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77건

  1. 2014.11.24 헤르메스, 메르쿠리우스, 머큐리 by 파비 정부권
  2. 2014.11.24 신과 슈퍼맨 by 파비 정부권
  3. 2014.06.08 고대그리스 남자들이 장을 봤던 까닭 by 파비 정부권
  4. 2013.02.22 맞아떨어지는 예언이 하나도 없어 by 파비 정부권 (2)
  5. 2013.02.02 나는 저승에 다녀온 것일까? by 파비 정부권 (7)
  6. 2013.01.29 왕따가 만든 역사상 최대의 비극 by 파비 정부권
  7. 2012.11.19 꿈에 노무현대통령 만난 이야기 등 by 파비 정부권
  8. 2012.11.01 앞니 세개가 부러졌는데, 꿈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1)
  9. 2012.10.06 이란에선 정말로 마라톤을 금지하고 있을까요? by 파비 정부권 (1)
  10. 2012.09.20 잊히지 않는 청국장 냄새의 추억 by 파비 정부권 (3)
  11. 2012.08.31 정겨운 소시적 사투리, "어디 가여?" by 파비 정부권 (3)
  12. 2012.08.27 장대비에 빠알간 고추는 더욱 붉게 빛나다 by 파비 정부권 (1)
  13. 2012.08.25 스탠스와 나이브에 대한 잡생각 by 파비 정부권 (6)
  14. 2012.08.17 내 꿈은 환타풀장에서 수영하는 것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10)
  15. 2012.08.10 다음의 실수, 영양은 강원도가 아니라 경북이랍니다 by 파비 정부권
  16. 2012.08.07 내가 한 기독교인과 페북 친구끊기를 한 이유 by 파비 정부권 (10)
  17. 2012.08.05 종북주의는 어설픈 친북주의가 골치 아파요 by 파비 정부권 (11)
  18. 2012.07.09 7월 4일은 비스트 윤두준의 생일? by 파비 정부권 (4)
  19. 2012.03.18 페이스북, 괴롭고 불편하면서도 하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21)
  20. 2011.12.17 블로그 글쓰기에 대한 짧은 소견 by 파비 정부권 (7)
  21. 2011.11.27 법정구속 간통목사, 남의 여자 취한 게 이유? by 파비 정부권 (4)
  22. 2011.10.26 길을 막고 주차한 BMW, 차주인은 역시 여자 by 파비 정부권 (2)
  23. 2011.10.13 결초보은의 본래 뜻은 여성해방? by 파비 정부권 (1)
  24. 2011.09.27 홍라희가 여사? 이건희도 곧 선생 되겠군 by 파비 정부권 (2)
  25. 2011.06.23 복수는 나의 것, 소심하게 사는 게 행복한 길 by 파비 정부권 (1)
  26. 2011.05.23 당분간 블로그 운영 못합니다 by 파비 정부권
  27. 2011.03.22 마산합포구청장, 이옥선 의원, 가수 김산 씨, 서익진 교수님, 사진 가져가세요 by 파비 정부권 (5)
  28. 2011.03.14 무학산 둘레길 산불요원, 혹시 천사 아닐까? by 파비 정부권 (6)
  29. 2011.01.28 올릴 게 없어서 올리는 썰렁한 이야기 by 파비 정부권 (3)
  30. 2011.01.16 걷기행사도 포기한 기록적 강추위, 원인은? by 파비 정부권

헤르메스는 제우스가 아내 헤라 몰래 한 님프와 외도를 하여 낳은 아들이다. 그는 전령이며 소매치기이며 재담꾼이며 거짓말쟁이이며 발 빠른 여행자이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마이아를 떠나 모험에 나섰는데 자기 재주를 십분 발휘하여 아레스의 칼, 포세이돈의 삼지창,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아폴론의 황금 뿔이 달린 하얀 소 50마리 등을 훔쳤다.


그는 제우스 앞에 나아가 웅변가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함으로써 아버지의 마음을 사는데 성공했고 신들의 전령에 임명되었으며 올림포스 열두 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베르베르에 따르면 대신 그는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그러나 영악한 헤르메스는 다음과 같은 단서를 달았다.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때로 깜박 잊고 진실을 다 말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헤르메스는 독창적인 악기를 만들기도 하고 설형문자를 발명하기도 하는 등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이런 재능 탓이었던지 그는 계약의 성사나 사유재산의 유지를 관장하는 신인 동시에 도둑들의 신이기도 한 모순적인 지위를 얻게 되기도 한다.


헤르메스라는 이름은 돌무더기라는 그리스어 헤르마에서 유래되었다고 믿어지는데 돌무더기는 그리스에서 경계 혹은 이정표를 나타낸다. 그는 길과 관련된 모든 것, 도로와 교차로, 시장, 선박 따위를 관장하는 신이며 여행자의 길 안내도 그가 맡았다. 죽은 자를 하계, 즉 하데스로 인도하는 것도 그의 책임이었다. 그는 또 점성술사의 신이기도 했다.


헤르메스 역시 다른 신들처럼 여신 혹은 님프, 인간과 결합하여 여러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아우톨리코스이다. 이 아우톨리코스의 손자가 오디세이아의 영웅 오디세우스이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오디세우스를 뛰어난 지혜, 언변, 기략, 용기, 인내를 지닌 인물로 그리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그의 증조부 헤르메스처럼 교활한 모사꾼이다. 그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려는 미르미돈의 영웅 아킬레우스를 잔재주와 계략으로 참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뱀에 물려 렘노스 섬에 버려진 필록테테스와 그의 활과 화살이 없이는 결코 트로이를 정복할 수 없다는 예언자의 점괘에 따라 그를 데려오기 위해 파견되어 일을 성사시킨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오랜 세월 방황과 모험을 겪고서야 비로소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와의 재회가 허락되고 이타카 왕의 지위도 되찾게 된다. 10년에 걸친 표류는 신들의 저주가 결정한 운명 때문이었지만 어쩌면 헤르메스로부터 전해진 유전자 탓은 아니었을지. 오디세우스는 헤르메스처럼 이중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헤르메스의 로마식 이름은 메르쿠리우스이다. 영어식 이름은 머큐리이다. 내가 머큐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고급 미제 자동차 때문이었다. 아마 1993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어떤 재판 때문에 부산고등법원에 한 달에 한번 정도 출석해야 할 일이 있었다. 보통은 시외버스를 타고 사상터미널에 내려 대중교통을 이용해 법원에 갔지만 가끔 친구 차를 타고 갈 때도 있었다.


정수 차를 타고 갔을 때였다. 친구 차는 경차의 대명사로 이름을 떨치던 티코였는데 부산 법원 근처는 아시다시피 차를 댈만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재수가 좋았던지 몇 바퀴를 돈 끝에 겨우 한 곳을 찾아내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니 떡하니 티코보다 크기가 세배는 됨직한 대형 세단 한 대가 앞을 막고 있는 게 아닌가. 머큐리였다.


건물 경비를 부르고 잠시 후 머큐리 기사가 왔다.


“아니 건방지게 감히 우리 변호사님 주차하는 자리에 티코가 대?” 
“하루 종일 쓴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게 너거가 전세 냈나? 너거만 여기다 대라는 법이 있나? 뭐 티코가 어째? 운전기사 주제에 눈은 높아가지고.”


성질 더러운 정수의 입에선 쌍욕마저 나올 태세였다. 그러자 이번엔 그 고명하신 변호사님께서 내려오셨다.


“뭐꼬. 누가 여기다 차를 대라고 했노. 차 빼주지 마라.” 
“아 씨발 진짜 이거 엿같네. 외제차도 오데 순 고물딱지 같은 거 하나 가지고서는. 알았다, 그래 함 해보자.”


친구는 당장 112에 전화를 걸었고 순찰차가 출동했고 양쪽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순경은 다른 문제는 일단 알아서들 법대로 하시면 될 일이고 자기는 머큐리에 딱지부터 떼야겠다며 스티커를 꺼내들고 변호사에게 면허증 제시를 요구했다.


뭐 그 다음 일은 상상들 하시는 대로다. 법집행을 잘 아는 변호사는 당장 꼬리를 내리고 차를 빼도록 지시했고 운전기사는 투덜거리며 차를 뺐으며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티코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머큐리의 주인과 그의 머슴은 도둑놈 같은 인상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헤르메스처럼 교활하고 영악하지도 언변에 능하거나 머리회전이 빠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슈퍼맨 2편이었는지 3편이었는지 모르겠다. 슈퍼맨의 고향 크립톤 행성에서 추방당한 악당 네 명 중 두목에 해당하는 녀석이 슈퍼맨과 마주쳤을 때 처음 거엔 말이다. 내 비록 중3 영어가 마지막이지만 그 정도는 들쳤다.

"선 오브 더 조 엘!"

(더가 분명히 들렸는데 그게 왜 들렸는지는 지금도 잘 모름)

엘은 가나안족이 믿던 신의 이름이다. 엘의 변형이 야훼이고 야훼는 숨 혹은 숨을 불어넣는 자 즉, 창조주이다. 조는 이름이고 엘은 성일 것이다. 슈퍼맨은 신족의 후예인 것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슈퍼맨,

고대그리스에서 장보기는 남자의 일이었다. 이 남자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시장 즉 아고라였다. 나중에 아고라는 광장이라는 의미로도 통하게 되었는데 장을 보기 위해 시장에 모인 남자들이 이곳에서 정치토론을 벌였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에는 종이가 없었다. 파피루스가 있었지만 마음껏 글을 새길 수 있을 만큼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처럼 전단을 만들어 뿌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으므로 야심을 가진 정치지망생들은 대신 대중연설을 통해 자신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최고 관심사는 어떻게 해서든 호민관이나 원로원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가르치는 전문직이 생겨났는데 소피스테스(영어로 소피스트)라고 불리는 선생들이다. 이들 소피스테스에게 배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아고라에 모여 갈고닦은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웅변으로 발표하고 뽐냈던 것이다. 


자, 음, 여기서 나의 관심사는 아고라니 소피스테스니 하는 것들이 아니고 고대그리스의 장보기는 남자의 책임이었다는 것이다. 장보러 간 남자들이 모여 정치토론을 벌였던 곳이 바로 아고라였다는 것. 그런데 왜 남자들이 장을 보러 갔을까? 인류역사상 최초의 민주주의가 발현한 곳으로 간주되는 그리스에서는 장보는 것조차도 남자들이 했다니. 민주적인 가사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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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여자들은 대문 밖을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ㅠㅠ

Posted by 파비 정부권

머릿속이 온통 시커먼 연기에 뒤덮인 듯 혼란스럽다. 마치 깜깜한 터널 속을 홀로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뭔가 일을 해야 하는데 막막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잠시 정신을 돌려 다른 생각을 좀 해보기로 한다.

일전에 심심풀이땅콩으로 <트로야전쟁>에 대해 썼던 적이 있다. 아마도 트로이가 멸망한 원인은 왕따 당한 한 여신의 질투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이야기했다. 사소한 불화 하나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사실은 또 얼마나 많은 불합리가 내포돼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썼다. 우선 나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트로이 멸망의 원인이 된 불화는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서 비롯됐다. 에리스가 던진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란 문구가 새겨진 황금사과를 놓고 헤라와 아테나와 아프로디테가 다투다 결판이 나지 않자 목동 파리스에게 달려가 판결을 구하는데 그때 아무래도 파리스는 스무 살 정도는 되었을 거란 것이다. 그리고 이때 아킬레우스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것.

여기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아전인수식으로—해소됐다. 신들의 세계의 시간은 인간세계의 시간과 달라서 이들이 잠깐 황금사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냐를 놓고 논쟁하는 사이 아킬레우스도 태어나고, 파리스는 불길한 신탁에 따라 프리아모스 왕이 숲에 버리도록 지시했지만 늑대들에게 키워져 이데 산의 목동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오래된 사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여전한 의문들이 있다. 트로이 최고의 용사 헥토르가 죽은 후 아킬레우스 역시 아폴론의 사주를 받은 파리스의 독화살에 아킬레스건을 맞고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자 그리스 진영은 큰 혼란에 빠진다. 아킬레우스 없이 어떻게 견고한 트로이 성을 공략할 것인가?

