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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무신 김준보다 노예에게 무릎 꿇은 장군 박송비가 대박

정말이지 ‘무신’ 일이야? 무신에서 장군이 노예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절을 한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황당한 장면에 모두들 놀랐을 거다. 박송비, 쟤 미친 거 아냐? 이 느닷없는 상황을 대체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실로 파격 중에 파격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공명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한마디 고견을 듣기 위해 장군이 노예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는 고사는 어디서도 들어본 바가 없다. 박송비야말로 장군 중에 장군이며 영걸 중에 영걸이다.

박송비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원래 지방 관아의 형리를 지낸 벼슬아치였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수없이 많은 죄인들을 심리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보았고 마침내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지니게 됐다. 그래서 최우가 그를 중용했다.

최우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늙은 아비 최충헌은 오늘내일 중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고려 막부의 수장인 아비를 대신해 도방을 책임지고 있지만 최충헌의 주요 가신들은 모두 아우 최향에게 붙었다.

왜?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인간사란 원래 그런 것이다. 깨끗한 물에서는 고기가 잘 살지 못한다. 최우는 너무 깨끗하고 충직하고 공평무사하며 애국적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먹을 게 없다. 최향은 반대다. 그 결과 최향은 수만의 수도방위군을 거느리게 됐다.

최충헌을 대리해 고려의 실질적 최고기관인 도방을 다스리면서도 최향에게 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그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최충헌은 최우를 불러 “내가 곧 죽을 것이지만 앞으로 절대 여기 나타나선 안 된다. 죽었다는 소식이 가도 오지 마라!” 하고 명한다.

그리고 최우에게 두루마리 문서를 하나 주면서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한다. 문서에는 붓으로 ‘충헌’이라고 쓴 수결만 있고 아무 내용도 없는 백지문서였다. 무슨 뜻이었을까? 최충헌은 너무 강직한 최우의 단점이 걱정이지만 역시 나라는 최우에게 맡기고 싶다.

왜? 최향이 실권을 잡으면 나라 다 거덜 낼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고기가 안노는 법이야!” 하고 최우에게 충고를 하긴 했지만 최충헌이 보기에 자신이 세운 도방을 잘 건사할 재목은 큰아들 최우라고 본 것이다. 그 최우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다.

최우의 가신들은 하나같이 애가 탈 뿐이다. 상황을 타개할 묘책이 없다. “이거 이러다 무슨 일 나겠는 걸. 멀리 피신해 당장 위험을 모면하고 대책을 세우든지 아니면 최향 측과 협상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야말로 속수무책.

이때 박송비의 눈에 김준이 들어왔다. 한낱 노예가 불경을 꿰고 사서삼경을 읽으며 병서에 통달하고 정관정요를 안다. 무술은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위기에 처한 최우와 자신을 살렸는데도 대가로 주는 금덩어리를 거절하며 가병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박송비가 보기에 김준은 먹을 것을 바라고 주인을 위해 짖는 개가 되기보다 최우의 가신이 되기를 바라는 장부다. 박송비에게 한줄기 희망이 보인다. 혹시 저자가? 만약 저자에게서 주군 최우를 살릴 계책이 있다면!

박송비의 눈은 정확했다. 그리고 박송비는 최우를 살릴 계책을 얻었다. 최향은 최우를 죽이기 위해 최충헌이 위독하다는 핑계로 최우를 최충헌의 관저로 불러들이려 한다. 그곳에 군사를 풀어 덫을 쳐놓았을 것은 자명한 일. 김준은 이를 역이용하라고 말한다.

최우에게 내린 최충헌의 수결 백지명령서가 있지 않은가! 그것을 이용해 최향의 측근 중 한명을 잡으라고 말한다. 최향에겐 최측근 4명이 있다. 틀림없이 이들이 다시 올 것이라고 말한다. 최우를 불러들이기 위해. 가지 않으면 최우는 최충헌의 장자로서 웃음거리가 될 터.

얼굴이 상기된 박송비가 최우에게 김준의 계책을 따르라고 간하지만 최우는 이를 듣지 않는다. “아니 어찌 한낱 노예의 말을 듣는단 말인가. 그리고 이미 김약선을 보내 소환했지만 내가 가지 않았다. 다시 오진 않을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고가 들어온다.

“지금 대문밖에 최향 대감 댁에서 대감을 뵙고자 두 분 장군이 오셨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최우와 박송비 장군. 김준의 예측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뭐 그다음 장면은 다음 주에 보게 되겠지만 대충 짐작이 간다. 최우는 김준의 계책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제 김준은 최우의 목숨을 구했을 뿐 아니라 권력투쟁에서 결정적인 승리의 단초까지 제공한다.

유방은 천하를 제패한 후에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면서 1등 중에 1등은 장량도 아니고 한신도 아닌 소하라고 했다. 만약 소하가 후방에서 한나라를 안정시키고 재정을 튼튼히 하지 않았다면 장량의 지략이나 한신의 전략이 빛을 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뜻일 게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소하의 공로 중에 결정적인 것은 바로 한신의 재목을 알아보고 천거한 점이다. 소하가 천거하지 않았다면 유방은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을 결코 대장군으로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하의 체면을 존중해 마지못해 하게 된 인사가 대업을 이룰 열쇠였다니.

세상 사람들이 한신을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치는 것은 그가 해하전투에서 당대 최고의 명장 항우를 대패시켰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한나라에서 도망치는 한신을 뒤쫓아 유방 앞에 데려다놓고 대장군으로 쓰도록 강제한 소하가 없었다면? 아마도 유방도 한신도 없지 않았을까?

박송비가 한낱 노예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술잔을 나누고(이것조차 파격이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계책을 구걸하지 않았다면? 이는 물론 드라마상이긴 하지만 최우는 최향에게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최우가 나중에 최향을 제압하고 실권을 장악하게 된 다음 논공행상을 한다면 1등 중에 1등은 김준도 아니고 다른 장군들도 아니며 오로지 박송비라는 것이다. 장량도 아니고 한신도 아니고 소하가 1등 중에 1등인 것처럼.

어쩌면 이 드라마의 작가도 유방과 유비가 한신과 제갈량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 고전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이런 설정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전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사람을 알아보고 이를 천거해 중용하도록 하는 것. 이게 가장 큰 능력이다.

그러므로 최우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박송비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