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0.12 천국을 오르는 계단,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by 파비 정부권
  2. 2009.10.09 자전거 타고 선덕여왕릉에 올라보니 by 파비 정부권 (9)
  3. 2009.09.24 경주에서 웃고 있는 사자가 의미하는 것은? by 파비 정부권 (7)
  4. 2009.09.22 신라 최고의 미녀 미실궁 집사는 통화중 by 파비 정부권 (10)
오랜만에 불국사에 다녀왔습니다. 저와 아들은 경주 대능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불국사까지 갔고 아내와 딸은 차를 타고 갔습니다. 연휴라 그런지 도로에 차가 많이 다녀 애를 먹었습니다. 제가 처음 불국사에 갔던 것은 아마도 국민학교 6학년 때였을 겁니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대부분 국민학교 수행여행지가 경주였습니다.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자하문. 자하문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사람이 필자. 마침 아들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때 불국사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찍어둔 사진도 없습니다. 다만 기억에 남는 것은 경주 시내의 어느 여관에서 친구들과 밤새 선생님을 피해 놀던 기억뿐입니다. 그리고 다음 경주에 간 것은 신혼여행 때였습니다. 마산 완월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우리가 술 취한 친구들을 뒤로 하고 도착한 곳이 경주였습니다. 

그리고 첫 아이가 태어나고 몇 년 후, 그러니까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아장아장 걸을 무렵에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경주에 한 번 더 갔습니다. 당연히 첫 신혼여행지였던, 그리고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던 불국사에 갔음은 물론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네 번째 불국사에 간 셈입니다. 그러나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새롭다는 것입니다. 

자하문 바로 아래에서 찍은 현판

일주문을 향하는 길이 여느 절처럼 오솔길이 아니란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어차피 이곳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입니다. 그러니 늘 붐빌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한적한 오솔길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 수 있습니다. 불국사의 일주문도 이미 일주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랩니다.
 
일주문은 본래 속세에서 묻은 마음의 때를 벗고 하나로 하여 부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기둥으로 문을 만들어 일주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국사 일주문에는 가운데에 쇠기둥으로 분리대를 만들어놓고 그 옆에 표를 받는 함이 놓여있고 검표원이 서있습니다. 

그러나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넘어서면서부터 우리는 "역시 이곳이 바로 불국사로구나!" 하고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됩니다. 불국사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청운교, 백운교로 대표되는 석축입니다. 천왕문을 지나 돌로 만든 다리를 건너면 바로 넓은 마당이 나타나고 거기에 웅장한 불국사 건축의 장관이 우뚝 버티고 있습니다.      

신라인의 섬세한 아름다움이여. 경주박물관에서 보았던 찬란한 금관, 화려한 귀걸이들, 건물을 지을 때 벽면에조차 빼어난 예술적 조각으로 치장했던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이 이곳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마침 옆에서 석조물을 바라보던 어떤 장년의 부부가 물었습니다. 

자하문에서 내려다 본 백운교, 청운교



"그런데 여기 자하문이 어디를 말하는 거죠?" 
"네, 바로 여기 보이는 이곳이 자하문입니다. 여기 청운교가 보이시죠? 그리고 그 위에 백운교, 거기를 다 오르면 자하문이죠. 자하문 안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대웅전, 부처님이 계신 곳 즉 불국토랍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자하문이라고 어디 씌어 있죠?" 
아마도 자하문 현판에 씌어진 紫霞門이 자하문인지 아직은 믿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갑자기 저도 불안해졌습니다.
'이거 혹시 아니면 어쩐다?' 

다급하게 안내판을 살폈더니 다행히도 자하문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세요. 여기 안내판에 보시면 청운교17계단을 오르고 다시 백운교 16계단을 더 오르면 마침내 자하문에 이른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제야 그 장년의 관광객은 '이게 진짜 자하문이었군!' 하는 투로 메모장을 꺼내 열심히 적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장년 부부의 모습을 보며 매우 흡족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래, 나이가 들어 저렇게 공부하는 자세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게다가 조상들의 숨결이 어려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공부라니 이보다 더 갸륵하고 행복한 삶이 또 있을까.'   

