전의 이야기 같습니다. 워낙 오래돼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날은 제 친구 종길이와 함께 어디론가 가던 중이었습니다. 글쎄요. 어디로 무엇 때문에 아침부터 회사도 쉬고 가던 중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뒷짐 진 전두환. 조문이 아니라 관람 왔나? 말들이 많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시골도시의 어느 한적한 식당에 들렀습니다. 그때 TV 화면에서는 전두환이가 합천의 자기집에서 새벽에 검찰관에게 체포돼 서울로 압송되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지요. 당시 합천 전두환 집 주변에는 무장한 경찰병력이 밤새 주둔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이런 시시한 말 하려고 케케묵은 오래된 얘기를 꺼내는 건 아닙니다.

전두환이를 압송하던 차가 소나타였나 그랬습니다. 뒷자리 양쪽에는 검찰수사관들이 전두환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지요. 행렬이 대전을 지나 천안으로 향할 때였던가, 그때 전두환이 양쪽에 앉은 검찰수사관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독립기념관 저거 누가 만든 건 줄 알어? 바로 내가 만든 거야. 그리고 충주댐도 내가 만들었지."  

옆에 앉아있던 검찰수사관들이 뭐라고 대꾸했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기사에도 없었을 겁니다. 아무 말도 안 했겠지요. 아니면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라고 했을라나요? 그냥 전직 대통령을 잡아가는 중이라 매우 신중하게, 때로는 매우 황송해하며 근엄하게 앉아있었겠지요. 하여간 전두환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리고 이번에 김추기경을 조문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들른 자리에서 또 뜬금없는 제자랑 늘어놓기 특기를 발휘했다고 하는군요. 기자들이 전두환에게 "김수환 추기경과 인연이 깊지 않느냐?"라고 물어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네요. 

“여러분이 잘 모르시겠지만 나는 추기경과 오랜 관계가 있었다. …… 1사단장 시절 김 추기경이 지학순 주교와 함께 찾아와 성당을 지어달라고 하셔서 지어드렸다. …… 보안사령관 때는 저녁을 대접한 적도 있다.” 

아이구, 정말 대단하십니다. 참 훌륭한 일 하셨군요. 그러면서 그는 “김추기경이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 더 오래 사셔야 하는데 애석하다.”고 말했다 합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하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하긴 워낙 많은 침을 튀겨서 이제 제 입술에 바를 침도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마른 입술로도 저리 말을 잘하니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전두환은 역시 폭이 넓은 사람입니다. 그는 노태우와 달리 두꺼운 전별금 봉투로 유명한 사람이죠. 이는 장세동 같은 충성파들이 그의 주변에 많은 이유로도 설명되곤 합니다. 역시 그는 그냥 이 정도 식사대접으로 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해주는 디저트도 어김없이 내놓았던 것이지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왔는데 그 사람이 젊은 시절 축구선수였다. 나도 육사시절 축구 선수였다.”

기자들이 이 어리둥절한 디저트에 황당해했음은 물론입니다. 기자들이야 황당하건 말건 전두환은 충분히 자기만족을 하고 돌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막상 전두환에게 질문한 추기경과의 악연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군요. 어쨌든 전두환, 역시 장군 출신이라 그런지 통이 참 큽니다. 악연도 이렇게 각별한 인연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저는 전두환 만큼이나 황당하고 어리둥절한 통을 가진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죠.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은 닮은꼴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당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죠?

“둘 다 변화와 개혁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자가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오바마를 좌파라고 몰아세울 땐 언제고 갑자기 오바마의 철학이 이명박의 철학과 같다니? 참 황당해도 이보다 더 황당할 순 없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명박과 전두환이도 많이 닮았습니다. 두 사람의 황당개그 수준이 거의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점도 닮았구요. 이쯤에서 어린 시절 배웠던 어설픈 삼단논법이 생각납니다.

“A=B고, B=C다. 고로 A=C다”

여기서 이런 결론이 유추되는군요.

“전두환=이명박이고, 이명박=오바마다. 고로 전두환=오바마다.”

2008년 대선후보 시절의 오바마. 사진출처=연합뉴스


그러고 보니 저도 참 황당하군요. 돌아가신 분은 추기경이신데 갑자기 제가 정신이 좀 혼미해지는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조문 자리에서 김추기경을 “이 양반이…”라고 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확실히’를 ‘학실이’로 밖에 발음하지 못하는 ‘갱상도’ 특유의 무례한 말버릇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갱상도거든요.

그렇지만, 전두환이는 참 어쩔 수가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양반’은 무례한 정도가 아니라 무식도 이미 초월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듯보입니다. 하여간 오늘은 참으로 황당한 날입니다.

