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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4 경주에서 웃고 있는 사자가 의미하는 것은? by 파비 정부권 (7)
  2. 2009.09.22 신라 최고의 미녀 미실궁 집사는 통화중 by 파비 정부권 (10)
경주는 실로 문화유산의 보고였습니다. 경주에 도착한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국립경주박물관입니다. 아마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을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주박물관은 처음 와보는 곳처럼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경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겨우 반나절의 시간을 갖고 경주박물관의 유물을 둘러본다는 건 오만입니다. 며칠을 두고 도시락을 싸들고 관람을 해야 겨우 경주 유물의 껍질을 까 안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안목을 배우는 데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번 경주 답사를 위해 미리 도서관에서 일고여덟 권의 책을 구해 읽었던 터였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겨우 책 몇 줄 읽는 것으로는 경주박물관의 유물을 이해하는 데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유물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답사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전 없이 전쟁에 나가는 병사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준비 없는 답사가 죽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별로 얻는 것은 없으면서 시간 낭비와 엄청난 육체적 피로만 안겨주게 됩니다. 이번 답사의 경험으로 저는 예컨대 앞으로 이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리 반드시 보아야 할 유물 목록을 적어올 것, 그리고 그 유물의 위치나 동선 정도는 미리 파악할 것.   

그래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며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유물은 적당히 즐기며 패스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꼭 봐야할 것을 놓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마치 뷔페식당에 가서 어마어마하게 많이 진열된 음식을 두고 도대체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에 저는 반드시 보아야할 유물 하나를 보지 못했습니다. 황남대총에서 나온 금관을 보지 못했고, 당연히 사진도 못 찍었습니다. 그리고 황남대총에서 나온 은관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두 유물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말하자면, 요즘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신라의 여인천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인데, 선덕여왕 답사를 간다면서 이걸 놓친 것입니다.  

음, 제가 본론에도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사설은 늘어놓는 이유는 여러분은 저처럼 실수하지 마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사실 텍스트는 간단하게 또는 생략하고 단지 사진만 보여드리려고 한 것인데 역시 저는 구르다님의 지적처럼 '긴' 편입니다. 죄송합니다. 흐흐.   

오늘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경주에 산재한 사자들입니다. 영어로는 라이온이라고도 합니다. 백수의 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는 사자가 살지 않습니다. 고대에도 아시아에 특히 동아시아에 사자가 살았다는 보고는 아직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경주에는 엄청나게 사자가 많습니다. 

도대체 이 사자들은 모두 어디서 온 것들일까요? 아, 물론 고대 신라인들이 만든 것이죠. 네, 그런데 이 사자를 고대 신라인들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용이나 봉황처럼 상상의 동물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사자를 신라인들이 보았을까요? 저는 그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궁금합니다. 
 

맨 위에 게시한 사진은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사자입니다. 사자의 뒤에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가 팔을 괴고 앉아있는 것이 보이시죠? 이곳은 휴게실입니다. 사자가 휴게실도 지키고 있습니다. 대단하죠? 고대 신라엔 이렇게 사자가 흔해빠졌다는 반증이죠. 머리가 다 빠져 대머리가 되었지만 기상은 천 년 전과 다름없습니다.  

바로 위 사진은 분황사탑을 지키고 있는 사자상입니다. 선덕여왕이 절을 창건할 당시엔 그 위용이 대단했으리란 짐작이 갑니다. 분황사란 황제의 향기가 나는 절이란 뜻이겠지요? 저는 이 절터를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란과 그림을 보내 자기를 모욕한 당태종에게 보란 듯이 이 거대한 절을 짓고 탑을 올렸던 건 아닐까? 그리고 절 이름을 분황사라 했던 것은 아닐까?


분황사지와 황룡사지를 뒤로 하고 선덕여왕릉과 괘릉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논 한 가운데 탑이 있습니다. 황룡사지를 둘러보다 저기까지 가 보려고 했지만 논 사이에 길을 찾을 수 없어 포기했었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다 이렇게 사진에 잡혔습니다. 역시 경주는 곳곳에 유적이 널린 보물 창고가 맞습니다.  


