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형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2.25 추노, 가장 혁명적인 인물은 언년이가 아닐까? by 파비 정부권 (13)
  2. 2010.01.30 양반귀족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 by 파비 정부권 (47)
  3. 2010.01.15 추노, 업복이 쏜 총탄이 대길을 비켜간 까닭 by 파비 정부권 (39)
  4. 2010.01.14 '추노'속 대길어록, 해학과 풍자의 상말 속담들 by 파비 정부권 (6)

좀 뚱딴지 같지요? 그러나 오늘 추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지금까지 몇 번 추노속 혁명가들에 대한 단상을 정리해보긴 했지만, 언년이(이다해)야말로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더라고요. 물론 혁명가라 하면 의식 뿐 아니라 행동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언년이는 한참 거리가 있지요.

언년이이자 김혜원인 그녀에겐 존재로부터 오는 혁명적 의식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한다면서 어떤 혁명인지 말이 없는 송태하

송태하(오지호)는 직접 혁명을 말하고 있고, 그 혁명으로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지요. 단순히 임금을 바꾸는 게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혁명이 아니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혁명에 대한 상이 있는 건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게 무언지 아무것도 보여주는 게 없습니다. 그저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 말고는.

그런 점에서 이대길(장혁)은 혁명에 대한 보다 분명한 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있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길은 양반이었고 지금도 양반입니다. 그가 양반도 상놈도 없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은 언년이와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길의 혁명관은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한 것이긴 하지만 다분히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감상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대길이 동료인 최장군과 왕손이 몰래 추노비를 삥땅해서 이천에 땅을 사둔 것도 실은 그런 감상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죠. 모두 모여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길은 참 정이 많은 '양반'입니다.

그 정 많은 양반 이대길이 언년이의 목에 칼을 들이댔습니다. 그리고 말하죠.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간 노비들은 모두 벌을 받아야 돼." 물론 본심은 아닙니다. 대길이 10년 가까운 세월 추노질을 하며 돌아다닌 것은 다 언년이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목적이 증오심으로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사랑하는 정인을 찾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본인도 잘 모릅니다.

이대길의 혁명론은 구체적이지만 매우 감상적

그러나 TV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대길이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은 사랑하는 언년이였지요. 대길이가 혁명적 가치관을 가졌던 것도 모두 언년이 때문이었습니다. 언년이에게 고통을 주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하기 싫은 과거공부도 했지요. 어쨌든 그런 그가 '반상의 법도' 운운하며 언년이의 목에 칼을 들이댔습니다. 

"반상이 뚜렷하고 주종이 엄격한데 어찌하여 너는 하늘의 뜻을 저버리고 주인인 나를 배신 하였느냐?"

그러자 눈물을 흘리던 언년이가 냉철하게 받아치더군요. 저는 그 대목에서 매우 놀랐을 뿐 아니라 크나큰 감동을 받았답니다. 언년이에게 저토록 다부진 면이 있었던가? 대길을 만나면 그저 눈물만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줄 알았던 언년이가 자신의 속내에 간직한 이념(?)을 주저 없이 설파했다는 것은 저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반상이란 누가 만든 것이고, 주종이란 어디서 시작된 것입니까?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 진정 하늘의 뜻 아닙니까?"

추노 속에서 이보다 더 혁명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 또 있을까요? 곽한섬(조진웅)이 조선비의 무력 쿠데타에 반대해 송태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의식을 바꾸는 것이 먼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인정하는 선에서 들여다보면, 언년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의식 혁명을 거친 인물입니다.  

반상은 누가 만들었는가? 주종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이죠. 아무튼 오늘 저는 언년이를 보면서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송태하도 이대길도 노비당의 누구도 갖지 못했던 가장 확실한 혁명적 가치관을 언년이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의외의 일이었거든요.

법과 제도란 대체 누가 만들었으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예고편을 보니 아마 내일쯤 업복이(공형진)도 보다 정리된 혁명적 가치관에 대해 토로할 모양이던데요. 계속 특별한 이유 없이 양반을 죽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지요. 게다가 양반이 아닌 중인계급까지 죽이라는 지령이 있고 보니 그런 의심이 더욱 들었겠지요. "아니 원래 양반을 모두 죽이고 세상을 엎자고 한 거 아니었어?" 하면서 말이죠.    

