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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송정문, 여자는 왜 소세지 못먹는 거죠?

송정문의 진솔한 삶이야기 세 번쨉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여자에겐 불편한 곳입니다. 우선 저 자신부터 그렇습니다. 집안일은 온통 여자 몫입니다. 요즘 시대엔 여자도 바깥일을 합니다. 그러나 집안일은 여전히 여자 몫입니다. 바깥일도 해야 하고 안일도 해야 합니다. 남자들은 그저 거들어 줄 뿐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남자란 자고로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결혼 후에 부엌에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는 저를 본 우리 어머니는 놀라 기절 하실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짓은 도대체 어디서 배웠단 말이냐.”

지금 이 순간에도 방금 성당에 다녀온 아내는 부엌에 들어가 밥을 차리고 있고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들 녀석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딸내미는 방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렇습니다.

송정문 씨는 아래 글에서 남동생에게만 주는 소시지가 먹고 싶어 하는 자기에게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넌 다른 반찬 많은께네, 딴 거랑 무라. 이거는 우리 손주 오면 주야지. 돈이 썩어나나.” 정말 그랬는지 저는 여자 형제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형태만 달라졌을 뿐 남존여비사상이 여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들마다 여성할당제를 내세우는 것이 역설적으로 이를 증명합니다.

“가시나 줄 소세지가 어딨노, 돈이 썩어나나?”

참 슬프지만 아직 우리 현실은 이 말이 보여주는 실상으로부터 몇 발짝 나가지 못했습니다. 


삶이야기3. 자라서.

 

<글쓴이 : 송정문>

 

비엔나 소세지가 처음으로 판매되던 시절, 저희 엄마도 한 봉지 사오셨습니다.

내심 어떤 맛일까 기대하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밥상에서 찾아 볼 수 없었지요.

‘분명히 사 오시는 걸 봤는데 어디로 사라졌을까.’

다음 날, 그 다음날 밥상에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고양이가 먼저 먹어치운 건 아닌지, 쥐가 물고 간 것은 아닌지 온갖 걱정에 휩싸였을 정도였죠.

 

“엄마, 비엔나 소세지 누구 줬어?”

걱정어린 마음에 질문했던 그 다음날 아침 밥상 위에 소세지 다섯 조각이 가지런히 담긴 종지가 있었습니다.

뭐든 잘 먹지 않는 남동생의 도시락에 넣어주었는데, 제가 먹고싶어하는 것 같아 더 구웠다고 하셨죠.

좀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먹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소세지가 담긴 종지를 치우시며, 말씀하셨죠.

“넌 다른 반찬 많은께네, 딴 거랑 무라. 이거는 우리 손주 오면 주야지. 돈이 썩어나나.”

 

어떤 분이 귀한 음식을 사오기라도 하면, 그건 당연 남동생과 아버지의 몫입니다.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B형 간염예방주사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는 날 상주이름에도, 저희 집안 여자에게는 늘 예외였죠.

처음엔 우리 집만 유별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활동하다보니,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취업도, 승진도, 업무도.

특히나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었지만,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 모두가 저의 책임인 것 같았습니다.

어떤 상황이 오든 제 탓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여자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해?”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돼.”

 

인생을 타인에게 의지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재 내가 행복할 수 있어야 상대방에게도 행복한 기운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자든, 남자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