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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욕망의 불꽃, 착한 언니가 망친 윤나영 모녀

얼마 전에 우리 동네 김용택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 선의를 갖고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착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빠져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착하기만 한 사람은 착한 뜻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소노 아야코가 쓴 <착한 사람은 왜 주위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가>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아,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제가 말하는 김용택 선생님은 섬진강에 사신다는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 아니라 마산, 창원에서 오랫동안 교육민주화 운동을 하시고 전교조 지부장도 역임하시다 지금은 정년퇴직하신 김용택 선생님입니다.  

그분이 자기 블로그에서 이런 고민을 풀어놓으셨군요. “
착한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학교나 가정이나 종교가 그렇게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가르친 ‘착한사람’은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이 고민을 저도 하게 됐습니다. mbc 주말연속극 욕망의 불꽃을 보다 그런 고민이 들었던 것입니다. 
 

▲ 착하지만 늘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윤정숙


윤정숙. 윤나영의 언니입니다. 지금까지는 가련한 윤정숙에게 정말 한없는 연민을 보냈더랬습니다. 그녀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녀는 윤나영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어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착하디착한 모습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거창스러울 뿐 아니라 짜증스러웠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나영과 백인기(혜진) 앞에서 흘리는 눈물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착한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로구나. 여러 사람 죽이는 몹쓸 짓을 하게 될 때도 있구나.' 저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윤정숙. 너의 그 착한 척하는 허영심 때문에 두 모녀가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거야.'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윤정숙의 책임이 아닙니다. 모든 사단은 윤나영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녀가 서울에 올라가서 공부는 안 하고 버스회사 경리로 취직해 사장 아들을 꼬시는 데 정신을 판 것은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열심히 공부해 서울의 대학에 합격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요. 

'나는 반드시 부잣집에 시집가서 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테야' 이게 어릴 적 그녀의 꿈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마침내 서울에 올라가 버스회사 사장 아들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장 아들은 날라리였고 그 방면에선 윤나영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불러오는 배를 안고 윤나영은 고향 울산으로 쫓기듯 내려왔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게 백인기였죠. 윤정숙은 난산 끝에 실신했다 깨어난 나영에게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윤정숙이 그리 한 것은 윤나영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 때문이었습니다.

▲ 진실을 말하러 갔다가도 동생이 "자 솔직하게 말해봐!" 해도 말을 하지 못한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윤정숙이 한마디만 빨리 해주었더라도 엄청남 불행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영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재벌가에 시집가겠다는 꿈은 포기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약을 먹고 아이를 지우려고도 했죠. 그러니 착한 윤정숙이 어찌 나영에게 아이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아이를 일단 고아원에 맡겼다가 입양하는 형식으로 데려다 키운 것입니다. 


혜진이라고 이름 지은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나영을 쏙 빼닮았습니다. 언젠가 가수가 돼 큰돈을 벌겠다는 야심도 비슷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겠다는 것이었지요. 출생의 비밀을 어렴풋이 알고 괴로워하던 혜진은 결국 가출해 백인기가 됐습니다. 가수가 아니라 배우가 된 거지요. 

20 몇 년의 세월을 서로를 모른 채 악착같이 목표를 향해 달려들듯 살았던 두 모녀는 김민재라는 다리 위에서 원수가 되어 만났습니다. 아시다시피 김민재는 나영이 낳은 아들이 아닙니다. 사실 이 김민재란 존재가 윤나영과 윤정숙을 불행하게 만든 씨앗이었죠. 모든 계략의 발단. 

그 계략을 짠 것이 김태진 회장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의 뜻에 거부하지 않고 따르는 척 하면서 내내 '나는 착한표 모범생이요' 했던 김영민의 속셈이었다니.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아무튼, 지금 윤나영과 백인기는 김민재를 사이에 두고 폭발 직전입니다. 

