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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동이, 장희빈의 억울한 죽음을 증언하다?

제목을 달고 보니 제가 봐도 좀 황당하군요. 그러나 이런 가정은 어떻습니까? 실상 장희빈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인현왕후와 최숙빈의 투기 때문에 죽었다고 말입니다. 또는 이렇게 가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위 환국정치란 기발한 발명품을 만들어낸 숙종의 정치적 계략에 의해 죽었다고 말입니다. 

왕조실록을 비롯해 공식 기록이든 비공식 기록이든 장희빈이 죽어야 할 죄목이 뚜렷한 게 없습니다. 다만 인현왕후가 죽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숙빈이 고변한 해괴한 무당 푸닥거리가 전부입니다. 드라마 동이에서도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만든 인형과 여흥민씨 패찰이 등장했습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역사적 상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장희빈이 죽음을 맞게 된 이유가 인현왕후를 저주했기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정도로는 장희빈을 죽이기엔 뭔가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이 혐의란 것이 고작 숙빈의 고변이 전부이고, 증거도 불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장희빈이 죽어야 할 이유, 너무 허약해

증거라고 해봤자 바늘에 찔린 인형이 전부인데, 이게 왕후를 저주해 죽게 만들려고 한 짓이라는 증험이 되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그런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걸 장희빈이 만들었다고 확증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취선당 주변에 숨겨진 것을 찾았다 하더라도 누군가 판 함정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시대가 시대라고는 해도 조선이 그렇게 허술한 나라는 아니었을 겁니다. 게다가 조선은 유학을 섬기는 나라로 미신을 배격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왕실에서 무당을 불러다 푸닥거리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때문에 왕후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죽었다고 생각할 사람도 없을 거란 말입니다.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푸닥거리를 했고, 하필 우연하게도 인현왕후가 죽어버렸다고 칩시다. 그렇더라도 세자의 모후인 장희빈을 사사할 정도는 아닌 것입니다. 게다가 앞에 말씀드렸다시피 장희빈이 한 행위가 저주인지 또는 인현왕후를 향한 저주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장희빈의 죽음에 대해 오래도록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장희빈이 죽고 난 이후에 남인이 정권을 잡은 예는 거의 전무합니다. 정조가 등극하자 잠시 남인들의 세상이 되는 듯도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고, 그조차도 노론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못했습니다.

워낙 노론의 힘이 강했으니까요. 100여 년에 걸친 장기집권의 결과는 세상 구석구석에 노론의 세력이 파고들지 않은 곳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왕조차도 감히 노론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정조가 죽고 1년도 안 돼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피바람을 일으켜(신유사옥) 남인 세력을 뿌리까지 제거한 것이 노론입니다. 

동이는 바로 그런 노론을 배경으로 권력의 정점에 선 여인입니다. 숙종이 죽고 경종이 등극했지만, 노론의 등살에 연잉군을 세제에 봉하고 이도 모자라 세제에게 대리청정까지 맡기게 됩니다. 대리청정이 무엇입니까. 경종으로서는 실로 치욕스런 일이었을 겝니다. 

동이를 죽이려다 자기가 죽게 되는 장희빈 

이 모든 일은 장희빈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장희빈이 죽음으로써 세자를 지켜줄 남인과 소론은 거의 완벽하게 괴멸된 것입니다. 그런데 숙종이 장희빈을 죽이는데 별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동이가 숙종을 찾아가 일러바친 '저주에 관한 고변'이 전부입니다.

겨우 일개 여자의 말만 믿고 일국의 빈을 죽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더욱이 그 빈이란 장차 왕이 될 세자의 모후입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동이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장희빈이 최후의 발악으로 동이와 연잉군을 죽이려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이는 오늘밤 칼에 맞아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게 될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음모의 모든 내막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걸로 보입니다. 장희재 모자는 의금부에서 지독한 고문을 받게 됩니다. 이에 참다 못한 장희빈이 나서서 "모든 것은 내가 시켰다!" 하고 나서게 됩니다.

결국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가고 말았습니다. 원래 우리가 아는 상식대로라면 장희빈이 죽게 되는 이유는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이 동이의 고변에 의해 발각(?)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작진은 아무래도 그 정도 이유로 장희빈을 죽이기엔 뭔가 깨름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늘에 찔린 인형'보다는 '칼에 맞아 중상을 입는 동이'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 말은 드라마 제작진이 역사 속 장희빈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증언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한갓 인형 때문에, 그것도 질투심 많은 한 여인의 고변 때문에 장희빈을 죽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진실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을 종합하고 고려해서 어느 정도 진실에 접근할 수는 있습니다. 장희빈은 과연 죽을 만한 짓을 했는가? 드라마 동이에서는 그럴 만한 일을 만들었습니다. 분명 장희빈은 죽어 마땅한 짓을 벌였습니다.

'바늘에 찔린 인형' 대신 '칼에 맞는 동이' 선택

그러나 역사에서도 과연 그런가. 거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동이 제작진은 동이로 하여금 칼에 맞는 비극을 연출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는 역설적으로 동이 제작진은 장희빈이 결백하며 억울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장희빈은 동궁에 불을 질러 이목을 끈 다음 자객을 보내 동이와 연잉군을 죽이려 한다.


물론 우리는 모두 동이 편이지만,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장희빈도 매우 불쌍한 여인이었군요. 거기다 아들마저 단명하고 말았으니…. 나중에 왕(영조)이 된 연잉군은 잠깐 탕평책을 씁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나름 정치적 계산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인좌의 난에 이어 과거장에 등장한 (영조의 경종 독살을 비난하는) 괴답안지 사건이 터지면서 탕평책을 거두어버립니다. 장희빈뿐 아니라 그녀의 아들 경종도 불행한 짧은 생을 살다 갔습니다. 그렇게 보면 장희빈 모자가 참으로 불쌍합니다. 

어미는 남편의 손에, 아들은 동생의 손에(물론 설이긴 하지만, 그러나 유력한 설이기도 하지요) 죽고 말았으니 이보다 더 기구한 사연이 또 있겠습니까.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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