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성회'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4.10.01 한국여성재단 ○○할 타이밍, 그게 뭘까요? by 파비 정부권 (1)
  2. 2014.10.01 2030, 한국여성재단과 함께 ○○할 타이밍! by 파비 정부권
  3. 2012.10.18 김진숙, 그녀의 무기는 직접 만든 똥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3)
  4. 2010.08.23 초딩 딸아이가 쓴 동화, 참 예술이네 by 파비 정부권 (3)
  5. 2009.04.13 봄소풍서 만난 새하얀 딸기꽃, 이렇게 예쁘다니 by 파비 정부권
  6. 2009.03.22 여성해방운동가 고 이경숙선생 회갑연에 다녀와서 by 파비 정부권 (2)

한국여성재단과 함께하는

2030 청년! OO할 타이밍!


 

-OO할 타이밍? 이건 어떤 프로그램이죠?

 

한국여성재단 후원으로 경남여성회는 청년모임을 지원합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지역에서 공익의 가치를 실편할 수 있는 청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햐결에 관심있는 청년, 세대 간 소통, 성평등, 청년세대의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의 모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죠  

 

경남여성회는 2013년과 2014년 총 15개 팀의 경남지역 청년모임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모임을 지원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임들 간의 네트워크를 활발히 하고, 사회 공익 환원을 위해 청년들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하고, 여성주의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함께 성장하였습니다.

 

 

-한국여성재단은 어떤 곳인가요?

1999년 12월, “우리 딸들의 밝은 새천년을 연다”는 가치를 내걸고 출범한 ‘여성을 위한 민간공익재단’ 입니다. ‘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가 바로 남녀 모두에게 미래를 약속하는 사회라는 믿음으로 양성평등을 사회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여성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필요한 여성들에게 생필품과 건강유지비 지원, 긴급자금대출, 결혼이주여성들의 제2의 고향 정착을 돕는 등의 여성복지사업과, 현장의 여성 공익활동가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사업들을 지원해 왔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을 키우고자 노력하는 곳입니다.

 

-경남여성회는 어떤 곳인가요?

경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단체 입니다. 1987년 출범 이후 여성권익 신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1. 쌈박한 사업설명회

 

 

 

2014년 4월 19일 토요일 사업설명회를 가졌습니다. 경남여성회와 8개 총 참가팀이 한 자리에 모였죠! 각 팀의 소개와 어떤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는지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창원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한 이 사업설명회는 "문화살롱"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예쁘고 데코된 다과와 밴드의 음악공연 그리고 카페의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개별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함께 네트워킹 하는 좋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총 8개의 팀이 2014년의 활동시작을 알렸습니다. 창작시나리오 모임인 1씬 1막, 워킹맘 모임 고.무.신, 문화예술 교육 모임 누리보듬, 창원대 아동가족학과 학생 모임 다.모.아, 성범죄인식개선 캠페인 모임 돈두댓, 독서토론 모임 첫페이지, 소셜 다이닝 모임 펀빌리지

 

 

이제 이 팀들은 본인들의 팀 운영에 맞는 9번의 모임과 1번의 세미나를 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지역 젋은이들의 소통과 교류, 양성평등 사회를 위한 고민, 지역과의 만남을 함께 생각해야 하죠! 

 

 

 

 

2. 중간워크샵

-활동내용 공유

-휴먼 라이브러리,

사람책 5인과의 특별한 만남

 

 

 

4월부터 10월까지 모임은 자유로운 형태로 진행되지만 의미있는 소통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7월 중 중간워크샵을 열어 다시 각팀의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각각의 팀이 어떤 활동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나누고, 함께 진행할 것들을 회의할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특강"을 듣고, 휴먼 라이브러리를 진행하였죠.

 

 

 

중간 워크샵에서 우리는 청춘도시락에 참여하는 2030리더들과 함께 휴먼라이브러리 시간을 가졌습니다. 휴먼라이브러리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일명 "사람책"이 되어 독자와 마주 앉아 자유롭게 대화하며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것으로, 독자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혼자 책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사람책"에게 깊이 있는 경험을 듣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경계를 넘어 만나는 이야기"


 

1삶의 이방인유수화

2망하지 않으려고 버틴다울랄라

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윤소영

4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유정

5그대에게 결혼이란?” 신미란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 서로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휴먼라이브러리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00할 타이밍을 진행함에 있어 휴먼라이브러리를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성 개인의 삶을 이야기 했다는 것, 자신의 정체성, 일, 직업, 육아, 공부, 결혼, 정말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민들을 풀어 놓고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성평등의 문제란 정말 가까이에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임을 알아가는 자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흩어지고 분산된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임을 알아간 시간이었습니다.

