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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1 '로드넘버원' 강제징집, 우리집에도 있었다 by 파비 정부권 (10)
<로드넘버원>, 영촌교를 지키던 2중대는 본대가 무사히 후퇴할 수 있도록 전선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탱크를 앞세워 밀고 내려오는 적과의 교전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2중대. 대전으로 후퇴한 2중대는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신병을 모집한다. 그런데 그 신병 모집 방식이….

이런 이야기는 이미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았다. 아마 그래서 우익단체 회원들이 이 영화의 개봉을 저지하겠다며 난동을 부려 불상사가 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렇게 좌편향도 우편향도 아닌 영화였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생을 살려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형의 투쟁이 이 영화의 주제였다.

그러나 선량하고 정의롭기만 한 국군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강제와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신병을 모집했다는 사실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우익단체 회원들의 눈에는 빨갱이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는 사실도 거짓으로 보이고 거짓도 사실처럼 믿게 만드는 악마의 힘이 있는 것일까.    

대전 시내에서 지나가던 행인을 대상으로 신병을 강제 모집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피난 중에 당시 고등학생이던 동생(원빈)이 군인들에게 잡혀 신병열차에 강제로 태워지자 이를 구출하기 위해 형(장동건)이 뛰어들었고, 결국 둘은 모두 전장으로 향하게 된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타게 되면 소원대로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형은 차츰 전쟁의 광기로 미쳐간다. 그의 머릿속엔 오직 동생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일념뿐. 그러기 위해 그는 더욱 처절하게 적을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로드넘버원>에서도 <태극기 휘날리며>와 마찬가지로 강제로 민간인을 징집해 군대로 보내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 부친도 강제로 징집돼 군대에 가 3년 동안 전장을 누볐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마실 때면 마치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어린 나를 앞에 앉혀두고 회고하는 것이 낙이었다. 아버지의 회고에 의하면, 군대에 자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1950년 6월, 전쟁이 터지자 오산에 있던 아버지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거기서 7월 초 어느 날, 술을 한잔 걸치고 골목길을 가다 군인들에게 얻어 맞고 기절을 했는데 깨어보니 군대였다. 그러나 따로 분류된 아버지는 바로 전장에 투입되지 않고 한 달간의 훈련을 받은 다음에야 전투에 투입되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특수부대였던 셈인데, 3년간의 전쟁에서 나름대로 혁혁한(!) 공을 세워 은성무공훈장 등 세 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오른쪽은 2007년에 다시 받은 은성무공훈장


그 훈장들은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막걸리에 취한 아버지의 분에 못이겨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하필 왜 그 훈장들에 분풀이를 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훈장을 마당에 쌓아놓고 그 위에 석유를 뿌린 다음 성냥개비에 불을 붙여 던졌던 것이다. 늘 '이 훈장 하나면 사람 하나 죽인 것과 바꿀 수 있다'던 그 보물을 말이다.  

불타버린 훈장은 최근에 새로 찾았다. 2007년에 보훈처에서 다시 받았는데 '대통령 노무현'이 찍힌 감사장도 함께 받았다. 그러나 잃어버린 청춘, 홧김에 그 보물 같은 훈장을 불태워버릴 만큼 내팽개쳐진 인생은 돌려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군에 징집되던 그때 나이 열여덟 살, 만으로는 17세였다. 

어쩌다 열네 살짜리 큰 아이를 보다가 그런 생각을 한다. 저 녀석도 만약 손에 총을 쥐어주면 나가 싸울 수 있을까? 아직은 어리지만 4년 후에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로드넘버원>에 나오는 병사들처럼 그렇게 미친 듯이 적을 향해 총알을 날릴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온몸이 싸늘해진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