이때 “오직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로써만 트로이는 정복될 수 있다”는 예언이 제출되고—내가 제출되었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 전설적인 이야기를 듣노라면 꼭 무슨 사건이 생겨야만 예언자의 입이 열리더라는 것이다—그 활과 화살을 갖고 있는 이는 필록테테스였던 것이다.

필록테테스는 원래 트로이로 향하는 그리스 원정군의 일원이었다. 그도 역시 스파르타의 공주 헬레네의 구혼자 중 한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불행하게도 렘노스 섬에서 독사에게 물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이에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장수들은 그를 렘노스섬에 버리고 갈 것을 주장하고 결국 그는 섬에 홀로 버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의논 끝에 그리스의 장수들이 렘노스 섬으로 달려가 필록테테스를 설득했겠지만 뭐 잘 될 턱이 있겠어요? 10년 동안이나 섬에 버려져 무서운 독과 싸우며 살아남은 자의 원한이 얼마나 컸겠느냐 이 말이죠. 특히 오디세우스를 향한 저주는 남달랐을 테죠.

그런데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보다 앞서서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가 있어야만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있다’는 예언이 있었던 걸 앞의 이야기에서 했었죠? 그리하여 네옵톨레모스를 데려왔지만 트로이는 요지부동. 그래서 이번에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에 대한 예언까지 나온 겁니다.

필록테테스를 설득하기 위한 사자들에는 네옵톨레모스도 끼어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 등 다른 그리스 장수들은 믿지 않았지만 필록테테스는 아킬레우스에 대한 존경심과 믿음이 워낙 강했기에 네옵톨레모스의 간청을 들어주기로 작정하고 트로이로 가게 됩니다.

다들 아시는 이야기지만,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확보했음에도 그리스 군은 트로이 성을 어떻게 하지 못했습니다. 피록테테스의 화살에 파리스가 맞아 죽는 전과가 있긴 했었죠. 하지만 그 얄팍한 바람둥이 파리스 하나 죽는 게 무슨 대수였을까요? 트로이에는 여전히 아이네아스를 비롯한 용장들이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트로이를 함락시킨 것은 아킬레스의 무력도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도 아닌 목마였습니다. 트로이 인들의 자만심과 방심이 결국 트로이를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했던 거지요.

아무튼, 아주 오랜 옛날,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니, 뭐야. 도대체 맞아떨어지는 예언이 하나도 없잖아.”

아, 그런데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니 아직 정신 못 차린 거 같다. 여러분은 뭐 이상한 거 안 느껴지시나요? ㅠㅠ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슥한 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담배연기인지 김인지 모를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자욱하게 천장을 타고내리며 희미한 백열등을 더욱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식당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기역자 형으로 생긴 부엌에선 세 명의 여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은 중년이 조금 넘은 듯 보이고 한명은 나이가 지긋한, 이제 노인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나이로 보였다. 그들은 나를 본체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 취급하는 듯했다. 아니, 그보다는 오래된 단골손님이라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그저 들어오건 말건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매우 친밀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금단의 선을 넘어 그들만의 공간으로 들어섰음에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기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들이 바라다보이는 주방 안쪽에선 너무 오래 타서 색깔이 바랜 듯이 보이는 붉은색으로 춤추는 가스불꽃 위에서 커다란 솥이 마음껏 하얀 김을 내뿜고 있었다. 주방 안에서 말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세 사람을 보며 일순 혹시 이곳은 저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령일까 아니면 저들이 유령일까 잠깐 생각하고 있는 사이 또 다시 세 명의 남자가 커튼을 걷듯이 뽀얀 김을 들추며 들어왔다. 정말이지 그들은 오른손을 들어 김을 걷어내는 동작을 취하며 부엌으로 들어섰는데 그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세 여자는 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림자 대하듯 익숙하게 오랜 단골손님 대하듯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자기들 일에만 열중했다. 이 좁은 부엌에 나를 포함해 일곱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어떻게 전혀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잠깐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새로 들어온 세 남자 중 한 사람이 주방 한쪽 구석에서 돼지 내장 비슷한 것을 가져와서는 도마에 올렸다. 아니다.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칼을 든 채 나는 길쭉한 것이 대장 아니면 소장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길이로 반을 자르자 쭈글쭈글한 내장의 통로가 드러났다. 

도마에는 손바닥 크기의 뭉툭한 것도 있었는데 이게 염통일까 위장일까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것 역시 칼로 반을 잘랐는데 쭈글쭈글한 빈 공간이 드러났다. 고기는 이미 삶겨진 것으로 보였다. 소금이나 막장에 찍어 입에 넣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잠깐 데우기만 하면 아주 맛있는 수육이 혀와 식도와 허기진 배를 행복하게 할 것이었다. 

길쭉하게 반을 자른 내장을 익숙한 솜씨로—정말이지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익숙했다—서너 토막 잘라내고 있는데 묵묵하게 제 일에만 열중하던 중년을 갓 넘긴 것으로 보이는 여자가 내 손에서 칼을 거두며 간섭했다. 

“잠깐 기다리세요. 아직 다 익은 게 아니에요. 좀 더 익혀야 해요.” 

여자는 도마 위의 내장을 커다란 프라이팬에 담고는 예의 너무 오래 타서 색깔이 바랜 듯이 보이는 붉은색으로 춤추는 가스불꽃 위에 올려놓았다. 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내장이 충분한 수분을 흘려보내 프라이팬을 적시며 지지직 지직 하고 뜨겁게 달아오르는 소리를 냈다. 

그 액체는 어쩌면 해삼을 감싸고 있는 하얗고 끈적끈적한 점액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색깔은 누르스름하기도 하고 검붉기도 하고 그런 색들이 뒤섞여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장 안쪽의 일부는 이곳저곳 빨간 핏빛이 보였다. 

여자의 말대로 고기는 한번 삶은 것이지만 완전히 익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솥에 한 번 더 삶지 않고 왜 프라이팬에다 굽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쭈글쭈글하기도 하고 울퉁불퉁하기도 하게 길쭉한 내장은 프라이팬 위에서 그런 걱정일랑 집어치우라는 듯이 지지직 지직 소리를 내며 빨간 핏빛을 회색빛으로 지워가고 있었다. 고기에서 흘러나온 액체는 달아오른 프라이팬 위에서 비누방울 같은 거품을 뽀글뽀글 만들어내며 춤추고 있었다. 

모든 의문은 사라졌다. 이제 저 내장을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반듯하게 잘라 소금에 찍어먹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막장에 찍어먹어도 좋겠다. 부엌은 이제 세 여자와 세 남자를 분간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온통 뽀얀 김에 뒤덮였다. 익숙하게 코를 자극하는 냄새만이 침샘을 자극했다. 

“아아, 빨리 먹고 싶다.” 

그러나 내 혀와 식도와 허기진 배는 행복감에 젖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다. 꿈이었다. 방안은 어둠에 싸여있었다. 창문 유리를 타고 희미한 보안등 불빛이 노란색으로 하늘거리고 있었다. 머리맡에서 휴대폰을 찾아 열어보았다. 네 시가 조금 넘었다. 

거실에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사과를 하나 꺼냈다. 지난번 태풍에 일찍 떨어진 낙과다. 과일칼로 반을 잘라 붉은 껍질을 깎았다. 달다. 낙과가 온전한 사과보다 더 달고 맛있는 거 같다. 

떨어진 후에 적당히 익어서 그런 것일까. 고요한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혼자 먹는 사과라서 더 단 것일지도 모른다. 세 여자와 세 남자는 어떻게 된 것일까? 맛있는 수육에 집중하는 사이 나는 그들을 뽀얀 김 속에서 잃어버렸다. 

꿈속에선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들이 환영처럼 자욱하게 서린 김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걸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왜 이런 꿈을 꾸었던 것일까? 너무나 생생해서 먹먹하다. 아직 새벽이다. 방에 들어가 조금 더 자야 할까 생각하고 있다.

ps; 잠결에 써놓고 두어시간 더 자고 일어났다. 아직도 꿈속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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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모든 인간과 신들이 초대되었지만 유일하게 초대받지 못한 이가 있었다. 바로 불화의 여신 에리스다. 그녀를 왜 초대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결혼당사자인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한 결혼식에 불화의 전령사를 부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는 어쩌면 누군가가 에리스를 초대하지 말 것을 조언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에리스는 누구도 못 말리는 화근덩어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펠레우스와 테티스가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기피해 초대하지 않은 행위는 사상 최대의 불화를 낳았다. 사소한 ‘왕따’ 하나가 하나의 도시를 영원히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불행을 잉태하리라고 누군들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역시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이 터무니없는 불화 하나로부터 수천 년에 걸쳐 빛을 잃지 않는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태어났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격노한 에리스는 어떤 방식으로 불화를 일으켰을까? 그것은 욕망이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들에게도 욕망은 존재했는데, 에리스는 한창 무르익은 결혼식장에 나타나 좌중을 향해 황금사과 하나를 던졌으며 그 사과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던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헤라와 아프로디테와 아테나가 나서서 서로 자신이 사과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주장하며 다투었지만 결판이 나지 않자 신들의 신 제우스가 나서서 판결을 내려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제우스는 이 미묘한 사태에 끼어들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제우스는 이들을 이데 산으로 보내 파리스로 하여금 판결을 내리도록 조치하였다. 자, 이 대목이 내가 열 살 이래로 늘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고전읽기반’에 뽑혔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선택했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이었으며, 그 내용 중에는 <트로야전쟁>도 있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린이들이 읽기 쉽게 편집해 만든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파리스의 운명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신관의 점괘에 의해 ‘트로이를 멸망시킬 불길한 존재’로 낙인 찍혀 이데 산에 버려지게 되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그에게는 이미 믿음직한 맏아들 헥토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정이 있었던 프리아모스는 아들을 죽이지는 말고 강보에 싸서 숲속에 버리고 오도록 은밀하게 지시했다. 늑대들이 나타나 파리스에게 젖을 먹여 키웠던가? 파리스는 용케도 살아 이데 산에서 양치기가 되었다(이게 기억이 희미한데, 기억이 사실이라면, 늑대에게 키워진 파리스가 늑대로부터 양을 보호해야할 책무도 띤 양치기가 되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준수한 용모의 청년으로 성장한 파리스의 앞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 명의 여신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헤라는 권력과 부를, 아테나는 지혜와 영예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을 약속했다. 

여러분들은 이 중 무엇을 골랐을까? 사실은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아까운 유혹들이다.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을 골랐다.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파리스가 세속에 때가 덜 묻은 젊은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가 스무 살 정도의 청년이 아니라 사십이나 오십쯤 된 장년이었다면 권력과 부 혹은 지혜와 영예 중 하나를 선택했을지 모른다. 권력이나 영예를 얻으면 아리따운 미인은 절로 얻어진다는 것쯤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나이니 말이다. 

하지만 파리스는 혈기왕성한 순정에 불타는 청년이었고 아름다운 여인을 선택했다. 헤라와 아테나는 불꽃처럼 화를 내고 복수를 다짐하며 돌아갔으며, 아프로디테는 청년의 현명한 선택에 치하하고 곧 약속을 지키겠노라 맹세하며 흐뭇한 마음이 되어 신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파리스는 오랜 세월이 만든 주름에 깃든 자식에 대한 애처로운 사랑으로 인해 불길한 점괘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프리아모스 왕으로부터 눈물의 환영을 받으며 트로이 성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다시 얼마 안 있어 형 헥토르와 함께 그리스로 여행을 떠나고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보자 한눈에 반하게 된다. 그리고는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파리스는 헬레네를 납치하게 된다. 

