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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이정희를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문득 레디앙에 들어갔다가 다음 내용이 실린 기사를 읽었다. 진보신당 관악구당원협의회가 낸 것인데 대부분 내 생각하고 똑같다. 이정희 후보는 진보주의자인가? 회의가 드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껏 속아왔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민주통합당으로부터 진보신당을 야권연대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따로 협의를 해달라는 요청에 그러겠다고 해놓고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진보신당은 이미 수차례 야권연대에 참여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혀온 상태. 그래놓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거짓 인터뷰를 했다.

“최근 들어서 진보신당이 야권단일화에 통합진보당이 들어가 있는 한 야권단일화에 응하기는 어렵다, 이런 입장을 피력하기도 하셨다.”

진보신당은 당연히 발끈했다. 고소까지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정희 대표는 사기꾼이다. 정치인 이전에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문제다. 지금껏 우리가 본 그녀의 깨끗하면서도 투쟁적인 이미지는 모두 위선이었던가?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정희 후보가 만들어 배포한 선거공보물에 ‘학력고사 전국수석’과 서울법대, 사법고시가 떡하니 박혀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충격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당장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부럴. 학력으로 차별받는 사회를 증오해야할 진보정당의 대표가 이럴 수가.

통합진보당이 진보정당이 맞느니 아니라느니 말들이 많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그런데 오늘 레디앙 기사를 보니 한술 더 뜬다. 이정희가 이명박과 같은 토건족이었다니. 그야말로 요즘 식으로 ‘허걱’이다. 물론 이 정도로 토건족이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자. 그래 토건족은 아니다. 그러나 이정희를 이제 더이상 진보라고 부르긴 어려울 것 같다.

이정희 후보의 또다른 문제들

3월 17~18일 양일 동안 민주통합당 김희철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관악을 지역구의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를 하는 동안 발생한 일로 우리의 삶터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진보신당 관악구 당원협의회는 여러 가지 고민 속에서 이번 선거에 관악을 지역에서 우리 당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기로 하였고, 당원 총회를 통해 이를 확정했습니다. 진보후보 당선을 위해 더 높은 수준의 진보정당 간 선거연합을 해야 한다는 내외의 요구가 없지 않았으나 통합진보당의 제안이 없는 상황에서 이것을 논의할 이유는 없었고, 몇 가지 점에서는 이정희 대표가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진보 후보인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습니다.

첫째, 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학력고사 인문계 여자 수석’이라는 점을 의정보고서와 명함, 언론기관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서울대학교가 소재한 지역의 진보후보로서 요구받는 학벌주의에 대한 더 높은 감수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입니다.

둘째, 이 지역 진보진영이 오랫동안 반대해왔던 강남 도시순환고속도로와 신봉터널을 연결시키겠다고 언론을 통해 약속했는데 이는 탈토건·친환경 교통정책을 제시해야 할 진보후보로서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진보신당·녹색당 등 엄연히 다른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진보진영 간 호혜·평등의 정신과 가치 및 정책 중심의 선거연합을 우선하지 않고 되려 다른 진보정당을 범야권 선거연합의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패권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이는 통합진보당이 경남 창원에서 진보후보 단일화의 실패를 이유로 경남 거제에서 야 3당 단일후보로 결정된 김한주 후보를 흔들려 한 시도나, 이정희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진보신당이 야권연대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던 사례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반MB 앞세운 진보정당에서 진보가 안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 관악구 당원협의회는 관악을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진보정치의 성장에 대한 이 지역 유권자들의 열망에 호응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이정희 대표 측이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에서 시도한 여론조작 사건을 접한 이후, 더 이상 같은 자세를 유지하기 곤란해졌습니다.

이정희 대표 측은 지지자들의 충성심을 이용하여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한 것입니다. 당원들에게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 함” 이라는 지침을 문자로 발송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진보정당의 긍지인 ‘진성당원’을 도구로 전락시켜 이 조작 과정의 공범으로 만든 슬픈 일입니다.

사회개혁을 넘어 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정치에서는 모든 정치행위의 과정에서 대안적인 사회의 씨앗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극복하고 넘어서야 하는 보수적 기성정치를 찾아 볼 수는 있어도 ‘진보정치’를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보정치가 아닌 한 반MB라는 수식어를 아무리 붙여도 거기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두 당이 전국적인 수준에서 반MB 단일화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허술함이 드러난 여론조사 밖에 없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여론조사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수단인 선거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점점 자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원래 서로 다른 정치세력을 인정하는 헌법정신이 선거법이나 정당법에 의해서 정당간의 선거연합당이 인정되지도 않고, 결선투표가 인정되지도 않는 모순에서 출발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정치가 더 발전하려면 검토해야 하는 정치개혁 과제에 대해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진보정치가 게을렀던 탓이기도 합니다.

물고기 한 마리 잡으려 연못 물 다 퍼내지 말아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정희 대표에 대해서만 강도 높은 윤리적 잣대를 대고 있는 듯한 여론이 부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진보정치인이라면 이를 부당함의 증거로 삼을 게 아니라 자긍심과 자랑스러움으로 여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진보정치인에 대한 높은 도덕적 기대는 지금까지 진보정치가 자신의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서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에 단호히 맞서왔던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또한 국민들이 그것을 인정해주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정희 대표 측이 이에 답한 방식은 진보정치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진보정치의 가장 큰 자산을 버리고 작은 이익을 취득하려 했던 것에서 우리는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못 잡을 리 없지만 후일 잡을 물고기가 없어질 것”이라는 ‘갈택이어(竭澤而漁)’의 고사를 떠올립니다.

이정희 대표는 더 이상 한 명의 정치인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상징 중 한 명입니다. 이정희 대표가 잡은 물고기는 온전히 본인에게 돌아가겠지만, 진보정치는 다시금 말라버린 연못에서 시작해야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진보정치 전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숙고해야합니다.

진보신당 관악구 당원협의회는 이 사건이 ‘돌파’되거나 ‘묵인’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결’되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정희 대표가 주변의 애정어린 충고를 숙고하여 멀리 보는 선택을 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진보신당 관악구당원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