 

 

  

3. 이제 최종워크샵이 

남았습니다


oo할 타이밍은 지역 내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2030 젊은 리더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주축이 되는 활동 모임을 지속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일상에서의 성평등의식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재미있고 창의적인 공익활동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시작한 모임입니다. 2014년 현재 8개팀 그리고 그 팀의 참가자 약 60여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열정있는 젊은 청춘들을 찾아내어 서로 네트워크 할 수 있게 지원하고 그들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성평등사회조성과 인권향상을 위한 실천으로 연결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응원과, 공익활동을 하는 한국여성재단에도 많은 격려 부탁립니다.

그리고 2015년에도 이런 활동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한국여성재단과 함께하는

2030 청년! OO할 타이밍!

 

 1. 팀 소개

 

 11공공미디어 단잠에서 진행한 시나리오와 희곡쓰기 역량강화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후속모임으로 모여서 작품을 토론하거나, 연극을 함께 감상하거나,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통해 배움을 지속하고 배움을 나누고 공감하고자 하고 있다.  

다양한 나이와 세대의 경험을 나누면서 인권감수성, 세대공감의 지평을 넓히며 풍부한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 . 고된 무지한 초보엄마들이 뭉쳐 신나는 육아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엄마들의 모임입니다. 비슷한 또래 아기들을 키우는 첫째 엄마들이고, 워킹맘 2명과 전업주부 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동육아를 지향하여 초보아빠 5명까지 총 10명으로 구성된 팀입니다.

 

 누리보듬 저희 팀은 청소년 교육 및 문화예술의 각 전문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과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 및 운영해 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남 내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면서 현재 경남 지역의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 청소년에 대한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저희가 가진 재능을 나눔으로써 경남지역의 청소년들이 조금이나마 꿈과 희망을 갖기를 바라며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다모아 반갑습니다! 저희는 창원대학교 가족복지학과 내에 있는 학과 동아리 쉼표아동복지연구실입니다. 저희는 2012년에 결성된 동아리로써 우리 지역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는 모든 아동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결성되었습니다.

 

돈두댓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20대 남녀들입니다.

한국사회가 잘못된 성인식으로 인해 성범죄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가해자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많이 보입니다. 피해자를 온전한 피해자로, 가해자를 가해자로 바로 바라보아 성범죄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이 당당히 세상에 설 수 있길 바랍니다.

 

 

두드림 대학생활의 대부분이 술을 마신다든지 의미 없는 생활을 많이 하고 그에 따라서 무계획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이기에 자신들의 재능을 개발하고 상담을 통해서 미래의 진로를 설정하고자 테라피 카페, 런닝맨, 밴드, 뮤지컬 등을 통해서 의미 있는 20대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의 팀입니다.

 

 

첫페이지 사회곳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청년들이 책이 좋아 모였습니다

책이라는 창으로 다른 이의 취향을 들여다보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소통합니다. 책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반성의 시간도 가지고 남의 삶을 공감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각자 삶의 생기를 찾는 것이 활동의 목표입니다

 

 

펀빌리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어지도록 매월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입니다.

- ‘밥하기여자가 해야 하는 성역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 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밥하기남자가 도와줘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2. 활동사진

 

11

 

 

 

 

 

. .

 

 

 

 

 

 

누리보듬

 

 

 

 

 

다모아

 

 

 

 

 

돈두댓

 

 

 

 

 

두드림

 

 

 

 

 

첫페이지

 

 

 

펀빌리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진숙씨를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에 온 사람들을 향해 타워크레인에 높이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를 보기도 했고, <소금꽃나무>란 책을 통해서도 그녀를 보았고, 최근엔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그녀의 사진을 통해서도 그녀를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물론 지면을 통해서 그녀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워낙 강성한 이미지 탓에 적이 놀랐다) 자그마한 체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기대한 그대로였다. 우렁우렁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당찬 목소리였다.

그녀는 천부적인 말꾼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3대 구라로 백기완, 황석영 등을 말하지만, 그녀야말로 구라 중에 구라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강연은 매우 유쾌했다. 우선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연신 그녀의 코미디 같은 연설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저 웃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그녀는 유도했다. 아니 유도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웃음이었다는 것이 옳겠다. 그녀의 말솜씨는 개콘의 그 어떤 개그맨보다도 뛰어난, 더 웃긴 구석이 있는 구라였으므로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이었다.

