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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김탁구, 가장 불쌍한 캐릭터는 구마준과 신유경

불행한 사람들끼리의 투쟁, <제빵왕 김탁구>















<제빵왕 김탁구>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누가 가장 불쌍할까요? 그러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들 "당연히 김탁구가 제일 불쌍하지" 하고 말할 테지요. 사실 <김탁구>에 등장하는 인물들치고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아픈 사연 하나씩은 다 갖고 있습니다. 

우선 이 드라마에서 현재로선 가장 잘 나가는 구일중부터 아픔이 있습니다. 그는 사업을 위해 정략결혼을 한 듯이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정략결혼을 했다는 것인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었지만, 서인숙의 입을 통해 잠깐 언급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그가 왜 그렇게 힘든 결혼을 물가에 끌려간 소가 억지로 물을 마시듯 하고 있는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구일중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대체로 말이 하기 싫은 사람입니다. 다만 그 엄숙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아, 정말이지 나는 서인숙과의 결혼생활이 지긋지긋해" 하고 말해줄 뿐입니다. 

물론 서인숙도 불쌍하긴 마찬가집니다. 눈치로 보건대 그녀는 구일중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엽기적인 행각들도 구일중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절망감으로부터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대단히 욕심이 많은 인물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할 때 그녀의 히스테리는 극에 달합니다. 


그녀는 철저하게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김탁구든 신유경이든 상대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존재들입니다. 그녀의 둘째 딸 구자림.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지만, 그런 그녀가 운동권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도 가만 보면 채워지지 않는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 아니었을까 하는 혐의가 짙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붙들려간 경찰서에서 간단하게 가장 친한 친구요 동지인 신유경이 어디 숨어있는지 실토함으로써 허영심으로 시작했던 운동권 생활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자림아, 운동권? 그런 건 힘 없고 돈 없는 애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거야. 너처럼 부족한 것 없는 애가 있을 자리가 아니야" 하고 말했을 때 아무 말도 못합니다. 

그녀 역시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부잣집 딸이면서도 마음속은 늘 공허한 찬바람이 붑니다. 그녀의 언니 구자경은 이 집안의 장녑니다. 그녀는 장녀이면서도 왜 거성가를 이어받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매우 불만이 큽니다. 여자는 왜 안 되냐는 거죠. 그녀 역시 서인숙을 닮아 차가운 성품을 지녔습니다. 

현재로선 그녀가 왜 불쌍한지에 대해선 따로 적을만한 게 없습니다. 자주 안 나오니까요. 그러나 앞으로 그녀도 충분히 불쌍하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거성가의 비서실장 한승재. 그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에 대해선 여기서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는 현대판 머슴입니다. 


거성식품의 비서실장으로서 막강한 파워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회사를 벗어나면 그는 거성가의 일개 머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자 서인숙도 자기 주인에게 빼앗겼습니다. 여기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서인숙과 한승재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를 가장 불행하게 하는 것은 그러나 따로 있습니다. 

야심, 바로 야심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 야심의 포로가 되는 순간 그가 가지고 있던 양심과 도덕 따위는 한낱 쓰레기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는 목표한 야심을 위해선 사람도 죽일 수 있고 이미 그걸 실행에 옮겼습니다. 탁구도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지요. 한승재의 음모로 어디론가 실종돼 행방을 알 수 없는 김미순도 물론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그 어떤 사람보다 불쌍한 것은 구마준이 아닐까 합니다. 구마준은 구일중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그는 서인숙이 한승재와 간통하여 낳은 아들입니다. 그 점에 있어선 김탁구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구마준은 철저하게 계산된 음모 아래 만들어진 아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구마준은 그 음모의 대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부와 생모가 할머니를 죽게 만드는 과정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나타나 빗속에 쓰러진 할머니를 향해 거래를 제안합니다. "할머니, 내가 도와드릴 테니까 우리 엄마 용서한다고 약속하세요. 그러면 도와줄 수 있어요." 

그 짧은 순간에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몸 안에 있던 영혼이 빗줄기를 타고 형체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자신이 단순한 불륜의 씨앗이 아니라 음모로 잉태된 존재란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구마준이 간직한 인생의 시계는 12년 전 시점에서 정지한 듯이 보입니다. 그는 전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신유경으로부터 12년 전에 들었던 똑같은 말을 들으며 수치심과 분노에 치를 떱니다. "너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게 없구나.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진 너는 탁구를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러고 보니 구마준은 12년 전 열두 살이었을 때나 스물네 살 청년이 되어서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탁구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밤중에 몰래 제빵실과 반죽을 작살내는 행동은 12년 전 거성가에 들어온 탁구를 도둑으로 몰던 행동과 아주 똑같습니다. 

그의 육체는 어른처럼 성장했지만 영혼은 발육부진으로 여전히 심술궂은 열두 살 어린 소년으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초등학생이 교실에서나 부릴 법한 심술을 구마준으로부터 계속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가 가엽게만 느껴집니다. 아,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을까? 열두 살 세계에 버려진 불쌍한 영혼.  

그러니 그가 불쌍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런데 이 불쌍한 영혼과 엮이게 될 것 같은 또 하나의 불쌍한 영혼이 있습니다. 신유경. 구마준의 정체를 알면서도 탁구에게 입을 다물고 있는 그녀의 정신세계는 또 어떤 것일까요?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욕망의 정체를 이 침묵이 말하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신유경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꾸기보다 차라리 자기가 변해 세상을 가지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녀를 취조하던 경찰이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었지요. "너처럼 머리도 좋은 애가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지? 세상 바꾸려 하지 말고 니가 바뀌면 되는 거야. 니가 가진 자가 되고 있는 자가 되면 그럼 세상도 자연히 너를 따라 바뀌게 돼 있어." 

저는 이 경찰의 말이 사실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젊은 운동권들이 있었고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그들은 결국 세상을 바꾸기보다 자기가 바뀌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들 중엔 오늘날 여당의 실세 중 실세가 된 사람도 있고, 수도권 광역시도지사가 된 사람들도 있으며, 기업체로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신유경도 이런 길을 선택할 것처럼 보입니다. 어제 그녀가 들었던 노래, 그게 샹송인지 깐소네인지도 모르겠고 가수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는 이제 필요 없어. 나는 모든 것을 잊을 테야.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거니까." 

그러나 그녀의 새로운 시작이 구마준과 함께 비참한 몰락의 함정으로 빠져들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이젠 그녀가 가장 불쌍하단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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