"양반 상놈이 뒤집어지면 우리가 양반을 종으로 부리는 건가? 그렇게 뒤집어지는 것보단 양반 상놈 구분 없이 사는 세상이 더 좋은 거 아니나?"

아무튼 송태하의 혁명관이 무언지, 바꾸려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아직 한마디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어쩌면 소현세자의 역사적 행보를 통해 유추 해석하라는 제작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마디쯤은 해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바꾸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말입니다.

어쩌면 내일 대길과의 결투가 송태하의 가치관을 살짝이라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직은 태하의 생각이 무언지 우리는 확실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언년이의 대담한 발언은 누구보다도 혁명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양반 출신인 이대길이나 송태하로서는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늘 맞는 건 아니라는 걸 두 사람은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사진처럼 의기투합해서...


그들에겐 계급적인 한계가 뚜렷하니까요. 태하는 그래도 2년씩이나 노비생활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그는 목적의식적으로 노비가 되었던 것이므로 스스로는 절대 노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노비의 고통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설령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은혜적인 차원일 수 있지요.  

언년이가 가장 혁명적인 의식을 가지는 건 존재로부터 오는 당연한 결과

거기에 비해 노비 출신으로 노비의 쓴맛을 처절하게 맛보았던 언년이가 가장 혁명적인 의식을 가지는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가 보통 주절주절 길게 쓰는 편입니다만, 요즘 통 포스팅도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쓰려니 무척 피곤하고 잠도 오고 그렇습니다. 웬일인지 캡순이도 말을 안 들어 이미지 캡처도 안 되는군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그만 자야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행복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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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추노꾼 이대길의 정체에 대한 물음, "대길이가 추노꾼이 된 까닭?" 
"사랑을 쫒는 연인? 원수를 쫒는 복수의 화신? 아니면, 새세상을 쫒는 혁명가?" 
 

이대길(장혁)은 양반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착오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대길은 노비도, 천민도, 평민도 아닌  여전히 현재에도 양반이란 사실입니다. 그 엄연한 사실을 모두들 잊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대길이 저자에서 거의 천민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천민들에게조차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천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추노꾼 이대길은 양반귀족이다

그럼 대길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집안이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대길의 집안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추노>는 언년이(이다해)의 오라비인 큰놈이(조재완)가 대길의 집에 불을 지르고 가솔들을 모조리 도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과연 큰놈이가 혼자서 대길의 집안을, 그러니까 대길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 많은 수의 노비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듭니다. 아무리 집에 큰불을 놓았다고 하더라도 몇 명은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죽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길의 집에 불을 지르고 언년이를 데리고 도망친 큰놈이가 이후에 큰돈을 벌어 양반까지 사서 신분상승을 할 정도의 큰 재목이었다면 이미 노비 시절에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대의 방화사건에는 공범들이 있었고, 그래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멸문을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큰놈이도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토록 치밀한 성격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만한 위인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럼 첫 번째 의문은 별로 문제가 안 되는군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 이건 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추노>가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살펴보아야 할 핵심 주제의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집이 불에 타고 가솔들이 모두 죽었다고는 하나 대길은 양반이다. 게다가 대길의 집안 경제를 지탱해주었을 전답들은 하늘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땅으로 꺼지는 것도 아니다. 집은 그저 주거용일 뿐이고 경제적 기반은 역시 전답, 즉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이 불탔다고 하더라도 대길은 그대로 양반이며 지주다."

양반귀족 이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이것이 오늘 하고 싶은 이야깁니다. 대길은 왜 양반신분을 포기하고 저자에서 추노꾼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 신분이란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양반 신분이란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노비 신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대길의 집안이 멸문했다고는 하지만 친척도 있을 것이고, 관청에서도 대길의 신분을 보증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시 인구구성으로 보아 양반은 5%를 넘지 않는 소수였으니까요. 그러니까 대길은 양반신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저자에서 추노꾼 행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고 있을까?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보통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대길이 언년이를 잊지 못해 찾기 위해서란 겁니다.
 
