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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퇴물된 대물, 최고의 희생자는? 서혜림? 하도야? NO!

대물? 나는 갈수록 이 제목이 참 웃긴다. 대물? 뭔 대물? 권상우의 거시기가 대물? 원래 <대물>은 박인권 화백의 원작만화 제목이다. 박인권 화백이 만든 대물로 말하자면 실로 박진감 넘치는 스케일로 많은 팬들을 압도시킨 바 있는 작품이다. 이 대표작으로 박인권은 국내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박인권의 만화는 <대물> 외에도 <쩐의 전쟁>, <열혈장사꾼>이 드라마로 방영되어 성공했던 전례가 있다. 특히 <쩐의 전쟁>은 30%대가 넘는 시청율로 만화 원작 드라마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바 있다. 박인권의 어떤 만화보다도 더 방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인물묘사,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대물>은 그래서 방영 전부터 초미의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여기다 고현정, 권상우, 차인표, 이수정 등 내노라 하는 스타급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관심은 더욱 폭발했다. 출발은 좋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첫회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온 사방에서 기대에 찬 목소리들이 들렸다. <모래시계>가 돌아왔다는 반응들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사진. 연합뉴스


대물, 모래시계의 영광을 다시 재현할까, 관심 집중

그랬다. <모래시계>의 히어로 고현정이 이번엔 <대물>을 타고 다시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고현정은 <선덕여왕>에서 미실여왕의 카리스마를 백분 보여준 터였다. <대물>이 올 초반 드라마계를 강타했던 <추노>를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전망까지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저런 반응들은 방송 첫주 2회분이 나가면서 거의 기정사실처럼 돼버렸다. 그러나 웬걸?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너무 큰 반응들에 SBS가 갈팡질팡 하는 것일까? 작가가 교체됐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정권의 압력에 의한 낙마가 아니냐는 설이 무성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피디와 작가의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다. 피디가 원하는 대로 받쳐주기가 작가로서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아마도 <대물>의 경우 작가보다는 피디가 헤게모니를 쥐고 드라마를 이끌고 나가는 형국이었던 모양. 작가의 고백에 의하면 기관에 끌려가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초반 <대물>은 매우 전투적이었다. 정치인들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대통령도 쥐새끼 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듯이 <대물>은 덤볐다. 여기에 열광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언론에서도 쉽게 맛보지 못했던 카타르시스가 <대물>에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겁이 났던 모양이다. 도저히 피디가 원하는 대로 대본을 쓰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결국 4회를 넘기지 못하고 하차했다. 여기에 대해선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 정확한 내막을 알 길이 없다. 단지 작가와 피디가 노선이 안 맞아 결별한 것이란 정도. 그 이상은 그 다음 벌어진 사태로 묻혀버렸다.  

배가 산으로 가기 시작하는 대물, 선장마저 교체되고

그러나 결국 작가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작가가 교체됐다는 소식이 있은지 며칠도 되지 않아 이번엔 피디가 교체됐다는 설이 인터넷상에 급속히 떠돌았다. 처음엔 작가를 피디로 잘못 읽었거나 기사를 잘못 썼겠거니 했다. 그런데 진짜다. 진짜로 피디도 쫓겨났다.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가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이번엔 피디와 방송사의 노선 차이 때문인가? 노선 차이라고 해봤자 좀 강하게 나가자는 것과 대충 유연하게 얼버무리자는 정도의 차이겠지만, 이게 방송사 내부에서 서로 결별을 강용할 만큼 그리 큰 문제일까? 

방송사가 드라마를 제작할 때 제1 기준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시청율이다. 이 시청율 때문에 울고 웃는 게 바로 방송사다. 때에 따라선 이 시청율 때문에 피디와 작가가 목숨같이 여기는 퀄러티마저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한창 잘 나가는 시청율 제조 피디를 전격 하차시켰다? 무엇 때문에?

지금 그런  거 따져봐야 소용없다. 이미 상황은 끝났다. <대물>을 기획했던 피디와 작가는 모두 떠나고 대체인력이 투입됐으며 종영을 향해 달리고 있다. 대중들의 기대도 이미 떠났으며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도 희석된지 오래고 작품성도 우주로 날아간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초반에 가졌던 너무나 큰 기대 때문에 억지로 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열불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니 저것밖에 안 되는 거야? 고현정. 미실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가 고작 그거야? 그렇다고 <모래시계>에서 보았던 순정을 다시 찾기엔 그대의 나이가 너무 많아. 차라리 피디 떠날 때 함께 떠나는 게 옳지 않았을까?"

퇴물로 전락한 대물, 최대 희생자는 누구?

