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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김정일 장송곡 연거푸 들으며 드는 감상

김정일, 죽어도 참 절묘한 시점에 죽었다. MB에겐 구세주다. 뉴스가 온통 장송곡 칠갑이다. 붉은 이불을 덮고 유리관에 누워있는 김정일을 매번 브라운관을 통해 보는 사람들 중엔 이 장송곡으로 인하여 눈물짓는 사람들도 꽤나 있으리라.

나도 그놈의 장송곡 자꾸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 민족의 정서 밑바탕엔 한 같은 게 있다. 하물며 독재자 박정희가 죽었을 때 감옥에서 온갖 고난과 박해를 당하던 시국사범들조차 통방을 하며 “불쌍한 영혼을 용서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박정희가 죽었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우리 반 부실장이던 기종이가 “각하께서 돌아가셨다” 하며 대성통곡을 할 때도 나는 ‘이놈이 미쳤나’ 하며 멀뚱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기만 했었다. 예정에 없던 애국조회를 소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땐 속으로 ‘씨바’ 하고 욕만 나왔다.

나는 인간성이 별로인가보다. 재야단체들이 정부에 자유로운 조문을 요구하며 내거는 이유 중에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있는데 나는 그런 바람직한 전통과 별로 관련이 없는 듯하다. 10일을 넘기고 있는 장송곡이 지겹고 불편하다. ‘아 씨바, 장례식은 또 왜 이다지도 긴 거야.’

그런데 정봉주는 나보다 더 기분이 나쁘겠다.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재주는 없지만 미루어 이랬을 것이 틀림없다. “아 씨바, 하필 이럴 때 뒤져가지고서는.” 이명박은 어땠을까?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오우 굿이야. 덕분에 나 살았어. 비비케이, 디도스, 에프티에이, 싹 쓸어가 줘.”

뉴스를 보니 청년대장 김정은이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를 거쳐 “경애하는 영도자”, “민족의 태양”, “어버이 수령” 등으로 호칭이 급 격상 됐다고 한다. 거기다 “불세출의 선군영장”이라나? 또 속 뒤집어진다. 언놈은 부모 잘 만나서 스물아홉에 불세출의 영장에다 장군님이라니.

내게 “주체총서와 김일성 회고록을 읽고서 마침내 주사파에 입문했다”고 당당하면서도 살짝 부끄럽다는 듯이 고백하던 몇몇 친구들은 이 3대 수령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설마 아직도 부모 잘 만난 억세게 운 좋은 놈이 아니라 ‘대를 이어 충성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아무튼 나도 정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 중 한사람이니… 김정일 국밥위원장의 죽음에 조의를 표한다. 정말이다. 어떤 죽음이든 슬픈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보다는 피지도 못하고 죽은 대구 중학생의 죽음이 더 슬프다. 아 씨바, 개쉐이들….

그렇지만 이제 장송곡은 제발 그만 틀어주기 바란다. 그냥 자료화면만 내보내도 되지 않나. 안 그래도 연말 분위기 칙칙한데 장송곡까지 들으려니 기분이 엿 같다. 장송곡 자꾸 듣자니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아 씨바, 갑자기 별로 많지도 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신 우리 엄마만 졸라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망자를 위해(이참에 박정희도 더불어) 마지막으로 묵념은 한 번 더 하기로 하자. 비록 천국에는 들지 못하더라도 ‘불쌍한’ 영혼들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