이는 대길이가 언년이의 초상화(요즘 같으면 몽타쥬 또는 수배사진)를 그려달라고 방 화백(안석환)에게 부탁하는 장면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길은1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언년이의 초상화를 고집합니다. 대길이에게 10년은 정지된 시간이죠. 대길에게 추노는 애타는 사랑을 찾기 위한 대장정입니다. 그럼 추노꾼이 된 다른 이유 하나는 무엇일까?

복수하기 위해섭니다. 사랑이 컸던 만큼 복수심의 크기도 상상 이상일 겁니다. 다음 주 예고편을 보면 대길은 백호(데니안)를 통해 언년이의 실체를 어느 정도 눈치 채게 됩니다. 설화(김하은)를 이용해 큰놈이가 김성환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집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섬뜩한 표정으로. "주인 배신하고 도망친 노비 연놈들 싹 다 잡아서 돌려 놔야지, 원래대로." 

예고편만 보아서는 대길의 심정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큰놈이가 휘두른 낫에 입은 칼자국 가운데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는 사무친 원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 차가운 눈동자 저 뒤편으로 잊을 수 없는 언년이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장혁만이 만들어낼 만한 이 복잡한 표정들은 실로 압권입니다.

냉혹한 추노꾼 이대길,
그러나 심장 속엔 따뜻한 피가 흐른다


그런데 대길에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바로 돈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블로거 초록누리님도 이미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길은 매우 양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지만, 실은 누구보다 정이 많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결국 대길의 운명을 이토록 질기게 만든 까닭도 누구보다 따뜻한 정이었습니다. 그는 노비를 사랑할 만큼 진실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온정은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원의 손길이 되기도 합니다. 짝귀가 그렇고 대길이 풀어준 노비 모녀가 그렇습니다. 설화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모두 나중에 대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 대길이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으로부터 5천 냥을 이미 선금으로 받고서도 받았다는 내색은커녕 5백 냥짜리 추노라고 속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대길이 왜 그랬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알던 대길과는 완전 딴판이었으니까요. 대길은 천지호(성동일)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천지호조차도 동료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저자의 법도라고 철썩 같이 믿습니다. 

그런데 왜? 무려 4천5백 냥이나 속이는 것은 최장군(한정수)이나 왕손이(김지석)에겐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추노>를 볼 때마다 늘 염두에 두고 봤지만, 그 답을 알아낼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이 대길이 추노꾼이 된 연유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짐작은 하지만, 확신할 만한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초록누리님은 자신의 블로그에 <추노>8부 첫 장면에서 그 단서를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짐작일 뿐이라는 단서를 달았지요. 8부 첫 장면은 대길이가 여종 언년이를 업고 오솔길을 걸으면서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요?"
"과거에 급제해야지."
"그 다음엔요?"
"그 다음엔 아주아주 높은 벼슬을 할 거야."
"그러면요?"
"나라를 바꿔야지."
"어떻게?"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들 거야. 그래서 너랑 같이 살 거다, 평생."
"치, 거짓말."
"참말."

이대길의 꿈은 세상을 뒤엎는 혁명?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든다고요? 그건 바로 혁명입니다. 혁명을 통해 체제를 바꾼다는 의미지요.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법도인 나라를 없애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대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의 신>에서 강석호 변호사(김수로)가 말한 대사와 참으로 흡사하구나.' 강석호가 그랬죠. '세상을 바꾸려면 공부를 해서 천하대에 가서 법을 바꿔라' 

그런데 초록누리님에 의하면, 이대길은 공부를 해서 세상을 바꾸는 쪽보다 천민들과 작당―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이는 말이지만,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당을 만든다는 뜻이죠―을 해서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요.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짐작이 영 터무니없는 것은 아닙니다. 5천 냥의 용처에 대해 생각하면서 저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보았던 부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좌의정 이경식을 만났던 정자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대길을 바라보던 기생 찬(송지은)이 생각납니다. '만약 그녀가 노비당에 양반 살해를 명하는 '그분'이라면 이대길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갈등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갈등의 감정이 이끄는 행로는 추노꾼 대길을 정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소용돌이는 혁명을 꿈꾸는 노비당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좌의정 이경식에게 부하들을 하나씩 잃게 되는 천지호도 결국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겠지요. 그는 귀족세계가 무슨 짓을 하든 저자의 법도에 관여만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도 결국 냉엄한 벼슬아치의 세계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요.