물론 아프로디테가 사전에 자기 아들 에로스로 하여금 헬레네의 가슴에 사랑의 화살을 쏘도록 해놓았으므로 파리스의 납치작전은 한 잔의 물을 들이키는 것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납치는 사실은 납치가 아니라 두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벌인 사랑의 도피 행각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같으니까. 

스파르타에 돌아온 메넬라오스가 벼락같이 화를 냈을 것은 자명한 일. 메넬라오스는 즉시 구혼자들의 맹세를 들먹이며 그리스군의 소집을 요구했는데 그의 형 아가멤논이 총사령관이 되었다. 

자, 여기가 내가 열 살 이래로 풀지 못하는 궁금증 중의 한 대목인데, 아가멤논의 명을 받은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키기 위해 미르미돈으로 갔을 때 아킬레우스의 나이가 몇 살이었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선 파리스는 몇 살이었을까? 스무 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파리스가 이데 산에서 황금사과에 관한 판결을 내릴 때 아킬레우스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파리스가 이데 산의 판결을 내릴 때 나이가 열 살이었고 그가 지금 스무 살이라고 가정하면 1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니 아킬레우스의 나이는 아무리 많아봐야 열 살을 넘지 못한다. 

겨우 열 살 소년의 어깨에 트로이 멸망의 운명이 걸렸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믿음을 들고 아킬레우스를 참전시켜야만 한다고 역설했다면 오디세우스의 지혜도 믿을 게 못된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전쟁승리를 보장할만한 아킬레우스의 나이를 스무 살로 보면 파리스는 서른 살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모순이 있다. 겨우 열 살 소년에 불과한 파리스가 부와 권력 혹은 지혜와 영예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선택했을 리가 없다. 

여자를 선택할 정도라면 최소한 스무 살 언저리는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트로이전쟁이 벌어지려고 하는 찰나 아킬레우스는 스무 살, 파리스는 마흔 살이 된다. 자, 그런데 여기 함정이 하나 더 있다. 

뭐냐 하면, 모두들 아시다시피, 헥토르를 죽이고 난 다음 트로이가 함락되기 전에 아킬레우스는 파리스가 쏜 화살에 아킬레스건을 맞아 죽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리스진영에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인데, 아킬레우스 없이 견고한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때 현명한 용사 네스토르가 신탁을 들먹이며(이 부분도 명확치는 않은데, 네스토르는 몰라도 신탁은 분명하다)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피로스)를 데려와야 하며 그가 있어야만 트로이는 함락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결국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도 참전하게 되는데, 자 이렇게 되면 다시 계산이 복잡해진다. 어떻게 되는 거지? 네옵톨레모스가 당시에 스무 살이면 아킬레우스는 최소한 마흔 살이 넘어야 되고, 그러면 파리스는? 

에고 모르겠다. 쓸데없는 생각 혼자 열나게 했다. 이러면 간단한 것을.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지고 간 황금사과를 두고 일어난 논쟁은 20년이 넘게 계속 되었다. 그러는 중에 아킬레우스도 태어나고 파리스도 태어났으며 이들이 장성해 스물 청년이 되었다. 

도저히 논쟁이 종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자 제우스가 중재에 나서 이데 산의 양치기 파리스에게 판결을 맡긴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 트로이 궁성으로 복귀하게 되며 이윽고 형 헥토르와 함께 스파르타로 운명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 사이 아킬레우스도 결혼해서 아들을 얻게 되는데 그게 곧 피로스라고도 불리는 네옵톨레모스다. 파리스와 헬레네가 눈이 맞아 스파르타를 탈출하게 되고 메넬라오스가 ‘구혼자의 맹세’를 발동해 그리스군을 소집해 트로이전쟁을 일으킨다. 

이렇게 정리하니 간단하게 모든 게 해결되는구먼. 하긴 그렇다. 인간세상의 시간과 신들의 시간은 그 길이가 분명 다를 것이다. 끝. 이제 그만 자자. 

ps; 잠이 안 와서 그저 심심풀이로 끄적거려 본 것이니 쓸데없는 잡설이라고 너무 탓하지 마시라! 블로그에 글 안 쓴지도 너무 오래 되었고... 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

1. 어젯밤에 기석이 형님이랑 종길이랑 어시장서 술 먹다가 창동으로 진출해서 피아노 갔더니 문 닫아 다시 숨 갔더니 문 닫아 다시 그 밑에 이프 갔더니 또 문 닫아 택시 타고 자산동 어디 갔더니 또 문 닫아 그래서 대충 어디 호프 들어가서 한잔 더 하고 술이 취해 집에 들어가서 일찍 잤다(12시 전이면 일찍 자는 거다). 그러다 꿈을 꾸었는데, 글쎄 노무현대통령을 만났다. 아마도 노무현 추도집회였던 거 같은데, 거기에 노무현이 왜 나타났는지... 지금도 좀 몽롱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노무현대통령이 글쎄 내게 딸내미 갖다가 주라면서 뭔가를 집어주었는데 보니 편지가 하나 있고 그 밑에 신사임당 마나님 자태가 선명한 노랗고 빳빳한 5만 원짜리였던 것이다. 편지에는 정동지 고생 많았다, 딸내미는 많이 컸냐, 하는 거였는데, 글쎄 나하고는 동지도 아닌데 왜 동지라고 했는지도 모르겠고 거기다 우리 딸내미는 언제 봤다고 많이 컸냐고 그러시는지도 헷갈린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노무현대통령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너무 선명했다는 거다. 이때 집회무리 중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질투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선 대통령님 제삿날에도 참석 안한 인간이 어째서 그런 선물을 받을 수 있느냐며 화를 내는데, 사실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며 미안하다고 그러다가 잠이 깼다. 참 희한한 꿈이다. 오늘 로또라도 한 장 사볼까?

2. 어젯밤, 기석이 형님이랑 종길이랑 술을 좀 많이 마시고 잤더니 이렇게 또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할 일도 별로 없고... 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사람이 살다보면 온갖 설풍에 다 휘말리기 마련인데요. 특히 페북을 비롯한 소위 에스엔에스계에서 산다는 게 그렇습니다. 때로는 잡놈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의 표적이 되기도 하지요. 또 때로는 스스로 분노의 화살이 되기도 하는데요. 물론 또 때로는 상거지가 되기도 합니다. ㅎㅎ 에스엔에스를 그저 가벼운 가십거리 정도로 쓰시는 분들이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발언을 자주 하다보면 잡놈도 되고 표적도 되고 스스로 화살도 되기도 하는 게 어쩌면 인지상정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사람이란 꼭 도인이 아니라도 평소에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도를 닦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야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만. 그런데 그게 당장 저부터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을 난도질하고 피 묻은 칼을 들고 의기양양해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목 잘린 닭이 돼 솥으로 들어가는 게 더 인간스럽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좀 바보스런 생각이긴 하지요. 건강을 생각해서 사과나 하나 깍아먹어야겠습니다. ^^


ps; 요즘 하도 글을 안 쓰는 것 같아 페이스북 제 담벼락에다 오늘 새벽에 쓴 잡담이라도 올려봅니다. 

ps2; "피 묻은 칼 들고 의기양한다"는 표현은 아마도 김갑수님의 페북 멘트에서 딴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김갑수님께서 "피 묻은 칼 들고 설치는" 페북친구 몇분을 정리하셨다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나네요. ^^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젯밤 꿈 얘깁니다. 전에도 제가 꿈 이야기를 한번 썼던 적이 있었죠? 그건 아래에다 링크해드릴 테니까 보고 싶으신 분은 한 번 더 보시구요.

상남동 어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광토부동산사무소(내가 요즘 이 사무소에 책상을 두고 1년 기간으로 연구용역 일을 하고 있다)에 잠깐 일 보러 가려는데 문득 돌아보니 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이는 것이었다. 돌아가서 살펴보니 펑크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고 큰일 났네” 하고 있는데 마침 건너편에 세차장 겸 정비소가 보인다. 이 지형을 잘 아시는 분이라면 거기가 어디쯤인지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정비소 직원이 나를 알아보고는 한손에는 펑크 때우는데 쓰는 드라이버와 무슨 기구를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에어호스에 건을 달아서는 줄을 끌고 오는데, 내가 “아이고 미안하게시리” 이러면서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가다가 그만 아스팔트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얼른 일어나긴 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보니 아뿔싸, 앞니가 부러지고 없는 것이다. 산산조각 난 앞니 세 개가 땅바닥에 뒹구는 꼴을 보면서, 아아, 얼마나 괴로웠던지…

그리고 장면이 바뀌었는데, 마누라가 “빨리 나와서 밥 먹어라” 한다. “나, 이가 부러져서 밥 못 먹는데… 어떡하지?” “무슨 소리고? 한번 보자. …… 멀쩡하구먼, 대체 무슨 이가 부러졌단 말인데? 지금 잠꼬대 하나.” “어라? 이상하네. 분명히 부러졌었는데….” 손가락을 넣어 만져보니 이는 멀쩡하게 잘 붙어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꿈속이었지만 정말이지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다가 문득 잠에서 깼는데, “휴우, 꿈이었구나” 안도하면서도 몽롱한 게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다. 일어나 거울 앞에 서서 입을 벌려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휴우…” 하고 안도하면서 자리에 눕는다. 이번엔 진짜로 마누라가 부른다. “빨리 나와서 시락국 하고 밥 먹어라.” 아무래도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먹은 거 같다. 경남블로그공동체에서 10월의 마지막 밤 단합대회 한다고 해서 거기 가서 진땅 먹고, 다음엔 임수태 위원장님이 내 윗동서 형님과(두 분은 초, 중학교 동기다) 한잔하는데 거기 오라고 해서 거기 가서 또 한잔 마셨다. 아, 참고로 고백하자면, 앞니 세 개는 치과에서 해 넣은 것으로써 거의 2백만 원 가까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괴로웠던 것일까? 쪼잔하기는… 에고~ 

☞ 나는 저승에 다녀온 것일까?  http://go.idomin.com/964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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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페르시아전쟁에서 스파르타의 왕과 전사들의 옥쇄를 소재로 만든 영화 <300>이 유명하지요. 스파르타의 명예를 드높인 감동적인 사건이긴 했지만 그리스 승리의 주역은 스파르타가 아니라 아테네였습니다.

마라톤평원에서 치러진 전투에서의 승리를 전하기 위해 42.195킬로미터(실측한 결과는 34킬로 정도였다지만)를 내달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하고 외친 뒤 죽었다는 병사를 기념해 오늘날까지도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다지요.

2차 전쟁 이후로 그리스의 맹주는 아테네가 됩니다. 3차 페르시아전쟁의 주역 역시 스파르타가 아니라 아테네였습니다. 이번엔 페르시아가 해군력으로 침공하게 되는데 스파르타는 배가 7척인가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살라미스해전에서 거둔 그리스해군의 승리는 온전히 아테네의 몫이었습니다.

이후 아테네의 그리스에서의 폴리스 맹주 지위는 더욱 굳건해지지요. 이 전쟁의 결과는 농업생산력에 대한 상업생산력의 승리, 전제정치에 대한 민주정치의 승리, 타율의지에 대한 자율의지의 승리, 동양에 대한 서양의 승리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책에 나오는대로, 다분히 서양중심의 역사관에 따른 규정이긴 하지만… 뭐 일단.

이로써 페르시아는 기울고 그리스는 역사의 중심무대에 서게 됩니다. 정확하게는 아테네가 그렇다는 거지요. 페리클레스의 정치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참고로 페리클레스와 비견되는 로마의 인물로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있습니다. 파비우스는 한니발의 침공에 지구전으로 대항해 이탈리아의 방패란 별명을 얻었지요. 제 인터넷 필명 파비도 실은 이 파비우스에서 딴 거랍니다.)

