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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마이더스 되면 행복을 잡을 수 있을까?

너무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 쓰는 것 같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로 정신이 사납습니다. 앞니도 빠지고, 이미 오래전에 부서진 어금니도 빼고…, 이게 쉽게 안 빠져서 그라인더 같은 걸로 반으로 잘라서 뺄 요량이었던 모양인데 그것도 여의치 않아 정 같은 걸로 막 때려서 따갠(!) 다음 파이프렌치 비슷한 걸로 작업하는 것 같더군요. 뭐 하기야 저는 입만 헤 벌리고 있었으니 정확한 실상은 알 수 없습니다.  

아직도 마취약 냄새, 소독약 냄새 그리고 우리한 통증 때문에 살짝 짜증스럽긴 합니다만, 몹시 시원한 것은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 함께 해왔던 어금니이긴 하지만 이뿌리만 남아 구취의 원인이었던 것이 제거되었다 생각하니 개운하기만 합니다. 물론 그 빈자리가 곧 아쉬워질 테고, 그 아쉬움을 메우기 위해선 상당한 돈이 들어야겠지만, 우선은 시원섭섭하네요.

<역전의 여왕>에 이어 방영하는 <짝패>를 보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주부터 <마이더스>로 갈아탔습니다. 이유는 별 거 없습니다. <짝패>가 재미있긴 했습니다만, <마이더스>에 김희애가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잘 아시지만 저는 아주 옛날부터 김희애의 독실한 팬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대통령 내외분의 독실한 신심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ㅋ~)


1993년 <아들과 딸>에서 보여준 김희애의 연기는 일품이었죠. 그때 그녀는 최고의 전성기였는데, 이 드라마에 함께 출연했던 최수종과 한석규는 당시만 해도 아장아장 걸음마 단계였으니…. 특히 한석규는 이 드라마가 데뷔작인 걸로 아는데 큰 비중 없는 조연이었음에도 매력적인 목소리로 인기를 많이 끌었던 걸로 기억나네요.

아무튼 <마이더스>를 보다가 문득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서평 블로거로 더 유명한 이현우 교수의 <책을 읽을 자유>에서 읽었던 '행복'에 관한 몇 가지 글들이 떠올랐습니다. 거기 이런 구절이 있는데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장편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서두를 여는 톨스토이의 말인데요. 이 구절을 음미하다 갑자기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늘 잘 써먹던 말 중에 이런 게 있거든요. "잘 생긴 사람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못 생긴 사람은 제각각으로 못생겼다." 웃기시겠지만, 이건 사실 저의 오랜 관찰에서 나온 나름의 정립된 결론이랍니다.  

그런데 갑자기 엉뚱하게도 톨스토이의 명언과 저의 호기심에서 나온 별로 유쾌하지도 않은 결론이 너무나 닮았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에 미치자 웃음이 터졌던 것이죠. 어쨌거나 로쟈는 누구에게나 헤아려보면 행복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를 일깨우면서 추억의 앨범을 꺼내보길 권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도 그이처럼 행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월세를 살면서도 주인집에도 없던 커다란 텔레비전이 들어왔을 때. 너무나 행복했었고, 우리 동네에서 최고의 부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토요일에 아이들이 <서부소년 차돌이>를 보겠다며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와 줄을 설 때면 정말 장군이라도 된 듯이 우쭐대곤 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따라 시오리는 걸어야 되는 방앗간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머리에 인 어머니의 뒤를 졸졸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시골길은 지금 생각해도 "그래, 그게 행복이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런 점에서 로쟈의 행복에 대한 경험은 저와 너무나 닮았습니다.

로쟈가 행복에 관한 추억을 꺼낸 이유는 마침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정치사상 면이나 군사 면에서 북한이 강국의 지위에 올라섰지만 아직까지 인민들에게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이지는 못하고 있다"고 자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최단 기간 안에 '인민 생활' 문제를 풀어서 유훈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인데, 이는 곧 '북한 사회주의의 과제이자 목표가 흰 쌀밥에 고깃국이라는 것을 밝힌 것으로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의 현실에 대한 예외적인 시인을 했다"는 것이죠.

