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10 미천마을 산골축제, 마산에도 달이 뜬다 by 파비 정부권 (19)
  2. 2008.12.14 이선관, "초지일관 말하면 조지일관 알아듣고" by 파비 정부권 (5)
  3. 2008.10.19 강산에와 함께한 고승하 선생 음악인생 40년 축하공연 by 파비 정부권 (7)
마산시 진전면 미천마을에서 열리는 <서북산 산골축제>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마당에 핀 꽃이 곱습니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꽃은 장미와 코스모스 뿐입니다. 거기에 국화가 하나 더 있는데, 제대로 구분을 못합니다. 저는 식물 이름을 잘 모릅니다. 시골에서 자랐는데도 그렇습니다. 

한번은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 거리에 가 보면 1가에서 3가를 거쳐 가는 대로변에서 작은 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란 단지 비슷한 것을 세워놓고 거기에 무언가를 심어놓습니다. 저를 잘 아는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야, 저거 이름이 뭔지 너 혹시 아나? 말해 봐라." 그래서 제가 유심히 살펴보니 줄기와 잎새의 모양이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덩쿨나무 같습니다. 

"덩쿨나무 아닙니까? 덩쿨나무 같네요." 그랬더니 박장대소를 하며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합니다. "야, 너는 문경 촌 골짝에서 살았다는 놈이 고구마 줄기도 모르냐? 이거 고구마잖아."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세상에, 왜 하필 고구마를 서울 한복판에다 심어 사람을 이렇게 부끄럽게 하는 것인지 원…    


지금부터 사진이 엄청 많습니다. 한 서른 댓 장 될 거 같습니다. 오늘은 별 내용 없이 그냥 사진 전시회만 합니다. 발목이 좋지 않으신 분들은 미리 잘 판단하시고 이쯤에서 그만 내려가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더운 여름에 너무 무리하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 하하~ 우선 아래 보이는 집은 마산시 진전면 미천마을에 사는 송창우 시인의 집입니다. 

테라스에 보이는 쟁반을 든 젊은 남자는 역시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이지만, 이 집 주인은 아닙니다. 저하고 똑같은 객인데 꼭 저렇게 주인 행세를 한답니다. 이날 산골축제 공연을 비롯한 행사도 이 사람이 대개 일을 했다고 합니다.     


테라스에서 마을 아래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이 사진은 지난 달 사진임) 경치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곳에 살면 신선이 안 될 수 없겠다 싶습니다.


송창우 시인의 뒷 집이 부재산방입니다. 오늘 행사는 이곳에서 합니다. 가수 김산 씨와 경남대 배대화 교수가 공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배 교수는 무언가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군요. 일은 안 하고… 배 교수는 진보신당 경남도당 문화생태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날 행사에 찬조 지원했다고 합니다. 

찬조지원이라고 해봤자, 기획을 비롯해 노동력 제공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고생했습니다. 이날 <재앙>이라는 다큐멘타리를 상영했는데, 지루하지 않게 34 분짜리로 편집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힘들고 어려운 일은 배 교수가 아니라 위 사진에서 보았던 젊은이가 다 했습니다만… 흐흐  


얼마 전에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온 박영주 선생입니다. 이분은 몇 년 전에는 중국을 거쳐 티벳을 다녀오셨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형님, 형님은 어째서 아름다운 금강산 같은 곳도 아니고 히말라야니 티벳이니 그 험하고 위험한 곳에 무엇 하러 가십니까? 취미도 참 특이하십니다." 물론 답변은 이거였습니다. "내 맘이다, 와~"

그러고 보니 참 취미가 독특합니다. 남들은 잔디밭에 편하게 앉아 구경하는데 배구네트에 올라가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래서 히말라야에도 갔었나 봅니다.


제가 이분은 누구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이분도 이날 공연행사를 위해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노래도 마음껏 부를 수 있습니다. 오브리 값은 없습니다. 공짜입니다.


한쪽에선 고승하 선생님과 아름나라 어린이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오늘 행사의 주관자요 총감독인 송창우 시인입니다. 경남대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기도 한 송 교수는 <걷는사람들> 대표입니다. <걷는사람들>은 매월 1회 걷기 행사를 한답니다. 주로 마산의 한적한 시골길을 택해서 걸으며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고 하는데요, 모토는 '도시 보행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프로그램 일정을 쓰고 있는 분은 송 시인의 아내입니다. 글을 시원하게 참 잘 쓰는군요.


