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6.12.04 함안에 온 현진에버빌이 더 퍼스트인 까닭 by 파비 정부권
  2. 2011.11.27 광개토태왕이 가야에는 선물 안 준 이유 by 파비 정부권 (10)
  3. 2010.07.18 김수로, 작가 바꿨다고 배가 산으로 가나 by 파비 정부권 (8)
  4. 2009.10.05 '선덕여왕' 유신, 사랑 버리고 근친결혼한 까닭 by 파비 정부권 (4)
  5. 2009.09.23 '선덕여왕' 냉혹한 야심가 비담을 위한 변명 by 파비 정부권 (23)
  6. 2009.09.15 김유신이 선덕여왕과 결혼할 수 없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22)
  7. 2009.08.26 '선덕여왕' 옥에 티, 황제가 짐이 아니고 과인? by 파비 정부권 (8)

함안 가야읍에 1000세대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가 생깁니다. 이름하여 ‘현진에버빌 더 퍼스트’. 

그런데 왜 ‘더 퍼스트’란 브랜드명을 썼을까요?


△ 아라가야 고분군. 이곳에서 보면 바로 코앞에 우뚝 솟은 현진에버빌이 보이게 된다.


창원 북면신도시에서 현대건설은 힐스테이트, 덕산건설은 덕산아내라는 브랜드명을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더 퍼스트’란 브랜드명은 생소하기도 하고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군요. 음, 첫만남? 혹은 최고? 퍼뜩 그런 뜻이 생각나긴 하는데요. 


현진건설은 우리 지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실한 중견건설회사로서 수도권에서 아파트 사업부문으로 탄탄한 기반과 명성을 쌓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최근 삼척, 양산, 부산 등지에 현진에버빌 아파트 주택홍보관을 차례로 오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경남의 중심 함안, 함안의 중심 가야에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더 퍼스트는 이처럼 함안과의 처음 만남을 기념하여 지은 이름이기도 하고 또 그 처음 만남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최고의 품격, 최고의 가치, 최고의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껏 함안에 없었던 첨단시설의 도시적이고 쾌적한 대단지 아파트로 함안 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것으로 모두들 전망하고 있습니다. ‘시작! 감동의 시티라이프’ ‘이전에 없던 도시가 펼쳐진다!’는 카피는 단지 광고로서가 아니라 현진에버빌의 진심을 담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12월 16일 주택홍보관(모델하우스) 개관이 예정되어 있고 서울에서 유명한 가수들도 다수 초빙하여 성대한 오픈기념식과 공연도 한다고 합니다. 지역민의 주택조합 방식으로 건설되는 이 아파트의 사업부에 제게 친한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의 전언에 의하면 모델하우스가 개관되기도 전에 벌써 400여 세대가 팔렸다고 하는군요. 아, 이럴 땐 팔렸다가 아니라 분양청약 완료됐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지요. 아무튼 한마디로 불이 붙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함안 지역사회에서 열기가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친구는 열띤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이 붙었다, 붙었어!”



현진에버빌이 들어서는 함안 가야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와 인접해있어서 창원지역의 배후도시로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분양가도 아주 싸서 로열층이 690만원대로 저렴할 뿐만 아니라 저층의 경우에는 610만원대까지 내려간다고 합니다.


지역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주변 중소규모의 구형 아파트들도 평균시세가 최저 720에서 780 정도 한다고 하니까 이 정도 고품격, 대단지 아파트라면 가격이 더 떨어질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하네요. 그리고 2~3년 내에 아무리 못해도 시세가 800만원 이상은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들입니다.


상당한 투자가치가 있다는 얘기들이지요. 투자가치뿐 아니라 거주목적으로도 현진에버빌은 아주 좋은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뛰어난 교통망, 문화시설, 쾌적한 자연환경, 가야문명이 주는 훌륭한 문화유산 등등.


앞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현진에버빌 더 퍼스트’가 진정한 퍼스트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



Posted by 파비 정부권

담덕은 왜 백제와 신라에만 선물 줬나. 혹시 가야는 우리민족 아니라서?

<광개토태왕>이 영 엉터리 같은 스토리와 버럭버럭 지르는 연기자들의 고함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광개토대왕을 다룬 사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뭐 아무튼, 앞서 불편하던 여러 가지 사건들은 일단락됐습니다. 일단 개연수가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저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개연수는 왜 고연수가 아니라 개연수였을까요? 저는 그 점도 매우 불편했습니다.

고개연수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멀쩡한 아들 고운을 고운이 아니라 개고운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말입니다. 어쨌든 <다음>에 검색해본 바에 따르면 고운은 고구려의 왕족으로 나중에 후연의 황제가 될 인물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아, 태자비 도영은 고도영일까요, 개도영일까요?

자, 잡설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어제 담덕이 결혼 축하사절로 온 각국의 사신들 중에서 백제와 신라의 사신만 따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선물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지요.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너희들에게만 주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 특별한 선물이란 다리가 세 개 달린 삼족배였습니다. 담덕은 동명성왕 때부터 왕실에 내려오던 황금을 녹여 특별히 두 나라에 선물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지요.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와 더불어 한 뿌리에서 나온 같은 민족이라고 말입니다.

담덕이 이렇게 말합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같은 말을 쓰며 비슷한 생활을 하는 나라로 같은 조상으로부터 피와 살을 받은 한 뿌리를 타고난 가지들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헌데 왜 우리가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며 싸워야 한단 말인가?” 하고 열변을 토합니다.

