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독살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9.21 동이, 장희빈의 억울한 죽음을 증언하다? by 파비 정부권 (2)
  2. 2010.09.15 장희빈의 죽음은 곧 동이의 몰락 by 파비 정부권 (14)
  3. 2010.09.14 동이, 정정당당 장희빈 혹은 멍청한 장희빈? by 파비 정부권 (7)
제목을 달고 보니 제가 봐도 좀 황당하군요. 그러나 이런 가정은 어떻습니까? 실상 장희빈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인현왕후와 최숙빈의 투기 때문에 죽었다고 말입니다. 또는 이렇게 가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위 환국정치란 기발한 발명품을 만들어낸 숙종의 정치적 계략에 의해 죽었다고 말입니다. 

왕조실록을 비롯해 공식 기록이든 비공식 기록이든 장희빈이 죽어야 할 죄목이 뚜렷한 게 없습니다. 다만 인현왕후가 죽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숙빈이 고변한 해괴한 무당 푸닥거리가 전부입니다. 드라마 동이에서도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만든 인형과 여흥민씨 패찰이 등장했습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역사적 상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장희빈이 죽음을 맞게 된 이유가 인현왕후를 저주했기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정도로는 장희빈을 죽이기엔 뭔가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이 혐의란 것이 고작 숙빈의 고변이 전부이고, 증거도 불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장희빈이 죽어야 할 이유, 너무 허약해

증거라고 해봤자 바늘에 찔린 인형이 전부인데, 이게 왕후를 저주해 죽게 만들려고 한 짓이라는 증험이 되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그런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걸 장희빈이 만들었다고 확증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취선당 주변에 숨겨진 것을 찾았다 하더라도 누군가 판 함정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시대가 시대라고는 해도 조선이 그렇게 허술한 나라는 아니었을 겁니다. 게다가 조선은 유학을 섬기는 나라로 미신을 배격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왕실에서 무당을 불러다 푸닥거리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때문에 왕후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죽었다고 생각할 사람도 없을 거란 말입니다.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푸닥거리를 했고, 하필 우연하게도 인현왕후가 죽어버렸다고 칩시다. 그렇더라도 세자의 모후인 장희빈을 사사할 정도는 아닌 것입니다. 게다가 앞에 말씀드렸다시피 장희빈이 한 행위가 저주인지 또는 인현왕후를 향한 저주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장희빈의 죽음에 대해 오래도록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장희빈이 죽고 난 이후에 남인이 정권을 잡은 예는 거의 전무합니다. 정조가 등극하자 잠시 남인들의 세상이 되는 듯도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고, 그조차도 노론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못했습니다.

워낙 노론의 힘이 강했으니까요. 100여 년에 걸친 장기집권의 결과는 세상 구석구석에 노론의 세력이 파고들지 않은 곳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왕조차도 감히 노론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정조가 죽고 1년도 안 돼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피바람을 일으켜(신유사옥) 남인 세력을 뿌리까지 제거한 것이 노론입니다. 

동이는 바로 그런 노론을 배경으로 권력의 정점에 선 여인입니다. 숙종이 죽고 경종이 등극했지만, 노론의 등살에 연잉군을 세제에 봉하고 이도 모자라 세제에게 대리청정까지 맡기게 됩니다. 대리청정이 무엇입니까. 경종으로서는 실로 치욕스런 일이었을 겝니다. 

동이를 죽이려다 자기가 죽게 되는 장희빈 

이 모든 일은 장희빈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장희빈이 죽음으로써 세자를 지켜줄 남인과 소론은 거의 완벽하게 괴멸된 것입니다. 그런데 숙종이 장희빈을 죽이는데 별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동이가 숙종을 찾아가 일러바친 '저주에 관한 고변'이 전부입니다.

겨우 일개 여자의 말만 믿고 일국의 빈을 죽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더욱이 그 빈이란 장차 왕이 될 세자의 모후입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동이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장희빈이 최후의 발악으로 동이와 연잉군을 죽이려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이는 오늘밤 칼에 맞아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게 될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음모의 모든 내막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걸로 보입니다. 장희재 모자는 의금부에서 지독한 고문을 받게 됩니다. 이에 참다 못한 장희빈이 나서서 "모든 것은 내가 시켰다!" 하고 나서게 됩니다.

결국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가고 말았습니다. 원래 우리가 아는 상식대로라면 장희빈이 죽게 되는 이유는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이 동이의 고변에 의해 발각(?)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작진은 아무래도 그 정도 이유로 장희빈을 죽이기엔 뭔가 깨름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늘에 찔린 인형'보다는 '칼에 맞아 중상을 입는 동이'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 말은 드라마 제작진이 역사 속 장희빈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증언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한갓 인형 때문에, 그것도 질투심 많은 한 여인의 고변 때문에 장희빈을 죽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진실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을 종합하고 고려해서 어느 정도 진실에 접근할 수는 있습니다. 장희빈은 과연 죽을 만한 짓을 했는가? 드라마 동이에서는 그럴 만한 일을 만들었습니다. 분명 장희빈은 죽어 마땅한 짓을 벌였습니다.