2009. 2. 19.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교회 담장 헐어낸 참 성직자,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그는 1969년 로마교황 요한바오로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됐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었다. 또 그는 최연소의 나이에 추기경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최고령 추기경으로서 오늘 영면의 길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어떤 기록들보다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에 기록된 그의 모습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교회의 담장을 헐었던 참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1981년. 마더 테레사 수녀와 김수환 추기경. /「다음까페」『성직자가사는이야기』아래 사진들도 모두.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70년대 박정희 철권통치에 저항하던 수많은 지식인들과 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싸우던 학생, 노동자들에게 명동성당은 따뜻한 품이었다. 김 추기경은 "교회의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는 소신을 몸소 실천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무덤을 찾은 김추기경
몇 년 전이었던가? 김수환 추기경은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김창숙 선생은 행동하는 유림으로 이 시대 마지막 선비로 일컬어지는 분이다. 그는 이승만에 맞서 반독재의 선봉에 섰던 진정한 선비로서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김 추기경이 움직이자 기자들이 구름처럼 모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기자들은 이미 곳곳에다 사진기를 설치해놓고 후레쉬를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과연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심산 김창숙은 단지 위대한 선각자일 뿐만 아니라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언론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니 나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절을 할까?

김 추기경은 묵묵히 산을 올라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정중히 절을 했다. 그것도 두 번 했다. 나중에 하신 말씀이지만, “돌아가신 분에게는 두 번 절하는 것이라고 해서 두 번 했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는 또 존경하는 분에게 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세인들의 관심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매우 흡족했다. 

 그 전에 나는 혹시나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을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다. 물론 내가 할 필요가 없는 부질없는 걱정이다. 천주교는 전래 초기에 조상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든지, 반상의 법도를 깨트린다든지 하여 왕조로부터 무수한 탄압을 받았다. 순교자가 수만에 이르렀고, 이를 피하여 깊은 산에 들어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으나 이들 중 절반이 호랑이 밥이 되었다 한다.

1972년. 정부의 8·3 긴급조치에 대한 시국메시지를 발표하는 김추기경. "7·4공동성명을 평화를 위장한 전쟁준비와 정치기만술로 이용하지 말 것" …… "온갖 특혜에도 경제를 파탄낸 정부와 기업가들에게 항의와 맹성을 촉구" ……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교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강경한 어조가 생소하지 않다. 한 세대가 흘렀건만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일까?


예수를 닮는 것은 가난한 자들 편에서 평등사상을 실천하는 것   
그러나 오늘날 천주교는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반상과 적서의 차별을 없이 한 선열들의 정신은 훌륭한 것이었으나 조상을 공경하는 풍속까지 배격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반성을 내놓았다. 매우 옳은 처사다. 그러므로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하등 주저할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나 역시 그 결과가 궁금했다.   

김 추기경은 역시 대범하고 거칠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불교로 말하자면 마치 도를 터득한 경지에 올랐다고나 할까. 물론 그는 자서전에서 “평생을 노력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며, 예수를 닮는 사제가 되지도 못했다.”고 자책했지만. 그는 최고의 성직자였다.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으며 스스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중요한 고비마다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1977년. 철거민촌의 김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을 은퇴하고 명동성당을 떠난 그가 몇 차례 가진 인터뷰 등에서 밝힌 변화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놓고 과거 민주화시대의 잣대로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감정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어놓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우리가 너무나 세속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 그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있을 때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는 장애인과 철거민, 빈민들과 만나고 대화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는 독재와 불평등한 현실에 강경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우리 곁을 떠나는 지금 이 순간, 명동성당은 달라지고 있다.  

며칠 전, 명동성당은 용산참사 철거민들의 농성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이란 것을 했다. 철거민들과 만나지 않기 위해, 그들이 교회의 담장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경찰을 불러 철의 장막을 쌓은 것이다.   교회의 벽을 헐어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고자 했던, 장애인과 철거민, 빈민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했던, 그리하여 고립된 담장 안이 아니라 사회 속에 교회를 심고자 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고귀한 정신이 마치 녹슨 철로변의 빈 역사(驛舍)처럼 버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직 그가 완전히 떠나기도 전에….

1995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영화「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관람.

 

교회의 높은 담장을 헐어낸 참 성직자, 김수환 
오늘 김수환 추기경의 영면 소식을 접하며 더욱 슬픈 것은 갈 수록 변해가는 교회의 보수화 바람 때문이다. 교회는 보수적일 필요도 진보적일 필요도 없다. 다만, 가난하고 핍박 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것, 그들의 편에 서서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간 진리다.  그러나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천주교, 너 마저도!”

이럴 때일 수록 가톨릭 뿐아니라 이 사회에는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이 절실하다. 이제 누가 있어 성당의 담을 헐고 가난한 사람들과 핍박받는 사람들 속에 교회를 세울 것인가.

2009. 2. 16.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