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01.21 마프, 공주만들기 국민투표 과연 가능할까? by 파비 정부권
  2. 2011.01.21 마프 보던 딸 "송승헌 쟤 바보 아냐? 미쳤나봐" by 파비 정부권 (8)
  3. 2011.01.14 마프, 공주님 궁전 유지비 얼마나 들까? by 파비 정부권 (7)
  4. 2011.01.06 마이프린세스, 푼수공주님 된 김태희에 거는 기대 by 파비 정부권 (5)
  5. 2009.08.22 역설의 퍼즐,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by 파비 정부권 (5)

마이 프린세스, 참 재미있는 드라마입니다. 일단 우리집에서는 인기가 최곱니다. 촌티 나는 여대생이 어느 날 갑자기 공주가 된다는 기상천외한 스토립니다. 말하자면 로또에 당첨된 것이죠. 공주에 당첨된 여대생은 김태희였습니다. 푼수에다 가슴에 바람이 잔뜩 든 시골처녀가 횡재를 만난 겁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가 황세손이었다나요?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크게 의심할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용의주도한 박동재 회장이 실수할 리가 없으니까요. 본인도 처음엔 황당한 스토리를 믿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진짜 아버지가 황세손이 맞을까요? 저는 일단 그게 제일 궁금하거든요. 박동재 회장의 용의주도한 직감과 몇 가지 확인절차 말고는 우리에게 보여준 확실한 증거가 없잖아요, 아직)에 대한 온갖 악성 루머들이 언론을 장식하자 그녀는 결심합니다. 진짜 공주가 되기로.
 


그래서 그녀는 일단 예비공주가 되었습니다. 박동재 회장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그게 또 진짜 사비인지는 저도 확신이 없습니다. 원래 재벌들이란 1%의 지분을 갖고도 그룹 재산을 완전 자기 재산처럼 요리하는 사람들이란 걸 우리는 잘 압니다. 특히 삼성이 그렇죠) 궁궐에서 살게 됐습니다. 

진짜 공주가 되기 위해선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바로 국민투표. 이미 조선왕조는 멸망한지가 오랩니다 100년도 더 넘었지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공화국입니다. 공화국에는 왕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따라서 공주도 당근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 뭘 국민투표에 붙인다는 걸까요? 이 드라마에선 황실재단을 만드는데 필요한 동의를 국민투표를 통해 얻는 것처럼 말합니다. 황실재단이 만들어지면 그 재단에 박동재 회장은 자신이 평생을 걸려 모은 모든 재산, 대한민국 최대, 최강의 대한종합그룹의 모든 재산을 넘기겠답니다.

자, 그런데 말입니다. 국민투표에 붙이는 게 단순히 황실재단을 만든다, 그런 내용이기만 할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그럼 먼저 국민투표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거군요. 국민투표는 헌법을 바꿀 때 합니다. 그러니까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하도록 되어있다 이런 말이죠.

헌법개정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국체에 관해 변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사안이죠. 그  외에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국가정책에 관하여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국민투표란 것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 아, 이 으리으리한 궁전이 완전 내 거란 말이지?


그럼 황실재단, 이것도 하나의 재단에 불과한데 이걸 과연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을까요? 제가 볼 땐 없습니다. 아니, 박동재 회장이 과거에 조선황실에 어떤 죄를 지었고 어떤 미안한 마음을 아직까지 간직하다거나 그런 것이 국민투표에 붙일 만큼 중요한 사안일까요?

대통령이 인정하는 국가의 중요 정책에 관해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는 헌법규정이 있긴 합니다만, 황실재단을 만들어 김태희를 공주로 만들고 박동재 회장이 황실에 대해 가졌던 죄책감과 미안함, 충성심 따위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 정책과 하등 관련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그러니까 현재로선 김태희를 공주로 만들기 위해 국민투표를 한다, 이건 뭐 완전 100% 난센습니다. 대통령이 박동재에게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지만, 이는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대한 약속은 일반적인 의미의 약속이 아닙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과 지킬 수 있을 것,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합니다. 


그러니 박동재 회장의 하나뿐인 손자요 상속자인 박해영도, 대한그룹 비서실장의 딸로서 대한그룹을 온전히 가지기 위해 박해영을 갖겠다는 야심을 가진 오윤주도 공주를 쫓아내기 위해 안달이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놔두면 공주는 한여름 밤의 꿈을 실컷 즐기다가 제자리로 돌아갈 테니까요. 


자,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김태희가 참 불쌍하네요. 높이 날아오른 만큼 떨어질 땐 충격이 몇 배로 큰 법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죠. 원하지도 않았던 날개를 수도 없이 달아준 박동재 회장 덕에 김태희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겠지요. 물론 그녀도 "아, 한여름 밤 꿈이었어!" 이러면 그뿐이긴 합니다만.