그러고 보면 퇴물로 전락한 <대물>의 최대 희생자는 고현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작년에 이어 최고의 연기자로 뽑히는 영광을 안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 누구도 그녀의 연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아니, 격렬하게 비난이라도 하고 싶지만 미실에 대한 예의로 참고 있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다. '아, 이건 아냐, 정말 아냐, 미실에서 그토록 강한 인상을 주었던 고현정이 절대 아니야, 왜, 무엇 때문에 저렇게 비실비실하고 아무런 캐릭터도 느낄 수 없는 서혜림이 되었을까?' 안타까워 참는 것이다.
 
권상우도 희생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최대의 희생자라고 하기엔 얻은 것이 더 많다. 사실 나는 권상우가 가진 카리스마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함, 이소룡 뺨칠 것 같은 근육은 퇴색했다. 세월은 아무리 아름다운 물감을 들인 천이라도 회색으로 만든다. 

게다가 그는 음주 뺑소니 사건으로 사회적 공적으로 몰린 처지였다. 하기야 이 드라마가 애초 의도대로 성공했다면 그는 확실하게 재기에 성공했을 테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아마도 어쩌면 서혜림의 고현정이 주춤하는 것이 그의 이미지 회복에 청신호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완벽한 카리스마를 보였던 고현정의 미실 때문에 주인공인 이요원이 뒷방으로 밀렸던 것을 상기해보자. 그럼 방송사는? SBS야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결과는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그들은 이미 이런 결과를 예측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골복이다. 잘 되면 그만이고 안 돼도 할 수 없다.

가장 큰 희생자는 고현정도 SBS도 아니다

정권의 압력에 의한 것이든, 자체 판단에 의한 것이든 모든 책임은 그들이 져야 한다. 그러니 그들이 희생자라고는 말하는 건 좀 억지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KBS와 MBC가 워낙 허접한 경쟁작들을 내놓는 바람에 1등 자리는 고수하고 있으니 체면이라도 유지하고 있다.

나처럼 오갈 데 없는 시청자들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버텨주니 이거야말로 천운이다. 그렇다면 퇴물로 전락한 <대물>로 인한 최대 희생자는 고현정이란 얘긴데 꼭 그럴까? 아, 차인표가 빠졌는데… 이건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차인표는 오히려 퇴물이 된 <대물>의 수혜자 같다는 느낌이다.

씩씩거리며 속도전 같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데 그가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혜림 캐릭터의 카리스마가 죽어버렸으므로 강태산이 전면에 부각되었으니 그를 희생자라고 말하기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 고현정이 결국 최고의 희생자? 아니다. 고현정이야 이번 실패를 거울 삼아 다음에 잘하면 된다.

사진. 고재열의 독설닷컴


<대물>이 퇴물로 전락함으로써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희생자는 다름 아닌 원작 <대물>의 작가 박인권 화백이다. 그가 5년에 걸쳐 쌓아올리고 필생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대물>의 이름이 한순간에 퇴물로 전락함으로써 가장 큰 희생을 치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도 "나는 아냐" 하면 그만이다.

"역시 원작보다 나은 아류는 없다는 게 증명됐을 뿐이고, 원작료도 받았고. 게다가 나는 명예 같은 거 그리 따지지 않아" 그러면 그뿐인 거다. 그러면 누가 최고 희생자야? 이거 결론이 이상하게 돼버렸다. 그럼 이렇게 하자. 최고의 희생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이 미미하네요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꽤나 바빴다. 그래서 <대물>을 제시간에 볼 수 없었다. 결국 미디어 다음에서 다시보기로 회당 700원씩 주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 6 곱하기 700원 하니 4200원의 손실을 보았다. 거기에 시간적 손실과 실망감에 의한 정신적 피해까지 합하면 꽤 큰 희생을 치렀다고 할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이 미미하게 된 점'에 대해선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내가 특별히 어떤 글쓰기 계획을 가지고 쓰는 게 아니라 드라마 보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주절주절 하다 보니 가끔 이런 일도 생긴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 <대물>은 퇴물이 되었다는 것. 그래도 나는 끝까지 본다는 것.

※ 이건 순전히 우연의 일치인데, 이 글을 다 써놓고 내일 오전 발행으로 예약을 해놓은 다음 독설닷컴에 갔다가 박인권 화백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거기서 그는 원작에 비해 시시해진 드라마 <대물>에 불만이 없냐고 물어보자 "그런 점이 있긴 하지만, 각색도 창작이고 참여가 아니라 참견하기 싫어 아예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태도는 매우 훌륭하지만, 아무튼 드러내지 않는 내심이라도 불만이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