▲ 경남여성회 강당(남산복지회관)에서 열린 김진숙 초청 강연회. 제목은 <여성과 정치>. 10월 17일 오후 5시부터 7시.

그러나 나는 눈물이 났다. 1주일 전에 입은 교통사고로 꿰맨 안면부위가 다 낫지 않아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므로 크게 표가 나지 않았던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일부러 안경을 꺼내 써보기도 하고 남 모르게 슬쩍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물론 내가 남들보다 좀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그래서 연속극을 보다가도 곧잘 우는 사람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게 무어람? 이렇게 유쾌하고 통쾌하고 재미있는 강연에 눈물이 흘러내리다니.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이 이 강연을 직접 들었다면 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너무나 재미있는 그녀의 말 속에는 너무나 슬프고도 애달픈 사연들이 분노의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한때 이른바 귀족노조의 조합원이었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23명이나 죽어나자빠져야 했던 사연이, 12시간 맞교대에 가족들에게도 잊혀진 존재가 되어 한해 20명씩 과로사로 나자빠져야 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사연이, 사상 최고의 흑자에도 정리해고의 칼바람을 맞아야 했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사연이,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아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애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얼마 전에 독일에 다녀왔다고 했다. 독일은 주당 근로시간이 33시간이다. 독일은 이미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에 주당 48시간 노동제가 정착된 나라다. 우리나라도 법적으로는 주당 노동시간이 48시간이다. 그러나 48시간 노동제가 지켜지고 있는가?

정규직은 몰라도 천만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48시간 노동제는 책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그들에게 그런 것은 없다. 법정최저임금제도? 그것도 책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실상은 매년 국가가 정하는 법정최저임금이 바로 법정최고임금이 되는 것이다. 한 나라가 선진국인가 아닌가는 그 나라의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보면 안다고 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아니며 후진국이라고 불러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김진숙씨는 독일을 떠나기 전에 지인들에게 선물을 해줄 요량으로 볼펜을 사기 위해 상점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놀러갔던 것이 아니므로 낮에 일과를 보고 저녁에 사려고 하니 모두 문을 닫고 파는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말에 따르면,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도 존중해주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주말엔 교통비가 싸진다고 했다(우리는 반대로 주말에 뭐든 비싸다). 평일에 일할 거 일 하고 놀 거 다 놀고 주말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쉬는 것이다. 문만 열면 공원이 펼쳐져 있으니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독일놈들, 정말 놀 줄 아는 민족인가보다.

그녀는 (물론 농담이었을 테지만) 한국여자들 조사해보면 대개가 독일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할 거라고(혹은 한다고) 말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을 웃겼다. 아, 말이 나온 김에 그녀의 독일여행 에피소드 하나만 더 소개하도록 하자.

김진숙씨를 비롯한 일행들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우리나라에서처럼 폴리차이(경찰)가 출동했다. 봉고차 비슷한 차량에 한 열 명 정도가 출동했는데, 반은 정복차림의 경찰관들이었고 반은 반바지 같은 편한 복장을 한 이른바 사복경찰이었다. 음, 여기도 우리하고 똑같구나. 집회를 여니 곧바로 경찰이 출동하는구먼.

“뭐 불편하신 건 없습니까?” 경찰이 물었다. “그래, 당신들이 불편합니다.” “당신들이 우릴 불편해해도 우린 떠날 수가 없습니다. 당신들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 임뭅니다. 혹시 당신들의 집회에 불만을 품고 방해하거나 해를 입히려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불편합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길 건너 저편에 서서 집회가 끝날 때까지 이쪽을 지켜보기로 했던 모양이다.

경찰들은 모두 줄 지어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집회가 끝나자 마치 ‘빠이빠이’ 하는 모양으로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이쪽도 함께 ‘빠이빠이’ 해주었음은 물론이다. 실로 한국에선 결코 상상하기 어려운 경찰과 집회현장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이었다.