그럼 김태희는, 순종 황제의 적손이요 증손녀인 이설은 정녕 공주가 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시 답은 국민투표입니다. 헌법에 규정된 국민투표의 원칙적 목적, 바로 헌법개정입니다. 헌법을 개정하면 김태희는 공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헌법 규정을 개정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제 견해는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바로 이 조항을 개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요. "대한민국은 왕국이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대세인 시대니까 이렇게 할 수도 있겠군요. "대한민국은 입헌군주국이다."

▲ 아, 그게, 공주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였어? 이제 나 어떡해!


자, 이쯤 되면 쉬운 문제가 아니지요? 이걸 과연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을까요? 단순히 황실재단 만드는 거, 그거는요. 그냥 박동재 회장이 개인적으로 황실기념재단 이런 거 만들어서 운영하면 되는 겁니다. 기껏 그거 하나 운영하자고 대한그룹 재산 전부 거덜 낼 이유도 없고 손자 가슴 아프게 할 이유도 없습니다.

김태희를 진짜 공주로 만들고 싶다면 국민투표에 붙여야 하고, 그 국민투표는 바로 대한민국의 국체를 바꾸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기상천외한 국민투표가 가결된다면 김태희는 단순히 공주가 아니라 여왕의 지위에 올라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하겠지요.

세상에 국왕이 없는 공주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대통령도 없어지겠지요. 한 나라에 태양이 두 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정치체제는 총리가 수반이 되는 내각이 책임지는 형태가 되겠지요. 그러니 현직 대통령이신 이영찬 씨. 당신 지금 큰 실수 하시는 겁니다. 

아, 본인은 5년 단임제 끝나면 아무 상관없다고요? 그때까지 대통령 자리 유지할 방책은 강구하고 있다고요? 하하, 그랬군요. 그놈에 5년 단임제가 문제였군요. 아무튼, 국민여러분은 어떻게 생각들 하실까요? 국체를 민주공화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

하기야 그런 나라가 한 둘이 아니지요. 가장 대표적인 영국도 그렇고,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 등이 모두 입헌군주국입니다. 국가의 원수가 국왕인 정치체제지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을 뒤집어 보면 '통치하지는 않지만, 우리 위에 군림하는' 황실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 황당하고 기상천외한 국민투표가 과연 가능할까요? 물론 현실은 아니지만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그런데 말이에요. 마이 프린세스, 우리 가족 모두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거든요. 원래는 저 혼자 이 프로 좋아했는데, 전염이 됐는지 이제는 와이프에다 딸내미까지 서로 좋은 자리 차지하고 보려고 경쟁이 치열하군요. 이럴 수가… ㅠㅠ

방금 쓴 위 글을 몰래 제 등 뒤에서 읽어본 우리 딸, "아니야, 거짓말 하지 마. 엄마도 나도 벌써부터 보고 있었다고. 아빠 혼자만 재미있게 본 게 아니란 말이야. 우리도 토요일에 재방으로 다 봤거든!" "…… 아, 그랬어? 그렇지만 거짓말은 아니지. 나는 그런 사실 모르고 있었으니깐."


암튼^^ 우리집에선 마프가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실감들 나시지요? 요즘 같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마프처럼 아무 생각 없이 공주꿈이나 왕자꿈 꾸면서 잠시 환상에 빠지는 것도 그럴싸한 일 아니겠어요? 아, 우리 딸아이는 좀 거시기 하긴 하군요. 이제 열 살인데 벌써 연속극에다 그것도 환상열차에 태우기엔 좀, 그렇긴 하네요.  

그래도 아직 열 살이니 보고 싶은 드라마도 보고 그러는 것도 괜찮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물론 우리 아이 엄마는 반대죠. 테레비를 아주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나요. 우리 주변에 그런 집 많거든요. 유해물질로 분류해 처단(!)해버린 아주 진보적인(?) 친구들이 많은 편이죠.

오늘의 주제는 테레비가 유해할까 유익할까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니까 이 정도로 하기로 하고요. 아, 하나만 더 하죠. 우리 딸내미는 역전의 여왕도 좋아하는데 이 드라마가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드라마 같지만 실은 매우 슬픈 드라마에요.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여주는 드라마죠.

그래서 저는 미리 그런 거 봐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뭐 대충 그리 자기 합리화를 하는 편이죠. 자, 진짜 여기까지만 하고요. 마프가 매우 재미있고, 특히 김태희와 송승헌의 활약과 매력이 돋보이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어제는 우리 딸내미와 애 엄마한테 딱 걸렸네요.

