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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5 천추태후, 강조의 변이 삼각관계 때문? by 파비 정부권 (1)

KBS사극 『천추태후』가 드디어 막판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영원히 천추태후의 심복으로 맹목적 충성을 다할 것처럼 보였던 강조와 천추태후 사이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김치양과 천추태후가 공공연히 정인임을 강조하며 궁궐에서 부적절한 관계―물론 어디까지나 요즘의 시각으로―를 시작하자 강조의 눈에서 불이 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단 한 번도 천추태후의 명을 거역한 적이 없던 강조는 김치양으로 인해 태후와 각을 세우게 됩니다. 태후 또한 그런 강조를 절대 용인할 수 없다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이미 태후는 김치양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린 상태입니다. 사랑에 눈을 뜨게 되면 도리어 눈이 멀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열여섯 어린 나이에 경종과 결혼하고 일찌기 과부가 된 태후에게 김치양과의 사랑은 절실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남녀 간의 정을 알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MBC드라마『선덕여왕』에서도 보고 있지만, 당시는 성풍속이 매우 개방적인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고려속요 등에 묘사된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드라마에서 김치양과 강조는 각색이 심한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왜곡된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실제 인물이면서도 거의 가공의 인물인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보여 지고 있습니다. 특히 김치양은 마의태자의 손자이며 신라의 부흥을 위해 복수의 칼을 가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실상은 이와 다릅니다.


그는 패서지역 일대의 호족이었으며 천추태후의 외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애정행각도 근친간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조는 어떻습니까? 사실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강조입니다. 아시다시피 강조는 《강조의 정변》이란 매우 중대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인물입니다.


강조의 신변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려진 기록은 없습니다. 일설에는 그가 황해도 신천지방 호족 출신이며 태조왕건의 왕비인 신주원부인(신주는 신천의 옛 이름)의 집안 동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드라마에서처럼 발해유민이며 어린 시절의 황보수를 만나 천추태후의 가신이 되었다는 것은 극을 전개시키기 위한 허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강조가 누구입니까? 그는 1009년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등극시킨 인물입니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강조의 변’이라 배운 역사적 사건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김치양 일파가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옹립하려하자 목종은 서북면 도순검사로 나가있던 강조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군사를 이끌고 온 강조는 거꾸로 목종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대량원군을 옹립한 다음 김치양 부자를 죽였으며 천추태후는 귀양 보냅니다. 결국 양국공으로 폐했던 목종을 죽이고 왕실의 부패를 척결하고 관제를 개편하여 명실상부한 권력의 1인자가 됩니다. 이에 거란은 이듬해 강조를 벌한다는 구실로 40만 대군으로 두 번째로 고려에 침입하게 되지요.


강조는 거란의 대군을 맞아 용감하게 싸웠으나 패하여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거란의 성종은 강조에게 자신의 신하가 되면 목숨을 살려주겠노라고 하였으나 강조는 이를 거부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를 두고 보면 임경업 장군이나 삼학사에 뒤질 바 없는 충절입니다. 그러나 고려와 조선을 통틀어 역사는 강조를 역도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왕을 죽였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뛰어난 자질과 나라를 향한 충성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왕을 죽인 자는 역적이기 때문입니다. 왕과 충신들을 난도질하고 정권을 찬탈한 조선왕조도 역시 정국이 안정된 후에는 같은 태도를 취하였으니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선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량원군을 주축으로 하는 세력들이 역모를 일으켰으며 이에 천추태후(혹은 목종)가 강조에게 구원병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강조는 김치양 세력(천추태후를 중심으로 하는 북방세력)과 대량원군 세력(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신라계)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고 마침내 경주세력의 편에 서게 됩니다. 이유는 막강한 실권을 휘두르던 김치양을 도와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저는 후자의 해석이 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종이 죽고 난 이후 성종과 목종 대를 거치면서 패서지역과 경주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 간에 심각한 권력투쟁이 벌어졌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역사적 정황들로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경주세력(신라계)은 유학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성종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목종이 등극하면서 천추태후가 실권을 잡자 나라는 급변했습니다. 패서인들은 북벌을 중시했으며 그 결과 서경을 우대하고 경주를 낙랑군으로 강등하는 조처를 취했습니다. 나라의 요직을 패서인들이 독점하고 경주세력은 소외되었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신라계들이 대량원군을 중심으로 모반을 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대량원군은 태조왕건의 손자이며 경주원군의 아들입니다. 또한 경주원군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조카가 되니 현종이후로 고려는 신라의 외척에 의해 왕통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무신정권이 등장할 때까지 신라계가 정권의 중심에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입니다. 삼국사기를 지은 사람도 신라계인 김부식이었지요.


