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이야기

조선일보 혼내려다 내양심 털나겠다

조선일보에서 돈을 받았다. 명목은 신문을 무료로 8개월간 보고 난 다음 1년간 신문을 보아주는 데 대한 대가였다. 내년 7월부터 수금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 1년 계약기간이 지나면 어쩌느냐고 했더니 그때는 원한다면 또 돈을 받고 무료로 일정기간 본 후에 다시 1년 계약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조선일보에서 현금 3만원과 무가지 8개월을 제의 받다

망설여졌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이미 조선일보의 이런 불법 경품을 이용한 영업행위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조선일보가 이따위 방법으로 부수를 부풀리는 이유야 다 아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광고주들도 참 딱하다. 이따위 허접한 신문에 광고를 낸다는 게 쪽 팔린다는 생각은 안 해 보았을까? 


그러나 결론은 응하기로 했다. 내 의도야 뻔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 위해서다. 6개월여가 지나면 두둑한 신고포상금도 나올 것이다. ‘꿩 먹고 알 먹고’다. 조선일보 혼내주고 돈도 타니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이 아닐까? 조선일보, 딱 걸렸다. 

길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돈을 돌리는 아저씨가 한편 불쌍하기도 했다. 저 아저씨는 조선일보의 불법행각에 휘둘리는 대가로 얼마를 벌 수 있을까? 행색도 그리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사기꾼의 앞잡이가 되어 움직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그런 사람들을 다 동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매일 조선일보가 우리 집에 배달되기 시작했다. 두툼한 신문 뭉치에 광고전단지까지 처치 곤란할 정도로 폐지가 집에 쌓이기 시작한다. 조선일보는 처음 받아보지만, 이거 쓸데없이 두껍기만 한 신문은 도대체 무엇을 읽어야 할지 고민스럽게 만든다. 마치 꽉 들어찬 창고에서 물건 하나 찾기가 예사 일이 아닌 거와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왕 들어오는 신문, 조선일보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궁금하기도 해서 열심히 읽어봤다. 그런데 이거 읽으면 읽을수록 걱정이 늘어간다. 내 정신이 자꾸 이상해지는 거 같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명박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거기에 다는 기사는 찬양 일색이다. 북한에 로동신문이 있다면 남한에 조선일보가 있다는 식이다. 

북한에 로동신문이 있다면 남한엔 조선일보?

그러나 거기까진 참아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찬양하고픈 ‘수령’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사팔뜨기도 아니다. 도사도 아니면서 아예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본다. 오늘 신문을 완전히 도배한 조선일보 기사는 미국 자동차산업 빅3의 몰락이 자동차 노조 탓이란다. 그래서 한국의 자동차산업도 강성노조부터 배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그것도 버젓이 사설까지 동원했다. 

이분들은 자기 배 아프면 사돈 논 산 걸 탓할 사람들이다. 이들 논리대로라면 강성노조와 고임금으로 유명한 독일의 자동차는 벌써 망했어야 한다. 아예 노조를 기반으로 만든 사민당이 거의 영구 집권하듯이 한 스웨덴의 볼보나 사브, 그리고 스케니아(SCANIA)는 망해도 백번은 더 망했어야 한다.

좋다. 여기까지도 참아주자. 원래 조선일보가 눈감고 기사 쓰는 ‘찌라시신문’이란 거 몰랐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오늘자 「전문기자 칼럼」란에 실린 ‘스페인 총리의 수모’란 제목의 기사를 보니 가관이 도들 넘었다. 스페인 총리가 수모를 당했다는 설정도 우스운 이야기지만, 미국이 초청하는 G20 명단에 스페인이 빠졌다고 해서 스페인 총리가 부시에게 수모를 당한 거라고 생각하는 조선일보의 사고방식이 더 우습다. 

구매력 기준으로는 G7인 캐나다보다 규모가 큰 세계 9위의 경제대국 스페인을 제쳐두고 초청장을 발송한 부시의 옹졸함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왜 스페인이 이라크에 파병을 거부하는 명분을 선택했기 때문에 국익을 무시한 재앙을 초래했다고 말하는 것인지 상식을 가진 사람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미국이 주최하는 국제회의에 초청받지 못했다고 재앙이라고 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것이 초강대국을 조롱하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이런 후과(後果)를 각오했어야 한다고 사파테로 총리와 스페인 국민들에게 충고하는 조선일보는 거의 코메디 수준이다. 아예 스페인더러 미국의 식민지가 되라고 조언하는 게 정직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조선일보는 정신적으로 미국의 식민지가 된지 오래인 거 같으니 하는 말이다.

조선일보 보다가 내 양심에 털 나겠다

미국은 결국 사파테로 총리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그러나 그건 조선일보가 말하는 대로 2주간 스페인 총리가 구걸한 결과는 아닐 것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조언도 있었겠지만, 만약 스페인을 제쳐두고 G20 회의를 진행한다면 그야말로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친미국가들의 친목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우려한 미국 정부의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에도 전쟁놀이만 즐기는 무뇌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무뇌아는 조선일보에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이따위 허접한 기사를 「전문기자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떡하니 걸어놓는 조선일보의 배짱도 배짱이지만, 이런 신문을 신문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국민이 불쌍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남 걱정 할 때가 아니다. 조선일보 혼내주려다 내 양심에 털이 나게 생겼다. 이왕 들어오는 신문 그냥 내다버리면 국력 손실이다 싶어 읽어보기는 보는데 이러다가 나도 조선일보처럼 양심에 털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도 오늘 조선일보 기사 중에 마음에 드는 기사가 딱 하나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와의 인터뷰 기사다. 주제 사라마구는「눈 먼 자들의 도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원작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칸 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택되었다. 조선일보가 그를 인터뷰한 것이다.

용접공 출신인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공산당원으로 독재자 살리자르에 맞서 오랫동안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며 국외로 추방당하는 탄압을 받았지만, 역시 조선일보는 그의 소개에서 이 대목은 삭제했다. 미국 차기 대통령 오바마를 친북좌파라며 호들갑을 떨다가, 그가 당선되자 갑자기 미국 대통령을 좌파라 부르는 불경죄를 지어선 안 된다고 꼬리를 내리는 조갑제 같은 사람이 서식하는 곳이니 오죽하겠는가. 

조선일보는 실명(失明) 바이러스

그러나 어쨌든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기사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사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무엇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가?”

여기에 대한 내 답은 이렇다. 

“다름 아닌 너, 바로 조선일보다!”  

2008. 11. 11.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