윤나영은 어떻게든 김민재로부터 백인기를 떼내기 위해 갖은 회유와 협박, 음모를 동원합니다. 마침내 백인기의 과거가 담긴 비디오도 입수했습니다. 이 비디오에는 한때 연예계에 실제 돌았던 모양이니 머양이니 하는 비디오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파괴적인 내용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 백인기에게 사실을 말하는 윤정숙. 때가 많이 늦었다. 그래도 이 사실을 윤나영에게도 빨리 밝혔어야 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윤나영의 언니요 백인기의 이모인 윤정숙은 사실을 밝히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으려던 것은 아닙니다. 백인기가 혜진이란 이름으로 윤정숙의 딸로 자랄 때도 밝히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나영과 백인기를 만날 때마다 딸막딸막 했지만 결국은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눈물만 줄줄 흘리며 "아이다, 별일 아이다. 담에 얘기 하끄마" 하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어제 백인기의 입에서 김민재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절대 안 된데이, 그래선 안 된데이" 하면서 "니를 낳은 엄마가 바로 민재 엄마, 나영이다" 하고 밝혔던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순리대로 풀리게 됐습니다. 이제 백인기가 알았으니 다음은 윤나영 차롑니다. 윤정숙은 윤나영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백인기가 바로 니 딸이다!" 그러나 윤정숙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영을 세워두고 또 입만 움찔움찔 하다 말았습니다. 

윤나영이 짜증을 내며 "내가 그래서 언니하고 멀리하는 거란 말이야. 뭐야, 이게. 사람들 다 보는데 무슨 청승이라고 눈물을 질질 짜면서… 정말 창피하다, 창피해" 하고 말해도 아무런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윤정숙은 한심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두 모녀, 윤나영과 백인기는 마주보며 달리는 기관차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백인기가 자기를 낳아준 생모가 윤나영임을 알았으니…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그녀가 사람의 심장을 품고 있는 이상 생모를 파멸시키겠다고 달려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하나뿐이겠군요. 스스로 생을 버리는 것. 1부의 첫 장면이 그것이었지요.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 백인기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윤나영. 그녀는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제발 죽지 않길 바라지만 이 드라마의 어두운 느낌을 고려하면 꼭 줄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자기 친딸인지도 모르고 백인기의 음란비디오 스캔들을 인터넷에 퍼뜨리는 윤나영. 파멸의 시작이다.


만약 이랬으면 어땠을까요? 윤정숙이 혜진이가 어렸을 때 "네 엄마는 나영이란다. 내 동생이지. 넌 내 조카고. 그렇지만 엄마를 위해 나와 단둘이 행복하게 살면 어떻겠니? 그렇게 하자꾸나." 또는 나영에게도 진실을 말해주는 거죠. 그러고는 이렇게 제안하는 겁니다. "아이는 내가 잘 키울게. 넌 가끔 아이를 사랑해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진실을 밝혔어야 하는 겁니다. 사실 이런 방법이 가장 좋지 않을까요? "혜진아. 네 엄마는 나영이야. 그리고 나영아. 혜진이, 곧 백인기가 네 딸이야. 이제 서로들에 대해 잘 알았으니 나머지 문제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 나는 너희들의 행복을 바라지만, 그저 제 3자일뿐이야."
 
윤정숙은 그러나 그리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마치 자기가 모든 굴레를 다 뒤집어써야만 한다는 듯이 굴었습니다.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조카를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바라는 일일 거라는 생각,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일 거라고,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는 몰라도(그리고 그녀는 실제 착한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착한 자기로 인해 가장 아끼는 사람들의 인생이 불행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녀의 한계였습니다. 

김용택 선생님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착한 사람보다는 진실한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윤정숙의 경우에 어떻게 처신했어야 진실한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답이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처지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숨기거나 속이는 것이 진실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용택 선생님이 인용하신 착한 사람이란 이런 사람이다 하는 하나의 해석을 드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아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다 착한 사람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윤정숙과는 다는 아니지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네요.   
  

1. 어떤 일을 당해도 절대로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지 않는다.
2. 남의 부탁이라면 무조건 어떤 약속이 있든지 말든지 먼저 들어준다.
3.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웃으며 그냥 가벼운 말로 넘어간다.
4. 가벼운 말에도 상처를 쉽게 받는다.
5. 장난으로 때리는 것은 똑같이 보복을 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화를 내며 때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만약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 경우 ‘그냥 해줄 걸 그랬나’는 등의 생각이 들며 마음이 불편해 진다.
7. 잘못을 하면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한다.
8.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난다.
9. 자신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남의 처지부터 생각하고 행동한다.
10. 칭찬을 들으면 쑥스러워 하지만 상처를 받으면 그 기억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