유학을 중시한 신라계들은 고려가 중국화해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때문인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사대적인 요소가 많다는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 그건 그렇고, 그런데 우리가 대충 알고 있는 역사와 드라마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처음에 이 드라마를 보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천추태후를 짝사랑하는 순진한 ‘꼬봉’ 강조를 보면서 ‘저자가 앞으로 어떻게 정변을 일으키고, 왕을 죽이고, 새 왕을 등극시킨다는 것인지’―물론 제가 할 걱정은 아닌 줄 압니다만―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되던 강조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습니다.


모든 대신들이 천추태후에게 떨면서 몸을 낮추는데 유독 강조만이 뻣뻣하게 김치양을 내칠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자 태후는 강조를 따로 불러 달랩니다. “내가 그대를 그리 보지 않았건만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내가 그대가 왜 그러는지 속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오. 그러나 그 이유를 말하지는 않겠소. 만약 그리한다면, 그대와 나는 영원히 멀어질 것 같기 때문이오.”


그냥 대충 어제 본 드라마의 대사를 옮긴 것이지만, 크게 틀리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이 말을 듣고 천추궁을 뛰쳐나오는(!) 강조의 악 다문 입술이 제가 보기엔 이빨을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강조의 정변을 예고하는 대목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서글퍼지더군요. 두 가지 이유에서 말입니다.


하나는, 천추태후가 기껏, 결국은 이렇게 허망하게 애정행각이나 벌이다가 쫓겨나게 되는 허접한 여인이었던가, 원래의 기획 의도는 강성한 고려제국을 꿈꾸며 북벌을 주도하던 여걸 천추태후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역사의 기록을 무시할 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의 기록이란 어디까지나 승자의 역사입니다.


승자의 역사란 그들의 입장으로 오도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므로 늘 행간을 잘 짚어 읽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제 드라마에서, 대신들이 김치양과의 관계를 단절할 것을 주청하자 천추태후는 이렇게 추궁했습니다. “왜 남자들은 되고 여자들은 안 된단 말인가? 그대들은 몇 명씩의 축첩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나는 안 된단 말인가?”


저는 이 대사를 들으며 천추태후가 무슨 여성단체 대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니 아주 지극히 온당한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시대에 천추태후가 그런 말을 했을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사별한 태후가 새로운 정인을 가지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을 퇴위시키고 현종을 즉위시킨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천추태후의 사생활을 비판한다면 틀림없이 그 사람들은 태후와 정적관계이며 유학을 중시하는 경주세력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후일 ‘부적절한 관계’의 씨앗인 대량원군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대량원군은 경종의 비인 헌정왕후가 경종 사후에 경주원군과 사통―사통이란 쉽게 말하자면, 간통이죠―하여 낳은 아들인데 왕으로 추대되어 현종이 되고 이후 고려의 왕통은 그의 자손들이 잇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 방영된 천추태후의 대사는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태후의 행실이 부정하다고 생각했다면, 대량원군도 절대 왕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강조가 결국 정변을 일으키는 이유가 김치양과의 삼각관계 때문이란 뉘앙스 때문입니다. 강조가 천추궁을 나오면서 악 다문 입술에서, 불을 튀기는 눈빛에서 타오르는 질투심으로 인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드라마를 보면서도 ‘이’ 강조가 ‘그’ 강조가 맞는지 미심쩍어했지만, 어제 비로소 ‘이’ 강조가 ‘그’ 강조임을 알았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천추태후와 김치양, 강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태후와 김치양 사이에 강조를 집어넣어 삼각관계를 만들었어야 했다는 고충도 이해는 갑니다. 그리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가서야 느닷없이 강조가 칼을 들고 나타나야 되는 부자연스러움이 생기겠지요. 또는 심복이었던 강조에게 태후가 당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불가피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떻든 고려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천추태후와 강조, 이 두 사람의 원래 모습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원래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우리 모두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애초에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만들려고 했던 그런 모습으로―극을 전개시켜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천추태후도 좋아하고 강조도 좋아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겨우 삼각관계로 인한 애정행각 때문에 두 사람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