독일이라고 해서 경찰의 무력진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 각국의 시위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경우를 우리는 가끔 본다. 하지만 이들이 쌍용자동차 노조 진압장면 사진을 보고 하는 말을 들어보면 우리가 얼마나 별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 훌리건이냐?” 하얀 화이바를 쓰고 몽둥이를 든 경찰특공대를 일러 하는 말이다. “저들은 테러범이냐?”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일러 하는 말이다. 이 대화에는 물론 농담이 섞여있었을 테지만 그러나 진실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가 테러범이거나 경찰이 테러범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이명박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교민사회에서 시위를 했다. 경호원들이 이들을 제지하며 끌어내자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아니라 경호원들을 잡아갔다. 당황하는 그들을 향해 폴리차이가 말했다. “당신들은 집회신고를 하고 정당하게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방해했으니 범법자요.” 신문에도 났으니 모두 아는 이야기다.

아무튼, 김진숙씨는 이런 슬픈 이야기들을 매우 유쾌하게 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강연이 열리고 있는 경남여성회 강당(남산복지회관)엔 웃음이 넘쳐났다. 나도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려 고생하긴 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김진숙씨는 정말이지 대단한 연설가였다.

아마도 만 명을 앞에 모아놓고도 얼마든지 울리고 웃길 수 있는 능력이 그녀에게 있지 싶었다. 그녀는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하기 전에 부산에서 버스안내양을 몇 년 했었다. 요즘 하동 등지의 지자체에서 ‘추억의 안내양’이란 이름을 달고 부활하고 있기도 하지만, 실제 버스안내양(그 전엔 버스차장이라 불렀다)의 인생이란 것은 막장 중에 막장이었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버스 문고리를 잡고 삐죽이 튀어나온 승객의 엉덩이를 아랫배로 힘차게 밀어 넣으며 한손으로 버스 옆구리를 탕탕 두드리면서 “오라이” 하고 외치는 추억의 버스안내양을 상상해보라. 가만 생각해보니 그녀가 부산에서 버스안내양을 하던 시절, 나는 부산에서 스포츠머리를 한 학생이었으니 어쩌면 그녀와 내가 한번쯤은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삐죽이 튀어나온 내 엉덩이를 그녀의 아랫배가 밀어붙였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런 그녀가 한진중공업에서 용접공으로 배 만드는 일을 하다 해고되고, 노동운동가가 되고,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되고, 수백 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309일 동안을 버티다 내려왔다. 

309일 동안 끊임없이 그녀를 끌어내리기 위해 공격해오는 용역과 경찰들을 그녀는 어떻게 막았을까? 똥이었단다. 직접 만든 똥. 타워크레인에 고립된 한명의 여자를 공격하다 똥을 얻어맞고 후퇴하는 건장한 용역들을 상상해보라. 그야말로 완벽한 농성에 대책없는 공성이다. 

연약한 여자의 몸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제조되는 무기생산을 막기 위해 타워크레인에 식사공급을 중단시켰다니……, 실로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떡대 같은 용역과 경찰들의 공성작전을 혼자 몸으로 막아내고 훌륭하게 농성을 성공시켰다.  건강한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경남여성회 강당의 메인 벽에 붙여진 강연회 제목을 보니 ‘정치와 여성’이다. 여성이 정치한다는 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김진숙씨이야말로 제대로 정치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누구보다 존경받는, 누구도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을 해낸 그 용기야말로 가장 훌륭한 여성정치의 모범을 선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요즘 박근혜씨가 여성정치인으로 그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박근혜씨가 김진숙씨였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청와대 금고의 돈도 없고, 남에게 빼앗은 장학회의 이사장 자리도 없이 그야말로 적수공권으로 찬바람 씽씽 부는 영도다리 위에 선 가난한 한 여자에 불과했다면, 그녀는 버스차장도 하고 선박용접도 하면서 노동운동가의 길로 갈 수 있었을까?

쓸 데 없는 상상이지만 그리 생각하니 과연 김진숙씨야말로 대단한 여성이요 정치인이다. 그녀가 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인 것이다. 김진숙씨는 10월 17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여성회 강당에서 강연을 마친 후 8시부터 시작하는 강연회를 위해 곧바로 창원대학교로 떠났다. 바쁜 하루였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역시 오늘 아침에도 별로 올릴 만한 소재가 없어서 우리 딸아이가 쓴 이야기를 맞춤법, 띄어쓰기 이런 거 가급적이면 안 고치고 그대로 올릴까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딸아이는 스타 기질이 있어 제 사진과 글 기타 자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올리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엊그제도 자기가 쓴 시를 올려주었더니 모른 척 하면서도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자못 볼 만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올리기 전에도 "얘, 엊그제 네가 쓴 시 올렸더니 사람들이 굉장히 좋다고 하더라. 너 진짜 유명해지겠다!" 했더니, 금세 입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초딩 딸이 쓴 시, 정말 예술이네

아래의 글도 역시 창원시 합포구 진전면 미천마을에 사는 송창우 시인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개설한 독서캠프에서 배운 결과입니다. 독서캠프는 아마도 경남여성회가 주최해서 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창우 시인은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이라 그런지 효과가 만점인 것 같습니다. 