"아니, 저게 뭐하는 짓이야.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야지."
"그래, 내 말도 그 말이다. 왜 병원으로 안 데려가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거야. 그러다 큰 사고 나면 어떻게 하려고."
"아, 미쳤나봐. 쟤 혹시 바보 아냐?"
"그러게. 이건 아니지. 작가가 바보 아닐까?"

뭐, 상황은 대충 이렇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 대한그룹 박동재 회장님의 안배에 따라 꿈도 못 꾸어본 공주님이 되신 우리의 김태희.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남정우(류수영) 교수님과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공주님이 웬 남자와 함께 차를 타게 되었냐고요?

그거야 다 박해영 때문이지요. 박동재의 하나뿐인 손자 박해영(송승헌), 그에게 공주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제 것을 탐하는 악당일 뿐이지요. 사라져야 할 존재, 혹은 없애버려야 할 존재 그게 바로 공주에요. 보아하니 그도 그렇게 악한 성격은 아니군요. 그냥 가급적 공주가 조용히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지요.

하지만 그게 뜻대로 안 되니 이리저리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어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이설 즉 공주님에게 전화를 했군요. 무슨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한 것인지는 저도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공주와 자기가 무슨 스캔들, 아니 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했었나요? … ?

이 무슨 황당한 소리. 화들짝 놀란 우리 공주님, 마침 궁에 방문한 교수님에게 부탁해 궁 밖으로 몰래 빠져나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던 것이에요. 여기까진 재미있었어요. 아, 물론 그 다음도 재미는 있었죠. 그런데 말이에요. 사고가 난 공주님 병원에 입원하셨잖아요?

▲ 쓰러진 공주를 보살피는 박해영


공주님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은 엄마가 제발 입원시켜 달라고 사정하지만 병실이 없다는 거예요. 사실 이것도 난센스지요. 아무리 그렇지만 당장 열이 나서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안 받아준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제가 알기로 그런 병원은 있지도 않아요.

우선 당장은 의사가 급히 와서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고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진맥을 하는 등 응급처치를 하겠지요. 그런데 딴 데로 가서 알아보라는 거예요. 아, 이건 뭐, 아무리 오늘날 병원들이 인술은 제쳐두고 돈벌이에만 급급 한다고 하지만 아니다 싶었지요.

하기야 이렇게 만든 데는 다 작가님의 깊으신 의도가 있었던 것이에요. 열혈 드라마 팬으로서 그런 정도도 모를 멍청이가 사실 어디 있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아이큐 100은 무난히 넘어가거든요. 어떻게든 공주를 쫓아내려는 박해영에게 이설이 얼마나 착한 공주인지, 공주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여기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도가 있는 것이에요. 박해영의 가슴에 공주에 대한 연정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을 만들도록 미리 거름을 뿌려두는 것이죠. 박해영의 흔들리는 눈빛은 이미 공주에 대한 마음이 연정으로 바뀌고 있음을 암시해주었지요. 틀림없이 그리 되겠지요. 안 그러면 극성팬들에게 혼날지도 모르겠죠?

다시 암튼^^ 우리의 공주님, 열이 펄펄 끓는 아이와 엄마를 위해 병실을 양보했어요. "아, 빈 병실 있어요. 내가 나갈게요. 나 하나도 안 아파요." 박해영, 이렇게 투덜거리는군요. "야, 너 미쳤어? 니가 왜 병실을 비켜 줘. 그러고, 너 꾀병이지? 어쩐지…."

하지만 병원을 나와 차를 타려던 공주, 비틀거리는군요. 박해영, "야, 까불지 말고 빨리 타. 니가 그러면 내가 속을 줄 아냐?" 대충 이런 정도로 공주가 꾀병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 박해영, 하지만 공주는 그 자리에 쓰러지자 당황하며 급히 공주를 차에 태워 출발하게 되죠.

자, 여기서 우리 딸, 첫 번째 불만을 터뜨리게 되는군요. "아니, 빨리 병원으로 다시 들어가야지. 뭐 하는 거야. 왜 차에다 태우는 거야. 바로 눈앞에 병원 문이 있잖아. 그리로 공주를 모시고 들어가야지." 아이 엄마도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 쟤 바보 아냐?"

▲ 갑자기 친절해진 박해영,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러는 거야?" 하는 표정의 김태희 공주


그런데 바보 같은 박해영, 우리 딸에게 욕먹을 짓 또 하네요. 병원에 병실이 없어 공주를 차에 태웠다고 쳐요. 그러면 빨리 인근의 다른 병원으로 가야죠. 박해영은 공주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어요. 낑낑거리면서 공주를 데려다 자기 침대에 눕힌 박해영, 힘들게 옷도 갈아입히고, 머리에 물수건도 대주고 고생이 많군요.