무서운 붓 든 자들,
그들에게 사람은 명분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가

그리고 하나 더 확실한 슬픈 사실이 있습니다.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노비당, 노비들, 이대길, 천지호, 이 모든 사람들은 결국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이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8부에서 전 좌의정 임영호를 대신해 당파를 모아놓고 송태하를 중심으로 이룰 대업에 관해 역설하던 조선비(최덕문)가 한 말이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결국 송태하를 배신하게 될 인물입니다.

조선비는 당파의 일원들에게 명하여 노비가 되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송태하(오지호)의 과거 부하들에게 격문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그들 하나하나는 모두 한때 조선에서 나노라하는 무장들이었습니다. 조선비는 노비들을 모아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 당파의 일원들에게 "우리의 목표는 거병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그 거병에 이들 노비들이 앞장 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거병이네. 그들이 장수가 되고 뜻을 따르는 백성들이 군졸이 되고 우리는 그들 모두를 이끄는 머리가 돼야 함을 잊지 말게." 이 대목에서 불현듯 최장군이 대길에게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이 의미심장한 대구는 <추노>에서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업복이(공형진)와 끝봉이(조희봉)의 대화를 한 번 보시죠.

"너는 저 그 양반 본 적이 있나?"
"아이, 그 양반이 뭐여, 그분한테. 그리고 그분은 양반이 아녀, 우리 같은 상놈이지."  
"아이그, 무식하긴, 상놈이 뭐나, 상놈이. 천민이란 좋은 말 놔두고선."
"자네가 언제 글을 깨우쳤나. 그런 문자속을 주워 담고."
"그야 뭐 참~"

이때 살인지령을 하달하는 편지가 달린 화살이 날아와 박힙니다. 그러나 문자속을 자랑하던 업복이는 한 자도 읽을 수 없습니다. 끝봉이가 "염병하고, 이것이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자인디? 어디~" 하면서 편지를 업복이에게 건넵니다. 그러나 업복이도 까막눈이긴 마찬가집니다. "뭐여, 문자속은 다 주워 담더니 언문도 못 깨쳤어?"

거대한 음모를 암시하는 말,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이 사진처럼 이들은 한패가 될 수 있을까?

"언문 깨쳐야 뭐 호랭이 사냥을 잘하나? 포수가 불만 장 댕기면 되는 거지, 무슨 참." 이건 단순하게 극에 재미를 주기 위한 코미디가 아닙니다. 이 대화 속에는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깨우쳐주기 위한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치를 업복이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업복이와 노비당의 뒤에 도사린 무서운 음모에 대한 암시인 것이죠. 아무튼 <추노>도 벌써 3분지 1이 지났습니다. 이제 서서히 그 음모의 윤곽이 드러날 때가 되었습니다. 기생 찬이 어떤 형태로든 노비당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대길이 이 당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곧 그도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이대길, 송태하, 천지호, 노비당의 관계들이 새롭게 정리될 것입니다. 쫓고 쫓기던 관계가 동지가 되고, 동지였던 자들이 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소용돌이가 몰아치더라도 최장군이 늘 염려하던 한 가지만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그 '무서운 자들'이란 민중의 이익보다는 알량한 신념이나 명분에 목숨 걸기도 하고, 때로는 당파의 이해타산을 위해선 배신도 밥 먹듯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최장군의 말이 아니어도 이대길은 양반들의 생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할 힘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제목에 담긴 뜻과 똑같습니다.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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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조선판 메트릭스,
    대길이 총알을 피한 것일까? 총알이 대길을 비켜간 것일까?


방금 추노가 끝났습니다. 역시 재밌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길(장혁)이가 언년이(이다해)의 존재를 눈치 챈 듯 하더군요. 어찌 될까요? 알아볼까요? 아니면 그냥 또 긴가민가하다가 놓치고 말까요? 만약 송태하(오지호)와 같이 있는 여인이 언년이임을 알게 된다면 이제 돈 5천 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죠. 사생결단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질 겁니다. 