언제 우리 경남블로그공동체에도 모셔서 글쓰기 강의를 한 번 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물론 회원님들의 생각을 들어봐야겠지만요. 

어느날 노랑애벌레는 길을 꿈틀꿈틀 기어 가다가 꽃밭을 보았다. 그 꽃밭은 유채꽃밭이었다. 하지만 아이큐가 낮은 노랑 애벌레는 그 꽃이 무슨 꽃인지 몰랐다. 그래서 날아가는 나비들에게 물었다. "저 꽃이 무슨 꽃이야?"

꽃에 대해 잘 알던 나비는 "유채꽃이야!" 하고 말했다. 그 나비가 말을 하였다. "너도 나비가 되면 저 꽃에 있는 꿀을 먹을 수 있을 거야." 라고 하며 꽃밭으로 날아갔다. 노랑애벌레는 빨리 나비가 되고 싶었다. 왜냐하면 노랑애벌레는 빨리 꿀을 먹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노랑애벌레는 사람들이 하던 얘기를 들었다. 4살 정도 되는 어린애가 자기 언니에게 물었다. "컴퓨터가 뭐야?" 노랑애벌레는 귀가 솔깃해졌다. "컴퓨터는 정보를 저장하고 정보를 알게 해주는 기계야" 하고 말했다. 노랑애벌레는 새로운 걸 알고나니 기분이 좋았다.


   
꿀이 먹고 싶어 나비가 되고 싶었던 노랑 애벌레가 마지막에 왜 갑자기 컴퓨터를 알고서 기분이 좋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우 기특했습니다. 이제 열살 짜리 꼬마치곤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기억엔 저는 저 나이 때 이런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글을 쓰는 요령으로 '꽃밭', '나비', '유채꽃', '길', '컴퓨터' 같은 단어를 미리 고르도록 하여 300자 이내로 글짓기를 하도록 시킨 모양이입니다. 그러고 보니 300자 이내에 앞에 열거된 낱말들을 이용하여 글을 짓는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아, 이거 제가 딸 자랑이 너무 도가 넘어 깊은 산골짝으로 들어서고 있군요.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정도로 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지막이 좀 아쉽습니다. 나비가 되지 않더라도 컴퓨터를 통해 꿀을 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걸 알면서 끝났으면 노랑 애벌레가 한결 행복했을 텐데요.

네, 과제의 제목을 보니 <강제 연결>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강제 연결이라…, 아무튼 저는 처음 듣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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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 꽃은 딸기꽃이랍니다. 저도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예쁘군요. 딸기꽃이 이렇게 예쁘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새하얀 것이 꼭 분단장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이처럼 하얀 빛깔은 처음입니다. 딸기꽃은 그 새하얀 빛깔처럼 마음씨도 곱디 곱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자동모드에서만 카메라 운용이 가능한 초보 사진사에게도 이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선물했으니 말입니다. 제가 보아도 참 예쁩니다. 
   

하얀 딸기꽃, 꽃이 떨어지면 거기엔 빨간 딸기가 자란다.


우리는 딸기의 그 상큼하고 달콤한 맛만 기억할 뿐 꽃의 노고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딸기의 그 붉은 아름다움만 칭송할 뿐 그처럼 하얗게 빛나는 헌신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득 딸기밭에서 발견한 하이얀 빛깔의 딸기꽃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빨간색 딸기가 이렇듯 새하얀 꽃으로부터 왔다는 걸 왜 여태껏 모르고 살았을까요?
 

          
딸기꽃이 이토록 하얗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경남여성회(회장 이경옥)는 의령의 한 딸기밭으로 봄소풍을 갔습니다. 물론 저도 따라갔으니까 이렇게 사진을 찍어왔겠지요. 글쎄, 남자라고는 저 말고 다른 어떤 분 해서 딱 두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흑이점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나 그 다른 흑일점과는 인사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온통 여자들 틈에 끼여서 긴장했던 탓인가 봅니다. 정말 불안하더군요. 이거 괜히 따라왔다는…. 

