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체벌 논란을 보니 초등학생 아이를 둘이나 가진 부모 입장에서 매우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두 눈이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옛날 군사독재 시절에는 늘 있었던 일이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유신과 5공시대, 대수롭지 않게 자행되었던 학교폭력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체벌이란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교육과정의 일부였습니다. 수업을 하다가 조는 학생을 향해 던지는 선생님의 분필 조각은 그래도 부드러운 경고에 해당합니다. 만약 학생이 분필을 그대로 맞지 않고 피했다면 이는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 되고 도전으로 간주되기도 하지요.
이럴 땐 거의 예외 없이 앞으로 불려나가게 됩니다.
“입 다물어.”
이 소리에 학생은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어금니를 꽉 깨물고 뺨을 45도 기울여 선생님이 때리기 좋으시도록 갖다 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잠시 후 넓적한 손바닥이 학생의 뺨에 불을 붙이게 되는 거지요. 시뻘겋게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들어오는 학생의 글썽거리는 두 눈에선 타오르는 분노가 눈물과 함께 녹아내리지요.
저는 머리를 빡빡 밀고 중학생 제복을 입는 순간부터 늘 이런 장면을 불안한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 지켜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언젠가 『말죽거리잔혹사』란 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습니다. 권상우의 빼어난 몸매가 화제가 되었던 영화였지요.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쳤던 우리 부부는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다 집에서 보게 됐습니다.
우리시대 학교의 리얼한 이야기, 말죽거리잔혹사
오랜만에 함께 영화를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침 영화도 학창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니 마치 내가 옛날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한마디로 리얼했습니다. 아마 그때 그 시절을 겪었던 분이라면 모두 공감했을 겁니다.
그런데 영화를 한참 보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에게 불려나가 맞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처음에 뺨을 한 대씩 때리며 욕설을 퍼붓던 선생님이 자기 분에 못이겨 더 세게 때리기 시작하고 학생은 결국 이를 피하다 손으로 막게 됩니다. 그러자 더욱 화가 난 선생님이 “이자식이, 막아?” 하면서 이번엔 주먹으로 학생의 옆구리와 배를 가격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학생이 옆구리로 질러오는 선생님의 주먹을 막거나 피하게 되면 이번엔 어김없이 안면으로 주먹이 날아들고 다시 옆구리와 가슴으로 주먹은 춤을 추게 되지요. 이때 이를 지켜보던 저도 막 흥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면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친구 중 한 녀석이 당하던 장면과 완전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라이트 훅, 레프트 훅, 안면 스트레이트.” 하고 외치면, 영화 속의 선생님은 마치 제 코치에 따르기라도 하는 듯이 시키는 대로 주먹을 날리고 있었지요. 학생은 급기야 교실의 한 귀퉁이, 코너로 몰렸고 몸을 웅크리고 안면 가드를 한 채 속수무책으로 맞고 있었습니다. 다음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완전 흥분상태에 몰입한 제가 외쳤던 것입니다.
“자, 이제 시계 풀고….”
그러자 영화 속의 선생님은 마치 제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시계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이 부분, 시계를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는 장면은 제가 보았던 실제 장면과는 차이가 좀 났습니다. 그때는 흥분한 선생님이 주먹질을 하는데 거추장스러운 시계를 풀어 교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달려들어 야수처럼 학생을 난타했던 것입니다. 그 장면만 빼고 나머지는 너무나 똑같았습니다.
우리시대의 폭력교사는 획일화된 시대가 만든 피해자이기도 했다
함께 영화를 보던 아내가 멍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며 불쌍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많이 맞았나.”
갑자기 저는 좀 창피해졌지만, 사실은 내가 맞은 게 아니고 우리 동기가 맞는 걸 봤는데 영화 장면이 너무 똑같았다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 영화 만든 감독이 우리 동기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영화감독은 저 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으므로 동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에 관한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몇 년 전에 동기생들이 모교 강당에 모여 은사님들을 모시고 졸업 20주년 행사를 했습니다. 그때 이 선생님도 오셨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60을 바라보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오래 전 기억이 나시는 듯 저희들에게 술을 부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야들아, 정말 미안하다. 그때 내가 지금 너희들 나이 정도나 됐을 텐데, 너무 열이 많았던 거 같다. 시대도 시대였고….”
말끝을 채 잇지 못하는 선생님을 보며 선생님이 정말 그때 일을 후회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이 정이 참 많은 분이시란 사실을 우리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시대적 상황이 선생님을 그리 만든 탓도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이해하는데도 선생님은 굳이 20년이나 지난 일을 두고 사과를 하셨습니다.
체벌 넘어선 학교폭력, 묵과해선 안 돼
물론 이번 어린이에게 가해진 체벌사태와 옛날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교폭력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또 아직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엔 턱없이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폭력이었을 겁니다. 신체적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두고두고 어린 마음을 괴롭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어린 아이에게 무자비한 체벌을 가한 선생님입니다.
아무리 9살짜리 초등학생이 미운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일상적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살아온 우리 세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체벌의 수준을 넘어선 폭력입니다. 그 시절에도 초등학교 2학년에게 이런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습니다. 이런 정도의 자기 통제도 불가능한 선생님이라면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70년대 말죽거리 고등학교에서나 벌어질 ‘잔혹사’가 21세기 대한민국의 초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니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2008. 10. 29. 파비

습지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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