나는 그 정성에 감복하여 대웅전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석가탑이며 다보탑을 구경하는 것을 제쳐두고 자하문으로 먼저 갔습니다. 자하문 아래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원래 사람들이 서서 이곳 자하문을 바라보고 있는 저곳은 커다란 연못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연못 물결 아래 자하문의 그림자가 일렁거렸을 것입니다. 자하, 붉은 노을이란 뜻으로 부처님의 광명을 형용한 것이라고 하니 연못 속의 자하문 그림자는 곧 부처님의 광명이 속세에 비친 것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자하문에 이르는 청운교와 백운교는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아니었습니다. 

청운교, 백운교는 '교'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단이 아니라 다리입니다. 다만 사람이 건너다니는 다리가 아니라 속세의 때를 벗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고행의 다리였습니다. 서른세 개의 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덧 청운을 지나 백운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하문은 붉은 노을, 인생에서 백운의 마지막도 곧 붉은 노을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대교나 크리스트교 세계에서 말하는 '빠스카'란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민족과 스스로 수난을 택한 예수의 빠스카가 불가의 고행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하문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웅전의 좌우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서있다.


그러나 피안의 세계에 다다르기 위해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선 차이가 없을 듯합니다. 세상 모든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음만 먹고도 세상 일이 뜻하는 대로 될 수만 있다면 차안이니 피안이니, 지옥이니 천국이니 하는 말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자하문에 서서 한참을 그렇게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곳에 연못이 그대로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연못에 비친 자하문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폭포처럼 연못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에서 하얀 물보라가 일며 한없이 아름다운 오색 무지개가 펼쳐지고 잔잔한 물결 속에 아스라이 자하문의 그림자가 보일 듯합니다. 

그러나 피안의 세계로 가는 다리는 높고 험합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이곳에 오르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굳이 이곳으로 오를 필요는 없습니다. 왼쪽으로 돌아 경내로 들어오는 문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옛날 신라의 스님들도 사실은 이곳으로 오르내리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청운교 앞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어쩌면 이 다리는 차안의 세계(속세)에서 피안의 세계(불국토)로 넘어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고행에 대해 가르침을 주고자 상징적으로 만들어놓은 가파른 다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나 쉽게 넘나들었다면 청운교와 백운교, 자하문에 담긴 의미가 너무 하무하지 않겠습니까? 

자하문 너머 대웅전을 쪽을 바라보니 한 떼의 무리들이 줄을 지어 대웅전을 향해 절하기도 하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도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중국 또는 태국? 생김새로 보아 불심이 충만한 남방계 사람들이 분명해보입니다. 호젓한 불국사 대웅전을 담고 싶어 한참을 기다렸으나 결국 포기해했습니다. 

조용한 불국사를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웬만한 정성이 없이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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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동 |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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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 연휴에 경주에 다녀왔다. 아이들도 마침 단기방학을 해서 며칠 여유가 있었다.  
경주는 지난 9월에도 다녀왔지만, 매번 가도 새롭고 즐거운 곳이다.
그냥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곳이다.

대능원, 금관총, 오릉, 계림, 첨성대, 월성, 박물관, 안압지, 분황사, 황룡사지 등이 첨성대를 중심으로 몰려있다.


실제로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을 쓴 이재호 같은 사람은 아예 경주에 터를 잡고 살고 있기도 하다.
그는 어디가 좋을까를 고민하다 보문 벌판의 끝자락 어느 한적한 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보문사가 있었던 이곳은 황룡사지, 망덕사지, 사천왕사지, 굴불사지 등 잘난 절터들에 비해 초라하긴 하겠지만,
산업도로가 가로지르며 늘 소음에 시달리는 신라의 흔적들에 비해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한다.

가보니 진짜 그랬다. 
황룡사지는 한없이 아름다웠으며 천년고도의 영광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절터의 옆으로 달려가는 자동차의 소음들이 신경을 거슬렸다. 

