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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김탁구는 음식드라마일까, 범죄드라마일까?


















김탁구는 범죄스릴러? 
'스릴러와 맛있는 빵을 버무린 독특한 장르'


<제빵왕 김탁구>, 제목만 보면 음식드라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김탁구가 갖은 역경을 뚫고 제빵 기술자로 성공한다는 뭐 그런 줄거리를 생각했습니다. 물론 김탁구(윤시윤)는 팔봉선생(장항선) 밑에서 훌륭한 기술을 배워 한국 제일의 제빵 고수가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꼭 그렇게 되겠지요.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그런데 제빵왕 김탁구가 지금까지 보여준 이야기는 음식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빵과 빵집, 빵공장 같은 것들은 그저 김탁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와 암투를 잘 보여주기 위한 무대장치에 불과했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된 주제는 범죄였습니다. 범죄 스릴러, 그게 이 드라마의 장르였던 것입니다.

어쩐지 처음부터 배경음악이 너무 음산하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최명길, 전인화, 박예진 등이 연기대결을 펼쳤던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들었던 효과음악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미워도 다시 한번> 제작진이 김탁구를 만든 게 아닐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거성가의 안주인 서인숙(전인화)과 거성식품 비서실장 한승재(정성모)는 공범입니다. 그들은 구일중(전광렬) 거성 회장의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고의적으로 죽인 건 아닙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겁니다. 홍여사(김용림)가 구마준이 구일중의 아들이 아니라 한승재와 서인숙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아버렸던 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홍여사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서인숙과 한승재에겐 절체절명의 위기. 그들의 야심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질 순간입니다. 서인숙이 홍여사의 팔을 잡고 제발 눈감아달라고 애원했지만, 그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두 사람은 거성가를 말아먹을 계략을 꾸몄던 것이고, 그 중심에 손자라고 여겼던 구마준이 있었던 것입니다. 

억수처럼 쏟아지는 폭우 속에 서인숙이 잡은 팔을 뿌리치던 홍여사는 쓰러졌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지요. 아마 어쩌면 서인숙이 홍여사를 강하게 잡아당겼거나 밀쳤거나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노인은 쓰러졌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두 사람은 방치했습니다. 아니, 죽으라고 그랬겠지요.  

그리고 이 미필적 고의성이 짙은 살인행각에는 구마준(주원)도 끼여 있었습니다. 어린 구마준은 모든 것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믿었던 사람의 비서의 아들이란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불륜의 씨앗. 욕망덩어리. 그게 바로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빗속에 쓰러져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더니, 그래, 내 할머니가 아니었어." 그러나 아직 어린 구마준의 가슴 속엔 양심의 소리가 살아 있습니다. 할머니를 흔들며 말합니다. "내 어머니를 용서한다고 약속하세요. 그러면 도와줄 수 있어요. 도와주겠어요. 약속만 하세요."

테이블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편이 갈라져 있군요. 팔봉선생이 가운데 있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할머니에게 거래를 제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래가 성사되었다고 혼자서 인정한 구마준은 집안으로 들어가 할머니의 방문을 열어놓고 아버지 구일중의 방문을 세게 두드립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들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할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중에 서인숙은 이렇게 독백하듯 외칩니다. 

"하늘은 내 편이었어!"

이들의 범죄행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집요하게 김탁구를 몰아내기 위한 음모를 꾸몄고 성공했습니다. 탁구의 생모도 그 과정에서 실종돼 지금껏 생사를 알 길이 없습니다. 탁구는 엄마를 찾기 위해 거성가를 뛰쳐나와 돌아다닌 지가 12년이 되었습니다. 

한승재는 12년만에 다시 돌아온(사실은 탁구가 스스로 돌아온 것도 아니었고, 단지 한승재의 눈에 뜨인 것뿐이다) 탁구를 죽이기 위해 폭력배들을 동원했지만,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한 탁구는 극적으로 탈출합니다. 자, 그럼 구마준은 어떨까요? 그는 원래부터 범죄형 인간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구마준이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할머니의 죽음에 어떤 형식으로든 관여한 순간, 그는 이미 그의 부모들(서인숙과 한승재)과 공범입니다. 구마준의 마음속에는 좌절과 분노에 이어 그의 친부모들과 같은 욕망과 야심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구일중의 마음에 들어 그의 후계자로 인정받아 거성식품을 차지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구마준은 유럽과 일본을 거쳐 팔봉빵집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서태조란 가명으로. 왜 서태조란 이름을 썼을까? 한태조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구마준에게 친아버지란 존재는 계급적으로 열등한 천박한 존재일 뿐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잠재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구마준은 왜 팔봉빵집에 들어왔을까요? 물론 이미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팔봉선생의 봉빵 레시피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구마준이 그 레시피를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란 것입니다. 구마준은 이미 12년 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위가 김탁구, 아래가 구마준


이곳에서 부모들에게 잘 배운 범죄행각이 과연 어떻게 드러날 것인지도 재밌는 관전 포인틉니다.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신유경(유진). 신유경은 김탁구의 어릴 적 친굽니다. 12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났고 이들은 늘 가슴에 품어왔던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곧 깨져버릴 운명입니다.

이미 제작진은 신유경이 김탁구를 배신하는 것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신유경은 명문대학에 진학해서 운동권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열두 살 때 어려운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계기란 것이, 아버지에게서 훔친 돈봉투를 거지 가족에게 전해주고 받은 모자를 머리에 쓰면서 한 것입니다.

그때 그 거지 가족의 가장이 유경에게 그랬거든요. "나중에 커서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는 그런 사람이 되어 다오." 이것이 그녀가 운동권이 된(최소한 드라마에서 주장하는) 계기였는데, 내가 볼 땐 그게 비극이었습니다. 운동권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누군가를 돕기 위해 운동권이 된 사람들은 거의 백이면 백 다 변절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주도권을 쥐고 나라를 쥐락펴락 하는 사람들치고 왕년에 운동권 아니었던 사람  거의 없다는 사실만 봐도 내 말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불쌍한 구마준이 나중에 어떻게 될까 그게 가장 궁금한 대목입니다. 서인숙과 한승재는 지은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인간의 법은 피해갈지 몰라도 천벌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마준은 어떻게 될까? 팔봉선생이 김탁구에게 한 말 속에 어쩌면 답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 그렇다면 착하게 살아온 것이 아니었구나. 착하게 산다는 게 무엇이겠느냐. 남을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 그게 남아 있으면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아직 3분지 1밖에 지나지 않은 드라마를 놓고 왈가왈부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앞으로도 <제빵왕 김탁구>는 범죄드라마의 포스에서 벗어나기는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 그리 생각합니다. 아무튼 김탁구, 아주 재밌는 드라맙니다. 스릴러와 맛있는 빵을 버무린 독특한 장르가 현재로선 매우 성공적입니다. 

빵 속에 든 베이킹 파우다의 야릇한 중독성처럼 그런 재미가 느껴지는 <제빵왕 김탁구>, <로드넘버원>의 물량 공세와 전쟁바람마저 잠재운 걸 보면 실로 대단하단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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