1부 순서로 댜큐멘터리 <재앙>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부자나라가 됩니다.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니까 우리나라가 천불소득을 목표로 열심히 일할 때 그들은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었다고 합니다. 한 집에 자동차가 서너 대는 기본이었다고 하네요.

인광석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섬나라이던 이곳에 인광석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30년이 지난 오늘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가 되어 아이들을 어떻게 먹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이 나라 사람들은 아직 예전의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30 년 동안 세계 최고의 부자로 살아왔던 이들이 갑자기 세계 최고의 가난뱅이로 산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게지요. 무분별한 개발로 인광석은 동이 났고, 옛날 농사를 짓던 농토도 모루 폐허가 되었습니다. 섬 곳곳은 쓰레기와 버려진 자동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섬나라 주민들은 농사 짓는 방법도 다 까먹었다고 합니다.

더 문제인 것은 30 전에는 날씬하고 건강한 몸매를 유지했던 이들이 이제는 마치 살찐 돼지를 연상시킬 정도로 뚱뚱해져 비만으로 인한 건강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30 년 전의 모습과 비교해 보여주는 섬 주민의 모습에서 보통 문제가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걷는 것마저도 힘겨워 보였습니다.

넘쳐나는 돈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인스탄트 식품을 많은 먹는 대신에 농사도 짓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잘 사는 것도 좋은 게 아닌가 봐요, 그러고 보면.


해는 서산에 지고 동쪽 하늘로부터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어딜 가나 꼭 이렇게 대열에서 이탈한 열외군번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평상에 편안하게 앉아 담소를 나누며 영상을 감상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영화감상이 끝나고(영화가 아니고 자연다큐멘타리죠, 참)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이날 행사를 총괄기획하고 주관하신 <걷는사람들> 대표이며 <산골마을 축제> 준비위원장이신 송창우 시인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꼭 노래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인사만 했고, 공연에 대한 소개만 했습니다. 노래도 한곡 시킬 걸 그랬군요.


첫 번째 출연진은 4인조 혼성그룹,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아는 사람도 가운데 두 여자분 뿐입니다. 결성한지 이제 한 달, 아니면 두어 달? 하여간 신생 그룹입니다. 물론 프로는 아니고 아마추어 수준도 아니며 그냥 써클 수준이랍니다.  


아, 그런데 실력은 프로급입니다. 대단하네요. 직접 못 보신 여러분은 참으로 아깝게 되겠습니다. 왼쪽 여자분은 미천마을공동체 사무장이셨던 김수환 씨의 부인이고, 그 오른쪽은 송창우 시인의 부인인 심경애 씨네요. 김수환 씨 부인은 그러고 보니 제가 이름을 모르네요. 마산 창동 시와 자작나무 옆에서 <비누공방>을 하고 있답니다.  


사실 이분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지역의 가수라고 하던데요. 목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떤 가수에게서도 이만큼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조성모를 좋아하는데 조성모보다 훨씬 매력적인 목소리였습니다.


배구네트 심판대에 올라가 계시던 박영주 형님, 위에서 그냥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촬영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가수는 주부가요열창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상을 받으신 분이시랍니다. 무슨 상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잘 모를 땐, 그냥 대상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역시 노래 참 잘 하시더군요.


다음 순서는 아름나라입니다. 고승하 선생님과 준비한 노래와 율동이 참 예뻤습니다.


이 팀은 미천마을 어린이 합창단입니다. 물론 이날 행사를 위해 급조된 팀입니다. 어쩌면 공연 끝나고 바로 해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쑥스러워 인사도 제대로 못합니다. 참 걱정 되는군요. 이래 가지고 공연 되겠어요?


그러나 노래가 시작되자 금방 달라졌습니다. 완전 프롭니다. 나중엔 거의 광기 수준이었습니다. 해산이 아니라 본격 프로팀 창단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산 씨와 베꾸마당 대표님, 고승하 선생님이 협연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나라도 이제 박수를 치며 관객으로 즐겁습니다.