그러나 딸기가 지천으로 널린 딸기밭에 들어서니 긴장감도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은 향긋하고 상큼한 딸기 특유의 향으로 가득했습니다. 입에 하나 소쿠리에 하나, 다시 입에 하나 소쿠리에 하나…. 밭에서 바로 따먹는 딸기의 맛과 향이라니… 그 싱그러운 맛을 어떻게 시장에서 사 먹는 딸기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서너 살배기로 보이는 꼬마아이도 딸기를 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딸 때는 신이 났는데 막상 바구니가 가득 차니 무거워서 울고 있는 걸까요? 

딸기가 주렁주렁 열린 딸기밭에는 하얀 딸기꽃도 지천으로 피어있었습니다. 꽃이 떨어지면 거기에 또다시 딸기가 열릴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이렇게 소쿠리를 들고 딸기를 따겠지요. 잘 익은 딸기를 빨리 따 주어야 새로 꽃에서 나온 어린 딸기들이 영양분을 충분히 받아 먹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빨갛게 익은 탐스러운 딸기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하얀 딸기꽃은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꽃은 애처로울 만치 너무나 자그마했습니다. 그러니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딸기들 틈에서 그리 관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가만히 앉아 그 자태를 한참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하얀 빛깔에서 솟아나오는 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답니다. 그러고 나서는 아마도 이렇게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 꽃이 정말 예쁘구나. 어쩜 이리도 하얀 것에서 저리도 빨간 딸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  

바로 아래에 보이는 사진은 수박꽃입니다. 넝쿨 속에 숨어있는 어린 수박이 꼭 호박 같군요.
 
















딸기밭에서 딸기도 실컷 먹고 가져가기도 힘들 만큼 잔뜩 소쿠리며 봉다리에 딸기를 담아둔 사람들은 바로 옆 강변 제방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쑥도 캤습니다. 파릇파릇한 쑥들이 제법 토실토실합니다. 그리고 나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배가 불러진 사람들은 인근에 있는 충익사로 자리를 옮겨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바로 위 오른쪽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별미로 수제비를 만들어 점심에 보탰는데 솥에 수제비 뜯어 넣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수제비 뜯어넣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던가 봅니다. 결국 수제비는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딸기밭에서 수확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드시

뒷편에 보이는 우리나라 최고수령 280년짜리 모과나무

라고 남겨두고 왔답니다.  

충익사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맞아 백전백승의 전과를 올린 홍의장군 곽재우를 모신 사당입니다. 곽재우 장군은 선조임금이 그 공을 치하하여 수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고 자신의 호인 망우당을 딴 망우정에서 은거하다 1617년 돌아가셨습니다. 

곽재우 장군은 남명 조식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1585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 내용이 왕의 미움을 사 합격이 취소된 후 관직에 나갈 뜻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 장군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 나갔고 또 임금이 내린 벼슬을 모두 사양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좌안동 우함양’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낙동강 동쪽 안동의 퇴계선생과 더불어 낙동강 서쪽에는 함양에 남명선생이 있다는 것을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관념적이던 당시 사조와 비교해 실천적인 학풍을 중시한 것으로 평가 받는 남명의 제자들은 임진왜란을 맞아 가장 많은 의병장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이 정인홍을 비롯한 남명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 북인(동인의 파당)들이 전후에 집권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유적지 설명을 여성회 박은미 선생님이 해주셨는데 아이들은 열심히 듣는데 어른들은 그저 건성이군요.
충익사를 다 둘러보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아직 버스가 오려면 한 시간도 더 기다려야 한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즉석에서 놀이를 만들어 신나게 놀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빙 둘러 서서 자기들끼리 무슨 강강수월래 비슷한 걸 하며 재미나게 놀기 시작하자, 아이들도 저희들끼리 닭싸움을 하며 잘도 놉니다. 요즘 애들도 닭싸움을 할 줄 아는군요.

그리고 나중에는 어른 아이들이 모두 모여 두 편으로 갈라 상대편 풍선 터트리기 시합도 하고 둘이서 풍선을 안고 이어달리기도 했습니다. 아래 보이는 사진은 처음에는 바닥에 신문지를 3장을 깔고 그 위에 팀원들이 올라갔다가 차츰 한 장씩 빼고 올라가는 게임입니다.
  














풍선게임을 하려고 모두들 풍선을 하나씩 불어 만들었는데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풍선이 이리저리 날아가고 아이들은 풍선을 쫓아 달리고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돌발상황이 즐거운가 봅니다. 어쩌면 이런 예기치 못한 돌연한 재미도 야외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겠지요.