열변은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는 서로 적으로 싸울 상대들이 아니요. 화합과 도모를 통해 중원으로 진출하는 것이 한 핏줄을 타고난 우리가 가져야 할 사명이오. 우리의 반목은 공멸을 가져올 것이고, 우리의 화합은 중원으로 진출하는 길을 여는 것이오.”

오, 멋진 광개토대왕입니다. 정말 그 시절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존경해마지않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과연 그때도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을지, 상대(고구려, 백제, 신라)를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대상으로 보았을지는 의문입니다만 요즘 사고로 보자면 멋진 말입니다.

아무튼, 감동 먹은 백제와 신라의 사신(이 두 사신은 나중에 백제와 신라의 왕이 됩니다)은 아무 말도 못합니다. 물론 담덕이 백제와 신라를 누르고 삼국경쟁체제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이 삼족배에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두 사람입니다.

숙소로 돌아온 아신 성주(백제의 사신, 관미성주, 후일 아신왕)는 측근들에게 “담덕이 ‘우리가 하나로 뜻을 모은다면 한민족의 기상을 드높일 날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이 삼족배에는 자기네 고구려가 삼국의 우두머리이니 그리 알라” 하는 뜻이 숨어있다고 경고합니다.

“삼족배의 세 다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말하며 그 삼국이 떠받들고 있는 하늘은 삼족오, 곧 담덕이다. 고구려를 포함한 삼국이 담덕을 받들라는 의미다”라는 것이지요. 뭐,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담덕의 뜻도 아신의 경계심도 다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담덕이 내민 선물 삼족배에는 왜 다리가 세 개밖에 없을까요? 아, 물론 삼족배니까 다리가 세 개겠지요. 하지만 담덕이 상징으로 내세우는 한 민족의 가지로서의 다리라면 단 세 개뿐이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요?

광개토대왕이 즉위하던 시절 만주와 한반도에는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도 북쪽에는 부여, 동쪽에는 동예, 남쪽에는 가야가 있었습니다. 북쪽의 부여는 이미 대무신왕 이후에 사실상 붕괴됐다고 보더라도 남쪽의 가야는 당시에 건재해있었습니다.

연맹체로 존재했던 가야를 고대국가로 볼 수 있는가라는 주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같은 이유로 신라를 고대국가로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당시의 신라는 그저 경주 일원의 맹주에 불과한 작은 나라로 가야와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 이미지/ 오마이뉴스

오히려 가야연맹체를 합친 강역이 신라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야가 신라보다 더 강성한 나라였을지도 모릅니다. 금관이나 유리잔이 가야의 유물에서도 발굴되는데, 경주의 금관이나 유리잔은 가야를 통해 전래됐다는 엉뚱한 가설을 내세운대도 뭐 그리 큰 문제가 될까 싶은데요.

어쨌거나 가야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담덕은 백제와 신라의 사신에게는 같은 민족이라고 추켜세우며 선물을 주면서 가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을까요? 백제와 신라는 같은 민족이지만 가야는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요?

그것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담덕은 부여와 동예, 가야 등은 모두 정벌하여 멸망시켰지만(물론 가야는 이후에도 백오십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긴 하지만 세력은 많이 약해졌으며, 사실상 신라의 정치연합에 포섭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는 그래서 살짝 혼내주기만 하고 만 것일까요?

여하튼, 제가 살고 있는, 그래서 혹시 저의 조상일지도 모르는 가야를 이른바 우리민족에서 빼버리고 선물도 주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입니다. 후세에 광개토대왕이라 칭송받게 될 담덕, 이럴 수가 있습니까?

선물 주려면 공평하게 가야의 사신도 불러 “우리민족끼리 화합과 도모를 해보세!” 이러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어디 딴나라 사람들입니까? 혹시 광개토대왕께선 우리 가야를 임나일본부라고 주장하는 왜놈들의 말을 더 믿으시는 건 아니실 테지요.

아니, 그런데 진짜로 가야가 다른 민족이라고 생각해서 정벌하신 거 맞으면 어떡하나. 휴~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무리 작가 교체 때문이라지만… 좀 심하다















김수로,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부터 큰 기대감으로 기다렸던 드라마입니
다. MBC는 선덕여왕으로 왕년의 드라마 왕국으로서의 면모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선덕여왕이 워낙 인기도 있었고 내용도 탄탄했던 터라 이어질 김수로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가야를 다룬 거의 첫 번째 시도, 김수로

김수로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다룬 예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 뿐 아니라 역사가들의 연구도 매우 부진한 것이 현실이지요. 한반도의 남단에서 무려 500년 이상이나 떨쳤던 주요한 정치세력에 대한 대접치고는 너무나 허접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김수로의 일대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매우 기뻤습니다. 특히나 김수로가 활약했던 가야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나의 아내도 김해 김씨이니 말하자면 드라마 김수로는 우리 집안과도 무관하지 않은 셈이지요.(ㅋ~ 이건 좀 오버다, 그렇죠?)