그로부터 거의 이백년 가까운 시간이 더 흐른 후에 그리스 북부의 마케도니아제국이 그리스를 통일한 다음 페르시아에 원정하여 완전히 정복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알렉산더의 이 원정 역시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전쟁으로 인식한다는군요.

아무튼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는, 이란에선 이 전쟁 이후로 아직까지도 마라톤을 금지하고 있다는데요, 이란 당국에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대충 이상의 내용들은 <페르시아전쟁, 영향> 등의 단어를 검색하면 인터넷상에서 다 가르쳐주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님, 아직 숙제 못하셨으면 참고하셔요.

※ 마이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린 글쪼가리였습니다. 학교 숙제가 급하다고 해서 잠깐 디벼봤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점심으로 맛난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문득 오래전 상주 공성면소재지에서 먹었던

청국장 생각이 난다.

지금껏 먹었던 그 어떤 청국장도

그 맛을 낼 수는 없었다.


아아, 그윽하고 진한 그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온갖 음식 맛을 다 보았지만

공성면의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주름진 할머니가 내오던 그 청국장만큼

오래도록 기억을 떠나지 않는 냄새는 없었다.


그때의 그 청국장 냄새는 향기였다.

마침 비도 추적추적 내려

진한 향기는 이른 봄날 초가의 굴뚝연기처럼

오래도록 바닥을 맴돌았었다.

다시금 그곳에 가면 그 집과 그 맛을 볼 수 있을까?


사진=오마이뉴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뭐 해여?

“어디 가여?”

“나 학교 가여.”

“논에 물 대러 가여.”

“소꼴 베러 가여.”

이거 내가 어릴 때 쓰던 말투다. 중학교 때까지. 부산으로 고등학교 갔는데, 거기선 갱상도놈, 전라도놈, 강원도 감자바우, 멍청도, 서울촌놈 마구 뒤섞여 있었는데 이런 말투를 가진 친구는 거의 없었다. 예천 아이들이 좀 비슷하긴 했는데 그래도 문경말투는 아주 독특했다.

지나가는 여학생 보고 “야, 이야기 좀 하자” 그러면 그 여학생은 “놔여...” 하는 말로 거부의 뜻을 전했는데, 아아, 지금도 그 “놔여~” 하던 목소리가 정겹고 그립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인터넷에 보니 온통 우리 고향 말투가 넘치고 넘쳐나더라. “여”로 끝나는 그 정겨운 말투가 인터넷 대표 사투리가 되었더라는 이 놀라운 사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말투를 잊어버렸다. 가끔 꿈속에서 쓰기는 하는데… 물론 영롱한 오렌지빛깔 환타풀장에서 수영할 때 나는 이런 말을 쓴다.

“형아, 이리 들어와여. 같이 수영해여.”  


▲ 중학교 시절 자전거 타고 다니던 길. 협곡을 타고 흐르는 강이 영강이다. 바로 몇 백 미터 위에서 조령천과 가은천이 합쳐져 영강이란 이름으로 흐른다. 좌측편에 보이지는 않지만 높다란 산이 있고 거기에 토끼비리, 관갑천 등으로 불리는 영남대로의 가장 험한 길이 있다. 강 오른편에는 신작로와 철길이 있었는데 길을 따라 죽 내려가면 불정역이 있고 대성탄좌가 있었다. 역에는 길게 늘어선 화물열차에 사람 대신 석탄이 줄지어 탑승을 기다렸다. 반대편으로 길 따라 올라가면 머잖아 우리가 큰들이라 부르던 그리 크지 않은 들을 지나 문경새재가 나온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사투리

여름을 떠나보내듯

격렬한 몸짓으로 떨어지는 장대비에

빠알간 고추가 선홍색 핏빛으로 더욱 붉게 빛난다.

한때 세상을 지배하던 폭염은

두려운 듯 재빨리 머리 숙여 물러나고

대지를 달구던 열기는 옅은 신음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무슨 말이냐고?

걍 시원해서 기분 대빵 좋다는 말이다.

2012/ 8/ 22/ 페이스북 담벼롹

Posted by 파비 정부권

한때 ‘스탠스’란 용어가 유행하다 잊혀진 가수의 유행가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나이브’란 새로운 유행어가 등장했다. 나이브 역시 잊혀져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직도 가끔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지성의 공증인이라도 되는 듯이 불려나온다. 나도 이 나이브란 뜻 모를 말을 언젠가는 꼭 한번 써봐야지 했지만 기회가 오질 않았다.

더 이전에 ‘디테일’이란 말이 또 많이 썼었는데 어느 토론프로그램에서 이 디테일이란 말을 하는 걸 보고 “그냥 적나라하게, 라고 하면 더 좋을 걸 꼭 디테일이라고 해야 되나?” 했었는데, 영문과 나온 와이프가 옆에 있다 “정말 그렇네” 하고 맞장구쳐주어서 으쓱했던 적이 있다.

어떤 경우엔 우리말보다 외국어가 더 어울릴 때도 있지만(애매모호함으로 인해 더 많은 해석의 여지를 주니까), 대부분의 경우에 ‘스탠스’니 ‘나이브’니 ‘디테일’이니 하는 말은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한때의 유행이 지나가고 난 뒤에 굳이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아도 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그럼에도 왜 이런 불편한 혹은 불필요한 용어를 수입해 쓰는가.

내 짐작으로 말하자면, 순전히 공신력 때문이다(혹은 잘난 체 하려 그런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공신력 때문으로 보인다). ‘스탠스’, ‘나이브’, ‘디테일’ 같은 뜻 모를 말을 끼워놓으면 무언가 좀 지성적인 듯 보이고 내 말에 신뢰성이 생길 거 같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기대는 현실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경우에 말 속에 ‘스탠스’를 집어넣으면 상대는 우선 기가 죽는다(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이건 좀 다른 경우가 되겠는데 주의 깊게 대화를 관찰하다보면 일부러 어려운 한자로 만들어진 용어를 쓰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내 짐작으로는 이런 경우는 위 예와는 달라서 실제로 무지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어휘력의 한계 때문에 오는 의사전달의 답답함을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는 한자말로 대체하는 것이다. 어떤 분은 “정서가…”라는 말을 수시로 가운데 집어넣어야만 이야기가 됐는데... 그분이 쓰는 정서와 내가 아는 정서는 의미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나도 가끔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곤란한 경우가 생기면 그냥 한자말을 하나 생각해내고 뱉어버릴 때가 있다. 상대가 알아들었든 말았든 알 바 없이….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딸이 내게 물어봤다. "아빠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솔직히 대답할 게 없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난 꿈이 없었다. 혹시라도 내게 어떤 꿈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깊이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난 아무런 꿈이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나름 꿈이 하나 생겼는데 금오공고나 부산기계공고에 진학해 빨리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내 꿈이라기보다는 집안에서 바라는 희망사항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희망사항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특차로 학교장 추천이 필요했던 이 두 학교 중 어느곳이든 원하는 곳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성적을 얻었다. 물론 그후 불과 몇 달만에 내 인생은 처참한 종말을 맞게 되지만... 아베베 실습장에서 기름범벅으로 서있는 내 실습대 앞을 하얀 카라의 여고생들이 원숭이 구경하듯(꼭 그렇지는 않았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조국근대화의 기수가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지나가던 그 봄날의 기억. 여고생들이 수행여행지로 내 실습대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게도 아예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 마당이 넓고, 그 넓은 마당 한켠에 수영장이 있고 거기서 나는 마음껏 수영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형이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누이고 그렇게 노는 내 모습을 즐거운듯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수영장엔 영롱하게 반짝이는 오렌지 빛깔의 환타가 출렁인다. 그러니까 나는 그 환타물 속에서 수영을 하며 깔깔 웃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어릴 때 나는 거의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환타를 좋아했었다. 이것은 진짜 꿈이었다. 아주 자주, 아주 똑같은 꿈을 꾸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희한하게도 다시는 이 꿈을 꿀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똑같은 꿈을 자주 꿨던지라 꿈의 내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부모형제가 영원히 한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이었을 텐데,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희망이기도 했을 테고... 내가 이렇게 변할 줄 그땐 아마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내게도 꿈이 없잖아 있었다. ^^

ps; 페북에 쓴 글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페이스북에 쓴 글인데 다음사전 측이 보지 못할 거 같아 여기다 올립니다. 다음사전에 수정을 좀 하셔야 할 듯하군요. 영양은 강원도가 아니라 경상북도랍니다. 청송과 인접하고 있지요. 

청양고추 하면 어디가 생각나나요? 보통 사람들은 충남 청양군을 떠올립니다.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군요. 청양고추는 경북 청송의 청과 경북 영양의 양을 합해 만들어진 이름이랍니다. 아침방송에 청양고추로 김밥 만드는 법이 나오기에 생각나서 적어봤는데요. 그럼 사전에선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다음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아주 매운 고추를 일반 풋고추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경북 청송(靑松)의 청(靑)과 강원도 영양(英陽)의 양(陽)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다른 고추에 비해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캅사이신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군요. 청송과 영양은 맞았는데 영양을 강원도 영양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영양은 청송 인근의 경북 지방입니다. 다음사전이 실수 하셨네요. 빨리 수정하셔야 할 텐데... 말 나온 김에 잘못 알고 있는 상식 하나 더 알아볼까요? 억지춘향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도 잘못 전해진 이야기 중의 하나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억지춘양이란 말이 세월이 흐르다 억지춘향이 됐다는 거지요. 춘향이가 워낙 유명하니까요. 경북 봉화에 가면 춘양면이란 동네가 있습니다. 춘양목으로 유명하지요. 홍송인데 이 지역에서 나는 소나무만 특별히 춘양목이라 해서 특별대우를 해준답니다. 일제시대에 왜놈들이 이 춘양목을 대거 실어내기 위해 철도를 깔려고 했는데요. 몇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군요. 그래서 안되는 일은 억지로 하려고 해도 안된다는 뜻으로 생긴 말이라고 합니다만, 저도 확실히 어느 쪽 기원이 맞는지는 잘 모릅니다. 재작년에 태백산에서 을숙도까지 낙동강 탐사 따라갔다가 들은 이야깁니다. ^^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역시 페북에 올린 글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내가 엊그제 한 페친과 친구끊기를 한 것은 실로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누누이 밝혔지만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자’는 주의다. 아마 확실히는 몰라도 몇몇 사람이 나의 통진당 때리기(손석형 때리기도 포함해서)에 불만을 품고 나를 페북 친구로부터 잘랐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내가 누군가를 직접 페친에서 삭제하는 일은 해본 적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거부한다는 것이 그렇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자’는 일종의 신조 탓도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우선 이분을 자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앞으로 페이스북을 열어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이 아프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증세가 심상찮았다. 해서 큰 결심을 하고 눈 질끈 감고 친구끊기를 감행했다. 끊고 나니 시원하다.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기독교 신자였다. 줄기차게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할 것”과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거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좋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얼마든지 허용되는 것이니까 기독교를 선전하든 이슬람을 선전하든 불교를 선전하든 받아들일 수 있다. 나와 우리 가족도 모두 가톨릭에 몸담고 있으니 그 찬양멘트들이 그렇게 고깝지는 않더라도(우리는 체질적으로 대놓고 이렇게 광고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거부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였다. 그는 애국가 논쟁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페친을 향해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이 모두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의 공인데 그들을 폄하하느냐”, "기독교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발전했을 거 같냐" 고 말하는가 하면 “우리 장로대통령이 참 잘하고 계신데 장로대통령을 모욕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며 반성해야 한다”는 쪼로 말하는 것을 보고서는 ‘아, 이분 참 점잖은 개독이셨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 정도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토’가 나올 정도로 속이 메스꺼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페이스북에 그녀의 글들이 왜 이리 많이 보이는지... 눈앞이 어질어질 하고 심장이 벌렁거린다. 해서 고민 끝에 끊어버렸다(친구도 몇 명 되지 않는데 마음이 좀 아프긴 했다).