"이걸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로자의 고민은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LA갈비에 비프스테이크도 먹고 있다고 응수해야 할까?" 남한은 이미 흰쌀밥에 고깃국으로 한 끼를 때우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이미 우리는 북한 사회주의의 과제를 달성한지가 오래 됐습니다.

로쟈는 말합니다. "무슨 뜻인가? 우리에게 더 이상 행복은 미래의 몫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 높은 행복'과 '더 높은 성장'을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한마음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태도와 오십보백보다."

그렇군요. 7·4·7공약을 믿고 대통령을 뽑은 우리는 더 높은 성장, 그리하여 얻게 될 '더 높은 행복'을 위해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조조정과 소득의 동결 내지는 삭감, 정부주도의 물가상승을 참아내기로 약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는 더 행복해지는 것일까요?

로쟈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럴수록 행복은 나비처럼 달아나고 말 것이란 것이다. <주홍글자>의 작가 호손의 말처럼 조용히 앉아 있으면 어깨에 내려와 앉을 것을. 적어도 북한보다 우리가 낫다고 으스대고 싶다면 '무지개 너머'를 좇는 일부터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복지는 뒷전이고 성장만 주야장천 외치는 MB에 대한 일침입니다. 


어쨌든, 원래는 김희애가 좋아 <짝패>를 버리고(완전 버린 건 아니고, 인터넷 재방으로 밀린 것) 보기 시작한 <마이더스>였는데, 주인공 장혁(김도현)을 보면서 문득 로쟈의 행복에 대한 강의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장혁이 분한 김도현은 금을 좇는 사나입니다. 그에겐 꿈을 좇는 일이겠지만, 그의 꿈은 불길한 야망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금광을 찾아 팔도를 누볐는데, 그에게 금광은 증권시장이고 주식입니다. 그는 증권회사에서도 매우 잘나가는 선수(펀드메니저)였지만, 갑자기 사법시험을 준비해 2년 만에 패스합니다. 대단한 수재죠.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김도현은 김희애(유인혜)의 야망을 위해 발탁됐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야망을 위해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합니다. 그 미션이란 것이 이른바 주식시장에서 작전을 거는 것입니다. 유인혜의 배다른 오라비인 유성준이 패거리들과 작전종목을 정하고 작업 하는 것을 눈치 챈 김도현이 이에 역작전을 거는 것입니다. 금감원과 검찰까지 움직이게 만들어 구속시킬 계획인 거죠.  

드라마가 재미는 있습니다만, 특히 김희애와 장혁은 정말 언제 보아도 멋지죠. 하지만 사법고시에 패스해서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변호사가 처음 하는 일이 작전세력을 모아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라니. 만화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쩌면 저게 진짜 우리 사회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떨까요? 김도현은 행복을 잡을 수 있을까요? 사실은 그의 모습이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저와 너무나 닮은 모습이라 끔찍하기도 하지만 한편 연민도 가는 터라 그래도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러나 어떨까요? 그는 마이더스가 될 수 있을까요?

그는 진짜 마이더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벌써 됐나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마이더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의 영어식 표기인데요. 미다스의 손은 신의 형벌이었습니다. 미다스가 만지는 모든 것은 금으로 변했는데, 음식마저 금으로 변해 먹을 것이 없어 미다스는 결국 굶어죽을 지경에 이른다는 이야기죠.

그래도 어떻습니까? 우리 모두 마이더스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인간의 욕망은 도망가는 나비를 좇아야 한다는 속삭임에 더 귀가 더 솔깃한 것처럼 멈추지 않을 테지요.   

그나저나 제 주변엔 주식 해서 흥한 사람 한 사람도 없는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