역시 마지막은 우리의 가수 김산 씨가 장식해주었습니다. 옆에서 박수치고 있는 두 사람은 바람잡이인 것 같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찍어보니 역시 바람잡이들이 맞습니다.


관람석은 가족 단위로 이렇게 최대한 자유롭고 편안하게 마음대로입니다. 저쪽 한쪽 구석에선 십여 명이 둘러앉아 술병을 돌리며 구경하는 팀도 있습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그분들 소개는 생략합니다. 별로 그림이 안 좋습니다. 흐흐~  


기타를 내려놓고 마지막 열창을 하고 있는 김산 가수. 짜 짜라 짜라짜라 짠짠짠~ 대충 이런 거였는데요. 제목은 역시 모름.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재산방 한쪽에 마련된 장소에서 술과 돼지고기 수육으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얼마 전에 경남도민일보 사장직에서 물러나시고 휴가를 즐기고 계신 허정도 사장께서 인사를 하고 계시네요. 앞서 임수태 위원장님과 몇 분의 동네 어른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만, 술 먹느라고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뒷풀이가 끝나고 가실 분들은 가시고 남은 서른 몇 분의 사람들이 "미천마을 달빛 속에 걷기"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날 프로그램의 마지막 행사입니다. 둥근 달을 이고 산골길을 걷는 기분이 쏠쏠했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걷기 어려워 보이는 무서운 산골길이었지만, 함께 걸으니 신이 났습니다.

반환 지점에서 모두 퍼질러 앉아 쉬고 있습니다. 먹은 술기운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이분은 한참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귀신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에 "와앙~" 하자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저만 빼고요.


누구 생일이었던 모양입니다. 창동수다님이 케잌을 준비해서 불을 켜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하노래도 일장 해주십니다. 그런데 생일노래 치고 너무 어렵습니다. 무슨 가곡 같았거든요. 우리는 그저 "해피 벌쓰데이 투유~" 이것 밖에 모르니까…



허정도 경남도민일보 전 사장님도 축하노래를 한곡 뽑고 계십니다. 그런데 더 어렵습니다. 만주에서 독립군들이 부르던 노래 같습니다. 흐~ 그러나 어쨌든 노래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콩쿨 나가셔도 장려상 정도는 무난할 듯합니다. 아래 모자를 쓰고 계신 분은 경남대 양운진 교수님이십니다. 역시 노래가 너무 고상하고 어렵나 봅니다. 고개를 숙이고 깊은 마음으로 감상하고 계시네요.  


얘는 촛불 꺼질라 걱정이 태산입니다. 오로지 촛불을 지키는데 일념입니다.


빨리 촛불 끄고 케잌이나 먹지 축하인사가 너무 깁니다. 우리의 케잌방위대 독수리 소년, 그러거나 말거나 촛불 지키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침내 기다란 생일축하 노래와 인사가 끝나고 케익을 잘라 나누어 먹는데, 그냥 손으로 잘라 먹어야 됩니다.


진보신당(경남) 문화생태 위원장 배대화 교수도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 좌측 위에 달이 떴군요. 달밤인데, 인사 말고 노래나 한곡 하시지 그러셨어요~ 다음부터는 앞에 나오시면 노래를 하세요, 특히 달이 떴을 때는. 정말 달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크고 밝은 달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도시에 살다 보면 이렇게 달이 뜨는지도 모르고 사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마산에도 달이 뜨는군요. 한적한 산골마을에 들어와 이처럼 여유로워지니 달도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원래 달은 늘 뜨고 지고 변함이 없었건만 우리만 마음이 바빠서 그 달을 못 보았던 것이지요.


이날 행사의 마지막은 이 행사를 주관하신 송창우 시인과 함께 창동수다님이 촛불을 켜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쳤습니다. 창동수다님은 이날 수다 대신 주로 노래를 많이 하셨네요. 좀 늦게 오셨는데, 미안해서 그러셨나? 좋은 노래 잘 들었습니다요.


