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1.15 수능 다음날 열린 입시폐지대학평준화 자전거대회 by 파비 정부권 (10)
  2. 2009.08.13 박물관유물로 둘러쌓인 국민교육헌장의 추억 by 파비 정부권 (6)
  3. 2009.07.02 공무원이 주민들에게 뿔난 사연, "에이 분위기 안 좋네" by 파비 정부권 (16)
11월 14일 토요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마산지회에서 주최하는 <대학평준화와 입시폐지를 위한 자전거대회>가 열렸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출전했습니다. 가만, 참여가 맞습니까, 출전이 맞습니까? 참여든 출전이든 이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전날 비바람이 많이 불어 걱정했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화창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강화도에 있던 아내의 말에 의하면 거긴 무척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역시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코스는 경남대를 출발해 창원대가 종착점입니다. 20여 km쯤 될 거 같은데요. 꽤 먼 거리입니다. 출발 대기하고 있습니다.

맨 앞에 보이는 사람은 저의 친구인 허윤영입니다. 그리고 뒤에 전교조 마산지회 전 지회장님도 보이시는군요.


이 친구는 우리 아들입니다. 내년에 중학교 들어갑니다. 얼마 전에 중학교 어디로 가고 싶은지 써오라고 학교에서 지망서를 받아왔더군요. 월포초등학교는 해운중학교, 마산서중, 마산중학교 이렇게 세 군데였습니다. 그런데 우리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가 벌써 1. 해운중학교, 2. 마산서중, 3. 마산중학교, 이렇게 답을 달아놓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어보았죠. "너는 해운중학교 가고 싶나?"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거기가 머리도 좀 기를 수 있고, 애들도 덜 괴롭힌다고 하던데. 마산서중은 교복도 안 멋있고, 머리도 짦게 깍고, 공부도 많이 시키고, 엄청 괴롭힌다고 하더라." 저야 뭐 해운중을 가든 마산서중을 가든 마중을 가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제가 다닐 것도 아닌데…. 

그래도 개인적으로 제 의견을 묻는다면, 저는 교복이 멋있는 학교를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만. 흐흐, 부모가 되어 가지고 좀 거시기 한가요?    


경남대를 출발한 <대학평준화와 입시폐지를 위한 자전거대회> 행렬은 마산어시장을 거쳐 불종거리와 육호광장을 지났습니다. 선도차량에서는 끊임없이 왜 대학을 평준화해야 하며 입시를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시민홍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파리 1대학, 2대학, 3대학 하는 식으로 모든 대학들이 통합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나라 대학들이 우리나라 대학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던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대학들이 그 나라 대학들의 발가락 근처에도 못가죠. 최근 <미녀들의 수다>에서 나온 루저 발언으로 세상이 시끌벅적합니다. 그 발언을 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유수한 대학의 여대생이었습니다. 

저도 그 방송을 보았습니다만, 루저 발언만이 문제였던 것은 아닙니다. 서울대를 비롯해 연고대, 한양대, 인하대, 경기대 등 서울의 각 대학에서 차출된 여대생들이 하는 발언이란 한심 그 자체였습니다. 여대생들이 명품을 사용하는 것, 화장에 몇 시간씩 공을 들이는 것을 자랑하고 옹호하지를 않나…. 

에혀~ 한국의 여대생 중 하나가 미수다에 출연하는 외국인 미녀(?)에게 물었습니다. "왜 외국의 여대생들은 백팩을 메고 다니나요? 우리나라에 유학 와서도 그러던데 꼭 등산가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자 외국인 미녀가 거꾸로 이렇게 물었지요. "나는 이해가 안 돼요. 한국의 여대생들은 어떻게 그 많은 책과 공부 도구들을 핸드백에 다 넣고 다닐 수 있죠?" 