미디어다음 이미지 '뷰티풀라인' 캡처사진



업복이의 총알을 피한 것은 순전히 대길의 순발력 탓이었나?

송태하의 뒤에 숨은 언년이도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이 전해 옴을 눈빛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눈과 귀, 코가 아니어도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다가
뒤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을 맨손으로 받아낸 적도 있고, 멍하니 앉아있다 딸아이의 손에서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조각이 땅에 닿기 직전에 손으로 받은 적도 있었죠.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느낌이 왔던 거죠. 아무튼, 각설하고.

그런데 말입니다. 업복이(공형진)가 말을 타고 추노질을 하러 떠나려던 이대길을 향해 화승총으로 회심의 한방을 날렸는데요. 총알이 정확하게 대길이의 이마, 상스러운 말로는 막박을 향해 날아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총알이 대길의 머리에 구멍을 내려는 순간, 대길의 날카로운 그리고 재빠른 눈이 총알을 보고 말았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화면상으로는 분명히 대길이 자기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보았고 순간 머리를 틀었죠. 이런 정도의 경지는 그야말로 등봉조극, 오기조원의 경지를 넘어 입신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이대길의 무공 수위가 이 정도라면 아무리 조선팔도에서 검으로 당할 자가 없는 송태하라도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저는 대길이가 구사일생으로 총알을 피한 것이 순전히 대길의 타고난 순발력과 출중한 무예 탓 만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업복이의 실수도 있었던 것이죠. 마누라 속곳 벗기는 것보다 더 쉽게 호랑이를 사냥한다는 관동 제일의 포수 업복이가 실수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총잡이였는데 말입니다. 

관동제일포수 업복이가 총질에 실수한 까닭은?

만약 그가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면 벌써 호랑이 밥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럼 업복이가 실수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제 생각에 그것은 업복이가 사수로서 지켜야할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남자들 중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오셨을 겁니다. 군대 가면 제일 고통스럽게 배우는 게 바로 사격술이죠. 

피알아이(PRI) 기억나십니까?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훈련과정이라 모두들 이 피알아이(사격술예비훈련) 훈련장을 일러 피가 터지고 알이 배기는 기초사격훈련장이라고들 합니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지만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무르팍이 깨지듯 하던 고통이 느껴집니다. 각개전투도 힘들고 총검술도 힘들지만, 피알아이 만큼 힘든 훈련도 없었지요. 

미디어다음 이미지 '데일리안' 캡처사진

그런데 그때 우리가 늘 주지하던 타겟의 조준 목표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십니까? 바로 가슴이죠. 가슴은 목표물의 정중앙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혹시 조준이 조금 빗나가더라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사수의 조준선 정열은 반드시 가슴을 향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리에 따라서 조준선 정열의 지향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미세하지만 총알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100m 표적은 가슴보다 약간 낮은 지점을, 200m는 정중앙을, 250m는 머리 부분을 조준하는 것이죠. 그러나 물론 이 모든 조준선 정열의 목표는 가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업복이는 왜 대길이의 머리를 겨냥했을까요? 커다란 몸통을 제쳐두고 그 자그마한 머리를 겨냥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업복이의 가슴속에 불타는 복수심이 평정심을 잃게 했을까?

17세기로 돌아가서 업복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업복이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입니다. 업복이를 비롯한 노비들을 잡아들인 대길이가 오포교에게 넘기면서 돈을 받는 모습에 분노한 업복이가 대길을 향해 절규하듯 외쳤었죠. "니놈 대갈통을 부셔버릴 기야." 

그리고 양반들을 모조리 죽여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노비들의 당에 입당한 업복이가 화승총를 시험할 시범케이스로 대길을 지목하고 또다시 말합니다. "내 그놈 대가빠리부터 쪼사버릴 기래요." 복수심에 불타는 업복이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대길의 대갈빡에 어떻게 화승총으로 바람구멍을 낼 것인가, 이것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중요한 순간에 사격술의 FM을 잊어버리고 머리를 조준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불타는 복수심은 오직 대길의 대갈통만 눈에 보이도록 했을 테죠. 만약 업복이의 총이 화승총이 아니라 망원렌즈가 달린 초현대식 저격총이었다면 머리를 조준해도 무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 귀를 조준한들 백발백중을 못 시키겠습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업복이의 총은 임진왜란 때나 보았을 화승총입니다. 총구에 화약을 쑤셔넣고, 쇠꼽(탄환) 재고, 꼬챙이질을 한 다음  불을 붙이고 방아쇠를 당기는 뭐 그런 구닥다리 총이라 이런 말입니다. 그런 총을 가지고 몸통이 아니라 자그마한 머리를 조준해 맞춘다는 것은 아무리 마누라 속곳 벗기기보다 쉽게 호랑이를 잡는 관동제일포수라도 어려운 일이죠. (총알이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면 천하의 대길이라도 쉬 피하진 못했을 겁니다.)  