좋은 행사를 준비하신 <걷는사람들>과 <서북산산골마을축제>에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더 좋은 행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참, 생일파티의 주인공은 산골마을 주민이면서 이날 행사준비에 가장 공이 많았고 <재앙> 영상편집을 했으며 바람잡이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해주신 유목민 김성훈 씨였습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저는 이선관 시인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분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분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제게 별로 없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세상에 오기도 전에 이미 이선관은 시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시인은 우리 마산에서 너무 유명한 인물입니다. 아마 마산이 배출한 수많은 예술인들 중에 뽑아보라고 하면 문신과 이선관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또 너무나 잘 아는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생전에 시인을 딱 두 번 가까이서 뵌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대우백화점 엘리베이터 안에서였고, 또 한 번은 창동 골목의 만초라는 술집에서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 처음 뵈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시인은 지체장애인이었습니다. 잘 걷지도 못하고 잘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전에 이선관이란 이름만 들었지 그분이 어떻게 생긴 분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었습니다. 제 아내가 정중히 인사를 했고 저도 덩달아 인사를 했지만, 사실은 누군지도 모르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누구시냐?” “이선관 시인도 모르나?” 타박을 듣고서야 이선관 시인을 알아봤습니다. 두 번째 뵌 것은 창동 골목의 만초란 술집이었는데, 제가 앉은 자리의 건너편에 일행들과 함께 술 마시러 오셨을 때였습니다. 이미 한 번 뵈었었기에 가서 인사를 하고 술도 한 상 대접해드리고 나왔습니다. 그래봐야 만원입니다만.

좌로부터 우무석 시인, 이성모 교수, 배대화 교수, 구모룡 교수, 김경복 교수.


그리고 2008년 12월 13일, 세 번째입니다. 이날은 이선관 시인을 직접 만나 뵐 순 없었습니다. 시인은 이미 3년 전 이날(다음날)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대신 「고 이선관 시인 추모모임」이 주최한 『고 이선관 시인 3주기 문학 심포지엄 및 추모문화제』를 통해 그분의 시세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선관의 시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서민적이며 해학적입니다. 시인은 심한 뇌성마비로 발음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도 딱 두 번 그분과 인사를 했지만, 그분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선관 시인은 부정확한 발음을 오히려 해학으로 승화시켜 한편의 시로 만들어냈습니다. 이성모 교수(김달진 문학관장)는 “은폐되거나 억제된 몸이 오히려 장난스러움으로 전복되는 한편,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는 말로 그의 시를 평가합니다. 

 나는 初志一貫으로 말을 하면
당신네들은 좆이 일관으로 알아듣고

다시
나는 初志一貫으로 말을 하면
당신네들은 좆이 일관으로 알아듣고

또다시
나는 初志一貫으로 말을 하면
당신네들은 좆이 일관으로 알아듣고    
                                                      -「나는」 이선관


시인은 몇 번이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비장함은 “결여된” 자신의 존재를 넘어 “결여된” 사회를 향한 저항으로 발전합니다. 시인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어쩌면 결여된 존재에 대한 자아로부터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이미 산업화가 시작되던 초기에 “침식되어 가는 자연과 오염에 시달리는 인간”을 발견합니다. 

바다에서

고 이선관 시인


둔탁한 소리가 난다.
이따이 이따이.

설익은 과일은
우박처럼 떨어져 내린다.
이따이 이따이.

새벽잠을 설친 시민들의
눈꺼풀은 아직 열리지 않는다.
이따이 이따이

비에 젖은 현수막은
바람을 마시며 춤춘다.
이따이 이따이.

아아
바다의 유언
이따이 이따이.
                         -「독수대.1」 이선관

시인의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것입니다. 그는 날카로운 지성으로 사회적 모순과 불의에 항거하는 시인이었지만, 항상 그가 쓴 시의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흐르고 있습니다. 사랑이 빠진 서정은 서정이 아닙니다. 그건 그저 불의한 모순을 덮는 선전 나팔일 뿐입니다. 그래서 아직 이 시대는 편안한 서정을 노래할 때가 아니라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보야 / 밥 안 먹었지 /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 김이 난다 식기 전에 얼른 와서 / 밥 같이 나눠 먹자 / 마주 보면서 밥 같이 나눠 먹으면 / 눈빛만 보고도 / 지난 오십년 동안 침전된 미운 앙금은 / 봄눈 녹듯이 녹아내릴 것 같애 / 여보야 / 밥 안 먹었지 /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 밥, 그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밥, 그 밥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이선관

가수 김산의 축하공연. 화면을 가린 빨간 옷 입은 분은 고승하 선생.