'바늘에 찔린 인형' 대신 '칼에 맞는 동이' 선택

그러나 역사에서도 과연 그런가. 거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동이 제작진은 동이로 하여금 칼에 맞는 비극을 연출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는 역설적으로 동이 제작진은 장희빈이 결백하며 억울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장희빈은 동궁에 불을 질러 이목을 끈 다음 자객을 보내 동이와 연잉군을 죽이려 한다.


물론 우리는 모두 동이 편이지만,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장희빈도 매우 불쌍한 여인이었군요. 거기다 아들마저 단명하고 말았으니…. 나중에 왕(영조)이 된 연잉군은 잠깐 탕평책을 씁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나름 정치적 계산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인좌의 난에 이어 과거장에 등장한 (영조의 경종 독살을 비난하는) 괴답안지 사건이 터지면서 탕평책을 거두어버립니다. 장희빈뿐 아니라 그녀의 아들 경종도 불행한 짧은 생을 살다 갔습니다. 그렇게 보면 장희빈 모자가 참으로 불쌍합니다. 

어미는 남편의 손에, 아들은 동생의 손에(물론 설이긴 하지만, 그러나 유력한 설이기도 하지요) 죽고 말았으니 이보다 더 기구한 사연이 또 있겠습니까.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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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장희빈의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벌써 끝났어야 하지만, 10부가 연장됐다고 하니 이제 8부가 남았습니다. 왕자 금이가 성장해서 왕이 되는 모습도 그려야 하니까 장희빈을 그렇게 오래 살려둘 수도 없는 문제겠지요. 그렇다면 다음주 아니면 그 다음주쯤?

아무튼 장희빈이 죽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동이는 장희빈이 몰락하는 것을 마냥 즐거워 할 수만 있을까요? 물론 드라마상에서 동이는 워낙 착하고 고운 여자라 장희빈의 몰락을 바라지도 그리지도 않습니다. 오직 장희빈 스스로 함정에 빠질 뿐이지요. 

그러나 실제의 동이는 어땠을까? 그녀도 그토록 착하고 고운 모습으로 장희빈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봤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인현왕후가 죽고 장례를 치르자마자 곧 숙종에게 달려가 장희빈의 비행을 고변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장희빈을 죽이는 것은 곧 동이의 몰락

▲ 동이, 그렇게 착하기만 한 여인이었을까?


우리가 실록의 기록을 다 믿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당대와 후대의 실력자 최숙빈이 임금에게 사사로이 고변한 기록까지 믿지 못한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실록은 어떤 경우에도 왕이 당대에 실록을 볼 수 없도록 했던 만큼 기사 작성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터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실제 역사에서는 드라마가 만든 픽션에서처럼 동이가 중전 자리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이 아니라 중전 자리를 따내기 위해 쟁투를 마다하지 않는 열혈여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숙종이 그런 동이의 말을 별 증거도 없이 믿고 장희빈을 사사했다는 것은 동이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대단했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반대로 당시 숙종은 노론과 소론, 남인 사이에서 환국정치를 통해 세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쓰고 있었던 고로 남인과 소론을 제거할 목적으로 최숙빈의 손을 들어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환국정치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정권교체 같은 것이더군요. 

단지 차이가 있다면 현대의 정권교체는 민의로 바꾸는 것이지만, 그때의 정권교체, 즉 환국이란 임금의 뜻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숙종은 아마도 골치 아픈 원리주의자들, 책에 나오는 원칙과 민심 뭐 이런 따위를 즐기는 남인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서인들, 시류와 대세를 논하는 노론의 편을 드는 게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재물과 권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가진자들에게 집중되는 것이고, 그 가진자들이 세상을 운영하고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자연의 섭리와도 같다고 주장하는 대세론은 왕에게도 매우 편안한 정치였을 겁니다. 

숙종은 매우 영악한 왕, 동이의 소원 다 들어주지 않아

숙종은 매우 영민한 혹은 영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동이의 말을 100% 들어주었지만, 마지막 한가지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왜냐? 동이가 다만 천인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무치한 왕에겐 천민이니 귀족이니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숙종은 동이의 야심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드라마에선 숙종이 동이를 중전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수를 쓰느라 고생 꽤나 하고 있습니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장희빈에게 자진을 명하는 동시에 교지를 내려 후궁이 왕비가 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것입니다. 한편으론 동이의 발고를 받아들여 장희빈을 죽이되 동이에게 중전 자리를 주어 권력을 몰아주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의 후계체제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동이가 중전이 되면? 세자는 떨려나는 것지요, 당연히. 