우리 장로대통령이라니? 그럼 불교도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 보살대통령이라 불러야 하나? 가톨릭에선 따로 신부나 수녀 외에 별다른 호칭이나 직책이 없으니 그냥 형제 혹은 자매대통령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끊은 것은 참 잘한 거 같다. 얼마 전 <민중의소리>의 조중동보다 더한 헛소리가 듣기 싫어 수신거부를 한 적은 있지만 친구끊기는 최초다. 앞으로도 눈앞을 어지럽히거나 심장건강에 좋지 않은 개독 흉내를 내는 페친이 있다면 과감하게 끊어버려야겠다. 훌륭하신 이목사님이나 신장로님 같은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페이스북에 생각나는대로, 마음가는대로 아무렇게나 마구 적어놓은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되는 대목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종북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어설픈 친북주의자들은 골치 아픈 존재다. 친북이란 사상적, 노선적 접근이 아니라 감상적으로 접근한 사람들을 이름인데, 말하자면 미국에 설설 기는 남쪽보다 대차게 대드는 북한이 더 멋지다, 라든가, 우리도 이제 핵무기를 갖게 되었다, 라는 식으로 친북적 사고를 갖는 걸 말함이다. 그런데 이들이 왜 골치 아픈가? 종북주사파의 기본 노선은 통일전선전술이다. 전국연합처럼(경기동부연합은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이다) 다양한 색깔의 세력을 규합해서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단결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런 친북주의자들이 눈치 없이 자꾸 나대니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목표를 이루다가 어는 한순간에 팡 하고 터뜨려야 하는 종북주의자들로서는 매우 골치가 아프다는 것.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고 과거 남한에 주체사상을 도입하고 품성론을 썼다는 김모씨의 증언이다. 이건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도 어설픈 이따위 친북주의자들이 나대는 통에 진짜 종북주의자들이 상당히 골치 아플 거라는 생각을 가끔 했다는 거. 주체사상의 핵심이론은 머리도 안될 뿐더러 읽어보는 것도 귀찮아서 학습은 게을리하면서 반미, 자주, 우리민족끼리, 통일만 입에 달면 친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어설픈 주사파들이 우리 동네에도 꽤나 많다는 것이다.

언젠가 울산의 한 주사파가 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자기들 내부를 성골과 진골로 나눈다고 하면서 성골은 진골을 아주 우습게 안다고 했다. 그럼 성골, 진골에도 못드는 주사파는 뭐냐, 하고 물어 보니, 그건 사람 취급도 안하는 거지 뭐, 하더란다.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진짜로 성골주사파가 있고, 진골주사파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우리 동네에는 주체사상의 주자도 잘 모르는 어설픈 주사파들이 꽤나 많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며 그들 중 상당수는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중 아주 소수의 몇몇은 이른바 성골주사파도 있다. 나도 그들을 통해서 주체사상총서니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따위의 책이 있다는 걸 알았다.

궁금증 하나. 이석기는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까지 했던 핵심으로 성골 중에 성골일 텐데 왜 전통적인 방법대로 지하에서 조종할 생각을 버리고 양지로 나섰는지 그게 궁금하다. 안그랬으면 이런 사단도 안 났을 거 아닌가. 두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지하정당노선보다 합법주의 정당을 통해 양지 강화하는 것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노선전환을 했거나 나이가 50줄에 다다르다 보니 개인적 야심이 생겼거나. 만약 전자라면 긍정적 측면이 없잖아 있는 것이지만, 하려면 제대로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했어야지 왜 불법 부정선거를 벌렸는지... 그러면서도 한마디 반성이나 자아비판도 없다.

아무튼 지금 현재의 주사파들은 혁명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통일전선전술을 배척하는, 아주 종파적인 운동노선을 취하고 있다. 통일, 단결, 반종파를 입에 달면서 사실은 가장 반통일적이고 분열적이며 종파적인 집단이 되어가고 있는 그들. 내가 만약 종북주사파라면 지금 당장 자아비판부터 하고 통일전선전술에 대한 전면적인 재점검부터 하겠다. 그리고 주사파의 기본행동지침이라는 품성론부터 새로 읽는 운동을 전개하겠다.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품성이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건너온 품성이란 말인가.

이거 쓰다보니 내가 괜히 남의 집 걱정하고 앉았네... ^^

Posted by 파비 정부권

딸내미가 묻는다. 

"아빠, 7월 4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음... 미국 독립기념일? 7.4남북공동성명 발표한 날? 무슨 날일까?" 

참 나다운 대답이다. 딸내미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아이 참, 아빠~ 윤두준 생일이잖아."
"윤두준이 누군데?" 
"비스트!" 

아, 비스트란다. 아빠보다 더 좋다고 하던 그 비스트의 리더가 윤두준이란다. 그 친구 생일이 7월 4일이었구나. 흠~ ^-^;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늘 상처받는다. 상처 주는 상대를 향해 그러지 마라고 큰소리로 항의하면 상대방은 그 소리에 상처받았다고 항변하며 달려든다. 졸지에 주객이 전도되고 종래엔 시점과 종점도 헷갈리게 된다.

페이스북이란 곳도 그렇다. 어떤 유저가 “오늘 우리 집에 잔치가 있어요. 축하해주세요” 하고 멘트를 올리자 축하한다는 댓글도 올라오지만 “당신 친구 중에 아주 성질 더러운 놈이 하나 있어. 그놈과 절교하든지 아니면 대신 사과 안하면 그 잔칫집 초상집 될 줄 아시오” 하는 협박도 들어온다.

보다 못한 한 유저가 따진다. “당신 남의 잔칫집에 와서 그런 식으로 깽판 치면 되겠어? 그리고 그건 이 집 주인장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얘기잖아. 왜 쓸데없이 관련도 없는 얘길 끄집어내서 남의 행사 망치는 거요? 나도 당신네 집에 가서 그런 식으로 깽판 쳐볼까요?”

잔치 축하얘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원래 누가 더 성질 더러웠는지 따지는 것으로 지극히 우호적이었던 이 공간은 난장판이 된다. 마치 야밤에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가 함께 턱을 어루만지며 나는 아무 짓도 안했는데 느닷없이 맞아 매우 고통스럽다며 엄살을 부리는 꼴과 같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뜯겨져나간 윗옷 단추를 보여주며 저놈이 얼마나 성질이 더러운 놈이었는지 가증스럽게도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한다. 이건 우리 주변에서 어쩌다 볼 수 있는 추악한 현실 중의 하나지만 페이스북이 생기고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페이스북의 특징 중 하나인 개별그룹에서 이런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페북그룹은 특정 경향을 가진(혹은 특별히 친한) 사람들이 주도하게 되고 이들의 세에 의해 집단적 최면과 폐쇄적 공황상태로 빠져든다.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보던 폐인들을 여기에서 만난다.

아, 그랬다. 페이스북이 에스엔에스 중에서도 첨단을 달리는 소통의 도구라 생각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고 불편한 구석이 있다 했더니 바로 게시판이었다. 게시판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필요한 도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요즘 대세인 페북을 떠나기는 좀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오늘 조개구이 먹었어”라든가 “나 지금 치맥에 신나게 달리고 있어” 같은 시답잖은 모호함으로 자신을 위장하며 소통하고 있다는 만족감이나 만끽하는 정도로 행복하다고 자족해야 할까?

뭐 그것도 괜찮기는 하다. 세상이란 게 그런 거다. 욕 먹어가며 정의감에 떨어봐야 남는 게 무에 있겠는가. 미친개가 짖는다고 따라 짖어봐야 목만 아플 뿐이다. 미친개는 왜 짖는지도 모른다. 그저 짖을 뿐이다. 이유도 목적도 없다. 오로지 무턱대고 행할 뿐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둘은 다르다. 하나는 미디어요 하나는 네트워크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달랐다. 페이스북은 마치 하나의 교실과도 같다. 집단 린치도 있고 왕따도 있다. 그리고 물론 친구들끼리의 즐거운 놀이가 더 많다.

아마도 그래서 때때로 속상하고 짜증나고 불편하면서도 감수하면서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페이스북에 대해 생각해본다. 무엇일까? 김주완 기자 말처럼 소통과 유통의 도구? 별로 썩 효과적인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사실은 김 기자의 그 말에 시작했는데…. 

Posted by 파비 정부권

가끔 블로거들끼리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가질 때면 듣는 말이 있습니다. “파비님은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시나요? 술술 읽히는 게 보통 실력이 아닌 거 같아요.” 심지어 글쓰기가 밥벌이인 어떤 분은 “황구라보다 더한 구라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 뿌듯하기도 합니다. 내 맘속은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는 글을 잘 쓴다는 칭찬에 대한 긍정이요, 다른 하나는 그렇게 칭찬받을 정도는 아니라는데 대한 불안감입니다.

사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여태껏 글쓰기에 대한 정규적인 교육을 받아본 바가 없습니다. 중학교 때 ‘작문’ 과목이 있었던 기억이 나지만 제대로 배우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연합고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과목(국어의 부속과목이었던 듯)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지금처럼 대학입시에 논술이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지만 ‘작문’ 시간은 피곤한 선생과 학생이 함께 쉬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기계공고는 일반 공고와도 달라 수업시수의 절반이 실습(공장에서 쇠를 깎아 공작물을 만드는 훈련)이었으며 이론수업의 절반이 또 전기일반이니 재료역학이니 하는 실기전공과목이었으므로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공부는 하지 못했습니다.

십여 년을 공장에서 쇠를 깎는 일에 종사하던 내가 서른 몇 살이 되어 전문대학에 진학해 세무회계학을 공부했는데 이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늘그막(?)에 대학에 들어간 목적은 공부가 아니라 인맥형성이었습니다.

야간수업을 마치고 술집에서 회포를 푸는 일이 더 중요했으니 이 시기가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냐? 술술 잘 읽힌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별다른 교육도 받지 않았고 경험도 없던 내가 어떻게 이만큼이라도 글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아주 잘 쓴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영 못쓰는 것도 아니니 신기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 결론 중 한두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공상과 사색을 즐겨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걸으면서 혹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의 바다에 빠져 헤엄치는 것은 살아가는 큰 즐거움입니다.

둘째는 책읽기를 매우 좋아하는데 특별히 마음에 드는 책은 매우 천천히 그리고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입니다. 인상적인 문장이 있으면 몇 번을 되새겨 읽어본 다음에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한 열 번 정도는 읽었을 것입니다.

이런 성격은 영화보기도 마찬가지여서 <벤허> 같은 영화도 마찬가지로 열 번 정도는 보았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줄거리뿐 아니라 대사까지도 기억할 정도가 됐는데 혼자 가만히 앉아 영화를 머릿속으로 필름 돌리듯 돌리면 장면과 느낌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나는 책을 읽을 때나 영화를 볼 때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도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하나의 문장과 장면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그 순간마다 엉뚱한 상상들이 나래를 펼치기도 합니다.

<무진기행>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

누구나 좋아하는 구절일 테지만 나도 이 구절을 특별히 좋아해서 언젠가 내 블로그에다 인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꼭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성격은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피곤할 것 같기도 하지만 가끔 유용할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 회사에서 일할 때 힘들여 작성한 A4용지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기획서가 컴퓨터 고장으로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당황했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작성했는데 처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쓴 기획서가 마음에 들어 수십 번을 읽고 또 읽는 중에 그만 외워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도 몇 차례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가끔 티스토리 내에서 문서작성을 하다 날아가는 경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남의 블로그를 볼 때도 이런 성격은 그대로 드러나서 좋은 글이 발견되면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습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물론입니다. 어떤 때는 종이와 볼펜을 꺼내 써보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훌륭한 문장만큼 아름다운 것도 잘 없습니다.