시인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통일에 대한 열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이성모 교수는 “이선관의 통일시는 통일의 갈망은 있으나, 분단에의 절망이 없다는 점에서 통일시가 지향하는 변증법적 통합은 상당히 유보”되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절망과 안타까움을 딛고 통일은 청산해야 할 역사와 새롭게 창조해야 할 역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청산에 따른 갈등, 반목, 대립은 어떻게 할 것이며, 새롭게 창조해야 할 조화, 이해, 화합의 길은 어떻게 할 것인가? 끝없는 모순의 도출, 그러한 긴장에 의한 변증법적 통합을 향한 회의주의, 그것이 진정한 통일문학으로서의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이다.”    -「통일문학에 대한 회의주의, 그 완벽한 자유, 마산문학 24호」 이성모

매우 어려운 논제이긴 하지만, 또한 매우 깊이 고민해야 할 논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성모 교수의 말처럼 통일문학은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청산을 통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라는 변증법적 통합을 달성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정 어렵고도 어려운 길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 사고의 자유를 얻지 아니하고서는 불가능한 길이기도 합니다. 자유는 청산을 통해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산은 매우 어려운 결단이 요구되는 통합의 전제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랑만이 이룰 수 있습니다. 시인의 사랑은 말 못하는 나무 한그루에도 다가서 있습니다. 

해마다 년말 가까이 한 달 전부터
예수가 탄생했다는 성탄절을 맞아
밤마다 나무에 대낮처럼 불이
켜진다

나무들은 말한다

하느님이시여
당신 아들 탄생도 좋지만
제발 잠 좀 자게 해 주십시오.
                                        -「나무들은 말한다」 이선관
 
시인의 생명에 대한 사랑,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저항의식은 그러나 자그마한 지역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구모룡 교수(한국해양대 교수)는 “자기 땅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관념은 허황되다. 무엇보다 딛고 선 땅으로부터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선관은 철저한 지역주의자이다. 하지만 그는 지역의 가치를 배타적으로 적용하는 향토주의자가 아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터전을 살리는 행위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관념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겨자씨의 믿음’처럼 그는 지역에서 출발하여 한 세계를 통일할 생명의 가능성을 열고자 한다.”는 말로 시인의 “전지구적 시각, 지역적 실천”이란 인식세계를 설명합니다. 시인의 이러한 인식의 지평은 “마침내 “지구는/ 참으로/ 거대한 신전이다”(1989, 지구)에 이르게 된다.”는 말로 구모룡 교수는 부연합니다.

지난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들이 가장 즐겨 불렀던 노래는 <헌법 제 1조>였습니다. 이 헌법 제 1조는 이미 1972년에 시인이 썼던 시의 제목입니다. 시인의 인식세계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람들을 묶어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제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니까!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래...... .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 그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 허긴 그래.
                                      -「헌법 제 1조」 이선관, 1972년, 씨알의 소리

축사 중 시인의 시로 만든 노래 "민들레 꽃씨하나"를 즉석에서 부르는 경남도민일보 허정도 사장.


생전에 시인은 몇 차례나 장례를 치를 뻔 했습니다. 1991년, 지나친 음주와 극도로 지친 삶에 못 이겨 간경화 진단을 받고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시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 다시 간염말기로 복수가 차올라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93년에는 퇴원해 길을 가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습니다. 이때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문인들은 ‘마산문인협회장’을 치르기로 하고 관까지 짜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극적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시인은 창동 허새비였습니다. 생전에 늘 자기를 일러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창동은 시인의 생활공간이며 시가 생산되는 공장이었습니다. 창동의 지하다방 <흑과 백>이나 <만초> 같은 술집이 그가 주로 다니던 곳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생긴 <책사랑>과 <문화문고>는 시인이 책을 읽고 시상을 가다듬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매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든 신문을 꼼꼼이 살펴보다가 어느 한 귀퉁이를 부욱 찢어 꼬깃꼬깃 주머니에 쑤셔넣으면 그게 바로 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창동 허새비 외에도 스스로 삼류시인, 넝마주의, 바보, 거지 등으로 불리길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후배들이 그를 그렇게 부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느날 후배들이 시인에게 형이라고 하자, 시인이 장난처럼 “쪼꼬만 것들이 감히 형… 형… 한다.”고 나무라자, 그 중 하나가 갑자기 ‘독수선생’이란 이름을 생각해냈습니다. 「독수대」에서 따낸 말입니다. 시인은 부정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았고 그 다음부터는 독수선생으로 불렸습니다. 