다른 유적지들도 마찬가지다. 
대능원과 계림, 월성은 늘 붐비는 사람들과 자동차들로 시끄럽다.
북적대는 동부사적지대를 벗어나면 좀 덜하긴 해도 이번엔 잘 닦인 산업도로가 거슬린다. 

그러나 역시 경주는 경주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거대한 왕릉과 푸른 하늘과 하얀 솜처럼 풀어놓은 구름 뿐이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북적대더라도 
이 평화로운 자연의 정적만은 절대 방해받지 않는다. 

경주에 가서 한 번 하늘을 둘러보라. 
그러면 여러분은 이곳이야말로 천국이로구나, 
이곳이 진실로 천년 고도 경주로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로지 넓은 벌판과 푸른 하늘만이 끝없이 펼쳐진 사이에 
우뚝우뚝 솟은 왕릉들과 나와 그리고 고요한 평화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지난달에 이어 이번엔 가족들과 함께 다시 경주에 갔던 것이다.  

우리는 대능원에서 자전거를 이틀간 빌렸다. 물론 아들과 나만…. 
우리 계획은 대능원에서 출발하여 첨성대, 계림, 월성을 거쳐 경주박물관을 관람한 다음 
불국사 방향으로 꺾어 선덕여왕릉을 보고 불국사까지 계속 달려 그곳에서 짐을 푸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불국사를 구경하고 다시 자전거를 달려 보문단지와 신라밀레니엄파크를 지나 
진평왕릉과 분황사, 황룡사지를 거쳐 다시 대능원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리고 계획은 완수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로써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이 글 제목의 답이기도 하다. 
다름 아닌 나도 이제 늙어간다는 것.  
아들놈은 씽씽 날아다니는데 나는 땅바닥에 빠져 허우적대며 익사하는 꼴이었으니…. 

다리가 천근인데 이틀간 자전거를 새털처럼 날리며 달려온 아들놈은
김유신장군묘와 태종무열왕릉까지 마무리하잔다. 
"됐다. 거긴 다음에 가자. 다다음주에 한번 더 오면 되잖아. 에휴~" 

이하는 가볍게 사진 감상 ^-^

대능원을 구경하고 황낭대총 앞 벤치에서 점심식사. 도시락을 제일 먼저 까먹은 딸애가 황남대총에 서있다.

신라의 황궁 반월성터. 여기서부터 이산가족.

자전거로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정상을 오른다.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오솔길은 내가 본 산책로 중 으뜸이었다.

솔밭 너머로 선덕여왕릉이 보인다.

선덕여왕릉

내친 김에 선덕여왕릉 위 낭산정상까지.

여기가 낭산 정상. 아래에 선덕여왕릉이 자리잡은 터가 아늑해보인다. 남향이어서 그런지 햇볕도 잘 든다. 과연 명당이다.

내려가는 길은 더 신나는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거기 다시 올라가고 싶다고 난리다.

물론 나는 입구에 이렇게 자전거를 매달아놓고 걸어서 올라갔다.

다음날 오전 불국사에서 단체사진

각자 메고있던 배낭을 노적봉처럼 쌓아놓고 그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10초 후 10장 연속촬영모드.

그 중에 석장.

보문단지에서부터 알천을 따라 자전거전용도로가 시원하다. 아들은 창원보다 훨씬 좋다고 다시 여길 꼭 달리고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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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 대능원관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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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경주는 실로 문화유산의 보고였습니다. 경주에 도착한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국립경주박물관입니다. 아마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을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주박물관은 처음 와보는 곳처럼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경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겨우 반나절의 시간을 갖고 경주박물관의 유물을 둘러본다는 건 오만입니다. 며칠을 두고 도시락을 싸들고 관람을 해야 겨우 경주 유물의 껍질을 까 안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안목을 배우는 데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번 경주 답사를 위해 미리 도서관에서 일고여덟 권의 책을 구해 읽었던 터였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겨우 책 몇 줄 읽는 것으로는 경주박물관의 유물을 이해하는 데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유물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답사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전 없이 전쟁에 나가는 병사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준비 없는 답사가 죽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별로 얻는 것은 없으면서 시간 낭비와 엄청난 육체적 피로만 안겨주게 됩니다. 이번 답사의 경험으로 저는 예컨대 앞으로 이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리 반드시 보아야 할 유물 목록을 적어올 것, 그리고 그 유물의 위치나 동선 정도는 미리 파악할 것.   