ㅋㅋ 저, 그 소리 듣고 넘어가는 줄 알았답니다. 이게 현실이죠.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기 위해 사교육으로 부모님 등골 다 빼놓고 대학 들어가서는 고작 하는 일이란 게 명품 핸드백 사서 어깨에 걸고 다니는 이 참담한 현실. 루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장시간 화장에 공 들이고 명품 쓰는 걸 자랑이라고…

그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외국인 미녀들을 설득 시키려고 진땀을 빼는 한국 여대생들… 아유~ 머리 아파. 루저파동으로 미수다 제작진이 전격 교체되는 등 진통을 겪고 있지만, 저는 그래도 <미수다>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온 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한심한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이번 루저파동을 불러온 한국 여대생들의 모습을 통해 저는 역설적으로 대학평준화, 입시폐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답니다. 저는 무상교육이 이를 실현할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부자들에게 깎아준 수백억대의 세금과 4대강 정비사업에 퍼붓는 20조원이면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고 하더군요.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샜습니다. 아무튼 대학평준화, 입시폐지, 이거 꼭 돼야 되겠습니다. 아이들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고, 부모들 등골도 이제 그만 좀 빼고. 이건 단순히 교육정상화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그리 되면 살림살이도 훨씬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자, 행렬이 육호광장을 지나 석전사거리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 친구가 지나가며 V를 그려주고 있군요.


양태인 선생님입니다. 해운중학교 국어선생님이라던데요. 경남도민일보에 칼럼도 쓰셨지요.


석전사거리를 지난 행렬은 마산역과 합성동을 지나 창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창원역을 지나 명곡대로를 한참 달리자 멀리 시티세븐이 보이는군요. 저기서 좌회전 하면 창원대학교가 코앞입니다.  


마산과 창원은 시가지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언제 마산에서 창원으로 넘어왔는지 느낌이 없습니다. 그러나 창원으로 들어와서 한참을 달리다 보면 '아, 여기가 창원이구나!' 하고 곧 느끼게 됩니다. 창원은 색깔이 있는 도시였습니다. 도로변에 줄지어선 나무들에선 마지막 불타는 가을이 완연했습니다. 

회색으로 칙칙하던 마산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대열이 마침내 창원대학교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슬로건을 단 후미차량이 따라오고 있었군요.


창원대학교 앞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학평준화와 입시폐지를 위한 자전거대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들 녀석은 무언가 2% 부족한 모양입니다. 여기서 다시 경남대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하여간 애들이란. "가려면 너 혼자 가." "내 자전거를 타고 왔으면 나 혼자 갈 수 있는데."

우리가 타고 온 자전거는 행사주최 측에서 대여해준 자전겁니다. 뒤에 보이는 트럭이 이 자전거들을 다시 싣고 갈 차랍니다.


11시에 출발해서 1시쯤 도착했으니 두 시간쯤 걸렸습니다. 선도차량이 천천히 인도하는 바람에 우리 아들은 신나게 달리는 쾌감을 즐기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2% 부족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는 죽겠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뻗어 잤습니다. 저녁에 일어나니 몸살기가 있습니다. 팔다리도 아프고 오한도 납니다. 

척추수술을 한 이후로 무리하게 힘을 쓰면 가끔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목도 아픈 것이 좀 걱정됩니다. 기침도 나고요. 요새는 기침도 함부로 못하겠더라고요. "너 혹시 신종플루 아냐?" 하고 의심할까봐서요. 대림자동차 앞 농성장에도 가봐야 하지만, 부어오른 목은 가라앉히고 가야겠지요.

대림자동차는 지금 절반에 달하는 종업원들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회사방침에 맞서 농성을 하고 있는데요. 엊그제 정문에서 민생민주회의와 진보신당이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고요. 진보신당은 아예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고 하네요. 제 2의 쌍용차 사태가 날까봐 걱정입니다.  

아무튼 자전거대회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매일 틈난 나면 자기 자전거를 분해했다 다시 조립했다 하는 아들 녁석에겐 호강하는 기회였답니다. 물론 대학평준화와 입시폐지란 대의가 더 중요하지만, 평범한 우리 부자에겐 자전거 타고 창원까지 나들이했던 게 더 즐거웠답니다.