칼 든 자보다 더 무서운 붓 든 자들

그러므로 업복이의 실수는, 오로지 대길의 대갈빡에 구멍을 내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복수심, 바로 그 복수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하는 건가 봅니다. 저는 업복이를 보면서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송태하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차분하게 대응합니다.

"어찌 이리 태평하십니까? 대감." 당황하여 달려온 같은 당파를 향해 이경식은 이렇게 말하죠. "일희일비 하지 마시게. 정치를 하려면 무릇 가슴엔 불이 일어나도 언행은 깊은 물처럼 잔잔해야 하니…."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대길의 추노꾼 동료 최장군(한정수)의 말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칼 든 자보다 더 무서운 이들이 붓 든 자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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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예사롭지 않은 『추노』의 인기엔 
                껄렁대는 주인공 대길의 상말 속담도 한 몫


『추노』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3회 만에 3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이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추노』는 재미있는 드라맙니다. 화려하고 선명한 영상미도 멋진 드라맙니다. 극의 재미와 사람의 눈을 매혹시키는 아름다운 영상에 주조연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도 뛰어난 드라맙니다. 이래저래 시청률이 상승하는 건 당연지삽니다.

그러나 조정이니 정치니 하는 것들 때문에 노비도 생기고 추노꾼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추노』의 인기를 이끄는 이유에는 이것들뿐일까? 『추노』에는 아름다운 영상, 흥미로운 스토리, 주조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 더해 재미를 만들어주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주연배우 장혁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상말 속담들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대길어록'이라고나 할까요?

가장 먼저 상말 속담을 선보인 이는 사기꾼 원기윤(윤기원)입니다. 도망친 노비들의 등을 쳐 먹고 사는 역시 도망한 노비 원기윤은 1부 첫장면에서 압록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구하는 업복이에게 돈을 더 내놓지 않으면 줄 수 없다고 엄포를 놓고, 이에 죽일 듯이 달려드는 업복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집니다.

"죽은 정승이 산 개만도 못한 법이야."

"살 길이 있는데 죽을 생각부터 하면 쓰나. 흐흐,  헛심 쓰지 말고 어디 지나가는 상단 봇짐이라도 털어봐. (함께 도망 중인 노비 모녀를 쳐다보며) 팔 게 있으면 팔아 넘기고. 으이? 흐흐흐흐~" 그러나 이후부터 이런 해학적인 풍자 섞인 상말 속담들은 주로 주연배우 장혁의 입을 통해서 거의 전해집니다.

도망친 훈련원 관노들을 추격하던 이대길이 갈대밭에서 마주친 송태하와 일검을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송태하가 자신의 칼을 가볍게 받아내자 이대길은 믿을 수 없는 놀라움에 신기한 듯 태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송태하와 첫 일검을 나눈 이대길이 칼을 어깨에 걸고 묘한 웃음을 날리고 있다.


"멸치도 창자가 있다더니…"

조선 최고의 무장, 전 훈련원 판관이며 검으로는 조선팔도에서 상대를 찾을 수 없다던 송태하를 일러 멸치라니요. 하긴 아직 이때까지 송태하의 정체를 모르는 이대길이 멸치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감히 노비 주제에 내 칼을 받아 내다니…", 뭐 이러면서 작다고 무시해서도 안 되겠다는 뜻이었겠지요.   

