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의 결말은 감동적이었지만 아쉬웠다. 많은 사람들이 통속적인 결말이 없기를 고대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통속적인 결말을 기다렸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성경말씀이 현실에서도 구현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작가는 여론에 편승하기로 한 듯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통속적이지 않은 그러나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론으로 “역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추악하고 역겨운 곳이야!”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뇌까려주는 것으로 한동안 세상을 숨 가쁘게 했던 드라마에 종지부를 찍었다.

강동윤, 징역 8년, 백홍석, 징역 15년. 이것이 <추적자>가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최후까지도 법은 진실을 외면했으며 정의를 배반했다. 물론 이것은 현실이다. 지난 두 달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작가는 마지막까지도 너무나 냉정하게 가장 현실적인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였다. 사람들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바라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보라. 땅 투기에 온갖 의혹을 받아도, 법정에서 피고와 함께 기도놀이로 사법부의 권위를 실추시키면서 노동자의 명줄이 걸린 사건에 대해선 단 몇 분의 고민도 아까워하는 판사가 곧 대법관이 되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법부가 어울리지 않게 정의의 칼을 뽑아 상황을 바로잡는 시추에이션을 만드는 것은 사실에 대한 왜곡이며 진실에 대한 농락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빤한 결말’에 대해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동윤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60%를 넘는 지지율이 선거 당일에는 70%도 넘겼다. 대적할만한 후보가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 재벌집 사위이기도 하다. 돈과 권력을 모두 겸비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다.

하지만 그에겐 꿈이 따로 있었다. 그는 가난한 이발사의 아들이었다. 강동윤은 없는 자의 설움이 무엇인지 피부로 잘 안다. 그는 가진 자의 대열에 합류해서 그들과 함께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서지수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는 더 큰 꿈을 꾸었다.

“겨우 5년 권좌에 앉았다가 퇴임 후에 이리 물어뜯기고 저리 물어뜯기는 대통령 따위가 내 목표가 아니야. 내 목표는 따로 있어. 그 자리는 영원히 물러날 필요가 없는 자리이고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는 자리이기도 하지. 그리고 실제로 권력을 움직이는(조종하는) 자리이기도 해.”

영원한 권력. 그는 자기 장인이 가진 자리를 원했던 것이다. 재벌총수.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는 영원한 권력. 그 자리에 가기 위해 강동윤은 대통령이 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청와대는 장인이 앉아있는 회장 자리로 달려가기 위한 역마차에 불과했던 것이다.

강동윤이 달리고 있는 욕망의 도로 위에서 백홍석의 사랑스런 딸이 강동윤의 아내에게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러나 이 우연은 강동윤에 의해 필연적인 죽음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강동윤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백홍석의 딸을 죽이도록 교사한 것이다.

밀고 밀리는 사건의 전개 속에서 강동윤은 형사와 검사를 돈으로 매수하고, 때로는 협박하고 감금하고, 또 때로는 저격수를 동원해 살인을 기도한다. 강동윤에게 매수된 대법관은 억울하게 죽은 백홍석의 딸을 상습 마약중독자에다 원조교제를 하는 못된 여학생으로 만들어버린다.

백홍석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사랑하는 딸의 행복을 위해 아이돌 스타 피케이준 공연티켓을 구해 생일선물로 바칠 줄 아는 순수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월급 2백2십만 원의 박봉이지만 용돈을 아껴 딸의 생일잔치를 거하게 챙겨줄 줄도 아는 마흔두 살의 다정다감한 아빠다.

그에겐 거창한 꿈 따위는 없다. 그저 하루하루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라면 꿈이다. 딸이 웃어주는 해맑은 얼굴이 한없이 가슴 뿌듯하고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이 세상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다. 그에겐 지금 이순간이 지상 최대의 낙원이다. 그런데 그게 깨져버렸다, 한순간에.

법은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 법은 외면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밀어내고 때리기 시작했다. 딸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마약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법은 말했다. 평소에 행실도 나쁜 아이였다면서 죽을만한 아이가 죽었을 뿐이라며 살인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제기랄.

백홍석은 법을 믿지 않겠다고 했다. 스스로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딸의 누명을 벗겨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총을 들고 법정으로 가 피케이준에게 겨누며 외쳤다. “진실을 말해.” 그가 원한 것은 진실이었다. 뒤이어 몸싸움, 그리고 격발, 피케이준 죽음.

엄숙한 무게로 무장한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기립, 착석, 판결문이 낭독됐다. 강동윤 징역 8년.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저런 정도의 엄청난 일을 벌이고도 고작 8년이라니.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약소한 거 아닌가. 그리고 뒤이어 백홍석, 징역 15년. 허걱~, 허각이 아니라 허걱이다.

아마도 어쩌면, 작가는 이 재판을 통해 사법부에 사형선고를 내리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징역 8년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 징역 15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굴종. 약자의 하소연과 저항에는 사정없는 괘씸죄의 철퇴. 이미 죽은 사법부에 대한 사형선고다. 

△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자 대비되는 두 개의 표정. 왼쪽은 진실과 정의를 원하는 민심의 표정이요, 오른쪽은 부패하고 무능한 검찰의 표정이다.

한 트위터러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8년과 15년의 의미는 사법부의 8.15독립을 염원 혹은 촉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독립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죽은 사법부를 다시 살리는 일이겠다. 살지도 못한 것이 독립을 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니까.

드라마 <추적자>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작가가 이명박대통령과 비비케이 사건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뚜렷이 보인다. 그래서 강동윤은 기를 쓰고 대통령 선거일만 넘기면 된다고 혈안이었던 것이다. 당선만 되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난다.

아무튼, 이 드라마, 너무 사실적이어서 너무 무서운 드라마였다국회의원들로부터 임명 동의를 기다리고 있는 4명의 고명하신 대법관 후보자들이 혹시 이 드라마를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긴 그들이라면 보았더라도 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혹시 김신 대법관 후보자라면 이런 정도의 기도는 했을지도 모르지만. “주여, 저 분수 모르고 날뛰는 불쌍한 영혼에게 천벌을 내려주소서! 세상 따끔한 맛을 보여주소서!” 그가 노동자 김진숙 씨에게 불과 몇 분, 몇 시간 만에 내렸다는 결정문을 보면 영 억측도 아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