이제 <책사랑>은 없습니다. 시인이 늘 책을 살펴보던 <문화문고>도 없습니다. 모두 교보나 영풍과 같은 대자본의 물량공세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습니다. 이선관 시인이 놀며 술마시며 시를 쓰던 창동도 이제 옛 창동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넘실대던 창동엔 이제 찬바람만 붑니다. 

아서라 / 다친다 / 소주나 까자 /
뒤돌아보기 없기다 / 좌우로 살피기 없기다 /
아서라 다친다 / 소주나 까자         
                                                     -「소인들」 이선관

그러나 창동 허새비는 영원히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습니다. 시인이 생전에 놀며 술마시며 시를 쓰던 창동도 여전히 창동입니다. 아직은 찬바람이 불지만 창동에도 곧 봄이 오고 그러면 허새비도 돌아올 것입니다. 이날 밤, 우리는 창동 허새비를 그리며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시를 본떠 노래도 불렀습니다. 이렇게요.

“조지일관, 소주나 까자.”

2008. 12. 14. 파비

            
시낭송 "민들레 꽃씨 하나"
저걸 보아라 어디서 살아왔을까

시인의 시를 낭송하는 고등학생들.


도심지에 나비 같아 날아온 민들레
민들레 꽃씨하나
마침내 빌딩벽 틈새로
사뿐히 내려앉은 연약한 생명
마침내 겨울을 이겨내고
사뿐히 뿌리내린 연약한 생명
저걸 보아라 어디서 살아왔을까
도심지에 나비 같이 날아온 민들레 
민들레 꽃씨하나
                                          
-「민뜰레 꽃씨 하나」 
   시/이선관, 작곡/고승하, 노래/김산
Posted by 파비 정부권
10여 년 전에 고승하 선생의 작곡발표회가 창원 KBS 홀에서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전통음악과 서양의 클래식이 함께 어우러진 고승하 선생의 음악을 듣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저의 예술적 무지 탓으로 선생의 음악을 십분 이해할 순 없었지만, 훌륭한 시도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선생의 사랑은 참으로 지극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어린이야말로 나라의 동량이요 미래라고 이야기 하지만 실천으로 보여주는 이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바로 그 흔하지 않은 분들 중에서도 매우 훌륭한 어린이의 친구요 선생님이셨습니다. 고승하 선생이 만든 동요를 아름답게 부르는 어린이 예술단 ‘아름나라’는 그래서 선생의 영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말일 듯합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우리 딸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신 고승하 선생님.


그리고 2008년 10월 16일, 고승하 선생의 ‘음악인생 40년’과 ‘아름나라 20년’을 축하하는 공연이 마산 3·15 아트센터에서 열렸습니다. 

맨 먼저 나온 이성원은 부드러운 음악으로 청중들의 몸을 촉촉히 적셔주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마치 경양식을 먹기 전에 먹는 스프처럼 달콤하면서도 감미롭고, 그러면서도 발랄했습니다. 뒤이어 나온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을 달구었던 민중노래패 소리새벽과 김산은 ‘고백’을 노래하며 차가운 밤이슬 내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손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기도 했습니다. 

바위섬을 부른 대학가요제의 히어로 김원중도 왔습니다. 그의 열창은 여전했습니다. 거의 20년 전 마산 자유수출공단 내 수미다전기 노동조합이 자본철수에 반대해서 파업을 벌이던 현장에 격려차 와서 노래를 불렀던 그도 이젠 많이 늙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습니다. 

어두컴컴한 파업현장에서 함께 노래부르고 막걸리를 마셨던 젊은 날의 김원중과 노무현은 모두 훌륭한 우군이요 동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봄이었던 김원중도 이제 가을의 모습으로 다시 마산에 왔습니다. 이번엔 어두컴컴한 파업현장이 아니라 현대식 건물과 조명이 휘황한 3·15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기념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왔습니다. 

