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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꽃미남 라면가게, 게슴츠레한 눈빛의 정체는?
















꽃미남 라면가게. 이름부터가 기발하다. 케이블방송 tvN에서 하는 드라마 제목이다. 드라마 제목이면서 드라마의 주무대인 라면가게의 이름이기도 하다. 원래 이 라면가게는 은비분식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청년에 의해 이름이 바뀌었다. 꽃미남 라면가게로.

나는 처음에 엉겁결에 나타난, 아니 ‘홀연히 나타난’ 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괴이한 한 청년의 등장에 너무 놀랐다. ‘뭐 저딴 친구가 다 있지?’ 이것이 그의 인상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감상이었다. 아마도 드라마란 점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모두들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괴청년은 나타나자마자 이 드라마의 주인공 양은비를 향해 ‘마누라’라고 불러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는 우리가 보기에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런 계약서 한 장을 은비에게 들이밀며 “너는 이미 내 마무라가 되기로 예정돼있었다”고 주장한다.

대체 이 무슨 황당 블루스? 길길이 뛰면서도 일격을 날리지 못하는 은비를 보면 그래도 그 계약서란 것이 흔히들 쓰는 말로 나름대로 실체적 진실은 갖추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괴청년의 주장처럼 계약서에 서명을 한 사람이 은비의 돌아가신 아버지일 거란 것이다.

괴청년의 행동은 실로 괴이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나 드러누우며 말도 가려 하지 않는다. 과년한 숙녀 앞에서 벌거벗은 상체를 드러내고도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미안함 따위는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애초에 그런 것과는 인연도 없다는 투다.

괜스레 드라마를 보는 내가 미안할 정도다. 나는 생각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대 저럴 수가 없어. 대체 누굴까? 혹시 신선? 아니면 천사? 주인공 차치수를 일러 환웅(물론 어디까지나 돈 많은 부모를 둔 철없는 자식에게 붙인 별명일 뿐이지만) 이라고 하는 걸 보면 환웅이 인간세계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파견한 도우미 천사일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릴 때 보던 만화의 주인공에 생각이 미쳤다. 구영탄. 구공탄인가? 아니, 구영탄이 맞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짓궂은 짓을 독으로 하고 다니는 녀석. 천하에 둘이 없는 두뇌를 가지고도 만사가 귀찮은 귀차니즘의 대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불편하던 괴청년이 갑자기 다정스런 미청년으로 둔갑한다. 구영탄이 게슴츠레한 눈빛에 짓궂은 행동으로 초반엔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하지만 결국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해결사가 아니던가. 괴청년 최강혁도 바로 그런 인물이리라.

이 글을 쓰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하, 그렇지. 드라마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는 아니라도 살짝은 가르쳐 주잖아. 최강혁이 어떤 녀석인지.’ 역시 해가 갈수록 (형광)등 켜지는 속도가 느려진다. 있다. 그런데 아, 이렇게 적혀있다.

아.. 그러니까 내가 누구냐 하면... 아, 귀찮아~

흐흐, 내 생각이 맞았다. 귀차니즘의 대가. 짓궂기가 이를 데 없는 구영탄을 닮은 녀석이다. 선의로 말하면,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며, 자신이 짓궂듯 남이 자기에게 무슨 짓을 해도 열려있는 사고로 대하는 엉뚱하지만 진실한 청년. 이런 사람들이 보통 천재다.

△ 사진/보라마니아

귀찮아하면서도 그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친절하게 자신을 소개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며 예상하는 바와 같이 요리계의 천재로 유명한 셰프다. 그런데 왜 잘나가는 일본인 셰프가 한국에 와서 고작 라면가게를 하냐고?

정답. 귀찮아서다. 그러나 꼭 그렇기만 할까? ‘우주 최강의 게으름’으로 무장한 이 귀차니즘의 대가가 왜 귀찮음을 무릅쓰고 짐을 싸들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넘어왔을까? 이 일본인 천재 셰프 코스케의 정신적 지주 양철동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양철동. 바로 은비의 아버지다. 양철동이 어째서 강혁의 정신적 지주이며 누구도 못말리는 귀차니즘을 잠시 접게 만들었는가. 그게 궁금하면 앞으로 열청하면 될 일이고. 아무튼 양철동이 죽은 걸 알게 되자 은비분식에 눌러앉은 걸로 보이는데...

내 생각엔 그렇다. 천하의 게으름뱅이 구영탄이 만인의 행복을 위해 게슴츠레한 눈을 크게 뜨고 그의 천재성을 발휘한 것처럼 괴이한 청년 코스케 아니 최강혁도 엉뚱하고 짓궂은 행동 속에 내재된 천재성으로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꽃미남 라면가게에 모인 친구들의 면면을 보면 어쩌면 사회부적응아들이다. 장차 사회에 나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장렬하게 수모를 겪게 될 운명들. 주인공 양은비부터가 그렇다. 그녀는 강스파이크를 가진 전직 배구선수였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얻기 위해 고시원과 도서관을 동분서주한다.

김바울은 어떤가. 그는 인생을 포기한 19살 청년이다. 이른바 예비 조폭이다. 일탈의 삶에 자신의 운명을 내던진지 오래다. 차치수? 재벌2세를 보고 누가 사회부적응아라고 하겠냐고 반문하겠지만, 하지만 그도 사회부적응아다. 돈이 너무 많아 일탈의 경계를 넘어선 불량품이다.

이런 부적응아들을 하나둘씩 모으는 괴청년 최강혁, 도대체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스승 양철동을 보기 위해 귀찮은 몸을 이끌고 왔다가 다시 귀찮아서 일본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머물며 라면가게를 한다는 것이 그가 가진 미스터리의 전부일까?

어쩌면 내가 처음에 느낀대로 강혁은 정말로 신이 파견한 신선이거나 천사일지도 모른다. 신선이나 천사는 신을 보좌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므로 신을 닮았을 것이다. 알고 보면 원래 신(알라, 야훼, 여호와, 부처님, 부처님도 신인가? 여하튼 어떤 이름이든)이란 게으른 존재다.

인류사에 벌어지고 있고 벌어졌던 숱한 재앙들을 보라. 혹자는 신이 인간을 배신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번엔 신께서 인간들을 버리지 않을 모양이다. 최소한 라면가게의 부적응아들을 위해선 그렇게 작정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시대 자본주의사회의 부적응아들과 함께 비정규 인생의 최전선에 선 우주 최강의 게으름뱅이, 귀차니즘의 대가 최강혁. 그가 이끌어갈 엉뚱한 드라마의 엉뚱한 이야기가 기대된다. 더불어 하나둘 꺼풀을 벗게 될 미스터리한 그의 정체도.

그러고 보니 첨엔 그저 느낌이었지만 진짜로 멀뚱하게 쳐다보는 맥이 탁 풀린 듯한 눈동자가 구영탄의 게슴츠레한 눈을 너무도 닮았다. 그래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