실은 엊그제 만난 동료 블로거의 분에 넘치는 칭찬에 대한 답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 글쓰기보다는 책읽기에 대한 개인적 감상으로 흐른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글쓰기에 대한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남의 글을 잘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으로 읽지만 말고 마음으로 음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다면 아름다운 시를 외우듯 외워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창조물은 인용과 응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블로그가 있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기회도 됐으니 여간 반갑고 고마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과분한 칭찬을 들으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군요.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래 글은 내가 제일 처음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글 주소가 http://go.idomin.com/1 입니다. 끝에 1번 보이시죠? 그만큼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문장으로만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도 있고 다른 무엇도 있을 테지요. 그럼 이만...  

어느 슈퍼아저씨의 나라사랑

마트에서 수육용 제주도산 도야지 600g을 100g당 500원에 구입했습니다. 냄비에 물과 된장을 풀어 섞고 다진 마늘과 파, 무를 썰어 넣은 다음 생강이 없어서 못 넣는 대신 단감 반쪽을 싹둑 잘라 넣어 가스렌지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먹다 남은 소주도 반병 부었습니다. 아들놈이 옆에서 “아빠, 감은 왜 넣는거야?”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어. 이런 걸 창조정신이라고 하는 거야. 혹시 모르니까 너는 먹지 마.” “......, !” 그리고는 동네 슈퍼에 소주를 한 병 사기위해 쓰레빠를 끌고 찬바람을 맞으며 내려갔습니다.

내가 소주병을 들고 여기저기 살피고 있으니 주인장 왈, “손님, 뭘 살피시는 김미까? 그거 유통기한 아직 안 지났어요.” 내가 왈, “아, 네. 유통기한 살피는 게 아니고 도수 살피는 겁니다. 몇도 짜린가 볼라고요. 요즘 술이 도수가 너무 낮아서... 19.5도짜리가 제일 높은 거네.”

“하하 손님, 16도 짜리도 있심다. 요즘 말임미다. 알콜 도수 낮춰가지고 소주회사들 배 터졌슴미다. 주정 적게 들어가니 원가 절감돼서 돈 벌지, 도수 떨어지니 많이 쳐 먹어서 돈 벌지, 여자들도 인자 부담 없이 마신답디다.” 주인장께서 일장 연설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나도 거들었습니다. “네, 나도 어쩐지 요즘 소주 주량이 많이 늘었다 했더니. 더 싸게 만들어서 더 비싸게 더 많이 판다, 이런 말이로군요. 그러면서 부드러운 술 팔아 국민보건에 앞장선다고 자랑도 하고요. 앉아서 비싼 월급 받고 이런 거만 연구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요즘 삼성 문제로 시끄러운데요. 바로 이런 게 문제에요. 소비자들, 국민들, 일하는 사람들 등골 빼가지고 이런 잔머리 굴리는 놈들한테 수십억씩 연봉 바치고, 뇌물 바치고 하니 사회가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그러자 슈퍼 아저씨, 내 말을 잽싸게 끊더니 침을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슈퍼 장사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도, 그건 아님미더. 잘 하는 놈은 더 많이 주고 못하는 놈은 굶어 죽어야 됨미더. 그게 경쟁사회고, 그래야 나라가 발전 함미다. 김용철인가 하는 그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요. 완전 파렴치한 놈 아임미까. 삼성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으예......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미더...... (중략) 삼성에서 이건희 다음이라카는 이학수 실장 있다 아임미까. 요 옆에 밀양 사람 아임미까. 마중 출신 아이요. 그라고 삼성기획실에서 실장 다음 차장이라카는 김인주 사장인가 그사람도 우리 마산(마중, 마고 출신)사람 아임미꺼. 이 사람들 얼마나 대접받는지 암미까. 삼성이 그래서 잘하는 김미다...... (후략)”

가스렌지에 올려놓은 냄비는 들끓고 있을텐데 우리의 슈퍼엉클 열변이 지칠 줄도 모르시고, 아 열라 불안해지기 시작하네. 슈퍼 아저씨가 숨고르기를 위해 잠시 멈춘 순간, “아저씨, 오늘 말씀 참 잘 들었습니다. 날씨가 엄청 춥네요. 어유 춥다.” 냅다 집으로 뛰어 올라왔습니다.

맛있게 익은 돼지수육을 왕소금에 찍어 소주를 한 잔 들이키며 드는 생각. “오늘은 작전상 후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여자를 취했다, 여자가 남자의 물건?

참 재밌는 세상입니다. 목사님들이 여신도들과 적절하지 못한 성관계를 가져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는 가끔 봤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참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목사가 결혼주례를 서준 여자와 10년 넘게 간통을 해왔다니 믿기 힘든 일입니다.

포털에 올라온 이 기사를 본 순간 든 느낌은 ‘후덜덜’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더구나 목사와 간통을 한 여자의 부부는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에 오랫동안 다닌 독실한 신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기독교의 표현대로 ‘성도’였던 것입니다.

간통을 한 목사와 여성에겐 법정구속이라는 철퇴가 내려졌습니다. ‘청주지법 형사5단독 이준명 부장판사는 10년 넘게 간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목사와 여성에게 각각 1년 6월과 1년의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언론들은 “법정최고형 2년의 간통죄는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되던 것이 관례였는데 실형을 선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많은 네티즌들도 이 보도를 접하고 충격을 받고 “세상 말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합니다. 그럼 판결문 요지를 한번 보시죠.

“A씨는 B씨와 고소인(남편)의 혼인을 주례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 부부가 꾸릴 가정의 행복을 기원해 주는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주례를 선 남편의 부인을 취한 주례자는 그 남편의 용서를 받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판결은 “A씨는 B씨와 고소인이 오랜 기간 다닌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믿음을 바탕으로 계율에 따라 신도들을 바른길로 이끌어 줘야 할 위치에 있었다”며 “사회적 근본을 크게 해치고 주변인들에게 강한 배신감을 심어준 피고인들을 엄벌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답니다.

또 “목회자와 신도 사이인 피고인들의 만남은 고소인을 포함한 주변 신도들로부터 전혀 의심을 받지 않았다”면서 “최소한의 종교적 신의마저 저버린 피고인들에 대한 주변 종교인들의 분노와 실망감 역시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판결문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저도 이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도민일보 김주완 국장의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는데요. 김 국장은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군요. “남자가 여자를 취한다 이거 맞는 건가요? 여자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 판사가 사회에 귀감이 될 좋은 판결을 내린 것 같기는 한데 그마나 옥에 티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옥에 티가 치명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여성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복잡하게 될 만한 내용이란 것이지요.

왜 이런 판결문을 쓰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이 판사는 이 판결문을 작성할 때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특별히 여성을 비하하거나 여성의 인권을 침해할 아무런 의도도 없었을 것이란 점은 일부러 변호하려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판사는 결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 판사는 본의 아니게 ‘여자는 남자가 취할 수 있는 소유의 대상’이라고 말함으로써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판사가 특별한 의도나 잘못된 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혹시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이 판사의 글씨기에 문제가 있다, 고 말입니다. 실제로 판사들이 쓰는 판결문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보통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너무 괴리가 크다는 거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판사들의 판결문을 해독하기 위해 따로 번역사를 두어야 할 것’이란 농담이 돌기도 했습니다. 판결문뿐만이 아닙니다. 검사들이 작성하는 공소장도 마찬가집니다.

과거에 검사들이 쓴 공소장을 보면 “피고는…” 으로 시작해서 “…이건 소에 이르게 된 것이다”라는 말로 끝나는 몇 페이지에 이르는 공소장이 단 한 개의 마침표도 없이 하나의 문장으로만 이루어져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러지 않는 걸로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

사법부도 자정노력을 해서 보다 쉬운 판결문을 쓰자는 운동이 일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고 또 내부지침도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판사의 판결문을 보면 그럼에도 여전히 과거의 잔재가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잔재? 우리는 뭔가 다르다는 특권의식. 보통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자기들끼리만 아는 특수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갖게 되는 우월감. 그런데 그런 특권의식이나 우월감 때문이기만 할까요? 다른 무엇은 없을까요?

최근에 보기 드문 명품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대부들은 왜 임금 이도의 한글창제를 반대하는가? 기득권 때문이다. 백성들이 글자를 알면 그들을 지배할 수 없다. 우리가 사대부인 것은 귀족혈통이라서가 아니라 글을 알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쉬운 말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밥그릇이죠. 결국 밥그릇 때문이었다는 결론입니다. 밥그릇을 지키려는 판사 일반의 잠재의식 속에서 “남편의 부인을 취한 주례자” 따위의 판결문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남편의 부인을 취한…. 자, 다시 보니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저는 앞에서 이 판사가 여성을 비하하려는 별다른 인식은 없었을 거라는 변명의 말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기득권 외에 여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도 있었으리라는 혐의를 온전히 벗기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혹시 함께 구속된 B여성의 판결문은 어떨까요?

거기에도 “자신의 주례를 선 목사를 취한 부인은 사회적으로 용서받기 어렵다” 같은 식으로 씌어져 있다면 문제는 달라지겠는데요. 그러면 남자가 여자를 취한 것처럼 여자도 남자를 취한 것이 되니까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사람을 취한다니 좀 거시기 하군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무려 3천여 장에 달하는 사진이 제 컴퓨터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속도가 무척 느려졌습니다. 그래서 귀찮은 몸을 이끌고 청소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계속 두어야 할 사진과 버려야 할 사진을 고르는 일입니다.

그중에 지난 4월 달에 찍어둔 사진 하나에 눈길이 갔습니다. 마산 불종거리였는데요. 고급 베엠베(BMW) 승용차 한 대가 짐차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차 주인은 잠시 어디론가 일을 보러 간 모양입니다. 차 안에는 할머니 한분이 있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 트럭이 올라오는 길은 불종거리에서 오동사거리로 통하는 길입니다. 위로 올라가면 창동사거리가 나옵니다. 옛날에는 이 도로들에 버스도 다니고 차가 많이 다녔지만 지금은 상권활성화를 위해 밤에는 차없는 거리를 조성했습니다. 다른 불법주차 차량들도 많이 보이긴 합니다만 BMW는 도로변에 바짝 붙인 것도 아니고 거의 도로 중앙 쪽에 아주 편한 상태로 주차돼 있습니다. 게다가 오동사거리에서 불종거리로 통하는 도로 입구를 막고 섰습니다. 잘 하면 지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트럭 운전사는 비싼 베엠베라 걱정이 되었던지 몇 번 시도하다 포기하고 기다리더군요.

맥주병을 잔뜩 실은 트럭은 매우 바쁜 듯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차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차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얼추 20여 분은 지난 듯싶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그 모양을 다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점을 쳤던 것이지요. “이 차의 주인은 틀림없이 여자일 거야.” 차 주인은 여자가 맞았습니다. 적당하게 젊은 여자였습니다.

짙은 검은색으로 위장된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베엠베 앞에서 서성거리는 트럭 운전사를 힐끗 쳐다보고는 곧장 운전석에 앉더니 횡하고 사라져버렸습니다.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트럭 운전사를 보았을 때 그는 정말 멍청하다는 표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듯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있더군요.

자, 이글을 읽으시는 어떤 여자분께서는 저에게 왜 하필이면 점을 쳤는데 그게 여자였느냐면서 힐난을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차 주인이 여자였을 거라고 짐작을 한 것은 아니랍니다. 나름대로 제게도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칙이란 게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아마도 한 십오 년은 더 되었을 성 싶은데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창원에 가면 만세대 가까운 아파트가 밀집된 토월-상남지구가 있습니다. 거기에 성원주상가라고 있는데 그 건물에 갓난아이였던 우리 큰애 주치병원이 있었습니다.

주상가 앞 도로변에 설치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이를 안고 병원에 다녀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병원에 갔다가 내려오니 제 차 앞에 웬 커다란 승용차 한 대가 떡 버티고 서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주차장으로 들어오기 귀찮으니까 그냥 달려오던 그대로 도로변에 세워두고 일을 보러간 모양입니다.

