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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내가 모산재를 버리고 합천박물관을 택한 까닭

내가 황매산 모산재 코스를 버리고 합천박물관을 택한 것은 순전히 김훤주 기자 때문이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학교가 주최한 합천명소 블로거탐방 둘째 날(9/30). 해인사를 둘러본 뒤에 만난 홍류동 소리길에서 얻은 첫째 날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모산재의 절경을 만났더라면… 그야말로 이번 여행은 완벽했을 것입니다.

모산재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곳이긴 합니다만 사실 한 번도 올라가본 적은 없습니다. 몇 차례 영암사지에서 바라보면서 감탄사만 흘리곤 했었는데 영암사지와 모산재가 하나의 절묘한 조합이 되어 둘 중 어느 하나가 없는 모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영암사지에서 바라본 모산재 @사진. 김천령의 바람흔적


영암사지를 처음 보았을 때 절터가 이토록 감동을 준다는 사실에 놀라고 병풍처럼 펼쳐진 모산재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영암사지와 모산재. 이번 코스는 황매산 쪽에서 버스를 내려 능선을 타고 모산재 정상을 거쳐 영암사지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오! 가장 바라던 길이 아니었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이 환상적인 코스를 포기한 것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순전히 김훤주 기자 때문이었습니다. 합천명소 탐방은 첫째 날에 해인사와 홍류동 소리길, 대장경 천년문화축전 축제장을 둘러보고 둘째 날에 합천영상테마파크를 보고 합천활로를 걷는 순서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삼간한우 시식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어있었죠.

그런데 합천활로는 하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합천에 산재해있는 다양한 볼거리들에 길 개념을 혼합해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묶어놓은 게 합천활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홍류동 소리길도 그 하나일 듯싶습니다.

둘째 날 영상테마파크를 둘러본 블로거탐방단은 네 갈래로 나뉘어 합천활로를 걷기로 되어있었습니다. 모산재와 영암사지, 선비길, 강정늪, 합천박물관 이렇게 네 곳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모산재 그 다음이 선비길이었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여 내가 손을 들지 않으면 합천박물관은 아무도 가지 않는 불상사가 생길 게 뻔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내가 손을 들자 어디로 갈지 망설이던 선비님이 손을 들고 무릎이 안 좋으신 김용택 선생님이 손을 들어서 덕분에 합천박물관에도 세 사람이 배정됐습니다. 공치사는 이 정도로 하고.

우선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이후에 블로그 포스팅들을 통해 ‘모산재-영암사지’와 ‘선비길’ 코스를 다녀온 사람들의 환성이 너무나 대단해서 행사 운영자였던 친구의 사정을 고려한 알량한 우정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 나는 늘 이래서 탈이야.

홍류동 소리길의 감동에 젖어 새벽까지 이어진 주류파들의 행진에 동참한 후과는 박물관에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합천군에서 배려한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따라가며 나는 내내 졸았던 것입니다. 세 명밖에 안 되는 박물관 탐방객을 태운 군청직원도 함께. 그러니 더욱 졸면 안 되었는데 아, 정말 죽을 지경.

만약 내가 이곳 박물관이 아니라 탁 트인 모산재에서 영암사지를 내려다보거나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과 정겨운 마을 사이로 난 선비길을 걸으며 시원스럽게 얼굴에 부딪히는 가을바람과 더불어 남명선생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어제 먹은 술기운이 확 달아나면서 생기가 돌았을 것입니다만, 박물관은 너무 고리타분하고 공기도 텁텁했습니다.

..... 합천박물관 전경. 분수대에 보이는 조형물이 용봉문양환두대도 @사진. 합천박물관


게다가 환갑이 훨씬 넘은 것으로 보이는 문화해설사님은 의욕이 너무 넘쳐나서 처음 들어보는 천오백 년 전의 역사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정형화된 콘크리트 건물을 보자마자 벌써 몰려드는 잠귀신은 몰려들고. 하지만 메모지를 들고 열심히 듣고 질문하고 하는 김용택 선생님 탓에 내놓고 졸지도 못하고.

보아하니 선비님도 졸리긴 마찬가지인 듯이 보이는데 역시 김용택 선생님 탓에 열심히 듣는 척 하는 걸 눈치 빠른 내 눈은 놓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그렇군요. “뭐야 이거. 그래서 합천박물관 가서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고 힐난하실 분들이 많겠군요. 마치 일부러 ‘안티’하는 것으로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코 그런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천지신명을 빌어 말씀드립니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리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원래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미리 어떤 주제나 방향을 잡아놓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뭘 쓸지 소재만 정해지면 그냥 붓 가는대로 아니 키보드에 손가락 가는대로 쓴답니다.

그러니 글을 쓰면서도 이 글이 어떤 식으로 끝날지 저도 실은 모르는 거지요. 아무튼 한 시간 반에 걸친 박물관 탐방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박물관 탐방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박물관엔 제가 모르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고대의 역사가.

합천에 다라국이라는 고대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다라국은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합천 지역에서 흥성했던 가야연맹체의 일원으로 보입니다. 그 이전 신석기, 청동기 유적도 있습니다만 이 시기에 가장 문명이 발달했을 것이라고 유물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유리잔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다라국 역시 신라와 마찬가지로 로마와 교역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신라와의 교역을 통해 로만글라스가 유입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외부와 교류가 활발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합니다.