그러나 이게 과연 상식적인 행동일까요? 우리 딸 열 받았어요. "아니, 쟤 미쳤나봐. 빨리 병원부터 데려가야지." 아이 엄마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네요. "그래, 집에 있다가 갑자기 무슨 일 생기면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러고 저렇게 힘들게. 병원 응급실에 가면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는데."

공주는 감기몸살에 걸린 것이거나 잠깐 빈혈로 인한 현기증이 나서 쓰러졌거나 그런 것이 아니죠. 교통사고가 났던 것이에요. 나중에 보니 팔과 어깨 등에 심한 타박상까지 입었더군요. 팔을 들지 못해 밥을 먹지 못하니 박해영더러 먹여달라고 했던 것은 꾀병이 아니었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빨리 병원으로 모시고 갔어야 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하긴 뭐 작가님도 아무 생각없이 박해영이 공주님을 병원이 아닌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도록 만든 것은 아닐 거예요. 늘 제가 잘 인용하는 군대시절 하늘같은 말씀이지만, "고참이 반합에 똥을 눌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에요.

여기까진 어제(수요일) 이야기였고요. 오늘은 김태희가 본격적으로 공주님이 되기로 결심하신 모양이군요. 그 순간 강적이 나타났어요. 박해영보다 더 큰 강적이에요. 오윤주(박예진). 대한그룹을 송두리째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가득한 여자지요. 그 방법은? 물론 박해영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되죠.

이미 박해영은 오윤주를 사랑하고 있어요. 현명한 시청자들이 보기엔 그저 그가 그렇다고 착각하고 있을 따름이지만. 황실재단 이사장이 돼 나타난 오윤주가 공주에게 슬쩍 폭탄발언을 했군요. "넌 곧 이 궁에서 쫓겨나게 될 거야!" 이어서 황실 공주 김태희와 황실재단 이사장 박예진의 얼굴이 클로즈업 대비되면서 끝.

그러자 우리 딸, "아악, 안 돼. 벌써 끝나다니. 이걸 어떡해. 어떻게 하냐고." 아들놈은 연속극 같은 거 잘 보지 않는데 이 딸내미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 열 살이니 괜찮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세 사람이 함께 테레비 앞에 앉아 "쟤 혹시 바보 아냐?" 하고 있을 수는 없을 텐데… 좀 걱정되긴 하네요.

제가 무슨 공주님도 아닌데, 설마 언제까지나 테레비만 보고 있진 않겠죠?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이 프린세스. 참 재미있네요. 송승헌도 마프에서 본래의 매력을 되찾은 것 같고, 김태희도 일정하게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면서 활약을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좋은 일입니다. 시청자도 좋고, 방송사도 좋고, 제작자도 좋고, 배우도 좋고, 뭐 그렇게요. 연출자가 파스타의 그 피디라고 했던가요? 어쩐지…. 아무튼 유쾌한 드라마에요.

그런데 말이죠. 소재가 참으로 황당하죠? 물론 이 소재 덕분에 우리는 한가롭게 소파에 앉아서 혹은 편안하게 이불 속에 누워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기는 하는 거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공주가 되는 꿈은 여자들만 꾸는 건 아니지요.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왕자가 되거나 재벌 아들이 되는 꿈을 꾸긴 마찬가지랍니다.

그러나 황당한 소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모범을 마프는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이 드라마의 연출자가 정말 파스타를 만든 피디였다면 그런 기대를 충분히 해봄직 합니다. 파스타는 정말 매혹적인 드라마였지요. 덕분에 안 먹던 스파게티를 즐기게 됐으니.


진짜 재산 환원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박동재 회장(이순재)은 황실 재산을 빼돌려 거부가 된 인물입니다. 사실 이런 설정 자체도 황당한 이야기죠. 순종이 자금을 만들어 비밀리에 만주의 독립군에 군자금을 댄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실제 현실의 이야기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런 비슷한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으니.

그러나 어떻든 박 회장의 충정은 실로 감동스럽습니다. 평생을 기울여 모은 재산을 황실에 대한 죄책감 하나로 모두 내놓겠다고 하니 이게 어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사실 이 대목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작 재산을 내놓아야 할 사람들은 삼성이나 현대가 아닐까 하고 말이죠.

박동재가 황실 자금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면 한국의 재벌들은 국민의 피땀이 베인 돈으로  축재를 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나라를 담보로 차관 들여오면 이걸 산업은행에서 어떻게 거의 공짜로 얻어다가 공장 짓고 나머지는 부동산에 투자하고 뭐 이런 이야기는 복잡하니까 생략하기로 하죠.
 