갈대밭에서 일전을 치르고 부상을 입은 대길은 동료 최장군에게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님을 강변하며 자존심을 세우려 하지만 "그럼 왜 그렇게 고전했느냐"는 장군의 말을 들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튼 언니고 나발이고 아주 물고를 틀어버려야지." 송태하와 자기가 싸우는 갈대밭에 무차별 화살 세례를 퍼부은 추노꾼 천지호 패거리를 향한 분노의 표출입니다. 

"오는 방망이에 가는 홍두깨야." 

또 대길은 나이도 한참 어린 것이 말끝마다 반말을 집어던지는 되바라진 애기사당 설화(김하은)에게 이렇게 일갈하며 껄렁거리는 그의 매력을 한껏 발산합니다. "야 이년아, 니년은 혓바닥이 반토막이야? 왜 말끝마다 반말이야 이 년아." 그러면서 대길패에 기어이 남겠다는 설화의 고집을 나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집 센 소가 매 맞는 법이야." 

대길의 상말 속담은 1회부터 간간한 양념처럼 껄렁거리는 추노꾼 대길의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지며 대길을 더욱 껄렁대는 개차반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의 원작 『토지』에서도 이런 상말 속담이 많이 등장해 재미를 더해주었었지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거랍니다. 

"아나 곶감아." 

'아나 곶감아'란 말의 뜻은 아마 "바랄 걸 바라라" 하는 뜻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말이었는데, 문경이 고향이지만 진주에서 주로 자란 어머니가 쓰시던 서부경남 지역 말입니다. 『토지』의 주무대가 진주 권역이라고 할 하동 악양이니 이용의 아내 임이네가 심술을 부리며 자주 썼을 법도 합니다.

아무튼 『추노』에서도 『토지』토지 못잖게 많은 상말 속담이 등장해 극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다음 대길이 던져주는 상말 속담을 몇 개만 더 감상해보시겠습니다.


(되지도 않는 머리 굴리지 마라며) "호미 빌려간 년이 알고 보면 감자 캐간 년이라더니…"
"작두 타냐? 내 맘도 모르는데 내가 니 맘을 어떻게 알아."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유."
"검정개든 누렁개든 맛있는 개가 최고 아닌가."

아, "검정개든 누렁개든 맛있는 개가 최고 아닌가?" 이거는 오포교 나리께서 하신 말씀이시구먼요. 어쨌든…, 그러나 저는 무엇보다 2부에서 이대길과 최장군이 주막 마루에 앉아 나누던 대화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들 둘의 대화를 들으며 콧잔등이 시큰해지기까지 했다고 말씀드리면 제 감동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시겠지요?

"우리 주제에 안돈은 씨, 길바닥에서 객사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아 최장군, 자네가 나보다 대여섯 더 많지?"
"한 예닐곱은 더 되지."
"뭐 아무튼, 그때까지 살면 어떤가? 세상 재미진가?"
"누가 재미있어서 사나. 다들 내일이면 재미있을 줄 알고 사는 거지."
"허허, 맞어 맞어. (고개를 끄덕이던 대길이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세상살이 별 거 없는 거야. 하하하하하~ 허허허허허~"
(그리고 대길은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며 나직하게 체념하듯 속삭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게야."

앞으로도 대길은 풍자와 해학이 가득 찬 상말 속담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 상말 속담들은 칼잡이 대길의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할 겁니다. 어제 보니 마침내 업복이가 노비당에 입당했군요. 앞으로 양반을 모조리 죽이고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그들의 야망은 어떻게 될까요?

그러나 늘 그렇듯 이런 민초들의 혁명은 몇몇 사기꾼들에 의해 좌초되기 일쑵니다. 같은 노비로서 노비들의 등을 쳐 먹고 사는 원기윤이 어떻게 흘러 돌다 양반들을 죽이는 당에 입당하게 되고, 재능을 인정받아 당의 재산을 불리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비당원이 됐다 한들 그 본색이 어디 가겠습니까? 결국 당을 위험에 빠뜨리는 배신자의 길을 걷겠지요. 

3부의 마지막 장면은 노비당의 당원이 된 업복이(공형진)가 화승총으로 대길을 저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말에서 떨어진 대길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물론 대길이 주인공이니 겨우 3부에서 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든 업복이의 총질은 중상을 입은 오지호와 이다해가 더 멀리 도망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준 셈입니다. 

오늘 밤이 기대되는군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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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