인현왕후가 죽으면서 동이가 중전이 돼야만 세자도 살고 연잉군도 산다고 했던 말? 그건 비상식을 넘어 몰상식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중전인데, 여러분은 내 아들 말고 평생을 자기와 대립했던 여자의 아들이 왕이 되는 꼴을 보실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장희빈이 죽고 임금은 후궁이 왕비가 될 수 없는 법을 만듭니다. 그리고 곧 새 왕비를 반가에서 들여오게 됩니다. 바로 인현왕후의 계비, 인원왕후입니다. 듣기로는 열여섯 살의 새파란 나이라고 하지요? 동이는 그때 몇 살이었을까요? 속 좀 뒤집어졌을 겁니다. 


뭐 들리는 설에 의하면 동이는 그 이후에 사가에 나가 시름시름 자주 앓다가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영조가 등극하기는 것을 보지도 못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금만 더 살았으면 아들이 왕이 되는 모습을 보고 죽었을 텐데요. 49세면 저보다는 오래 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너무 아까운 나이네요. 

동이의 투쟁이 만들어낸 후대의 피의 역사

그러므로 이런 결론의 유추가 가능해지는군요. 동이는 장희빈을 몰락시켰지만 그것이 곧 자기의 영광으로 되지는 않았다, 세자도 바꾸지 못했고 경종이 등극하는 것을 막지도 못했다, 오히려 인원왕후란 새파란 왕비가 들어오면서 왕의 총애만 빼앗기고 사가로 내쳐지는 신세가 됐다, 이렇게요. 

그리하여 결국 소위 경종독살설이란 역사적 의문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경종독살설에 가장 깊이 개입된 인물이 동이인지도. 이인좌의 난이나 과거장 괴답안지 사건 등은 영조의 음모라고 주장하지만, 동이가 중전이 되고 세자도 바꿨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지 모르지요.  

그러니까 동이는 장희빈을 몰락시켰지만, 편해진 것이 아니라 더한 가시밭길이 앞에 놓이게 된 셈입니다. 그러다 채 50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네요. 게다가 영조가 갖게 될 이 두 개의 콤플렉스, 경종독살설과 천민의 아들이란 사실은 후일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기반이었던 노론과 평생 싸우다 또 독살설을 남기고 죽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정조가 죽은 다음 해 1801년은 피의 해였지요. 신유사옥(혹은 신유박해)이라고 해서 정약용 3형제를 비롯 이가환, 이승훈 등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학살된 해였습니다.

이렇게 길게 보니 동이의 투쟁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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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지난주에 동이가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해 죽게 했다는 유력한 증험들인 인형과 여흥 민씨 패찰을 희빈 장씨에게 돌려준 것을 두고 혹시 꼼수가 아닐까 의심했었는데요. 그 유력한 증험들을 어제밤 다시 희빈이 동이에게 돌려주었군요.

물론 돌려준 이유는 동이가 내민 화해의 손을 거부한다는 의사표시인 것이죠. 한번 해보자 뭐 그런 선전포고인 셈인데, 저로서는 참으로 황망할 뿐입니다. 만약 제가 장희빈이었다면 그걸 돌려주기보다 불에 태워 증거를 인멸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장희빈도 꽤나 고지식한 사람인 모양이에요. 아니, 정직한 사람일까요? 마치 서부극의 건맨처럼 정정당하게 한번 승부를 내 보겠다? 그래서 동이를 찾아가 자신의 목을 겨눌 유력한 증험을 넘겨주었군요. 그리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동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목을 겨눌 증험을 돌려주는 장희빈, 이해가 안 돼

"너를 내 앞에 무릎 꿇리겠다. 그림자는 내가 아니라 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자기와 오라비를 죽게 만들고 나아가 세자의 안위마저 위태롭게 만들게 됩니다. 결국 나중에 왕이 된 세자(경종)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장희빈과 장희재가 죽고 없어진 마당에 세자를 보호할 세력이 미약했기 때문이란 해석도 가능한 것이지요.

실제 경종은 왕이 되자마자 신하들의 압력에 못이겨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고 심지어 (후에 거두어지긴 했지만) 대리청정까지 맡기게 됩니다. 엄연히 젊은 왕이 있는데 동생에게 대리를 맡긴다? 허수아비 왕이란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연잉군이 임금에 오르고 난 후에 탕평책을 쓴 이유도 끊임없이 나도는 경종독살설에 대한 나름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영조 4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은 영조가 노론 일변도에서 소론 온건파와 나아가 남인까지 껴안는 정책을 취하도록 만들었지요.