아무튼 신문지상에 최인호의 제4의 제국을 드라마로 만든다는데 제목이 잃어버린 제국으로 한다더라, 뭐 어쩐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떠돌았습니다. 선덕여왕이 끝나자마자 그 열기가 채 식기 전에 돌았던 이런 이야기들은 더더욱 가야 건국 과정을 그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드라마의 제목은 김수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제목이 가장 적절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제4의 제국이니 잃어버린 제국 따위는 대중적 드라마의 제목으로는 좀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지요. 아마도 김수로 앞에 철의 제왕을 붙인 것은 철기문화가 융성했던 가야의 면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려나가려는 의도라고 보였고, 실제로도 그렇더군요.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본 김수로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CG, 전투장면 등은 추노가 끝난 지 오래지 않았던 탓인지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추노가 우리의 눈을 너무 고급스럽게 만들어놓았던 까닭도 작용했을 테지요. 그러나 전반적으로 줄거리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됐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제국의 복원이란 역사적 의미도 지닌 드라마

김수로와 정견모주가 북방에서 내려왔다는 설정도 논쟁의 지점은 있지만 나름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라의 김씨와 가야의 김씨가 실은 같은 계통으로 북방에서 내려온 부족이란 설도 힘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요. 석탈해와 김수로의 경쟁관계도 역시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 크게 문제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김수로가 철기를 보유한 북방민족의 수장이란 관점보다 철기는 이미 가야지역에서 발달해 있었으며 김수로는 단지 이를 배우고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해석도 매우 새롭고 독특한 시각이었습니다. 다만 유리왕의 뒤를 이어 신라의 왕이 될 석탈해가 너무 비열한 인물로 그려져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재밌게 보고 있던 드라마 김수로가 오늘 보니 갑자기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연기자들의 대사나 행동이 전혀 자연스럽지 못할 뿐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이 많았으며, 심지어는 코미디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특히 염사치는 황당함의 극치였습니다. 간자 임무를 띠고 구야국에 잠입한 고정간첩 아로와 염사치가 주루에서 벌이는 행각은 실로 저급한 코미디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염사치는 구야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왕좌를 노리고 있는 신귀간(대천간)의 오른팔입니다. 그런 그가 벌이는 어설픈 장난은 참으로 도가 지나쳤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석탈해도 마찬가집니다. 아효는 또 어떻습니까? 아마도 짐작하건대 아로는 박혁거세의 딸이며 아효는 남해차차웅의 딸인 듯합니다. 둘은 고모와 조카 사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구야국에 첩자로 잠입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 충성심이 실로 대단합니다. 이런 걸 좀 유식한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하나요?

너무나 엉성한 설정, 대사, 보는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

그런데 그토록 막중한 임무를 띤 아효의 행동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녀는 아로의 명을 받고 김수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죽이지 못했습니다. 김수로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얼마 후 김수로는 석탈해의 음모에 빠져 노예선에 팔려갔고 늑도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허황옥으로부터 구출되었지요.  


어찌어찌(이것도 참 거시기 합니다) 아효는 김수로가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아로의 눈을 피해 늑도에 온 아효, 김수로를 보자 감격에 눈물을 흘립니다. 사실은 아로에게 아효를 시켜 김수로를 죽이라고 한 사람은 석탈해였습니다. 드라마는 이 부분에 대한 해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로, 아효와 석탈해의 관계…. 

아무튼 아효는 김수로에게 당장 구야국으로 돌아가지고 채근합니다. 이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거기에 가서 잡혀 죽으라고? 신귀간이 천군을 누르고 구야국의 실권자가 되어 공포정치가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효가, 그 신귀간에게 붙어 김수로를 죽이도록 자기에게 사주했고, 그게 뜻대로 안 되자 음모를 꾸며 노예선에 팔아넘긴 석탈해가 버티고 있는 구야국으로 당장 돌아가잡니다.  


이거 작가님이 혹시 뭘 잘못 드셨을까요? 그러더니 오늘은 김수로와 허황옥, 허황옥의 부친 허장상이 철편(철근?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야국으로 들어갑니다. 김수로와 득선은 김수로의 양어머니(단야장 조방의 처)의 집에 갔다가 군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허장상과 허황옥은 철편(?)을 구하기 위해 상단을 관리하는 신귀간의 부하를 만나러 갔다가 아효와 마주칩니다.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도 아닌데 이들은 실제로 외나무다리 비슷한 곳에서 만납니다. 모른 척 지나가려는 허황옥을 붙들고 아효가 어린아이 투정하듯 다그칩니다. 

"네? 수로 도련님은 잘 계신가요? 건강은 회복하셨나요? 그런데 왜 안 오시나요? 언제 오시죠?"  

가야의 옛땅에 사는 한 사람으로 좀 더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

이건 뭐… "수로야, 너는 왜 빨리 호랑이 입으로 머리를 안 들이미는 거니? 빨리 와서 호랑이 밥이 되지 않고 뭐 하는 거냔 말이다. 재미없게" 하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그 어색함이란. 문제는 닭살이 돋을 것 같은 어색함이 이것뿐이 아니란 것입니다. 최소한 오늘은 드라마 전체가 어색함과 닭살 등으로 도배된 코미디였습니다.


듣자하니 작가가 중간에 교체되는 등 진통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껏이어야지 이건 너무 한다 싶습니다. 김수로에 대한 기대로 드라마가 시작되기를 기다려왔던 한 사람으로, 또 가야의 옛 땅에 살고 있는 후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김수로는 여타의 막장드라마와는 비할 바 없이 훌륭한 드라마임에 틀림없습니다. 특히 잃어버린 제국 가야를 복원하는 드라마여서 더욱 기대가 큽니다. 그런 만큼 세심한 배려가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연기자들의 투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제작진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종옥이나 유오성 같은 훌륭한 배우들이 이 드라마로 인해 연기에 대한 혹평을 듣게 되지나 않을까 그게 걱정이네요. 그러나 그보다는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는 부끄러움, 몸 둘 바를 모르는 어색함, 그런 게 더 불편하답니다. 아무래도 김수로 열혈 팬이라 그런가봅니다. 아무튼,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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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유신이 미실의 아들 보종의 딸 영모와 결혼했다. 물론 이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의 이야기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유신이 협박에 굴복해 미실의 가문에 장가를 든 것은 난센스란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실제로는 미실이 유신의 가문과 혼사를 맺음으로써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란 사실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김유신의 가문이 신라 진골인 것은 시혜인가, 노력의 결과인가

김유신의 조부인 김무력은 금관가야 구형왕의 아들이다. 그는 신라에 귀순한 이후 전장에 나가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관산성전투에서는 성왕을 죽여 백제부흥운동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김무력은 그 공으로 대각간의 지위에 올랐다. 무력의 아들 서현 역시 낭비성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으며 각간의 자리에 올랐다. 각간은 신라 17관등 중 1등위다.