아, 마지막 멘트를 이렇게 하면 행사를 주최하신 선생님들이 섭섭해 하실라나요?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은 말복입니다. 말복치고는 너무 시원합니다. 엊그제부터 계속 내린 비가 오늘은 좀 잠잠해진 듯합니다. 그래서 잠깐 짬을 내어 경남대학교에 갔습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경남대 박물관을 지나다가 이상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어릴 때는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보던 것이었죠. 

경남대 박물관 앞에서 마산 앞바다 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말복이라 함은 무더운 여름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벌써 가을의 전령이 우리가 잠든 새 소리없이 진주해 들어온 적군들처럼 다가왔습니다. 아니 적군이 아니라 반가운 해방군이라고 해야 되겠군요. 반가운 마음에 한 컷 했습니다. 
 

박물관 뒤로 계단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공사로 인해 버려질 뻔 했던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습니다. 돌하루방 같은 것도 있고요, 비석도 있지만,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한글세대이면서 별로 좋지 않은 머리를 무겁게 달고 다니는 저로서는 읽을 수 없는 한문들이어서 무엇인지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알 수 없습니다.

안내판도 없는 것을 보니 그렇게 중요한 유물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박물관 뒤 언덕에 모셔졌으므로 제가 유물이라고 자의적인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별로 유물스럽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나중에 진보신당 문화생태위원장으로 경남대에서 교수질(원래 옛날엔 다 선생질, 장관질 이렇게 말했음. ㅎㅎ)을 하고 계시는 배대화 선생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그 유물 중에 희한한 유물이 하나 있습니다. 경남대학교 측에서는 이것도 아마 유물이라고 생각해서 이곳에 모셔놓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제일 중간에 모셔놓은 걸 보면 대단히 중요하고 희귀한 유물로 판단한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일까요?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언덕배기라 사진 찍을 자리가 마땅찮아 사진은 절반만 찍혔다. 안 찍힌 부분은 대칭이라 생각하면 된다.


헛! 국민교육헌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로군요. 저도 국민학교 다닐 때 이거 왼다고 고생 깨나 했답니다. 물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못 외는 어린이는 손바닥을 맞았겠지요. 우리는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엎드려뻗친 상태에서 밀대자루로 빳다를 맞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빳다를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맞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 암기를 잘 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선도적인 훈련을 받은 저는 군대에 가서도 암기를 무척 잘했답니다. 삼훈오계, 군인의 길… 등등, 암기를 잘 못했던 제 한 달 짬밥 고참은 매일 얻어터지다 마침내 저와 동기가 되고 말았던 사건도 있었지요. 하하.

그 고참이었던 동기는 삼천포 사람이었는데, 멸공(우리 부대의 경례 구호는 충성이 아니라 멸공이었다) 발음을 잘 하지 못해 또 매일 얻어터지기 일쑤였답니다. 그래도 결국 제대할 때까지 안 고쳐지더군요. "맬공, 고장(교장) 다너오겠습니다. 맬공~" 경례는 두 번 하시는 거 아시죠. 보고를 시작할 때, 그리고 마칠 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하여간 그 고참이었던 동기가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군요. 그는 제게 바퀴벌레란 별명을 붙여주었더랬습니다. 아마 자기 딴에는 당시 인기 있던 TV프로 '하바드의 공부벌레들'에서 힌트를 구한 모양입니다만, 저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았고 듣기도 싫었지만, 고참 같은 동기가 계속 부르는 걸 말릴 수도 없었답니다.  저도 자주 얻어터졌었는데, 그 고참동기와는 다른 이유, 그러니까 군대 내무반에서 쉬는 시간에 책을 갖다놓고 보거나 신문을 본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졸병이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나요?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말이야!" 퍽~ 그래도 저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책도 보고 신문도 봤습니다. 푸쉬킨이 말했었나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 말고 참고 견디면 영광의 날이 오리니…. 정말 나중엔 아예 포기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나쁜 놈들이에요. 어떻게 내 가느다란 삶의 재미마저 빼앗으려고 하다니. 

