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돝섬 해상유원지에서는 지금 가고파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별다른 문화제가 없는 마산 시민들에겐 특별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나는 25년 전 어릴 때 딱 한 번 가본 것을 제외하고 한 번도 돛섬에 가본 적이 없다. 그때는 주로 동물원을 구경했는데 지독한 냄새를 맡았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마산 국화축제를 보러 아이들 학원도 빼먹게 하다

그래서 그런지 돝섬에 대한 좋은 추억이 별로 없었던 나는 최근 매년 열리는 국화 행사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올해는 갓 초등학생이 된 딸아이도 있고, 아들 녀석도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니 이때가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겠다 싶어 일부러 시간을 내기로 했다. 매년 들어왔던 국화축제란 것이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국화에 대한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 가야하는 주산학원과 피아노학원을 빼먹고 돛섬에 놀러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매우 기뻐했다. 우리는 책가방을 부두 매표소에 맡겨놓고 거대한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친절한 매표원들은 축제장에선 거추장스러울 뿐인 짐을 선선히 맡아주었다. 정말 시원했다. 부두 아래에선 시커먼 바닷물이 마음을 답답하게 했지만, 배가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상쾌한 바람이 가슴을 적셔주었다. 

국화 축제장이 아니라 바다 한복판 먹거리 장터였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배는 돝섬에 닿았다. 평일인데도 섬은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섬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줄지어 늘어선 먹거리 장터였다. 소위 먹자판이다. 우리나라 축제는 어딜 가나 먹는 게 빠지면 안 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옛말도 그래서 나왔을까?

배에서 내리자마자 늘어선 음식점들의 호객행위와 북적이는 사람들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붐비는 사람들을 향해 스님 복색을 한 사람들이 길을 막고 달마도를 팔고 있었다. 진짜 스님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속절없이 길거리에서 팔려나가는 달마대사가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저러자고 대사께서 동쪽으로 오신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온통 장사치들이었다. 거기에 스님(?)들도 한자리 했다. 축제장에 왠 무조건 천원짜리 만물상회까지?

장터를 지나자 놀이기구가 보였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우선 놀이기구부터 타기로 했다. 무섭다고 고개를 젓는 바이킹을 제외한 나머지를 한 바퀴 돌고나서 곧장 국화 전시장으로 향했다. 산비탈 길을 타고 조금 오르니 국화로 만든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멋있다고는 생각되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다양한 국화를 심어놓고 거기에다 일일이 이름과 설명을 붙여놓았을 것이란 교육효과에 대한 기대는 완전 빗나갔다.

국화는 없고 국화벽돌로 만든 거대한 조형물만 있었다

아이들은 아예 국화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멋있지 않느냐고 말하자 그저 무덤덤하게 그렇다고 대답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섬 꼭대기에 마련된 공중 자전거 놀이기구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국화는 없었다. 국화로 치장한 여러 가지 모양의 조형물들만이 육중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빨간색은 국화가 아니라 사루비아인 듯싶다. 우리집 담벼락 밑 화단에 심은 사루비아와 모양이 같았다. 
                                              레일 자전거 뒤로 멀리 마창대교가 보인다.  

대충 구경을 끝내고 다시 내려와 해변을 따라 바닷가 길을 걸었다. 거대한 국화 조형물과 놀이기구와 장사치들과 북적이는 사람들로 정신없는 축제장보다 이게 나을 성 싶었다. 그러나 여기도 상식을 초월하긴 마찬가지였다. 초파일 연등행사에 쓰일 법한 등으로 만든 터널이 해변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 거기엔 누구누구 이름과 ‘사업이 번창하길 빕니다.’ 따위의 소원문구들이 적혀있었다. 

화려한 등불로 치장된 썰렁한 돝섬 바닷가

한쪽에선 나이 지긋하신 노인네들이 소주병을 하나씩 들고 지화자를 부르고 계셨다. 차라리 그 모습이 정답게 보였다. 이 화려하게 촌스러운 색깔로 치장한 썰렁한 바닷가와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걷다보니 다리가 아팠다. 그러나 쉴만한 의자 하나 변변하게 없었다. 

             이곳 출렁다리에서 놀 때가 제일 즐거웠다. 밤이 되어 연등에 불이 들어오면 꽤 그럴 듯하게 멋있을 것 같다. 
             그래도 국화축제에 국화는 없다. 국화는 그저 악세사리일 뿐...

목이 마르다고 투정하는 아이들을 위해 음료수를 샀다. 이온음료 한 병에 2천원이다. 더 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바베큐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을 밖에 나가서 더 싸고 맛있는 간장치킨 사주겠다는 말로 달래 배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거대한 크루즈선 뒤편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가포 연안 매립현장이 보인다. 아이 엄마와 연애하던 시절, 저곳에서 함께 배를 타고 노를 저었었다.

돝섬에서 바라본 연안 매립의 현장

한때는 해수욕장이었던 가포만 매립현장을 한 번 더 돌아가면 거기엔 수정만 매립현장이 있다. 최근 STX 조선소 유치 문제로 마산시와 주민들 간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마산은 매립의 도시다. 이곳 돝섬의 자그마한 동산에서 바라보니 매립지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바다를 품은 달을 노래하던 월영대는 매립지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축물 더미에 밀려 보이지도 않는다.

람사르에 참석한 국제환경기구의 지도자들도 이 모습을 보았을까? 마침 람사르 총회가 창원에서 열리고 있으니 그분들을 여기에 초대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미 바다를 매립해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신포매립지(위),  가포만 매립공사 현장(아래)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서있는데 뒤에서 어떤 중년 남녀의 대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여자가 별로 재미가 없었던 모양인지 남자가 밤이 되면 불꽃놀이도 한다고 어르자, 여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그라모 여는 밤에 와야 되겄네.”

“음, 맞다. 여는 원래 저녁 늦가 와야 되는기라. 한 잔 걸치러 저녁에 오는 게 맞제.”

대한민국의 축제 문화에 대한 오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래, 이곳은 우리가 올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곳에 와서 무슨 국화 타령을 하고 문화를 논하는 자체가 난센스였던 것이다. 국화는 그저 구실이었을 뿐이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한적한 섬 하나를 내어 먹고 놀 자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굳이 비싼 바가지 물가를 감내해가며 편히 쉴 의자 하나 없는 척박한 섬을 꼭 가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도 깨달음이 부족하다.

이렇든 저렇든 대형 크루즈선은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마산시가 장사 하나는 기차게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돌아오는 배를 따라 날아드는 갈매기들이 최고 수지를 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맞다. 가장 행복한 것은 배가 불러터진 갈매기들이었다.

2008. 10. 30.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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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