역시 그는 예나 지금이나 노래를 잘 합니다. 

80년대 대학가요제의 히어로 김원중. 바위섬을 불렀던 그도 이젠 많이 늙었더군요.


그리고 국악가수 이자람 씨도 선생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왔습니다. 젊디 젊은 국악가수를 보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노래도 일품입니다. 국악가수가 동요 같은 노래도 참 잘 합니다. 뒤이어 나온 조태준 씨는 처음 보는 분입니다. 젊은 가수였지만,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젊어 나도 함께 젊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사실 7~80년대의 가수들에 비해 요즘 가수들은 노래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비디오만 신경 쓴다고 불평을 해대곤 하는데 이 가수는 정말 노래를 잘 했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강산에가 경계를 해야할 가수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공연 중간에 화상으로 축하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자우림이 인사를 하더군요. 그래서 부랴부랴 셔터를 눌렀는데 시커멓게 나와 여기 소개하지는 못합니다. 자우림, 정말 노래 잘 하는 가수입니다. 얼굴도 섹시하게 생겼지요. 제가 조금만 젊었으면 서울 한 번 올라가는 건데, 그래도 제가 주제파악 정도는 하고 사니까요. 

김미화, 윤도현도 축하인사 하러 화상에 나왔군요. 김미화 참 똑똑한 여자지요. 한때 코메디 프로 쓰리랑 부부에서 야구방망이 들고 많이 설쳐서 대개 웃긴 여자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책도 많이 보고 엄청 똑똑한 여자더군요. KBS 「TV, 책을 말하다」란 프로에서 장정일과 MC 하는 걸 보았는데, 정말 유식했습니다. 

노래 다 부르고 집에 간 줄 알았던 강산에가 갑자기 뛰어나와 청줄을 놀래키며 다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노래로 충만한 기념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강산에가 장식했습니다. 그는 역시 대가수였습니다. 넘치는 무대매너도 훌륭했지만, 역시 그의 노래는 우리네 심금을 울려주면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무엇이 있습니다.

강산에와 고승하 선생과 앞에 출연했던 모든 가수들과 아름나라 어린이 예술단과 철부지들, 그리고 청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흥겨워 하는 속에 고승하 선생 음악인생 40년과 아름나라 20년을 기념하는 공연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고승하 선생의 음악인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선생의 영혼이 깃든 어린이 예술단 아름나라도 계속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래할 것입니다. 나이든 어른들이 만드는 철부지들도 변함없이 아름나라와 사이좋게 놀 것입니다. 

아름다운 나라가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소한 이날 만큼은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나라에 살았습니다.
 
2008. 10. 19.  파비

아래 사진보다 더 많은 분들이 출연했지만, 제 사진 솜씨 탓으로 시커멓게 나오거나 흔들려 여기 싣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좀 산만했습니다. 출연팀이 너무 많은 탓이었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선생을 위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엄선된 구성과 기획이 아쉬웠습니다. 시간도 무려 2시간 반이나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 약간의 아쉬움도 마지막 전체 어울림 무대가 완벽히 해소했다고 봅니다. 마지막 무대가 참 좋았습니다. 고승하 선생님도 계속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내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선생의 뜻을 잘 나타낸 포스터로군요. 제 자리는 앞에서 네 번째 줄, B-45번이었습니다.

'아름나라'와 함께 어울린 나이든 '철부지들'

아름나라 어린이 예술단

국악가수 이자람의 열창

조태준. 대단한 가수였습니다.

청중과 악수하고 있는 강산에. 역시 대가수...

고승하 선생과 부인

가수 이성원이 선생의 딸을 인계하러 왔다는데, 진짜 딸인가?

인사하러 나왔다가 갑자기 상도 받고 꽃다발까지... 상 제목은 저도 모르겠습니다.(알아보니 생명평화상이었군요.)

고승하 선생의 작품을 노래하는 합창단.

그리고 이어 강산에, 이자람과 아름나라와 철부지들, 고승하 선생까지 마구 무대를 어지럽혔습니다.

사자도 한마리 등장했습니다.

공연에 출연한 모든 사람들이 객석의 청중들과 함께 어울림마당을 만들며 대단원을 맺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