어쨌거나 박동재는 참 양심적인 인물이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박해영은 박동재의 손자죠. 박동재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모양인데, 황실이 재건되면 모든 재산을 헌납하겠다는 할아버지에게 반기를 듭니다. 그렇죠. 이 얼마나 현실적입니까. 그래서 황실재건이란 황당한 설정이 무게중심을 갖게 되는 거죠.

만약 박해영마저 박동재와 마찬가지로 "네, 대한그룹의 모든 재산은 조선황실의 것이죠. 그러니 공주님께 몽땅 바치는 게 옳습니다요" 이랬다면 정말로 황당 브루스가 되었겠지요. 그러나 역시 박해영은 그리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공주인지 뭔지를 아프리카로 날려 보낼 궁리를 하는 거죠. 굿~

그런 박해영을 보면서 공감이 팍팍 가더군요.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김태희 공주님의 마력만 아니라면 당장 제 뜻에 공감하고 말 거에요. "그래 그게 말이 돼? 아니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귄지는 몰라도 공주라니, 그리고 공주면 공주지 왜 남의 재산을 탐내는 거냐고."


공주의 궁전 관리하려면 돈은 얼마나 들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하다는 거죠. 어제부로 김태희는 본격적인 공주 생활에 돌입한 것 같더군요. 공주님만을 위해 지어진 거대한 궁전, 그 궁전에는 상궁, 나인들과 내시(만약 이게 궁전이 틀림없고 김태희가 공주라면 내시여야겠죠? ㅎㅎ)들이 줄지어 서서 공주님이 된 김태희를 향해 절을 하네요.

아, 그러고 보니 우리의 공주님 성함이 이설이라고 했나요? 성은 이요 이름은 설. 그럴듯하네요. 보통 조선의 왕자들은 이름이 외자라는 소리는 들어봤어요. '휘'라고 그러나요? 왕의 이름에 들어간 글자는 귀족이든 평민이든 절대 쓸 수 없기 때문에 다 백성을 어여삐 여긴 특단의 조치라나 뭐라나?

그런데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더군요. 저 거대한 궁전과 수많은 상궁나인들, 내시들 기타 등등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갈 것 같은데 그 돈은 다 어디서 나는 걸까? 박동재의 개인 돈으로요? 글쎄요. 박동재가 개인 돈이 얼마나 많기에 저 엄청난 규모를 감당할 수 있다는 건지.

물론 회장님이니까 월급은 많이 받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걸로 턱도 없을 거 같은데요. 회사 돈이 다 자기 돈 아니냐고요? 에이, 그건 아니죠.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팔아 현금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을 것이고요. 보유지분에 나온 배당이요? 그것도 글쎄요, 네요.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이 있다고요? 아,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겠네요. 이런 방법도 있겠죠. 회장 특별상여금을 한 천억 주는 거죠. 실제로 우리 동네 한 조선회사는 연말에 회장님께 특별상여금을 백억씩 주고 하더군요. 신문에도 나고 그랬죠. 참고로 그 회사 하청에 제 친구가 다니는데요, 4년째 임금동결…. 
 
하긴 뭐 재벌이 돼보지 않은 제가 어떻게 회장님의 돈 씀씀이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알 수 없는 거죠. 어쨌거나 김태희는 봉 잡았네요. 아니 참, 이설 공주님이시죠. 암튼^^ 우리 식으로 말하면 완전 땡 잡았다 그런 거죠. 드라마일 뿐이고 남 얘긴데도 제가 괜히 행복해지고 막 그러네요. 하하, 참~


김태희, 완전 땡 잡았다!

그나저나 황실 재건. 그거 가능한 꿈이긴 한가요? 국민투표에 붙이면 통과될 것 같기는 한가요? 제가 볼 땐 찬성표 1%도 안 나올 거 같은데. 하긴 전에 대통령 선거 할 때 보니까 조선황실을 복원해서 입헌군주제를 하겠다고 공약 낸 (우리 기준으로 보면) 얼빠진 후보도 있더군요.

어떻습니까. 지금 당장 황실을 재건해서 입헌군주제를 하자고 국민투표에 붙인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투표하실 생각인가요? 찬성, 아니면 반대? 이도저도 아니면 기권? 어쨌거나 우리가 궁금한 건 그렇죠. 현실보다는 드라마 속에서의  황실재건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거죠.