그래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며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유물은 적당히 즐기며 패스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꼭 봐야할 것을 놓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마치 뷔페식당에 가서 어마어마하게 많이 진열된 음식을 두고 도대체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에 저는 반드시 보아야할 유물 하나를 보지 못했습니다. 황남대총에서 나온 금관을 보지 못했고, 당연히 사진도 못 찍었습니다. 그리고 황남대총에서 나온 은관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두 유물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말하자면, 요즘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신라의 여인천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인데, 선덕여왕 답사를 간다면서 이걸 놓친 것입니다.  

음, 제가 본론에도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사설은 늘어놓는 이유는 여러분은 저처럼 실수하지 마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사실 텍스트는 간단하게 또는 생략하고 단지 사진만 보여드리려고 한 것인데 역시 저는 구르다님의 지적처럼 '긴' 편입니다. 죄송합니다. 흐흐.   

오늘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경주에 산재한 사자들입니다. 영어로는 라이온이라고도 합니다. 백수의 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는 사자가 살지 않습니다. 고대에도 아시아에 특히 동아시아에 사자가 살았다는 보고는 아직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경주에는 엄청나게 사자가 많습니다. 

도대체 이 사자들은 모두 어디서 온 것들일까요? 아, 물론 고대 신라인들이 만든 것이죠. 네, 그런데 이 사자를 고대 신라인들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용이나 봉황처럼 상상의 동물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사자를 신라인들이 보았을까요? 저는 그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궁금합니다. 
 

맨 위에 게시한 사진은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사자입니다. 사자의 뒤에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가 팔을 괴고 앉아있는 것이 보이시죠? 이곳은 휴게실입니다. 사자가 휴게실도 지키고 있습니다. 대단하죠? 고대 신라엔 이렇게 사자가 흔해빠졌다는 반증이죠. 머리가 다 빠져 대머리가 되었지만 기상은 천 년 전과 다름없습니다.  

바로 위 사진은 분황사탑을 지키고 있는 사자상입니다. 선덕여왕이 절을 창건할 당시엔 그 위용이 대단했으리란 짐작이 갑니다. 분황사란 황제의 향기가 나는 절이란 뜻이겠지요? 저는 이 절터를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란과 그림을 보내 자기를 모욕한 당태종에게 보란 듯이 이 거대한 절을 짓고 탑을 올렸던 건 아닐까? 그리고 절 이름을 분황사라 했던 것은 아닐까?


분황사지와 황룡사지를 뒤로 하고 선덕여왕릉과 괘릉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논 한 가운데 탑이 있습니다. 황룡사지를 둘러보다 저기까지 가 보려고 했지만 논 사이에 길을 찾을 수 없어 포기했었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다 이렇게 사진에 잡혔습니다. 역시 경주는 곳곳에 유적이 널린 보물 창고가 맞습니다.  


자, 이곳이 경주의 왕릉 중에 가장 화려하다는 원성왕릉입니다. 수십 개의 돌기둥으로 만든 난간과 십이지신상이 능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무덤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유명한 것은 이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엔 웃는 사자가 있습니다. 우선 아래 사진들을 보시며 천천히 감상해보시지요. 사자가 여러분을 쳐다보며 웃거나 몸을 들썩이는 것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원성왕릉은 괘릉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이곳에 있던 작은 연못의 수면 위에 왕의 유해를 걸어 안정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이 왕릉의 입구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과 두 명의 문인상, 두 명의 무인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위에 네 마리의 사자상을 작은 사진으로 모아놓았습니다.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중 마지막 사자상이 가장 역동적이고 해학적입니다. 웃는 폼이 마치 몸을 들썩이며 장난치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시죠.


그렇죠? 그럼 이번에 아래 사진을 보십시오. 마치 사람을 향해 장난을 거는 강아지처럼 정겹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런데요. 제가 더 궁금한 것은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로 이겁니다. 고대 신라인들이 사자를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이 사자상들 옆에 함께 서있는 무인상, 즉 로마인인지 아랍인인지 알 수 없는 서역인들이 데리고 온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궁금증이 더 생기는군요. 