나중에 삼한을 병합한 김유신이 태대각간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대각간이나 태대각간은 상설적인 벼슬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비정규적으로 특설한 것이었다. 김유신의 가문은 신라에 귀순한 이래 대대로 각간에 올랐을 뿐 아니라 진골귀족으로 행세했다(참고로 신라에서는 진골귀족이 아니면 3등위 이상의 관직에 오를 수 없다). 

신라가 귀순한 가야의 왕족에게 진골귀족의 작위를 부여한 것은 나름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이 다만 시혜적인 것이었을까? 신라란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열린 사고 구조를 가진 나라였을 수 있다. 박씨족에서 석씨족으로, 다시 김씨족으로 왕권이 이전되는 과정을 보아도 그렇다. 신라는 통합왕조였던 것이다. 

하나의 왕조가 다른 왕조를 배타적으로 멸망시키는 관계가 아닌 상생하는 관계였다고나 할까. 여기에 가야계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이런 전통에 따라 신라는 가야계의 유력한 왕족인 유신의 가문을 진골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유신 가문이 진골귀족이 된 것이 단순히 가야의 왕족이었기 때문일까?

그들이 아무리 가야의 왕족 출신이라도 탄탄한 무력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구형왕은 신라에 귀순함으로써 자신과 자식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영지에 대한 관할권까지도 일정하게 유지했을 것이다. 우리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서 유심히 살펴볼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비담의 화랑 입문기다. 

정치적 입지는 무력보다 혼사가 더 큰 변수

비담은 화랑이 되었지만 아직 낭도가 없다. 말하자면 그는 병사 없는 장군이다. 만약 비담이 끝내 낭도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는 영원히 나홀로 화랑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여러분은 하나의 의문도 들지 않는가? 어째서 신라는 화랑으로 임명한 또는 인정한 자에게 낭도를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일까? 아무튼 김유신은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이런 무력도 그저 가문의 귄위를 지키는 정도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우지 않고서 패망한 왕조의 가문의 영광을 일군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나 마찬가지다. 김무력과 김서현은 수많은 전쟁에서 공을 세웠지만 앞으로 김유신도 마찬가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항상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잘 가르쳐준다. 여기엔 보다 복잡한 고도의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다. 그 변수란 다름 아닌 혼사다. 오늘날의 재벌가나 정치인, 고위관료 집단의 혼맥을 살펴보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말에 의하면,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조선일보와 이명박 대통령의 혼맥도라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아마도 내가 느낀 그대로라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거미줄로 쳐진 망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덕업일신 망라사방>이 아니라 <우리끼리 망라독점>이라고 말해도 하나도 지나치지 않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과 영모의 결혼도 분명히 책략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에서도 그랬을 수 있다. 김유신이 자신의 누이들과 김춘추를 결혼시키기 위해 벌인 쇼를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꿈을 사고 판 누이들의 이야기로 너무도 유명한 이 아름다운 고사의 그림자 속에는 무서운 책략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연애담, 천관녀와의 사랑

그런 김유신에게도 애절한 연애담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천관녀와의 사랑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천관녀는 기생이라고도 하고 제관이라고 하며 주막집 처녀라고도 하는 등 다양한 신분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몇 해 전, KBS 사극 <연개소문>에 등장했던 천관녀는 미실의 양녀로서 하늘에 제사를 주관하는 천관이었다. 

천관녀가 어떤 출신의 여인이었던지간에 분명한 것은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천한 가문에 속했음은 그다지 틀지지 않아보인다. 만명부인으로 말하자면, 법흥왕의 동생 입종갈문왕의 손녀이며 진흥왕의 동생 숙글종(숙흘종이라고도 발음함)의 딸이다. 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왕족이었다. 

당시는 왕족의 명예와 특권을 위해 철저하게 근친혼이 행해지던 때였다. 김유신이 비록 진골귀족이라고는 하나 패망한 가야의 왕족일 뿐이었다. 내물왕계의 후손으로 철저한 근친혼이 신국의 도라고 배웠던 만명공주에게 김서현은 절대 결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만명공주는 김서현을 따라 만노군(충북 진천)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유신을 낳았다.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김서현은 당대의 명장이며 신라 최고의 관등 각간에 '대'자를 더한 대각간이다. 신라 천년역사를 통틀어 대각간의 지위을 받은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런 김무력의 가문과 혼사를 맺는 것은 왕족이라 하여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무튼 만명공주는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젊은날의 에피소드로 인해 콤플렉스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콤플렉스는 자연스레 출세지향적인 성향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런 만명부인에게 천관녀는 가당치도 않은 존재였다. 그런데 자신의 기대를 짊어진 아들 유신이 천관녀에게 빠지다니. 만명부인은 유신에게 호통을 쳤다.