이건 어떻게 옆으로 빠져나갈 길도 없고 해서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나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근 40여 분이 지나서 차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30대 중반의 여자였습니다. 당시엔 그 비슷하거나 젊었을 나이의 저는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모아 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랬더니 이 여자분, 완전 선수더군요. “차도 다 썩은 똥차 타고 다니는 주제에 뭔 잔말이 많아. 이 ×××야.” 온갖 험한 욕설을 다 쏟아내는데 가만있을 남자 있습니까? 같이 받았더니 글쎄 멱살을 잡고 흔드는데 죽는 줄 알았습니다. 힘이 엄청 세더군요.

그날은 날씨가 추워서 목이 긴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옷이 다 늘어질 정도였습니다. 상황은 그렇게 종료됐습니다. “차도 ×같은 거 타고 다니는 주제에 조심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여자는 횡하고 사라졌습니다. 물론 저는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죠. 패잔병의 비애.

그 여자의 차는 그랜저였고 제 차는 캐피탈이었습니다만, 그렇게 썩은 차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 차는 뽑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차였지만 그 그랜저는 구형으로서 도색상태도 매우 안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 차를 보고 썩은 똥차라니... 그래도 무려 8백만 원 가까이 주고 산 찬데...

아무튼 그 이후에도 많은 여성들이 보여주는 자동차 에티켓은 실로 실망스러웠습니다. 어쩌다 시내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서는데 승용차 한 대가 길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서있어서 기사가 짜증내는 걸 볼 때면 속으로 이런 점을 다시 치는 것입니다. “여자일 거야.” 그리고 그 점은 신통하게도 맞아떨어집니다.

물론 저는 그 이후에 절대 여자들에게 이러면 된다느니 안 된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성원주상가 앞에서와 같은 경우를 다시 당하더라도 조용히 웃으며 지켜보기만 해야겠다는 생각이지요. 속으로는 개발씨발 하면서.

어쩌면 지난 봄 불종거리의 트럭 운전사 아저씨도 같은 심정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그가 15년 전의 저처럼 불만을 토로했더라면 더한 모욕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BMW와 맥주운반용 트럭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니까요.

사실 이런 생각이 그때 언뜻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와, 이차는 여기 세워놔도 누가 손도 못 대겠다. 이런 고급차를 괜히 건드렸다가는 살짝 긁히기만 해도 그 수리비가 패가망신 수준일 텐데.’ 그래서 아마 그 운전사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에이,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 피하지.’

아, 이 글을 써놓고 보니 페미니스트들 입장에선 별로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나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여성들의 권리의식이 커지고 사회진출이 왕성해지는 만큼 의무와 책임도 비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도 분명 있으니까요.

남자 운전자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폭력적인 운전태도라든지 신호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든지 하는 태도는 고쳐야 할 남자 운전자들의 병폐입니다. 게다가 남자들도 이런 사소한 운전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쪽 팔린 줄 모르는 거지요. 대개의 남자들은 체면을 중시해서 그런 짓을 잘 못하는데도 말입니다.

사진을 정리하다가 지난봄에 찍어둔 사진을 보고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베엠베를 몰고다니는 짙은 선글라스의 여자에 대한 저의 생각은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트럭 운전사가 항의를 했다면 그녀는 매우 공손한 태도로 사과를 표명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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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결초보은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당연히 아시겠지요. 결結, 묶어서란 뜻이지요. 무얼 묶어서? 초草, 풀을 묶는다는 말입니다. 그럼 풀을 묶어서 어찌했단 말일까요? 네, 물론 다 아시는 것처럼 보은報恩,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춘추좌씨전에 전해오는 이야기이죠.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진나라에 위무라는 사람이 살았다. 후처 혹은 첩이 있었는데 죽기 전에 아들에게 유언을 하기를 자기가 죽으면 그녀를 개가(재혼)시키라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죽기 전에는 정신이 몽롱하였던지 전통에 따라 순장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위무의 아들 위과는 고민하다가 부친이 정신이 맑을 때의 유언을 좇아 순장시키지 않고 개가시켜 목숨을 구해주었다.

(일설에는 이때 누군가를 시켜 밤에 몰래 업어가도록 했다고 하는데 그걸 속세말로 무어라고 하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훗날 위과가 전쟁에 나갔다가 적장에게 쫓겨 죽기 일보직전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때 서모(위무의 후처)의 죽은 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풀을 묶어 적장의 말을 쓰러뜨렸다. 뜻밖에 위과는 큰 전공을 세우게 되었다. 그날 밤에 서모의 부친 혼령이 나타나 자기 딸을 살려준데 대한 은혜를 갚았다라고 하였다.”

각골난망(刻骨難忘)이니 백골난망(白骨難忘)이니 하는 말들과 같은 뜻입니다. 은혜를 잊지 못하고 반드시 갚는다, 뭐 그런 뜻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죠? 그러나 꼭 이런 거창한 고사를 만들어가면서까지 은혜를 갚아야 함을 가르쳐야 할 만큼 그 시대 사람들이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제가 아는 양운진 교수님이란 분은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물론 은혜에 꼭 보답한다는 아름다운 뜻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껍데기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딴 데 있어요.”

..... 신마산시장에서 양운진 교수의 결초보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으며 마신 막걸리와 꽁치회. 꽁치회는 만원.


양교수님이 말한 그 딴 데란 무엇일까요?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는 겁니다. “여성도 사람이다!” “순장제도에 반대한다!” 요즘 식으로 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여성들이 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가 “순장제도 철폐하라!” 하고 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4천여 년 전의 중국에서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함부로 하다가는 다른 여성이 순장 당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죽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아니 필경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이런 식으로 비틀어 슬쩍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장제도는 나쁜 것이라니까요. 그리고요. 여자도 사람이라니까요. 그렇게 함부로 죽여선 안 된다구요.”

어떻습니까? 이 말을 들으니 여성운동의 효시가 결초보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저는 결초보은이란 고사성어에서 여성주의와 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지닌 양교수님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인문학 쪽이 아니라 환경공학을 전공하신 분입니다.

양교수님은 이렇게 말하곤 하셨습니다. “사람은 늙으면 말이야. 몸도 허약해지지만 마음도 굳어서 고집만 세지고 세상 보는 눈도 좁아져. 세상에 아주 쓸모없는 존재가 되지.” 그러면 옆에서 젊은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수님, 그러면 60살 넘으면 피선거권을 주지 말까요?” 그러면 “야, 그거 했다가 피본 놈 있잖아. 정 모라고…” 하면서 허허 웃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어떠십니까? 결초보은의 고사에서 여성운동의 효시를 발견할 줄 아는 눈을 가진 이런 늙은이는 좀 필요한, 꽤 쓸모가 있는 늙은이가 아닐까요? 노인이 된다고 다 아집만 느는 것은 아니더군요.

신마산 재래시장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만 원짜리 꽁치회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나눈 대화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막걸리도 이렇게 마시면 정말 보람 있지 않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서 꽁치회에 막걸리가 생각나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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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었던가. 내가 신뢰하는 우리 지역의 모 일간지가 이병철을 일러 선생이라고 호칭하며 기사를 쓰는 바람에 몹시 불쾌했던 적이 있다. 기사 제목이 아마도 '의령군이 이병철 선생 생가복원 사업을 한다' 뭐 이런 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성격에 가만 있었을 리 없었다. 그 신문사에는 친분이 두터운 기자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 불쾌감의 표출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즉시 내 블로그에 비판 글을 쓰고 그 신문사에 독자투고도 했다.

"이병철이 선생이라고? 이리 나가다간 개나소나 다 선생 되겠다. 이완용 선생 이래봐라. 어울리냐? 하긴 북한정권은 정주영이 한테도 '정주영 선생' 뭐 이러더라만. 그때 노동자들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을가. 아니 정주영 식으로 표현으로 하자면 뇌동자지. 북한이야 뭐 얻어먹을 게 있어서 정주영이를 선생 반열에 올려줬다고 치고. 신문사 기자는 대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이병철이더러 선생이라고 부르는 건지."

왜 이런 케케묵은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가. 오늘 포털 다음 메인에 보니 이건희 씨와 홍라희 씨가 손을 굳게 잡고 어디론가 가는 사진이 실렸다. 이런 거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년의 부부가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사실은 그렇게 못하는 우리가 문제다. 문제는 다시 기자다. 오죽 기사를 쓸 게 없었으면 이들 부부가 다정히 손잡고 해외로 출국하는 사진을 실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별 문제는 아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기자의 눈에는 이들 부부가 움직이는 모양새가 하나의 중요한 기사감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관심을 갖는 국민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제일 돈 많은 부자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마치 자기기 그리 된 양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기자가 이건희 씨 아내를 일러 '여사'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을 일러 '선생'이라고 부르던 우리 지역의 한 기자가 생각났던 것이다. 이병철 선생이라니. 참 이놈저놈 다 선생이더니 이젠 이년저년 다 여사다. 그냥 편하게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씨가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시장점검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일까? 이 기사를 다룬 기자가 혹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여사'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면 이것은 정말 난센스다.  

그러고 보니 신문사 이름이 머니투데이다. 머니투데이. 그랬군. 돈, 즉 자본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언론이란 느낌이 이름에서부터 팍 온다. 그러니 당연히 존경하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를 감히 홍라희 씨라고 부르진 못할 게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건 자기들끼리의 사적인 공간에서 그리 하면 될 일이고 공적인 기사의 영역에서 만인을 향해 '홍라희 여사님'을 읊조리는 건 아무래도 기자로서 상식 이하다. 

글쎄 괜히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성경에도 보면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했고 우리 속담에도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같은 말이 있는 것처럼 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홍라희 씨라고 하는 것과 홍라희 여사라고 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두 말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인간의 뇌를 지배할 정도의 엄청난 차이가. 

기자님들이여. 제발 말을 제대로 쓰자.    
    

▲ 머니투데이


ps; 제가 요즘 블로그에 글을 잘 안 쓰는데 갑자기 열 받아서 한번 썼습니다. 열 받은 참에 앞으로 좀 열심히 써야겠네요. ㅋ~ 그리고 참고로 한말씀 더 드리면 옛날 제가 살던 아파트에 어떤 여자분이(그때 겨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을 걸로 기억됩니다만) 자기 남편을 칭해 우리에게 말할 때 늘 "우리 남편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남편께서는 지금 안 계시고 어디 나가셨고요" "우리 남편께 직접 말씀드려 보세요" 뭐 이런 식으로 말해서 우리를 짜증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부녀회에 와서도 다른 여자분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해 모두를 벙 찌게 했다는...

그런 거죠. 그럼 뭐야. 우리는 모두 당신 남편의 쫄들이란 말이야? 뭐 그런 경우는 그냥 귀엽게 봐주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요. 글로 소개하니까 생동감이 없지만 이웃 아주머니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고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보세요. 영상으로요. 정말 웃길 거에요. 이렇게요. "우리 남편께서는요. 정말 못하시는 게 없고요. 참 훌륭하신 분이에요." 그때 느낌은 밉다기보다는 그냥 귀엽고 어이없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암튼^^ 그 아주머니, 요즘도 그렇게 사시는지는 모르겠네요. 그 아파트를 떠난지가 벌써 10년이 다 돼 가니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페이스북에 김태훈 씨가 올린 글귀입니다.
매우 마음에 들어 옮겨 봅니다.
의미심장하면서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짧은 글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습니다.  

마음이 넓고 넉넉해지는 것보다
이렇게 소심한 것이
한편 훨씬 행복한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또는 훨씬 용기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도 그냥 소심하게 살아야겠다,
생각해봅니다.
 