그러나 과거에 입시한 선비들이 괴답안지를 제출해 영조의 경종독살설을 들추어 비난하는 사건이 있자 격노한 영조는 탕평책을 폐하고 다시 노론 일변도 정책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영조에게 그의 형인 경종의 죽음에 얽힌 논란은 두고두고 골칫거리였을 터입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며 연잉군과 세자의 우애를 본다는 것은 실로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작자는 일부러 그리 만든 것일까요? 참 얄궂기도 합니다. 동이는 인현왕후가 죽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숙종에게 장희빈을 고발했다고 합니다.

"전하. 희빈이 중전마마를 저주하기 위해 인형과 왕비마마의 패찰을 만들어 해괴한 짓을 하고 무당을 궐에 불러들여 굿을 벌였다 하옵니다."

'숙종은 이 말을 믿었을까? 그저 투기를 늘 가까이 의복에 달고 살 법한 후궁의 말 한마디에 세자의 모후요 한때 왕비의 자리에 있었던 희빈에게 사약을 내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아니면, 희빈이 동이에게 돌려준 인형과 여흥 민씨 패찰 그리고 무당의 자백 같은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일까?' 

장희빈보다 더 무서운 동이, 이미 대세는 끝났다 

드라마는 동이파가 장희빈파를 제거할 모든, 확고한, 완벽한 증험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만, 실제 당시 역사에서도 그랬던 것인지는 전혀 알려진 게 없습니다. 다만, 숙종이 숙빈 최씨의 말을 듣고 희빈을 의심하고 내쳤다고만 돼 있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진실성 여부를 떠나 무언가 장희빈을 제거할 준비들이 있었겠지요. 드라마에서는 그 일을 서용기와 차천수, 감찰부 궁녀들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론의 편에 서서 드라마 동이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희빈과 소론, 남인들이 억울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장희빈은 큰 실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페어플레이 정신이 투철하기로 자기 목을 겨눌 확실한 증험을 동이의 손에 다시 쥐어주다니요.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언제부터 장희빈이 그렇게 정직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즐기는 사람이었습니까.

저주의 인형과 죽은 왕비의 패찰을 동이에게 도로 돌려주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는 장희재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주의 인형을 화해의 손길이라며 장희빈에게 내어주는 동이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걸 다시 돌려주는 장희빈과 무반응 장희재는 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날 잡아 잡수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게다가 저는 매우 큰 배신감에 빠졌습니다. 아니 죽은 왕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으로 간주될지도 모를 저주의 인형이 무슨 장난감입니까? 아니, 진짜로 장난감이었던 모양이지요? 그냥 재미로 희빈과 동이가 둘이서 서로 한 번씩 가지고 놀아본.  

나중에 동이가 숙종에게 희빈의 비행을 고변할 때 이 인형과 패찰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죠. 거기에 희빈이나 취선당 나인들의 지문이 묻어있는 것도 아닐 테고. 혹 모르겠어요. 동이가 또 어떤 영험한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그걸 밝혀낼 지도…. 

또는 이 문제의 인형과 패찰은 이것으로 영원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만 제공한 걸로 만족하면서. 그럼 우리는 언제 그런 인형 따위가 있었냐며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겠죠. 그러나 어쨌거나, 이후에 어떤 결론이 나든, 저는 장희빈이 참 멍청하단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떻든 드라마상에서 그 인형은 장희빈의 범행을 입증할 유력한 증거물이거든요. 자기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고 벌을 받을 것이 아니라면 그런 불길한 증험들은 재빨리 불태워 없애버리는 게 상책 아닌가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고요? 원래 장희빈이 그렇게 정정당당한 사람이었다고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정정당당 장희빈 혹은 멍청한 장희빈?

제가 생각할 때도 우리가 알고 있는 장희빈은 많은 경우 왜곡된 측면이 많아 보입니다. 오히려 동이가 더 지독했을 수도 있어요. 그녀는 천민에서 정1품 빈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잖아요. 게다가 자기 아들을 왕의 자리에까지 앉혔죠. 이에 반해 장희빈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부잣집 딸로 편하게 살았던 여자죠.

아마도 그녀의 집안은 재벌가로 정치계에 돈을 대고 세력 꽤나 쓰는 그런 집안이었던 모양입니다. 숙종시대라면 이미 상권을 장악한 중인들이 상당한 세력을 떨치고 있던 시대였지요. 그나저나 거듭 죄송합니다. 예측이 빗나갔습니다. 희빈 손에 들어간 인형으로 인해 희빈이 궁지에 몰릴 거라는 예상.

그러나 인형을 다시 동이에게 돌려준 것은 명백한 실수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대목에서 멍청한 또는 정정당한 장희빈을 위해 축배를 들어야 할지 위로의 잔을 들어야 할지 헷갈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불태워버리고 말죠. 

네? 제가 정정당당하지 못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정정당당 장희빈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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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