벌써 황실 재건을 놓고 정치인들의 이전투구가 시작됐군요. 이영찬 대통령과 소순우 의원의 대결. 그런데 황실 재건이란 것이 공주만 만들어서는 되는 게 아니잖아요? 왕도 있어야 되고 왕비도 있어야 되고 그런 거 아닌가요? 참 복잡한 일인데, 힘든 일을 시작하셨네요. 우리의 양심적인 박동재 회장님께서.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이 프린세스. 재미있는 드라마란 느낌이 온다. 파리의 연인들처럼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드라마란 생각도 든다. 사실 나는 그런 드라마가 좋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에 몰입해서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지내는 잠깐의 시간이 좋다.

마이 프린세스. 제목에서부터 충분히 필이 오는 것처럼 신데렐라 이야기다. 고아원 출신이지만 양부모의 지극한 사랑  속에 밝고 명랑하게 자란 여대생이 어느 날 황실의 공주가 된다는 황당한 만화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황당하면 어떠랴. 누구나 한 번쯤은 신데렐라건 공주건 꿈을 꾸어보았을 것이다.

물론 꿈은 여자들만 꾸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여자들만이 공주가 되거나 신데렐라가 되는 꿈을 꾼다고 여기지만 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아마 "그대도 그러셨어요?" 하고 물어본다면 "천만에요" 하고 손을 젓겠지만, 실은 그들도 왕자가 되는 꿈을 꾼다. 아니면 재벌(혹은 그 아들)이 되는 꿈을 꾸든가.


김태희가 신데렐라가 될 모양이다. 황실 공주 만들기 프로젝트에 뽑힌 그녀. 엉뚱하게도 자기가 황실의 공주란다. 푼수 같은 그녀가 공주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 첫출발은 괜찮다. 늘 연기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이번엔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좀 오버하는 듯이 보이는 푼수 연기도 그런대로 좋아보인다. 사실 김태희에게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오히려 놀라울 따름이다. 하긴 뭐 김태희라고 장동건처럼 되지 말란 법 없다. 장동건도 첨엔 얼굴만 잘 생긴 발연기로 놀림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장동건을 본다면 누가 그런 시절을 상상이나 하겠나.

김태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잘 생긴 외모가 부담일 수 있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잘난 외모도 시효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난 얼굴도 시간의 공격 앞에선 오합지졸이다. 그러니 하루빨리 얼굴 연기자에서 진짜 연기자로 거듭나야 하는 건 지상과제.

아이리스에서 그럴 기회를 잡았지만, 놓쳤다. 그때도 첨엔 좋았는데 뒤로 갈수록 본색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번엔 어떨까? 초반 푼수 연기가 어느 정도 호평을 받는 분위기지만, 아이리스처럼 되지 말란 법 없다. 그러니 이번엔 잘해야 한다. 아니, 이야기가 뭐 이따위로 나가는 거지? 내가 무슨 김태희 매니저도 아니고. 

아무튼, 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볼 만한 드라마가 생긴 것은 좋은 일이다. 역전의 여왕도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란 점에선 나름 괜찮은 드라마지만, 그래도 슬픈 드라마다. 마이 프린세스는 진짜로 아무 생각 없이 볼 만한 근래 보기 드문 드라마인 것 같다. 특히 푼수로 변장한 김태희의 그 하얀 이(빨)에 빠져서.  


마이 프린세스가 끝난 후 창원 MBC 토론회가 있었는데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과 민노당 강기갑 의원이 대담자로 나왔다.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요즘 저출산이 큰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이 늘 하던 대로 상투적인 대답을 했다는 건 뻔한 상식.

강기갑 의원이 마치 열이 받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는데, 마침 잘 물어봤다는 투였다. "아니 먹고 살만 해야 애를 낳을 거 아닙니까? 좀 이기적으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애를 낳느냐, 젊은이들 입에선 그런 소리들이 나옵니다."

참고로 강 의원은 애가 네 명인데 막내가 여덟 살이란다. 큰 애가 고등학교 들어가는데(대학이었나? 암튼^^) 돈이 없어서 천칠백만 원 대출 했단다. 이런 나라에서 보편적 복지, 무상급식 얘기하면 펄쩍 뛰는 사람들이 계신다. 물론 오늘 TV토론에 나온 김정권 의원도 마찬가지.

사는 게 갈수록 팍팍하다. 오늘 아들녀석 보고 열 내다가(물론 다른 부모들과 거의 비슷하게 뒤지게 공부 안 하는 아들놈 때문이다) 문득 파레토 법칙 생각이 났다. 20 대 80에 관한 이야긴데, 파레토란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꼭 20%만 일하고 나머지는 빈둥대더란다. 