복수는 나의 것! ^^ 흐흐~



우리... 억울한 일 당했으면 꼭 복수하며 살아요~ 다 끌어안지 마시고, 애써 삭히지도 마시고, 자책은 더더욱 마시고, 좀 소심한 거라도 우리 꼭 복수하며 살아요~ 그래야 훌훌 털고 살 수 있잖겠어요? 이 사람 처럼요.^^

"해고 통보를 받은 회사의 IT관리자가 CEO의 PT파일에 포르노 사진을 바꿔 넣어서 복수한 사건이 화제. http://t.co/eSNOli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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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복수

집안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글을 쓰지 못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블로그

지난 2월 2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쪽샘골목 내 <7080청석골>
에서 창동음악방송 개소식을 했었지요. 

그때 찍은 사진입니다. 

마산합포구청장님이 꼭 사진 보내달라고 하시기에, 
어디로 보내면 될까요? 했더니, 
아마 합포구청으로 보내시면 될 겁니다, 해서

마산합포구 홈페이지 들어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사진 보낼 만한 장소가 없네요.
자유게시판도 없고, 
사진 올릴 만한 곳이 어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자민원으로 보내기도 그렇고... 

하여 걍 제 블로그에다 올리오니...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옥선 의원님... 
가수 김산 씨... 
경남대 서익진 교수님... 
그리고 여러분.... 

모두들 사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걍 복사 떠 가시면 됩니다. 
참고로 사진은 원판(4272×2848)을 올렸는데...

그래도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분은 연락주시면 
다시 이메일로 보내드리든지 어쩌든지 
하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100인닷컴 http://www.100in.com/>에 가시면 아마 나와있을 거구요. 
그래도 모르시겠거든...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편집국장에게 
물어보시면 가르쳐 줄 겁니다.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 토요일, 무학산 둘레길 걷기에 나섰습니다.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완연한 봄날이었습니다.

안개 탓에 파란 바다를 훤히 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깝긴 했습니다.
전날도 혼자서 이 길을 걸었는데,
그땐 파란 바다가 정말 좋았습니다.
 요샛말로... 안구정화...

성호골로 올라서서 만날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는데,
일전에 김훤주 기자가 권한 코스였지요.

▲ 바로 앞에 가는 아가씨가 우리 딸.


만날재로부터 성호골 방향을 택하니보다
이 길을 택하면,
파란 바다와 푸른 숲과 멀리 마창대교를 함께
감상하면서 노닥노닥 걸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길도 훨씬 수월합니다.

그런데 한참을 오다가 <입산통제 관리아저씨>라고 해야 되나요,
아님 <산불조심 아저씨>라고 해야 되나요?

▲ 건빵이 담긴 병을 놓아두기 위해 특별제작한 받침대도 보인다. 성의가 정말 천사다.


아무튼, 아이디어가 무척 좋군요.
입산자 관리명부 옆에다 건빵이 가득 담긴 병을 놓아두었네요. 
사실, 아무리 산불관리 목적이라지만, 
제 이름 적으라고 하면 기분좋게 적을 사람 하나 없지요.

그런 마음을 헤아렸던 걸까요? 
짐작하건대 창원시에서 건빵 사라고 예산지원 한 것도 아닐 텐데... 
사비 털어 이런 준비까지 하신 아저씨, 
정말 고마운 분이로군요.  

▲ 건빵이 먹음직스럽다. 배고픈 백성에겐 구세주.


전날 저 혼자 둘레길 걷기에 나섰을 때도
이 빨간 산불조심 옷을 입은 이 아저씨 만났었는데요.
완월동성당에서 193~40년대에 조성했다는 천주교 묘역에서였지요. 

공동묘지가 조성된 에피소드며 묘지명에 대한 이야기며,
정말 친절하게 알려주시더군요.
저는 속으로 그랬지요.

"와, 이 아저씨, 산불관리요원이 아니라 문화해설사 아닐까?"

▲ 산불관리요원 아저씨의 집무실?


그리고 다음날, 건빵이 담뿍 담긴 정성스런 플라스틱 병을 바라보며,

"와, 이 아저씨, 산불관리요원이 아니라 혹시 천사가 아닐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틀인지 사흘인지 블로그에 글을 안 올렸더니 좀 불안하네요. 이런 증상도 폐인이니 뭐니 그런 거 아닐는지... ㅎㅎ 제가 요즘 다른 데 신경 아닌 신경 쓸 일도 좀 있고... 늘 하는 핑계지만 매일 술 마신다고 정신 없어서,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쓸 게 없을 수밖에.

'닥본사'에 실패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캐쉬가 한 방에 700원씩 날아간다는... 휴~

월요일었던가요? 고등학교 동기놈과 옛날 태양극장 근처 어디서 소곱창에 소주 한잔 했습니다. 구제역이다 뭐다 해도 곱창 그거 참 맛있더군요. 가격도 저럼하고요. 그렇게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떼의 아주머니들이 들어와서는 "야야, 빨리 틀어봐라. 시작할 때 안 됐나" 하면서 일렬로 티브이 앞에 늘어앉더군요.

잠시 있으니 또 두 명의 아주머니 들어오셔서는 "야야, 동해야 벌써 시작 했나? 동해 우찌 됐노." 하시면서 또 그 옆에 열지어 앉으시는 겁니다. 정말 티브이 드라마에 목숨이라도 건 듯이 보였습니다. 모두들. 무슨 소린가 했더니 8시 반 연속극 <웃어라, 동해야>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연속극 한번도 안 봐서 무슨 내용인지는 모릅니다만, 저렇게 연속극 하나 보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오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만 하네요. 드라마 리뷰를 주로 쓰는 블로거인 제 입장에서도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동해가 그렇게 잘나가는 중이었어?' 

아주머니들은 1오 횡대 대형으로 티브이 앞에서 30분간을 앉아 <웃어라, 동해야>를 시청한 다음, 역시 우리처럼 소곱창을 시켜 소주를 한잔씩 걸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마도 그날이 곗날이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계모임의 화제도 주로 동해 이야기였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가 아니고, 웃어라 동해야, 말입니다. 

하도 쓸 말이 없어서 대충 재미없는 이야기 좀 했습니다. 그분들 티브이 시청하는 뒷모습 찍어놓은 사진도 있지만, 어느 구석에 있는지 찾기도 어렵고, 사진 한장 없으면 이 포스트가 너무 썰렁할 것 같아서 대신 우리 딸이 우리집 화장실 문에 붙여놓은 경고문 내지 주의문 비슷한 거 하나 올려놓고 물러갑니다.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매달 세번째 일요일이면 <걷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걷기 행사가 있습니다. 2011년 1월은 바로 오늘이 그날입니다. 보통 11시에 경남대 정문에 모여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가서 거기서부터 걷기를 시작하는데, 저는 오늘 가지 못했습니다. 뭐 평소에도 그렇게 썩 안 빠지고 다니는 편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오늘도 못 갔습니다.

처음부터 안 가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당 한편 수돗가에 꽁꽁 언 얼음을 보면서 어릴 적 고향마을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는 늘 저랬지.' 그때는 사흘이 멀다 하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 마을 어귀에서 높다랗게 휘청 늘어진 가지에 눈을 빵모자처럼 뒤집어쓰고 저를 쳐다보는 소나무를 만나는 꿈을 꾸곤 한답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마을회관 앞에 삽과 곡괭이를 들고 집합해서는 마을 공동우물을 꽁꽁 얼려놓은 얼음을 깨는 게 겨울방학 때면 국민학생이며 중학생인 제가 하는 일 중에 하나였지요. 기억하기론 얼음의 두께가 커다란 장작을 반으로 쪼개놓은 두께 정도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영화 '북극'의 한 장면 @다음영화


오늘 추위가 그랬습니다. 그 시절을 회상시킬 만큼, 그때 그 시절이 느껴질 만큼 그런 추위였습니다. 어떻게 할까 열두 번도 더 이랬다저랬다 하다가 결국 오리털 패딩으로 중무장을 하고 대문을 나서 경남대 정문으로 향했지만, 300미터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마치 코에 동상이라도 들 게 하겠다는 듯이 얼음장 같은 바람이 얼굴을 때렸기 때문입니다. 너무 추웠습니다. 아무리 <걷는 사람들>도 좋지만, 이러다간 얼어 죽거나 최소한 신종플루에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도 아니면 코에 동상이 들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걷기 행사는 포기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리 그렇지만 이거 올해는 너무 추운 거 아냐? 삼한사온도 아니고 완전 춥기만 하다가 따뜻한 날씨는 어쩌다 한 번씩 가물에 콩 나듯이 하니. 다음달 초까지 이렇다니까, 겨울 내도록인데.'

며칠 전 뉴스 시간에 왜 이렇게 기록적으로 추운 날씨가 계속 되는 것인지 과학적 근거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을 본 것이 기억났습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더군요. 북극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엄청난 양의 얼음이 녹아 빙산이 되어 북극 바다를 떠다닌다고 하는데, 거참 신기한 일이죠. 

북극은 사상 최고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데 우린 사상 최고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니…. 이런 걸 아이러니라고 해야 될까요, 천지개벽이라고 해야 될까요? 어쨌거나 북극은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데 우리는 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까요?

저도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리고 이게 또 정설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북극에 따뜻한 공기가 형성되면서 제트기류가 약해졌다는 거지요. 이 제트기류는 북극의 한파를 가두어두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게 약해지니까 북극의 한기가 남하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오늘 포털 다음 뉴스사이트에는 이런 기사가 있네요. 대륙성 고기압의 확장 때문에 한파가 찾아왔다는 건데요. 그것도 비슷한 논리겠죠. 어쨌든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찬공기가 아래로(따뜻한 남쪽으로) 흘러내린다는 거죠. 이 때문에 눈이 많이 오고, 또 이 눈이 태양광을 반사시키면서 기온이 더 떨어지고.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걱정이 덜커덕 드는군요. '아니 이거 이러다 빙하시대가 오는 거 아냐?' 그렇잖아요. 빙하시대란 게 별 건가요? 북극에 가두어두었던 찬공기가 탈출해 남하하면서 거대한 육지를 덮어버리는 거죠. 이 찬공기는 시간이 가면서 거대한 얼음을 형성하고 뭐 어쩌고저쩌고.

뭐 저는 과학 하고는 완전 거리가 먼 사람이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마세요. 제 이야기에 신빙성이라곤 거의 1%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뭐라고요? 그 1%가 뒤통수 때리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야 저도 할 수 없죠. 그런 경우에 대비해 운명이라고 부르는 체념의 미학을 우리 선조들이 미리 만들어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니 이게 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군요. "이번 한파는 이명박의 서민죽이기 정책에 찬물을 부어주는 격이다"라는 표현은 뭐 제가 봐도 아주 그럴듯하네요. 이명박이 밉든지 곱든지를 떠나 맞는 말이죠.

하여간 구제역, 조류독감, 신종플루, 살아있는 모든 것에 재앙이 내린 것 같은 대한민국, 정말 대통령을 잘못 뽑아 그런 건 아닌지. 옛말에 나라에 재앙이 생기면 제일 먼저 왕을 잡아다 그 죄를 논하고 제단에 피를 뿌려 하늘을 달랬다, 뭐 그런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그래야 하는 건 아닌지.

추운 겨울. 모두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우리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배부르고 등 따사롭겠지요? 이건희 딸 이부진은 신세계 백화점 모피코트 잘 팔려서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을 테고요. 그런데 이런 기록적인 한파에 노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우리 동네 마산역 앞 광장 숲속에도 노숙자들이 있다던데요. 텐트도 없이 그냥 자리 깔고 잔다는데, 혹시 이 기록적 한파에 얼어 죽기라도 하는 건 아닌지. 노인 노숙자도 있고, 애 딸린 노숙자도 있다던데…. 저보고 어떤 공무원이 한번 취재 가보라고 하던 것을 너무 추워서 못가고 말았네요.

휴~ 노숙자는 서울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