자, 이곳이 경주의 왕릉 중에 가장 화려하다는 원성왕릉입니다. 수십 개의 돌기둥으로 만든 난간과 십이지신상이 능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무덤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유명한 것은 이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엔 웃는 사자가 있습니다. 우선 아래 사진들을 보시며 천천히 감상해보시지요. 사자가 여러분을 쳐다보며 웃거나 몸을 들썩이는 것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원성왕릉은 괘릉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이곳에 있던 작은 연못의 수면 위에 왕의 유해를 걸어 안정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이 왕릉의 입구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과 두 명의 문인상, 두 명의 무인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위에 네 마리의 사자상을 작은 사진으로 모아놓았습니다.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중 마지막 사자상이 가장 역동적이고 해학적입니다. 웃는 폼이 마치 몸을 들썩이며 장난치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시죠.


그렇죠? 그럼 이번에 아래 사진을 보십시오. 마치 사람을 향해 장난을 거는 강아지처럼 정겹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런데요. 제가 더 궁금한 것은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로 이겁니다. 고대 신라인들이 사자를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이 사자상들 옆에 함께 서있는 무인상, 즉 로마인인지 아랍인인지 알 수 없는 서역인들이 데리고 온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궁금증이 더 생기는군요. 

원성왕은 왜 서역에서 온 무인에게 자기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준 것일까요? 함께 간 김주완 기자와 커서님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양 사람이 아무래도 덩치도 더 크고 힘도 세고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궁금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고대신라의 유적을 둘러본 후에 남는 것은 온통 의혹덩어리입니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고구려, 백제, 중국, 아시아 어디에도 없는 특이하고 화려한 금관 그리고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에서 출토된 로마유리잔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연주하던 유리잔도 로마에서 온 것일까요? 또 원성왕릉을 지키고 있는 서역인의 얼굴을 한 무인상과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사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아래에 원성왕릉(괘릉) 맨 앞을 지키고 있는 무인상을 감상하시는 것으로 오늘의 포스팅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주먹을 불끈 쥔 로마인인지 아랍인인지 모를 무인상에서 무언가 힘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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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 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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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을 답사하기 위해 경주에 갔다가 선덕여왕 세트장에 들렀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안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입장료는 18000원이었습니다. 5시 이후에 입장하면 할인된 요금 8000원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립경주박물관과 천마총, 첨성대, 김유신장군묘를 구경하고 난 다음 밀레니엄파크에 갔는데 딱 5시 20분이었습니다.
 

입구에는 이렇게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김유신장군묘 둘레에 새겨진 12지신상을 보고 왔던 터라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김유신장군묘에 새겨진 12지신상은 참으로 정교하고 화려했습니다. 1000년도 훨씬 전의 조각 솜씨가 이렇게 빼어나다니,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김유신장군묘를 둘러보면서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어떻게 일개 장군의 묘가 왕릉보다 더 화려하지?" 그러고 보니 어떤 왕릉에도 김유신장군묘만큼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곳은 없었습니다. 선덕여왕릉도 무덤의 모양으로만 보자면 평그저 평범한 능에 불과했습니다. 오로지 괘릉으로 불리는 원성왕릉이 김유신묘와 같은 십이지신상으로 무덤을 치장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나중에 따로 보여드리겠지만, 괘릉(원성왕릉)은 신라 왕릉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왕릉 입구에 도열해 있는 석상들은 화려함과 예술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웃고 있는 사자, 험악한 인상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칼을 든 무인은 아랍인인지 로마인인지 모를 서역인입니다.

김유신 장군묘도 원성왕릉에 못지않았습니다. 게다가 원성왕릉이나 선덕여왕릉, 진평왕릉 등은 돈을 받지 않았지만 김유신장군묘는 돈을 받았습니다. 짓궂은 김주완 기자가 안내인에게 물었습니다. "아, 그런데 말이죠. 김유신장군묘는 요금을 받던데 왜 여기는 안 받죠?" 원성왕릉을 지키던 안내인이 우물쭈물 했음은 물론입니다.

아마 속으로 그랬을 겁니다. "돈 안 받으면 고맙게 생각할 것이지 별 황당한 질문을 다 하네." 그때 옆에 있던 제가 말했지요. "아이, 김 기자님. 김유신 장군은 칼을 들고 있으니 무서워 돈을 받는 거지요. 괜히 장군 출신에게 흥무대왕이란 시호까지 추증했겠습니까. 다 무서워 그런 거지요."  