이번엔 부지런한 20%만 따로 모아놓으니 또 20%만 일하고 나머지는 빈둥빈둥. 빈둥대는 80%로 실험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 법칙에 이름을 제공한 빌프레도 파레토는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여기서는 20%의 인구만 일하고 나머지 80%는 빈둥거리게 된다는 점에만 주목하기로 하자.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구의 20%만 일해도 사회가 유지되고 다들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80%는 누구도 되기를 바라지 않는 비정규직, 청년실업, 영세상인 등을 대표하는 말일 뿐인 것이다. 

이현우 교수(로쟈의 저공비행)가 지적한 바와 같이 "20명의 엘리트가 평범한 80명을 먹여 살린다"고 주장하는 파레토 우파나 이건희 회장처럼 아예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까지 말하는 파레토 극우파에 비하면 나는 분명 파레토 좌파다. 그런데 파레토 우파들의 주장대로 그럼 우리 같은 80%는 놀아도 먹여주나? 천만에 말씀!

문제는 내 주변에도 놀고먹는(부모 덕에 당장 먹는 문제는 해결되지만, 미래는 암담하다) 대졸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우리 '집안'에도 있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이미 그들은 청년실업에서 빼버리는 게 사회적 통념처럼 됐으니 논외로 하고도 그렇다.  

그래서 열을 냈다. 이미 2 대 8의 사회가 구조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20%의 노동력만 필요할 뿐 나머지 80%는 탈락자다. 그게 자본주의다. 80%는 대기자(실업)이거나 비정규직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도 안 되면 그저 쓰레기가 되는 일 뿐이다. 그야말로 '잉여'. 이현우 교수의 말처럼 80%의 실존적 위기감을 드러내는 적나라한 표현이다. 

그래서 열을 낸 거다. 20%에 못 들까봐.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명한 말도 있지만, 내 경우엔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경험을 더 많이 한다. 자식 문제에선 특히 그렇다. 여하튼 열 내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이 팍팍한 사회에서 그래도 가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빠질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횡설수설한 것 같지만,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드라마는 나에게 많은 위안을 준다. 혹자는 아편 어쩌고 하면서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드라마만한 위로와 격려를 내게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우리도 가끔은 혼자만의 꿈을 꾸며 환상에 젖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이 프린세스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초반이긴 하지만 푼수 공주님 역의 김태희에게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알라딘에서 받은 책 제목이다. 무슨 이런 섬뜩한 책 제목도 다 있단 말인가. 사람을 먹으면 안 된다니. 그럼 사람을 먹는 사람들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물론 이건 나의 기우였다. 섬뜩한 제목과 달리 책은 처음부터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33개의 퍼즐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번째 퍼즐은 "생각이 많으면 공주를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어느 왕국이 있다. 이 왕국에는 왕과 왕비가 있다. 왕과 왕비에겐 아리따운 공주가 있다. 그리고 똑똑이 왕자와 안똑똑이 왕자가 있다. 똑똑이 왕자는 별로 잘 생기지도 않았고 남자답지도 못하지만, 대단히 영리하다. 안똑똑이 왕자는 그 반대다. 문제가 있다. 문제는, 왕이 아리따운 공주가 똑똑이 왕자와 결혼하길 원한다.
그러나 왕비는 안똑똑이 왕자를 지지한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공주의 마음은? 그녀는 현명하게도 그녀의 사랑이 누구에게나 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의 속마음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왕비가 제안한다. "구혼자들에게 과제를 내야겠어요." 왕이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요. 수학 퍼즐로 합시다. 가령 직각삼각형의…." 왕비가 반대한다. "어림없어요." 수학 문제를 내면 안똑똑이 왕자가 불리할 게 자명하다. "두 사람은 용을 죽여야 해요. 용을 쓰러뜨리고 먼저 돌아오는 구혼자가 우리 딸과 결혼할 수 있어요."
물론 왕은 이 제안이 못마땅하다. 그가 좋아하는 후보가 십중팔구 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때 공주가 끼어들어 옵션을 제시한다. "둘 중 한 명은 단지 용을 죽이겠다는 마음만 가져도 되고, 다른 한 명은 실제로 용을 죽여야 한다면 어떨까요? 
똑똑이 왕자가 재빨리 '마음만' 옵션을 선택한다. 용을 죽이는 힘든 노동을 선택하는 것보다 '마음만' 먹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영리한 그는 순간적으로 눈치 챈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자신의 더딘 이해력을 탓하며 용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왕비는 펄쩍 뛰었다.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짓이야!'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10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마젤란


현명한 독자라면 벌써 공주의 의도를 눈치 챘을 것이다. 공주는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잘 생기고 남자다운 안똑똑이 왕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별 고민 없이 칼을 차고 달려나가 용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저자는 이 왕국에는 쉽게 죽일 수 있는 용들이 무수히 많다고 가정한다. 당연히 안똑똑이 왕자는 가장 쉽게 죽일 수 있는 아주 작은 용을 선택했다. 그럼 우리의 똑똑이 왕자는?