유신, 출세를 위해 애마의 머리를 자르다

"나는 어렵게 너의 부친과 결혼하여 너를 낳았다. 너는 어찌하여 가문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냐? 술 파는 천한 계집과 어울리다니 정신이 있는 게냐, 없는 게냐?" 크게 꾸지람을 들은 김유신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맹세했다. "다시는 천관녀를 만나지도 않을 것이며 그 집에 가지도 않겠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술 취한 유신을 등에 태운 말은 천관녀의 집으로 갔다. 유신의 말은 명마였다. 유신이 술에 취하면 가는 곳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술에 취한 유신이 천관녀의 집에서 운우의 정으로 밤이 깊어감을 잊었음은 물론이다. 다음날 아침 술이 깬 유신은 대경실색했다. 어머니에게 한 맹세를 깨뜨린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유신의 말은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주인의 연애를 도운 결과는 비참한 죽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유신은 진정으로 천관녀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하찮은 노리갯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천관녀가 주막집 기생이었다면, 그래서 유흥 목적으로 드나든 것이었다면, 만명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인 유신은 매우 강단이 있는 젊은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천관녀가 단순히 주막집 기생이 아니라, 요즈음 주로 대세를 이루는 주장처럼 제사를 주관하는 천관이었다면 이야기는 매우 달라진다.

유신 역시 어머니 만명부인과 마찬가지로 매우 출세지향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때 그가 자기 명마의 목을 자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출세를 위해 사랑도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모와 결혼했으며 또 후에 자기 누이가 김춘추와 결혼하여 낳은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유신도 근친결혼, '혼사는 정치야심의 도구'

말하자면, 김유신도 자기 가문의 권위와 특권을 만들기 위해 근친혼을 강행했던 것이다. 하긴 강행이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 시대에 근친혼이란 이상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신국의 도란 이름으로 권장되던 행위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원술랑이 바로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난 공주가 김유신과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다. 

그토록 출세지향적이었던 김유신, 그래서 천관녀와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말의 목을 잘랐던 김유신, 그러나 천관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은 가슴속에 남아있었던 것일까? 백제를 멸망시키고 돌아온 김유신은 자신이 드나들던 천관녀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 천관사란 이름의 이 절은 오는날 흔적은 없고 자취만 남아 천관사지라고 불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이 영모와 결혼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김유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군. 자기 감정을 다스리며 저토록 처절하게 이성에 충실하다는 것은 보통 수양이 깊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실로 삼한통일을 이룰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거기에 대해선 뭐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사람에겐 저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뉴스를 통해 한국 최고 재벌의 후계자가 이혼하는 것도 보았으며, 또 그 최고 재벌에 시집을 갔다고 해서 신데렐라가 되었다가 스스로 이혼을 결심하고 나온 사람도 보았다. 

신데렐라가 동화 속에서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의 테마일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어떨까? 왕비가 된 신데렐라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혹은 왕비가 된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단지 유리구두 한 짝 뿐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것은 아니었을까? 

천관사를 완성한 김유신, 천관녀에게 무어라 말했을까?

아무튼 김유신이 미실가문과의 혼사로 정치적 제휴를 맺어 가야 유민들을 살렸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가야 유민들은 김유신에게 목숨을 빚졌다. 그들은 생사를 다해 충성을 다할 것이니 김유신으로서는 확실한 무력을 확보한 셈이다. 그나저나 후반부에서 김유신과 최대의 각을 세우게 될 비담은 어떻게 자신의 군대를 만들어갈까? 

좀 촌스럽게 말한다면,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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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하던 비담, 천진난만하던 비담이 초라해지고 있다. 알천랑의 뒤를 이어 유신의 포스를 누르며 인기를 구가하던 비담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다. 야심을 드러낸 비담의 야비한 행보가 유신의 진심 앞에 한없이 작아 보인다. 왜 그럴까? 자기 출생의 비밀을 몰랐을 때 비담은 당당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허리를 숙일 필요도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비담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버렸다.

비담과 문노 사이에 놓여진 책이 바로 '삼한지세', 즉 삼국의 형세를 분석한 전략지침서다.


유신의 진심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비담의 야심 

비담은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문노에 의해 키워졌다. 비담은 문노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나, 문노는 그런 비담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문노는 철저하게 스승과 제자로 관계를 한정지었다. 그런 문노에게 비담은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천애고아인 비담,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비담의 심정을 누가 알 것인가.

비담에겐 오로지 문노뿐이었다. 그런 문노가 어느 날, 자기에게 말했다. "내가 준비하는 모든 것은 다 너를 위한 것이란다. 이 모든 것들은 다 네 것이다." 그가 준비하는 것들이란 다름 아닌 <삼한지세>였다. 진흥왕으로부터 받은 원대한 대업의 꿈, 언젠가 이 불가능한 꿈을 이룰 자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 삼한을 누빈지 오래다. 

문노는 이 꿈을 이룰 자가 비담인 것으로 오해했다. 개양성의 주인인 덕만공주와 혼인시켜 비담을 왕으로 만들겠다는 게 문노의 생각이었다. 아마 어리석고 겁 많은 소화가 덕만을 데리고 도망치지만 않았다면 이 계획은 아무런 차질 없이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문노의 이 원대한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담이 잃어버린 문서 <삼한지세>를 되찾기 위해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독약을 먹여 남여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죽여 버리고 만 것이다. 문노는 당황했다. 어린 아이의 비정한 참모습에 그가 세운 원대한 계책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때부터 문노는 비담을 멀리했다. 비담을 제자로 인정하려 들지도 않았다. 잔인한 성격을 지닌 비담이 두려웠던 것일까? 