그때도 사는 게 낙이 없었거든요. 국방부 시계는 엄청 느린데다가 배도 무척 고팠지요. 당시 저는 염세주의자 비슷해서 연애 한 번 못하고 군대로 끌려갔던 탓에 면회 오는 여자 친구도 없었고, 그러니까 "에이~ ㅆㅂ, 죽일 테면 죽여 봐라." 이런 상태였던가봅니다. 그래도 푸쉬킨의 말이 맞았던지, 나중에 제 바로 밑에 졸병하나가, 중앙대 경제학과를 다니다 온 친구였는데, 

조순 씨가 쓴 경제학원론을 가져다주더군요. 자기가 보던 거였는데, 잡지만 보지 말고 그 시간에 그걸로 공부나 하라고 말이죠. 그 친구 저하고 종씨라고 그랬나? 하여간 대단히 고마운 친구였죠. 덕분에 군대 30개월 동안에 경제원론 한 권은 떼고 나왔답니다. 당시 병장 월급이 4천원이었는데, 그렇게 손해 본 것은 아니었죠. 내 시간으로 썼으니까요. 

그것도 어쩌면 어릴 때, 국민교육헌장을 열심히 왼 보람이 아니었을까요? 헛헛… 헛소리 한 번 해봤습니다.


자, 이제 그만 삼천포는 이별하고 다시 경남대 박물관으로 돌아갑시다. 국민교육헌장…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는 국민교육헌장 맨 아래 적혀있는 "1968년 12월 5일"까지 외고 다녔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라고 적혀 있었는데 나중에 대통령 박정희는 빠졌나 보군요. 

교과서 맨 앞장에는 늘 커다란 무궁화 한 송이와 국민교육헌장이 빳빳하고 하얀 종이 위에 그려져 있었지요. 교과서를 펼 때는 항상 그걸 살펴본 다음 책장을 넘기곤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어린 가슴에 강압과 폭력의 상징으로만 남아있는 저 국민교육헌장 비석이 왜 이곳에 이렇게 잘 모셔져 있을까요? 

그것도 다른 비석이나 석상들의 가운데에서 호위를 받는 듯이 말입니다. 혹시나…, 혹시나 경남대학교가 박정희의 오랜 경호실장이었던 박종규가 만든(사실은 빼앗았다는 소문도 있습디다만) 학교라서 그런 것일까요? 경남대학교 총장님이 박재규 씨라서 그런 것일까요? 그냥 저 혼자 그런 쓸데 없는 궁금증을 가져보았습니다. 남들은 아무도 관심을 안 갖는 그런 궁금증이지만…, 

궁금한 게 죄는 아니겠지요? 아무튼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예? 별게 다 추억이라고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6월 30일, 마산시 진전면 미천마을 회관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가 열린 이유는 이곳에 산업단지가 지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천마을은 마산에서는 보기 드문 산골마을이다. 양촌온천을 지나 오른쪽으로 꺽어 한참을 들어가다보니 진로소주(두산그룹) 표지판과 함께 미천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미천마을 회관에서 바라본 전경. 앞에 보이는 산은 여항산 줄기란다.


이정표를 따라 다시 오른쪽으로 꺽어 올라가니 저수지가 보이고 그 뒤로 험준한 산맥이 둘러쳐져있다. 낙남정맥이다. 실로 높고 깊은 것이 장관이다. 도회지로만 알려진 마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공기 냄새부터가 다르다. 논두렁 아래 내려다 보이는 개울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정겨웁다.
 
먼저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송창우 선생 집부터 들렀다. 송창우 선생은 이 마을에 살면서 경남대학교까지 수업을 하기 위해 마티즈를 몰고 다닌다. 경남대 근처에 집을 구해 살 수도 있겠지만, 이 마을이 좋아서다. 송 선생의 집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우람한 산과 구름과 내려다 보이는 정겨운 마을이 부럽다.  

