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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30 각시탈, 아들 죽음도 못말리는 친일파의 심리상태 by 파비 정부권 (4)

참 어이가 없습니다. 아무리 일신영달에 눈이 어두워 나라를 팔고 친일이 골수에 박혔기로 아들이 죽었는데도 목숨을 구걸하며 재차 친일을 맹세하다니… 도대체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닐까요? 그래도 아들의 죽음 앞에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각시탈과 독립군(투사)들은 친일파 이시용 백작의 아들 이해석의 도움으로 국방헌금을 빼돌리는데 성공합니다. 이 국방헌금은 이시용이 친일 조선인들로부터 거둬들인 10만원의 거금이었습니다. 아비는 친일을 했지만 그래도 아들만은 민족적 양심이 살아있었습니다.

이해석은 권총을 자기 머리에 쏴 자살했습니다. 비록 조선인의 양심으로 독립군을 도왔지만 아버지를 배신했다는 자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른 척 하고 있으면 될 일을 왜 굳이 자살까지 감행한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해석은 자기 아버지 앞으로 유서를 남겼고 이 유서에는 자기가 독립군을 도와 국방헌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적혀있었습니다. 이시용이 허둥대는 사이에 이 유서는 키쇼카이(대동아공영권을 달성하기 위한 비밀결사) 회장 우에노 히데키에게 전해졌던 것입니다.

우에노 회장에게 끌려간 이시용은 애통한 듯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자손 대대로 편히 살길, 딱 하나 믿는 아들놈 편히 살길 바라면서 천황폐하 만세를 불렀는데… 비행기 헌납에 쏟은 돈은 어쩌냐….”

이때가지만 해도 저는 이시용이 아들마저 죽은 마당에 자존심을 지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친일행각에 눈이 먼 자의 정신세계를 너무 과소평가한 기대였다는 것이 곧 드러났습니다. 이시용과 그의 처는 우에노에게 살려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습니다.

우에노는 그런 이시용을 달개며 ‘국방헌금 10만원을 잃어버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며 조속히 반환하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사인만 하면 살려줄 것처럼 말합니다. 어리석은 이시용 백작부처. 스스로 죽음을 재촉합니다.

이시용이 사인을 마치자 우에노 회장은 교활한 눈짓을 보내고 대기하고 있던 일본인 무사들은 칼을 휘둘러 이들 부부를 그 자리에서 베어버립니다. ‘모든 책임을 지고 조속히 반환하겠다’는 각서는 곧 전 재산을 팔아 지옥행 열차표를 끊은 것이나 진배없었습니다.

오호, 통제라! “뼛속까지 골속까지 천황폐하 자식들”이라던 친일파의 말로라니. 살기 위해 한 짓이 죽음을 재촉했습니다. 하나뿐인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이들의 친일은 반성할 줄을 몰랐습니다. 살기 위해서였다고요?

정말 이시용 백작의 친일은 살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일까요? 구황실의 황족으로 고대광실에 호의호식하던 이시용에게 도대체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얼마나 잘 살아야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식으로 친일을 정당화하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시용처럼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지고도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기 위해 친일 하던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런 부류를 사회지도층이라 부르나봅니다)이 있는가하면 밑바닥에서부터 출세하기 위해 일본군 장교의 길을 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도 친일파가 된 목적은 이시용 백작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자손손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겠지요. 얼마나 더 잘 살기 위해서? 거기에 대해선 답이 없군요. 당시로선 학교선생인 것만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직업인데 굳이 칼까지 차야 했던 것인지.

아무튼 이시용 백작의 ‘자자손손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친일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드라마에서나 얘기가 되는 것이고,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친일파들은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언젠가 한 늙은 독립운동가가 “내가 사는 모습을 보면 아무도 애국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했다는 말이 생각나는데요. 거꾸로 이런 건 어떨까요? 한 늙은 친일파가 “내가 사는 모습을 보면 아무도 친일 따위는 하겠다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역사는 친일파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도록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친일을 하려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시용 백작 부부만 불쌍하게 되었네요. 그 아들 이해석이 특히 그렇고요.

아무쪼록 비록 친일은 했더라도 지옥 중에서도 개중 할랑한 지옥에서 조금이나마 고생을 더셨으면 하는 바램 가져봅니다. 제 아무리 악인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경건해져야 하는 게 우리네 미덕이니까요.  벌써 밤이 깊었군요. 이만들 편안한 밤 되시기를, 총총.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