마지막 게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옷이든 손수건이든 양말이든 무엇이든 모두 벗어 줄을 길게 만드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습니다. 물론 정해진 시간 내에 말입니다. 어느 팀이 협동심과 동료애가 더 뛰어난지를 겨루는 시합 같기도 했습니다. 길게 늘어져 가는 줄이 재미있었습니다. 참고로 아래 사진에서 그 기다란 줄을 넘어 가는 어린 친구는 양팀 어느 쪽과도 관련이 없는 아이입니다. 지나가기를 기다려 셔터를 눌렀건만 꼬리가 잡히고 말았군요.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사람들을 싣고 갈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출렁다리를 건너가야 합니다. 충익사에서 출렁다리 쪽으로 난 약 2백여 미터의 길에는 붉게 핀 꽃나무가 늘어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오른편으로 흐르는 강줄기가 시원합니다. 그런데 출렁다리 앞에 오니 건너갈 일이 막막합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게 천길 낭떠러지(?)가 바로 이런 건가 봅니다. 그냥 출렁다리가 아니라 ‘공포의’ 출렁다리였습니다. 

저는 원래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망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크게 마음 먹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진퇴양난이군요.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다리 한가운데 서니 마치 다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멋진 사진을 남기기 위해 제일 먼저 다리에 올라온 저는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가지 바람에 흔들리는 출렁다리에 남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맨 마지막 사진 다리 아래를 자세히 보시면 저 아래 무섭게 흘러가는 강물이 보인답니다.

그 사진에서 출렁다리 아래를 쳐다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씩씩하게 걸어오시는 분이 또 다른 흑일점입니다. 매우 잘 생긴 젊은 분이었는데 총각인 줄 알았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그와는 대화를 한 번도 못해 보았으므로 이름도 성도 모릅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유적지 설명도 해주시고 행사도 진행하시던 그 선생님께서 저에게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보며 마이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리 대답했답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고요. 좋은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잘 보살펴 주세요.”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여성들은 놀 때도 참으로 생산적으로 노는구나. 딸기 따고, 쑥도 캐고 그리고 곽재우 장군의 호국의 현장 답사도 하고… 아이들에게 교육도 되고, 신나게 잘 놀고…” 뭐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하여튼 딸기꽃이 그렇게 예쁜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답니다. 게다가 그렇게 빛깔이 새하얄 줄은 더욱 몰랐지요. 정말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우리집 냉장고에는 아직도 딸기가 그득합니다. 저와 함께 이 글을 적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에서도 딸기 냄새가 흘러나오는 듯하군요. 역시 과일은 딸기가 최고입니다. 아 참, 딸기는 과일이 아니죠, 그럼 채소인가? 딸기가 과일입니까, 채소입니까? 갑자기 헛갈리네요. 빠알간 딸기향에 취했나 봅니다.         파비































【보너스 퀴즈】돌아오는 차 안에서 풀었던 퀴즈 중 몇 문제입니다. 맞추는 어린이에겐 당연히 상품이 증정되었고요. 시간 있으신 분은 한 번 풀어보세요.

1.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켰던 사람은 (       )장군이다.
2. 당시 곽재우 장군이 참여했던 전쟁은 1592년 일본군이 쳐들어온 (    )왜란이다.
3. 곽재우 장군의 호는 (       )이다.
4. 충익사는 경상남도 (    )군에 자리하고 있다.
5. 충익사 내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    )나무가 있다.
6. 주관식 문제 : 곽재우 장군을 왜 홍의 장군이라고 할까요? 
★ 그러고 보니 오늘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날이네요. 1592년 4월 13일.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어떤 분의 회갑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답니다. 오늘 회갑연의 주인은 이미 5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기이한 회갑연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 잔치의 주인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세상을 하직하고서도 남은 사람들에게 모여 떡과 고기를 나누게 하는 그 뜻이 실로 갸륵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잔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고 경숙 선생입니다.

 

 이경숙 선생은 5년 전 갑작스런 급성심부전증 발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그야말로 느닷없는 그이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청천벽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당시에 많은 이들이 실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경숙 선생에 대하여 특별히 남다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이를 사모하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수많은 계절이 옷을 갈아입었음에도 잊지 않고 모여 함께 떡과 고기를 나누며 선생의 회갑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다른 이들처럼 이경숙 선생과 함께 어떤 사업을 해보거나 활동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이의 평소 신념이나 지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이의 온화한 모습에서 늘 위안을 받고 생기를 얻었던 기억으로부터 어떤 신조나 논리보다도 강렬한 선생의 삶을 느낍니다.