그런데 이 산골마을에 산업단지가 들어선단다. 도대체 이 산골에 무엇하러 갑자기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것일까?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기도 하지만) 저녁 7시가 가까워오자 마을회관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주민 여러분. 모두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십시오. 산업단지지정에 관한 공청회가 곧 열리겠습니다. 맛있는 부페음식도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 공청회도 참여하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공청회장에 뷔페까지 등장하는 줄은 몰랐다. 평소에 좀 하시지…


마을회관으로 가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잘 차려진 출장 부페다. 하늘에선 굵은 장맛비가 대지를 적시고 곧 이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공청회가 시작되었다. 진로소주 공장에서 나온 직원들이 프리젠테이션으로 산업단지지정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공청회의 주체는 마산시가 아니라 진로소주다.

그때서야 왜 이 산골마을에서 산업단지지정을 놓고 공청회가 벌어지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차~ 제 2의 수정만 사태가 여기서도 벌어질지 모르겠구나.' 국회에서 산업단지 지정신청 및 하가절차를 간소화하는 법률이 통과된 후 전국적으로 이런 현상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 마산에서만도 대략 대여섯 곳 정도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한 주민의 발언에 손을 흔들며 제지하듯 자기 주장하는 도시개발계장님


주민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당장 지하수 고갈로 먹을 물 걱정이 우선이다. 산단이 들어서면 늘어나는 차량과 콘테이너로 인해 주민들의 안전문제도 심각한 고민거리다. 그러나 공청회를 주최하는 진로소주의 답변은 단순함 그 이상 아무 것도 없었다. "차량이 늘어날 일도 없고, 지하수 고갈도 없을 것이다. 산단지정은 그냥 창고를 짓기 위해 하는 것 뿐이다."

진로소주만의 창고를 짓기 위해 산업단지 지정을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수정만 사태에서도 늘 지적되어 오던 문제였지만, 공무원들의 태도였다. 공무원들이 시민의 공복이기보다 기업체의 용역직원처럼 행세하길 더 즐기듯이 보이는 건 왜였을까? 

주민들의 질문에 도시계획과장을 대신해 참석한(도시계획과장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함) 도시개발계장은 매우 짜증난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큰 소리로 싸울듯이 달려들었다. 그는 주민들의 반대의견들이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조용히 설명 듣고 잘 차려진 부페나 먹고 갈 것이지!' 하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보였다.

주민의 질문이 매우 귀찮고 어이없다는 표정. 옆에 마이크를 든 사람은 진로소주 부장.


[동영상 마지막에 보면 질문하는 주민이 공무원 나오라고 하자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등장하는 계장님이 보인다]

공청회가 끝난 후, 주민들은 이왕 차려진 음식이니 먹고나 가자며 마을회관에 차려진 부페에 모여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매우 신경적인 반응을 보이느라 피곤했던지 도시계획계장은 부페 옆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진로소주의 전무가 그의 옆에 다가갔다. 그는 공청회 내내 주민들 뿐아니라 공무원에게도 공손했었지만, 이때는 달랐다. 

마치 아랫사람이나 잘 아는 아우를 다루듯이 말했다. "어이, 음식도 많이 차려놓았는데 좀 먹지 그래." 그러자 계장이 대답했다. "에이, 안 먹을랍니다. 분위기도 안 좋고…" 글쎄,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그 두사람이 얼마나 허물이 없는 사이일지는 몰라도 주민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그래도 되는 것일까? 

그래도 명색이 공무원인데… 공무원이란 말 그대로 공무를 보는 사람 아닌가 말이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 아마도 선입견이 없었다면 이런 사소한 대화를 옆에서 들으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민들을 향해 대들듯이 손을 휘젓던 그가 진로소주 전무 앞에서는 양순하기 이를데 없어 보이니…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 내 생각이 쓸데없는 공상이었기를 빈다. 간절히…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