문노는 비담에게서 진심 대신 사심을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신이 나타났다. 비담에게서 찾던 진심을 유신이 갖고 있었다. 처음 볼 때부터 놀라운 눈으로 성장하는 유신을 반신반의하며 지켜보았지만, 유신이야말로 삼한통일의 꿈을 이룰 인재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몇 차례 그를 시험해보았다. 확실히 개양성을 도와 천하를 도모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어떤 왕릉보다도 잘 보존된 화려한 김유신장군묘. 오늘날에도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유신의 기개와 이상은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유신에겐 확실히 비담이 갖지 못한 기개와 이상이 있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유신이 흔들리는 천명공주에게 말했었다.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이 말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진심을 다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유신은 가야유민의 마음을 얻어 신라사회 안에 자기 세력을 구축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앞장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써 오랜 세월 의심받고 견제 당하던 신라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넘어 신라를 움직이는 핵심세력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다. 가야세력을 살리기 위해 오히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앞장섬으로써 돌파하겠다는 생각을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비담은 어떤가. 그에겐 원대한 포부 따위는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욕망과 안위가 중요할 뿐이다. 그는 외롭게 살았다. 그는 지켜야 할 가족도 종족도 없다. 오로지 혼자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스승에게 인정받는 길이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문노뿐이다. 문노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일생의 기쁨이다. 그것은 곧 가족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담에겐 사랑받고 사랑해 줄 가족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목이 말랐다. 그리고 그는 그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을 죽였다.

선덕여왕이나 태종무열왕릉에도 이런 장식은 없었다.

김유신장군묘를 둘러 치장한 십이지신상이 화려하다.

 
그러나 스승을 기쁘게 하려고 저지른 행동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스승 문노를 잃은 것이다. 그는 더욱 외로운 존재가 되어갔다.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냉소 뒤엔 늘 쓸쓸한 고독의 그림자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다. 자기가 미실 새주와 진지왕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비담을 냉혹한 야심가로 만든 것은 바로 스승 문노다

게다가 스승 문노가 자기를 덕만공주와 혼인시켜 왕재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문득 어린 시절 일이 떠올랐다. "여기 내가 만드는 이 삼한지세는 모두 너를 위한 것이란다. 모두 네 것이야." 아, 내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독한 방황의 삶을 살아왔단 말인가. 

이때부터 비담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비재에서 보여준 그의 야비한 행동은 모두에게 경악과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생모 미실은 그런 그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다. 미실은 자기가 덕만공주에게 잘 보여 사욕을 채우려다 일을 그르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지독한 모욕감을 느낀 비담은 수치심과 분노로 몸을 떤다. 

믿었던 스승 문노도 이미 자기에게 마음을 돌렸다는 사실을 눈치 챈 비담, 이제 그가 가야할 길은 어디일까?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비담을 탓하고 있지만, 사실은 비담을 이렇게 만든 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그 첫 번째 원흉은 다름 아닌 비담의 생모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갓난아기를 버렸으며 그 아기의 생부도 죽음으로 몰았다.

비담으로 보자면, 단란한 가정을 빼앗은 것이다. 정상적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을 터전을 박탈당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원흉은 문노다. 미실에 비해 문노의 죄는 더 크다. 아이를 데려갔으면 제대로 키웠어야 한다. 자신 없으면 데리고 가지 말았어야 옳다. 그런데 문노는 비담을 데려다가 고독과 분노만 가르쳤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선덕여왕 세트장에서 김주완 기자와 거다란닷컴 커서. 커서님의 SUV 구입 기념으로 경주에 다녀왔다.


어린아이에게 고독이 얼마나 지독한 형벌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린아이에게 자신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존재가 불분명한 고독은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게 한다. 대신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냉소다. 비담의 행동은 바로 그 냉소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비담의 운명은?


그럼 유신의 진심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우선 서현공과 만명부인이라는 든든한 부모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자신이 속한 자기 정체성의 뿌리인 가야세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유신의 진심이 기개와 이상으로 승화되고 비담의 냉소가 비굴한 야심으로 추락한 것은 이로부터 비롯된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복야회의 수장 월야의 야심과 비담의 야심을 비교해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월야의 야심은 역시 유신과 마찬가지로 진심에 기반하고 있다. 결국 진심이란 개인적인 욕심으로부터 나올 수는 없는 것이며, 매우 사회적인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신과 월야와 달리 구속될 세력이 없다는 것은 비담의 크나큰 불행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을. 운명이 루비콘 강을 건너 저 멀리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후일 비담과 함께 반란을 주도할 염종이 왜 문노의 명으로 삼한지세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도박장에서 이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있는 비담,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신선처럼 느껴지던 문노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불안하다. 

등하불명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대체 작가는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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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선도동 | 김유신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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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건 뭐 드라마를 보신 분이면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유신이 자기 입으로 말했으니까요. "가야세력이 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2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2인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공주님을 여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유신은 왜 선덕여왕과 결혼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

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이 말합니다. "네가 공주님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왕이 되는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 유신의 아버지 김서현공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신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2인자가 되어야 하지만, 결코 1인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가 왕이 된다면 신라의 모든 귀족들이 연합하여 우리를 적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내전이 일어납니다. 가야세력과 신라세력이 싸움을 벌이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되어서는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영민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서라벌의 권력 판도를 한 눈에 꿰고 있습니다.

아마 김유신이 진평왕의 부마가 되어 왕이 되고자 한다면 그와 가장 절친한 알천마저도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알천 역시도 신라의 진골귀족이기 때문입니다. 알천이 제 아무리 김유신과 친하다고 하더라도 신라의 왕족으로서 가야계가 왕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을 터입니다(여왕의 부군이 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만명부인이 김유신에게 한 말 말입니다. "네가 공주님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어 왕이 되면 되지 않겠느냐?"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부마도 왕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답은 "네, 할 수도 있습니다."가 되겠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신라만큼 화통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세계 역사상 한 나라가 천 년 동안 이어진 것은 로마와 신라뿐입니다. 그러나 로마에 여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로마는 철저한 부권사회였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함께 서구문명의 뿌리를 이룬 것은 로마법입니다. 

