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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동이, 승은 거부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동이가 큰일났다!!















동이가 마침내 후궁이 되었습니다. 일단 승은을 내린 걸로 하고(아직 승은을 안 내렸는데 임금이 동이를 구하기 위해 작전을 짠 것으로 보입니다) 동이에게 당혜와 승은상궁 옷을 가마와 함께 보냈습니다. 당혜는 이미 아시는 대로 숙종이 사냥에 나갔다가 잡은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예쁜 신발입니다. 그걸 몰래 발견한 중전 장옥정이 질투와 분노로 몸을 떨었죠. 그런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그 당혜가 숙종이 동이에게 주려고 만든 신발인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여자의 직감?

장옥정과 동이는 서인과 남인의 미인계?

아무튼 장옥정, 정말 대단한 여자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희빈과 남인 일파는 왜곡된 측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입니다. 패자는 역사를 쓰지 못합니다. 승자인 서인들이 쓴 역사는 우리에게 장희빈과 남인 일파는 악당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대 서인의 고문격인 김만중이 사씨남정기를 써 민간에 유포할 수 있었던 것은 기사환국으로 밀려난 서인의 뿌리가 오랜 집권으로 워낙 탄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남인의 영수 오태석이 "조선은 임금의 나라가 아니라 사대부의 나라"라고 말한 것도 좀 난센스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생각은 실은 서인들이 더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예송논쟁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던 것도 이런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남인들은 왕을 중심으로 세상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어쨌든 역사는 권력을 잡은 자가 쓰는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장옥정은 조사석이란 인물의 천거로 궁녀가 되었습니다. 조사석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었던지 장옥정을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처소 궁녀로 들여보냅니다. 증조모에게 문안인사를 오는 인조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하기 위해섭니다. 실록에 의하면 후일 조사석이 우의정에 제수되었을 때 김만중이 반대했다가 도리어 처벌 받았는데, 김만중이 주장하기를 조사석은 장옥정의 모친과 내연의 관계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드라마 <동이>에 나오는 좌의정 오태석의 모델이 이 조사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이도 마찬가집니다. 역시 일설에 의하면, 동이는 김춘택의 천거로 궁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춘택은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손자요,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의 증손자입니다. 대대로 쟁쟁한 서인 가문 출신이지요. <동이>에서도 김춘택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의주에서 동이가 만난 심운택입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 궁녀들도 마찬가지

동이는 나중에 영조를 낳게 되는데, 항간에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 김춘택의 씨앗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합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일전에 그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헛소문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씨남정기의 목적도(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유언비어 유포로 민심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왜 헛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조선은 그 이전 시대와 달랐습니다. 후궁들은 철저하게 격리되고 특별하게 관리되었습니다.

조선은 법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였습니다. 경국대전이니 속대전이니 하는 것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조선이 왕의 나라가 아니라 사대부의 나라"라고 하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당파싸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예송논쟁도 결국 어떤 것이 더 법에 합당한가 하는 것을 따지자는 논쟁이었지요.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법도"란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선은 법도에 따라 다스리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궁녀들의 처신도 세세히 법에 규정되어 있을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궁녀들은 한번 궁궐에 들어가면 평생 다른 남자를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 법도였습니다. 이런 법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대체로 조선 전기에 형성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설령 궁녀가 궁궐에서 나가 평민이 되더라도 절대 결혼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와 사통하다 발각되면 즉시 잡아들여 사형에 처했다고 하니 실로 불우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물론 사통의 상대 남자도 사형에 처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그 남자가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이거나 실력자와 끈이 닿아 있을 경우에는 처벌을 면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데, 궁녀 출신의 여자만은 예외 없이 사형을 피할 수가 없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법이 불공평한 것은 마찬가집니다. 자, 그건 그렇고 말입니다. 다음 주 예고편을 보니 승은상궁이 된 동이가 임금이 내린 후궁 복장을 벗어 살포시 개어두고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입니다.
 

돌아오라, 궁궐로! 안 그러면 큰일 나

말하자면 승은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것일까요? 법도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조선에서 임금이 승은을 내리겠다는데 궁녀가 이를 거부하고 사라지다니요. 이거 큰일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오태석 등 남인 일파가 알게 되기라도 하는 날엔 "불충한 동이를 즉시 죽이시옵소서!" 하는 상소가 빗발칠 게 틀림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폐비에게도 치명타가 될 사건입니다. 물론 숙종은 상선을 시켜 동이를 조용히 찾아 데려오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동이는 못 이기는 척 살며시 궁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임금과 한방에서 행복한 꿈을 꾸겠지요. 그러나 아무튼 말도 없이 승은을 거부하고 종적을 감춘 것은 법도를 어겨도 크게 어긴 것입니다. 이거 잘못하면 대역죄로, 아니 대역죄까지는 아니군요. 하지만 승은을 거부한 것, 거기다 종적까지 감춘 것, 이 두 가지만 가지고도 충분히 왕을 능멸한 죄로 능지처참에 처해질 사인이로군요. 특히 속 좁은 왕이라면 거의 이럴 게 확실합니다.

"네 이년, 감히 나를 쪽팔리게 해. 너는 당장 사약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