그는 밤새도록 고민했다. '내가 용을 죽이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용을 안 죽여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용을 죽이기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용을 안 죽이겠다는 것과 같다. …… 좋아, 어쨌든 용을 죽이는 게 낫겠어. …… 아, 아니야. 그건 미친 짓이야. 그런 중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 내일 동이 트면 용을 죽이겠다고 진지하게 마음을 먹는 거야. 하지만 잠깐….'

저자는 '만약 '마음먹기'만의 조건이 안똑똑이 왕자에게도 주어졌다면?' 하고 자문한다. 그의 답은 그래도 안똑똑이 왕자가 이겼을 것이라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별로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잡한 추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오디세우스의 신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어놓고, 귀를 모두 밀랍으로 막으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이렌의 노래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남았다. 

똑똑이 왕자도 오디세우스처럼 '만일 죽일 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 굳이 죽일 필요가 없을 거라고 일러주는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자신의 의도를 실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류의 퍼즐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언제나 일어난다. 우리는 늘 역설의 역설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자, 첫 번째 퍼즐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그럼 다음 두 번째 퍼즐을 들어보라. 

두 명의 탐험가가 있다. 한 명은 비관주의자 페넬로페이고 다른 한 명은 낙관주의자 오필리아이다. 산악지대를 탐험하고 있던 두 사람은 크고 굶주린 곰을 만났다. 곰은 맛있는 아침식사를 상상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달아나는 게 좋겠어."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재촉한다.
"아무 소용없어." 비관주의자 페넬로페가 곰을 보면서 절망스럽게 내뱉는다. "곰보다 빨리 뛸 순 없잖아." 
그러자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능글맞게 웃는다. "안 그래도 돼. 우린 곰보다 빨리 뛸 필요 없어. '내'가 '너'보다 빨리 뛰면 되거든.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냅다 뛰기 시작한다.  
  
   

저자는 질문한다.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행동은 무엇일까? 그 곰의 아침식사 거리로 한 명만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둘 중 한 명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성은 그런 자기 희생을 요구할까?" "당신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그 결과로 무고한 사람이 죽게 되는 경우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안개 속을 헤맬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건 독자 여러분이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안개 속을 직접 걸어보지도 않고 '오리무중'을 이야기하는 건 물론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왠지 허전하다. 그러나,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고 항의할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한 가지 퍼즐을 더 소개한다. 이 책의 제목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가 있다. 이 엽기적인 제목의 퍼즐은 이 책의 열아홉 번째 퍼즐이다. 물론 이 퍼즐도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엽기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역설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사실 오늘날 산다는 것이 서로 먹고 먹히는 그런 과정 아니겠는가?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한입 거리다.  

"가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는 번득이는 휜 이를 드러내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두 팔로 내 목을 감았다.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우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금 나를 회원으로 받아준 클럽에서 그렇게 따뜻한 환영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저녁거리지?" 몇몇 사람이 물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사람들은 밝고 친절했으며, 게다가 너그럽게 회비를 받지 않았다. 나는 명예회원이라고 그들이 말했다. 순진하고 한심한 나. 나는 저녁식사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인 결과가 이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손님이나 요리사로 초대된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해먹을' 한입 거리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대단히 관대했지만, 나는 곧 그 관대함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읽은 현명한 독자라면 틀림없이 눈치 챘을 테지만, 이 책은 철학 책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안도하는 대로 그다지 어려운 책은 아니다. 거기다 재미도 있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즐겁게 읽기 위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전혀 없다. 사실 이 말은 과장이지만 그리 큰 과장은 아니다. 당신은 글자를 읽을 줄 아는가? 어쨌든 우리는 만난 적이 없지만 그 대답이 '예스'라는 걸 서로 안다.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 장애물을 넘은 셈이다."

'철학은 눈을 열고, 고로 '나'를 연다' 그러나 철학은 우리에게서 멀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훌륭한 철학 트레이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트레이닝을 통해 우리는 철학적 사색의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기발한 재치들이 퍼즐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여러분은 상식과 지혜를 얻은 기쁨에 가슴이 불꽃처럼 뜨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의 금언을 빌어 말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급하게 가지 말고 퍼즐 하나씩 천천히 읽고 천천히 생각하길 바란다는 뜻에서.

"천천히 하시오!"                   파비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10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마젤란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