 

그이는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오로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선 봉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은 고결한 수녀가 걸어가는 길과는 또 다른 길이었습니다. 가톨릭 신도이기도 했던 그이는 신에게 봉사하는 대신에 가난하고 핍박 받는 민중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결실 중에 하나가 오늘날 마창여성노동자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남여성회도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놓고 떡과 고기를 나누는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결실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이와 처음 인연을 맺게 해준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곡에 있는 그이의 아파트였습니다. 거의 이십 년 전쯤에 저는 수배된 오갈 데 없는 노동자였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무척 어리거나 젊었습니다. 아마 스물 다섯이나 여섯쯤 되었을 겁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수배되거나 해고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어서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어느 사업장에 누군가가 해고 또는 수배되었다고 하면 , 거기도 드디어 배자가 하나 떴군!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참 어리거나 젊거나 혹은 여리디 여린 제게는 무서운 일이었지요.

 

당시엔 수배자는 배자, 해고자는 고자라는 은어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산과 창원의 배자와 고자들은 주마다 한 번씩 모여 회합을 가졌는데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하고 우루과이 라운드(그게 WTO가 됐다가 요즘은 한미FT에다 미국산 쇠고기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원흉쯤 되겠는데, 모두들 잊어버린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지요.)에 대해 토론회를 벌이기도 하면서 친목을 다지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그때 그 장소로 이경숙 선생의 아파트가 가끔 이용되었습니다. 따사로운 봄날 4층인지 5층인지 아파트 거실 전축 턴테이블에 올려진 양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클래식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물론 대부분은 저 같은 센치맨과 달라서 빨리 판 갈라고 성화를 부렸지만 말입니다
 

 
그이가 경남여성회 회장으로 계실 때, 저는 마침 남산복지회관(경남여성회) 인근에 살고 있었으며 제 아내가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자주 갔었는데 갈 때마다 따뜻한 커피(원두로 만든)를 내주며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이거 굉장히 맛있는 거야. 어서 먹어봐! 하는 식이었지요.  

 

그이는 제 아들녀석 생일도 잊지 않고 챙겨주시던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바쁜 중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끔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도민사격장 인근의 두부요리집은 요즘도 장사가 잘 되는지 어쩌다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이의 무덤에 새겨진 것처럼 여성해방운동가이기도 하고 노동운동가이기도 했던 삶의 치열함이 언제나 그렇게 온화하고 다정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 모습만이 지금 눈에 선합니다.

 

그이의 업적에 대하여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삶을, 가족과 행복하게 보내어야 할 일생의 모든 시간들을 여성노동자들과 부조리한 세상을 혁파하는 일에 바친 그 삶이 이미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으니까요. 다만 저는 그이와 가졌던 다정하고 즐거웠던 그래서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해보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벌써 이경숙 선생의 회갑이었군요.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즐겁게 모여 담소하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그이도 틀림없이 하늘나라에서 기뻐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가을, 가족과 함께 그이의 무덤에 다녀오며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가시고 나서도 좋은 일만하시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묻혀계신데다가 바로 앞에는 국민관광지 통도사까지 있으니… 선생님을 뵙고 나서 관광 삼아 통도사 구경하면 딱 좋겠구먼….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나중에는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의 기일에 찾았던 통도사를 가득 메운 붉은 소나무들의 키가 유난히 훌쩍 크고 우람했습니다.        파비

 

이경숙 선생 약력   ▷ 충남 공주군 정안면 북계리에서 6남매 가운데 막내로 출생 (1949년 음력 2월 26일생)
                            ▷ 마산가톨릭여성회관 및 가톨릭노동문제상담소 근무 (1981년~1991년)
                            ▷ 마산창원 여성노동자회 초대, 2대 회장 역임(1992년~1996년)
                            ▷ 경남여성회 회장 역임(2000년~2002년)
                            ▷ 경상남도의회 의원(2002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 경남도의회 교육사회위원/농수산위원/여성특위 위원장 역임
                            ▷ 과로로 인한 급성심부전증으로 사망 (2004년 9월 3일)
                            ▷ 공주여고/서울여대/경남대 행정대학원 졸업
                            ▷ 경남도민일보 이사/ 경남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마창진 참여자치연대 공동대표/
                                경남
여성회 회장/ 마창여성노동자회 회장/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 노동사회교육원 外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