원성왕은 왜 서역에서 온 무인에게 자기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준 것일까요? 함께 간 김주완 기자와 커서님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양 사람이 아무래도 덩치도 더 크고 힘도 세고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궁금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고대신라의 유적을 둘러본 후에 남는 것은 온통 의혹덩어리입니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고구려, 백제, 중국, 아시아 어디에도 없는 특이하고 화려한 금관 그리고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에서 출토된 로마유리잔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연주하던 유리잔도 로마에서 온 것일까요? 또 원성왕릉을 지키고 있는 서역인의 얼굴을 한 무인상과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사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아래에 원성왕릉(괘릉) 맨 앞을 지키고 있는 무인상을 감상하시는 것으로 오늘의 포스팅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주먹을 불끈 쥔 로마인인지 아랍인인지 모를 무인상에서 무언가 힘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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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 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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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을 답사하기 위해 경주에 갔다가 선덕여왕 세트장에 들렀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안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입장료는 18000원이었습니다. 5시 이후에 입장하면 할인된 요금 8000원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립경주박물관과 천마총, 첨성대, 김유신장군묘를 구경하고 난 다음 밀레니엄파크에 갔는데 딱 5시 20분이었습니다.
 

입구에는 이렇게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김유신장군묘 둘레에 새겨진 12지신상을 보고 왔던 터라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김유신장군묘에 새겨진 12지신상은 참으로 정교하고 화려했습니다. 1000년도 훨씬 전의 조각 솜씨가 이렇게 빼어나다니,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김유신장군묘를 둘러보면서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어떻게 일개 장군의 묘가 왕릉보다 더 화려하지?" 그러고 보니 어떤 왕릉에도 김유신장군묘만큼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곳은 없었습니다. 선덕여왕릉도 무덤의 모양으로만 보자면 평그저 평범한 능에 불과했습니다. 오로지 괘릉으로 불리는 원성왕릉이 김유신묘와 같은 십이지신상으로 무덤을 치장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나중에 따로 보여드리겠지만, 괘릉(원성왕릉)은 신라 왕릉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왕릉 입구에 도열해 있는 석상들은 화려함과 예술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웃고 있는 사자, 험악한 인상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칼을 든 무인은 아랍인인지 로마인인지 모를 서역인입니다.

김유신 장군묘도 원성왕릉에 못지않았습니다. 게다가 원성왕릉이나 선덕여왕릉, 진평왕릉 등은 돈을 받지 않았지만 김유신장군묘는 돈을 받았습니다. 짓궂은 김주완 기자가 안내인에게 물었습니다. "아, 그런데 말이죠. 김유신장군묘는 요금을 받던데 왜 여기는 안 받죠?" 원성왕릉을 지키던 안내인이 우물쭈물 했음은 물론입니다.

아마 속으로 그랬을 겁니다. "돈 안 받으면 고맙게 생각할 것이지 별 황당한 질문을 다 하네." 그때 옆에 있던 제가 말했지요. "아이, 김 기자님. 김유신 장군은 칼을 들고 있으니 무서워 돈을 받는 거지요. 괜히 장군 출신에게 흥무대왕이란 시호까지 추증했겠습니까. 다 무서워 그런 거지요."  


선덕여왕 세트장을 향해 한참을 가자니 이런 토우가 집단으로 모여 있는 자그마한 언덕이 나왔습니다. 토우인형 만들기 체험장이었습니다. 작은 언덕이 빙 둘러서 있고 거기에 토우들이 이렇게 세워져 있었으며 그 빙 둘러선 언덕의 중간에 체험장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장난기 어린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혹시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야한 토우들도 있을지 살펴보았습니다. 한 바퀴를 빙 돌며 자세히 살폈지만 그런 토우는 없었습니다. 에이,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음, 역시 왕년의 자유분방하며 탁월한 예술 감각을 지녔던 신라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이로군. 신라인들도 이미 오랜 유교적 전통에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게지."