선덕여왕 세트장을 향해 한참을 가자니 이런 토우가 집단으로 모여 있는 자그마한 언덕이 나왔습니다. 토우인형 만들기 체험장이었습니다. 작은 언덕이 빙 둘러서 있고 거기에 토우들이 이렇게 세워져 있었으며 그 빙 둘러선 언덕의 중간에 체험장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장난기 어린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혹시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야한 토우들도 있을지 살펴보았습니다. 한 바퀴를 빙 돌며 자세히 살폈지만 그런 토우는 없었습니다. 에이,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음, 역시 왕년의 자유분방하며 탁월한 예술 감각을 지녔던 신라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이로군. 신라인들도 이미 오랜 유교적 전통에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게지."

아래 토기는 국보 95호 토우장식 항아리로서 미추왕릉 지구에서 출토된 것으로 5~6세기 신라시대 작품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보물급 문화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당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저는 이 작품이 최고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물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은 아무도 이 작품을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더군요. 우선 유물의 동선도 문제였지만, 세상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처럼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을 즐겨 보며 당시의 성 풍속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다른 어떤 유물보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였을 텐데 말입니다. 

실제로 학자들 중에도 이 유물, 특히 이 유물에 나오는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토우 인형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화랑세기를 연구하는 이종욱 교수 정도가 이 작품의 우수성을 논하고 있을 따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알게 모르게 유교적 엄숙주의가 몸에 밴 탓을 아닐지…. 
 

드디어 미실궁에 도착했습니다. 선덕여왕 세트장에는 왕궁도 있고 귀족들이 살던 집도 있지만 역시 미실궁이 가장 화려하군요. 미실궁 너머로 석양이 서서히 물들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면 붉은 노을에 물든 미실궁이 보다 요염한 자태를 뽐냈을 텐데 아쉽습니다.


미실궁에는 집사도 있습니다. 미실궁 정문을 들어서니 집사가 한 분 서서 우리를 반겨줍니다. 복장은 신라시대 복장을 흉내 내 만들어 입은 것 같은데 모자가 좀 특이하군요. 저 모자도 신라시대에 쓰던 모자가 맞을까요? 꼭 동네 할아버지들 쓰고 다니시는 모자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미실궁 집사님, 휴대폰 들고 전화하시느라 바쁘시네요. 누구하고 통화하고 계신 걸까요? 혹시 댁에 계신 미실마님으로부터 온 전화?

우산을 든 모습이 너무 특이해서 제가 사진 한 장 찍자고 부탁드렸더니 포즈를 취하다가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사진이 이렇게 되고 말았답니다. 어쨌든 저로서는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때 맞춰 전화를 걸어주신 미실마님께 감사를 올려야겠군요. 하하.


그런데 미실궁 집사님은 정문을 지키는 일 뿐 아니라 이렇게 관광객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는 데도 바쁘셨답니다. 집사님의 이런 친절은 결국 미실 새주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친절이 최고의 덕목입니다. 언젠가 하워드 진을 만나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간 부산의 대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에게 새겨들을 할 만한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 한말씀 해주십시오." 그러자 하워드 진이 짤막하게 말했습니다. "카인드니스!" "네?"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금세기 최고의 미국 내 진보학자로 추앙받는 하워드 진의 입에서 겨우 "카인드니스!"라니. 평등이니, 자유니, 해방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고 겨우 "카인드니스?"   

그러나 여러분. 오늘은 진보사상에 대해 논하자는 게 아니고 미실궁을 감상하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간단하게 '카인드니스'가 매우 중요한 또는 가장 중요한 가치란 사실을 일단 인정하고 넘어가기로 합시다. 그런데 저도 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감동했었답니다. 친절, 친절함, 그래 세상 어떤 가치보다도 월등한 가치는 바로 친절이지.

창원의 가음정에 있던 한 감자탕집 주인아주머니가 생각나는군요. 이분이 운영하던 가게는 하루 종일 미어터졌는데 저도 이 집에 자주 갔었답니다. 갈 때마다 이 주인아주머니의 독특한 인사를 받을 수 있었지요. 그게 뭐였는지 혹시 이 집에서 감자탕을 드셔본 분이라면 아마 기억이 나실 겁니다.

"친절 합시다!"

밥 잘 먹고 가게 문을 나서는 손님에게 두 손을 배에다 공손히 모은 자세로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친절 합시다!"라고 인사하는 모습은 진풍경이었습니다. "엥? 나보고 친절하게 살라는 말이야, 아님 자기가 앞으로 나를 볼 때마다 친절하게 하겠다는 소리야?" 아마 헛갈린 분도 계셨겠지만, 그 친절 구호에 누구든 흐뭇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이로써 오늘 미실궁을 구경한 마지막 감상은 이렇습니다. "친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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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