신라는 부마도, 외손자도 왕이 될 수 있는 나라였다

정복이 전공인 로마는 도시를 파괴하고 주민을 추방하거나 노예를 만드는 데 세계 최고의 기술을 발휘했습니다. 그런 로마는 강력한 무력을 가진 자만이 통치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에서 여왕이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신라는 달랐습니다. 신라는 처음부터 부족들이 연합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된 나라입니다. 차츰 고대국가의 틀이 갖춰지면서 배타적 왕권이 형성되는 것은 다른 나라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여전히 연합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화백회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신라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신라는 천년 역사를 통틀어 왕이 된 사위만 8명이 나왔습니다. 그 최초의 인물은 너무도 유명한 석탈해입니다. 미추왕,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 흥덕왕, 경문왕, 신덕왕은 모두 사위로서 왕이 된 인물들입니다. 이 중 미추왕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최초로 김씨가 신라의 왕이 된 사람이죠.

외손자로서 왕이 된 경우도 흘해왕, 지증왕, 진흥왕 등 3명에 이릅니다. 여기에 더해 3명의 여왕도 나왔습니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그리고 진성여왕이 그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모계사회 이후 남녀평등을 가장 잘 실천한 나라는 신라였다고 말해도 그리 과언이라고 탓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이쯤에서 만명부인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덕만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어 왕이 되면 가야세력의 안전을 보장받지 않을까!" 그러나 김유신은 영리합니다. 영리한 만큼 계산능력도 대단히 뛰어납니다. 그는 자기가 왕이 되면 오히려 신라귀족들의 반발에 직면해 멸망의 길을 가게 되리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가야계를 지키기 위한 김유신의 치밀한 계략은 '선덕여왕 옹립'

그래서 그는 왕이 되기보다 왕을 옹립하여 제 2인자의 자리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덕만공주를 사랑하던 김유신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덕만을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하면서 연모의 정을 끊어버리겠다고 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거기에 불만을 토로했었지요.

"아니 덕만이 왕이 되더라도 결혼할 수 있잖아. 그러면 되잖아. 여왕은 삼서제에 따라 세 명의 남편을 둘 수 있다며? 그런데 연모의 정을 끊겠다니 웬 황당한 소리야. 너무 웃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김유신은 역시 역사가 말해주듯 매우 권력 지향적이고 냉철하며 계산에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덕여왕을 향한 연정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현실적인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겠지요. 그 정도는 돼야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사상 신하로서 대왕의 칭호를 얻은 공전절후의 인물 김유신이라면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어쨌든 김유신은 자기 부모님들에게 덕만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는 가야계의 보존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김서현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계책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좀 짓궂은 이들 중에 김유신이 덕만공주와 혼인할 수 없는 이유를 드라마가 아닌 다른 곳(역사적 사실)에서 찾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유신에 비해 덕만이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죠. 일부(혹은 다수)에서는 선덕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할머니가 다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어떤 확증적인 사료는 없습니다. 다만 유추하는 거죠. 그럼 우리도 역시 자유롭게 유추해볼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유신과 결혼하기엔 선덕여왕이 나이가 너무 많다?

천명의 아들인 김춘추가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던 632년에 30세였습니다. 여기에다 덕만공주가 장녀라는 삼국사기의 기사를 배척하고 삼국유사를 따른다면, 선덕여왕의 당시 나이를 50대 이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드라마의 무대가 되고 있는 610년 경 덕만공주는 20대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도 나이가 많습니다. 유신이 595년생이니 그래도 아직 15세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간단하게 생각합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남녀의 적당한 결혼연령차에 관한 인식은 모두 17세기 양대 병란 이후 어렵던 시절에 만들어진 꼬마신랑 같은 생각들입니다.  

여자가 한 10년 연상이라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아마 그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게다가 덕만은 공주입니다. 그것도 왕위계승권 1순위자. 그러므로 김유신이 덕만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진정한 사유는 유신랑 본인이 고백한 것처럼 원대한 대의에 따른 것입니다. 

덕만공주을 왕으로 옹립하여 자신은 2인자가 됨으로써 가야계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 역시 김유신은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실제로 김유신은 신라의 2인자로 확실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후 백년에 걸쳐 김유신의 가문은 권세를 누립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있습니다. 김유신이 죽은지도 10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신라계 귀족들은 가야계에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가야계는 신라계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차츰 역모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김유신장군릉. 왕이 아닌 장군의 무덤은 묘라고 한다. 그러나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그의 묘는 '릉'이 맞겠다.


미추왕과 담판을 지어 가야계를 구하는 김유신

마침내 혜공왕 15년(779년) 무덤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갑옷에 말을 타고 40여 명을 이끌고 나타난 김유신은 죽현릉으로 들어가 미추왕에게 따집니다. "신이 신라을 위기에서 구하고 삼한을 통일한 공이 있다. 혼백이 되어서도 신라를 지킬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경술년에 신의 자손들이 죄 없이 죽임을 당해 서운하기 짝이 없다. 신라를 떠나고자 한다." 