출토된 유물 중에는 귀고리 등 정교한 금제공예품뿐 아니라 옥으로 만든 반지, 목걸이, 귀걸이 같은 세공품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신라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세공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들인 것입니다. 신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금관도 있더군요.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용봉문양의 황금칼이었습니다. 고대 다라국의 지배자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지녔을 이 칼은 손잡이의 문양이 화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정밀한 아름다움에 실로 넋을 잃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라국의 당시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합천박물관이 지어진 곳은 바로 이러한 유물들이 출토된 옥전고분군 바로 밑입니다. 만약 전날 과음으로 인한 숙취만 아니었다면 현학적이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좋은 공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옥전이란 이름도 혹시 옥 유물이 많이 나와서 그리 된 것은 아닐까요?

물론 짐작하시는 것처럼 졸면서 박물관을 도느라 그런 것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박물관을 모두 돌아보고 나서 나오는데-사실은 이 순간 굉장히 행복했답니다. 드디어 차에 앉아 졸 수 있었으니까요-함께 온 군청직원이 바로 위에 고분군이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앗, 그럼 보고 가야지. 핵심을 안 보고 가면 되나.

옥전고분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박물관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니 그곳에 커다란 고분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세어보지는 못했지만-역시 술 탓-상당히 많은 봉분들이 모여 있었는데 매우 평온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모양을 바라보자니 술이 확 깨면서 정신이 맑아지더군요.

..... 옥전고분군. 휴대폰으로 찍었다. 좋은 가을날이다.


이런, 순서가 이게 아니었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고분군을 먼저 보고 박물관을 보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분군에서 고대의 사람들과 먼저 인사를 나눈 다음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살펴보았다면 훨씬 실감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입구를 꼭 박물관 현관문에 직렬로 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오솔길로 통하도록 안내해서 고대의 사람들이 누워있는 고분군으로 가 그들을 먼저 만나보는 것이 예의에도 맞지 않을까 합니다만. 만약 그랬다면 나도 정신을 버쩍 차려서 박물관의 유물들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건 약간 난센스이긴 합니다만, 엄밀히 말해서 박물관(혹은 그 안의 유물들)의 주인은 바로 고분에 누워있는 고대인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에게 “자, 지금부터 우리가 이 박물관에 소장돼있는 당신들이 쓰던 물건을 둘러볼 참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하고 마음속으로 허락도 구하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인의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그깟 예의가 무엇이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반대로 해도 되겠습니다. 먼저 박물관의 유물들을 둘러본 다음 고분에 들러 “당신들이 쓰던 물건 잘 봤소. 참으로 뛰어난 유물들이 많이 있더이다!” 하고 인사를 한 다음 고분군 위에 떠있는 구름과 주변의 소나무들을 한번 둘러보고 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이날 우리를 승용차에 태워(다른 블로거들은 관광버스로 갔고 우리는 세 명밖에 안 되다보니 군청직원이 자기 차로 안내했습니다) 박물관에 모시고 온(?) 군청직원은 욕심 많은 김용택 선생님의 요청에 예정에 없이 우리를 일해공원과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까지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유유자적 흐르는 황강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황금빛 모래톱을 만들어가면서 구불구불 뱀처럼 기어가는 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입니다. 만약 저 황강마저 일직선으로 곧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면? 오 마이 갓!

합천. 다시 가고 싶은 곳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해인사, 홍류동 계곡(정운형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금강산을 축소판으로 옮겨놓은 곳), 모산재, 영암사지, 황매산, 합천영상테마파크, 남명 조식 선생을 생각하며 걷는 선비길, 황강, 합천댐의 붕어찜 그리고 무엇보다 삼가한우.

삼가한우란 합천군 삼가면에서 나는 한우고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합천군 삼가면이 한우가 그렇게 유명한 곳인지 이번에 또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산과 창원에도 삼가한우식당이 있더군요. 합천에 다녀온 이후 거기에도 가보았습니다만 역시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육즙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여기에 공무원들의 친절한 봉사정신까지.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천군의 우수한 관광상품을 홍보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인 것이겠지만. 이 글 보신다면 사람들이 박물관만 슬쩍 보고 가게 하지 마시고 뒤편 고분군을 더 많이 홍보해주시면 좋겠어요. 사실은 거기가 볼 것이 더 많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고대 사람들의 마음도 보고 가시라고.

그리고 내친 김에 하나 더 불평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창원, 마산이 경남의 중심도시이며 광역시를 빼고는 전국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데 합천 해인사로 가는 직통노선이 없답니다. 대구로 가거나 아니면 진주로 가서 합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군요.

이거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중교통만 편리하다면 굳이 환경을 오염시켜가면서까지 자가용 끌고 명승지 찾아다닐 이유가 없고요, 또 그리한다면 한적한 가야산 어느 골짜기 주막에서 마음 편하게 동동주를 거하게 마실 수 있는 자유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나는 내일이나 모레쯤 단풍이 지기 전에 홍류동 소리길을 꼭 한번 다시 걸어볼 생각이에요. 가능하다면 그 길에 박물관을 다시 한 번 가보면 좋겠지만 혼자 가는 게 아니라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시골 박물관 하면 단박에 “에이”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다시금 합천군에 건의를 드리자면, 박물관만 보지 마시고 옥전고분군과 주변 환경을 잘 어우러지게 하는 어떤 콘셉트를 만들어보시는 게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박물관과 옥전고분군을 연결하는 고분길 혹은 다라길은 어떨까요? 나무벤치도 몇 개 만들어주시고요. 무슨 길 내는 게 능사가 아니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