아래 토기는 국보 95호 토우장식 항아리로서 미추왕릉 지구에서 출토된 것으로 5~6세기 신라시대 작품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보물급 문화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당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저는 이 작품이 최고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물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은 아무도 이 작품을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더군요. 우선 유물의 동선도 문제였지만, 세상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처럼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을 즐겨 보며 당시의 성 풍속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다른 어떤 유물보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였을 텐데 말입니다. 

실제로 학자들 중에도 이 유물, 특히 이 유물에 나오는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토우 인형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화랑세기를 연구하는 이종욱 교수 정도가 이 작품의 우수성을 논하고 있을 따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알게 모르게 유교적 엄숙주의가 몸에 밴 탓을 아닐지…. 
 

드디어 미실궁에 도착했습니다. 선덕여왕 세트장에는 왕궁도 있고 귀족들이 살던 집도 있지만 역시 미실궁이 가장 화려하군요. 미실궁 너머로 석양이 서서히 물들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면 붉은 노을에 물든 미실궁이 보다 요염한 자태를 뽐냈을 텐데 아쉽습니다.


미실궁에는 집사도 있습니다. 미실궁 정문을 들어서니 집사가 한 분 서서 우리를 반겨줍니다. 복장은 신라시대 복장을 흉내 내 만들어 입은 것 같은데 모자가 좀 특이하군요. 저 모자도 신라시대에 쓰던 모자가 맞을까요? 꼭 동네 할아버지들 쓰고 다니시는 모자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미실궁 집사님, 휴대폰 들고 전화하시느라 바쁘시네요. 누구하고 통화하고 계신 걸까요? 혹시 댁에 계신 미실마님으로부터 온 전화?

우산을 든 모습이 너무 특이해서 제가 사진 한 장 찍자고 부탁드렸더니 포즈를 취하다가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사진이 이렇게 되고 말았답니다. 어쨌든 저로서는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때 맞춰 전화를 걸어주신 미실마님께 감사를 올려야겠군요. 하하.


그런데 미실궁 집사님은 정문을 지키는 일 뿐 아니라 이렇게 관광객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는 데도 바쁘셨답니다. 집사님의 이런 친절은 결국 미실 새주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친절이 최고의 덕목입니다. 언젠가 하워드 진을 만나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간 부산의 대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에게 새겨들을 할 만한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 한말씀 해주십시오." 그러자 하워드 진이 짤막하게 말했습니다. "카인드니스!" "네?"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금세기 최고의 미국 내 진보학자로 추앙받는 하워드 진의 입에서 겨우 "카인드니스!"라니. 평등이니, 자유니, 해방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고 겨우 "카인드니스?"   

그러나 여러분. 오늘은 진보사상에 대해 논하자는 게 아니고 미실궁을 감상하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간단하게 '카인드니스'가 매우 중요한 또는 가장 중요한 가치란 사실을 일단 인정하고 넘어가기로 합시다. 그런데 저도 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감동했었답니다. 친절, 친절함, 그래 세상 어떤 가치보다도 월등한 가치는 바로 친절이지.

창원의 가음정에 있던 한 감자탕집 주인아주머니가 생각나는군요. 이분이 운영하던 가게는 하루 종일 미어터졌는데 저도 이 집에 자주 갔었답니다. 갈 때마다 이 주인아주머니의 독특한 인사를 받을 수 있었지요. 그게 뭐였는지 혹시 이 집에서 감자탕을 드셔본 분이라면 아마 기억이 나실 겁니다.

"친절 합시다!"

밥 잘 먹고 가게 문을 나서는 손님에게 두 손을 배에다 공손히 모은 자세로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친절 합시다!"라고 인사하는 모습은 진풍경이었습니다. "엥? 나보고 친절하게 살라는 말이야, 아님 자기가 앞으로 나를 볼 때마다 친절하게 하겠다는 소리야?" 아마 헛갈린 분도 계셨겠지만, 그 친절 구호에 누구든 흐뭇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이로써 오늘 미실궁을 구경한 마지막 감상은 이렇습니다. "친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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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