이에 미추왕(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의 영혼이 간곡히 만류하자 회오리바람은 왔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혜공왕은 혼비백산하여 황급히 김유신의 묘를 찾아 사죄하고 김유신이 세운 취선사에 토지 30결을 바쳐 명복을 빌었다고 합니다. 김유신은 죽어서도 가야계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히는 김유신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작가의 상상력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도 알았으므로 작가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유신랑과 보종랑의 결투는 왜 이리 질질 끄는 겁니까? 오늘 결판 낼 줄 알았더니만…. 내일은 반드시 결판을 내겠지요. 결과를 알면서도 그게 자꾸 기다려집니다. 이건 아주 묘한 감정인데요. 아마 드라마 초반에 유신랑이 당한 수모를 빨리 갚아주기를 바라는 뭐 그런 심정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리라 생각하는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근래 보기 드문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제가 보건대 연말 대상은 따놓은 당상인 듯합니다. 틀림 없습니다. 작년에 김명민의 베토벤 바이러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단연 선덕여왕입니다. 작년 MBC 대상은 송승헌과 김명민의 공동수상으로 김 빠진 맥주 꼴이 되었지만, 올해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꼭 그렇지는 않군요. 김남주의 내조의 여왕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청율 등 충성도에서는 선덕여왕이 많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요원 씨, 방심하지 말고 분발해야겠군요. 김남주가 워낙 거물이니… 


선덕여왕을 만든 작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대장금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입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니 그는 우석훈 씨의 선배이며 운동권 출신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랬었군요. 그래서 제가 늘 선덕여왕 후기를 올릴 때마다 적었지만, 미실의 모습에서 이명박 정권의 잔혹한 모습이 연상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선덕여왕은 재미도 있지만, 철학도 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늘 선덕여왕 칭찬만 침이 마르도록 해왔던 제가 오늘은 안티를 좀 걸어야겠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너무 무시한다든지 이런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비록 시공을 너무 초월해서 픽션을 만들어낸다는 허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을 것이란 이해를 합니다. 대가야의 후예들과 금관가야의 후예들이 같은 가야 출신으로서 동맹을 한다는 허구도 이해합니다. 사실 대가야와 금관가야는 완전히 다른 세력이니 동질감을 가진다는 건 김훤주 기자의 지적처럼 난센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아니 그런 것들은 아예 눈 딱 감고 신경 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드라마에 몰입하기만 하면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충분한 행복을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김훤주 기자가 그의 블로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지퍼 달린 군화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런 사소한 선덕여왕 스탭들의 실수를 옥에 티로 블로깅하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은 도저히 참기 힘든 옥에 티가 발견되었습니다. 진평왕 말입니다. 사실은 선덕여왕에선 진평왕을 진평왕이라 하지 않고 진평제 혹은 진평대제라 불러야 할 겁니다. 물론 시호는 왕이 죽은 후에 신료들이 의논하여 올리는 것입니다만, 어쨌거나 드라마에서 신라의 왕은 황제입니다. 실제로 신라가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칭호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왕이 황제보다 격이 낮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황제란 이름은 중국의 시황제가 이전의 왕들과 자신을 구별짓고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주나라 시대까지 제후들에겐 공이란 호칭을 사용했지요. 제나라 환공이니 노나라 양공이니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원래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왕이었습니다. 진시황 이후부터 중국에서는 황제란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 것일 뿐이지요. 중국에서 왕 대신 황제란 이름을 사용했다고 다른 나라 왕들이 갑자기 황제보다 격이 낮아진다는 건 엉터리입니다. 

황제나 왕이나 동격입니다. 중국에서만 황제가 왕보다 한 단계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신라의 왕들이 자신을 왕이라 부르건, 마립간이라 부르건 또는 황제라 부르건 이는 위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진평왕이든 진평제든 황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자신을 호칭할 때 과인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진흥대제를 이어 황제가 된 진평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지요. 

고려시대에는 아예 중국처럼 황제들에게 붙이는 묘호인 조와 종을 썼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도 태종이란 묘호를 쓰긴 했습니다만, 신라시대에는 아직 중국의 제도나 문물이 정착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와 종을 선대의 왕들에게 올리는 관습이 정착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원래 하던 전통대로 그냥 무슨무슨 왕이란 시호를 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진평왕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부른 것은 난센스였습니다. 

실수였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짐이라고 불렀는데 어제 프로에서만 짐이란 황제의 자기 존칭을 까먹고 과인이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제 기억에도 앞에서는 진흥왕도 자기를 짐이라고 했고 진평왕도 그리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위에 적시한 다른 것들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므로 우리가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그렇네요. 조금만 신경 쓰면 될 것을. 이건 지퍼 달린 군화하고는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이러다 폐하를 전하로 부르는 사건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대본을 만들 때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연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기자도 그렇습니다. 조민기는 자기가 황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집에 가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도 늘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덕여왕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래야 생생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이건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아무튼 황제가 스스로 짐을 과인으로 깎아내린 사건은 매우 유감입니다.

하긴 조민기 같은 베테랑 연기자도 실수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퍼 달린 군화를 신고 나오든 짐을 과인이라 부르든 우리는 그저 재미있게 보면 되는 거겠지요. 그래도 이런 사소한 실수가 한 번씩 두 번씩 나올 때마다 김 빠진 맥주 마시는 기분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몰입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지요. 에이, 저러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이 자꾸 드니까요. 아무튼 선덕여왕, 제 1막이 끝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소화에게 안겨 사막으로 쫓겨갔던 덕만이 드디어 자기가 태어난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실과 어떻게 싸움을 벌여갈지 궁금 또 궁금입니다. 그나저나 문노는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겁니까? 오늘 나오려나 내일 나오려나 하고 있는데 계속 안 나오네요, 속 터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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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