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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법정구속 간통목사, 남의 여자 취한 게 이유?

여자를 취했다, 여자가 남자의 물건?

참 재밌는 세상입니다. 목사님들이 여신도들과 적절하지 못한 성관계를 가져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는 가끔 봤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참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목사가 결혼주례를 서준 여자와 10년 넘게 간통을 해왔다니 믿기 힘든 일입니다.

포털에 올라온 이 기사를 본 순간 든 느낌은 ‘후덜덜’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더구나 목사와 간통을 한 여자의 부부는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에 오랫동안 다닌 독실한 신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기독교의 표현대로 ‘성도’였던 것입니다.

간통을 한 목사와 여성에겐 법정구속이라는 철퇴가 내려졌습니다. ‘청주지법 형사5단독 이준명 부장판사는 10년 넘게 간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목사와 여성에게 각각 1년 6월과 1년의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언론들은 “법정최고형 2년의 간통죄는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되던 것이 관례였는데 실형을 선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많은 네티즌들도 이 보도를 접하고 충격을 받고 “세상 말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합니다. 그럼 판결문 요지를 한번 보시죠.

“A씨는 B씨와 고소인(남편)의 혼인을 주례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 부부가 꾸릴 가정의 행복을 기원해 주는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주례를 선 남편의 부인을 취한 주례자는 그 남편의 용서를 받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판결은 “A씨는 B씨와 고소인이 오랜 기간 다닌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믿음을 바탕으로 계율에 따라 신도들을 바른길로 이끌어 줘야 할 위치에 있었다”며 “사회적 근본을 크게 해치고 주변인들에게 강한 배신감을 심어준 피고인들을 엄벌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답니다.

또 “목회자와 신도 사이인 피고인들의 만남은 고소인을 포함한 주변 신도들로부터 전혀 의심을 받지 않았다”면서 “최소한의 종교적 신의마저 저버린 피고인들에 대한 주변 종교인들의 분노와 실망감 역시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판결문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저도 이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도민일보 김주완 국장의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는데요. 김 국장은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군요. “남자가 여자를 취한다 이거 맞는 건가요? 여자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 판사가 사회에 귀감이 될 좋은 판결을 내린 것 같기는 한데 그마나 옥에 티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옥에 티가 치명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여성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복잡하게 될 만한 내용이란 것이지요.

왜 이런 판결문을 쓰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이 판사는 이 판결문을 작성할 때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특별히 여성을 비하하거나 여성의 인권을 침해할 아무런 의도도 없었을 것이란 점은 일부러 변호하려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판사는 결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 판사는 본의 아니게 ‘여자는 남자가 취할 수 있는 소유의 대상’이라고 말함으로써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판사가 특별한 의도나 잘못된 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혹시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이 판사의 글씨기에 문제가 있다, 고 말입니다. 실제로 판사들이 쓰는 판결문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보통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너무 괴리가 크다는 거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판사들의 판결문을 해독하기 위해 따로 번역사를 두어야 할 것’이란 농담이 돌기도 했습니다. 판결문뿐만이 아닙니다. 검사들이 작성하는 공소장도 마찬가집니다.

과거에 검사들이 쓴 공소장을 보면 “피고는…” 으로 시작해서 “…이건 소에 이르게 된 것이다”라는 말로 끝나는 몇 페이지에 이르는 공소장이 단 한 개의 마침표도 없이 하나의 문장으로만 이루어져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러지 않는 걸로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

사법부도 자정노력을 해서 보다 쉬운 판결문을 쓰자는 운동이 일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고 또 내부지침도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판사의 판결문을 보면 그럼에도 여전히 과거의 잔재가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잔재? 우리는 뭔가 다르다는 특권의식. 보통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자기들끼리만 아는 특수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갖게 되는 우월감. 그런데 그런 특권의식이나 우월감 때문이기만 할까요? 다른 무엇은 없을까요?

최근에 보기 드문 명품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대부들은 왜 임금 이도의 한글창제를 반대하는가? 기득권 때문이다. 백성들이 글자를 알면 그들을 지배할 수 없다. 우리가 사대부인 것은 귀족혈통이라서가 아니라 글을 알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쉬운 말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밥그릇이죠. 결국 밥그릇 때문이었다는 결론입니다. 밥그릇을 지키려는 판사 일반의 잠재의식 속에서 “남편의 부인을 취한 주례자” 따위의 판결문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남편의 부인을 취한…. 자, 다시 보니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저는 앞에서 이 판사가 여성을 비하하려는 별다른 인식은 없었을 거라는 변명의 말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기득권 외에 여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도 있었으리라는 혐의를 온전히 벗기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혹시 함께 구속된 B여성의 판결문은 어떨까요?

거기에도 “자신의 주례를 선 목사를 취한 부인은 사회적으로 용서받기 어렵다” 같은 식으로 씌어져 있다면 문제는 달라지겠는데요. 그러면 남자가 여자를 취한 것처럼 여자도 남자를 취한 것이 되니까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사람을 취한다니 좀 거시기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