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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신데렐라 언니, 효선 앞에 강숙이 약해진 까닭

송강숙이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천하의 송강숙이 너무 나약해졌네요. 의외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강숙이 저렇게 허약한 존재였던가? 하룻강아지밖에 안 되는 효선에게 대성의 일기장을 들켰다고 해서 이렇게도 나약해져야 하는 것일까? 무척 혼란스럽네요. 좀 불안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제 강숙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해봅니다. 강숙이라고 해서 본래부터 나쁜 사람이었겠습니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그런 말도 있었지요? 푸시킨이었던가요? 우리가 어릴 때,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었던 낡은 액자 속에 담긴 문구였지요.

그러나 인생이란 게 그처럼 쉬운 게 아니죠. 푸시킨처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푸시킨은 러시아의 대문호이면서 혁명을 꿈꾸었던 특출한 사람이었지만, 역시 그의 몸속에 흐르는 귀족의 피는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이왕 푸시킨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의 시를 한 번 읽어보도록 하지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디노라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도대체 이 시의 어디에 혁명적 기운이 숨어 있을까요?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푸시킨이 겨우 이런 시나 썼었다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어린 시절 푸시킨 하면 바로 이 시를 떠올렸지요. 실은 저도 노트 앞장 또는 뒷장에  이 시를 적어두고 가끔 읽곤 했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지 말라고? 웃기지 마라

송강숙의 삶을 보면 푸시킨의 시와는 정반대로 살았던 것 같지요? 그녀는 삶이 자기를 속일 때 참기보다는 함께 소리 지르며 달려들었지요. "그래,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누구든 한 번 해보자구." 그녀는 그렇게 살았어요. 처절하게 슬퍼하고 분노하며 세상과 맞닥뜨렸던 거지요.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악밖에는 없다는 듯이 보였어요. 은조에게 말했지요. "이년아, 내가 너를 업고 쓰레기통을 뒤져 그 썩은 걸 어린 네게 먹일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오로지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먹어야 산다, 그 생각밖엔 없었어."

그녀는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지요. 어린 효선에게 마음에도 없는 웃음과 친절을 베풀기도 했고, 구대성에게 요염하고 정숙한 아름다움을 보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요. 그리고 그게 성공해서 지금은 어엿한 대성참도가의 안주인이 되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그녀가 너무 급작스럽게 변했군요. 효선이의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눈초리 앞에 고양이 만난 쥐처럼 안절부절 하는군요. 도대체 그 당당하던 그녀가 이렇게 나약해진 이유는 뭘까요? 양심 때문일까요? 구대성의 일기장을 읽어본 후 저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던 양심이 살아난 탓일까요?

그러나 저는 양심만으로 강숙이 그렇게 변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네요. 양심? 물론 그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기는 하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양심을 갖고는 있지만, 그 양심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자주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 걸 목격하거든요.

그럼 무엇일까요? 저는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강숙은 자기 인생에 사랑이란 것이 개입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을 거예요. 아니, 그런 게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개나 주어버리라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그녀에게 지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사람들이 있었어요. 

바로 구대성 모녀지요. 구대성은 강숙을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했지요. 그리고 사랑에 빠졌어요. 딸 때문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는 진심으로  강숙을 잡고 싶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강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위해서만 살기로 했어요.

옛 남자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8년 동안 모른 채했다는 사실은 저를 무척 당혹스럽게 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는 하지만, 구대성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이런 사랑을 무어라고 불러야 하지요? 아가페라고 하나요?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무튼….

효선도 마찬가지에요. 그녀의 사랑은 집착이 너무 강해서 상대방이 피곤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녀의 사랑 또한 그녀의 아버지 못지않지요. 게다가 그녀는 상대가 자기를 거부할 때 순순히 물러설 줄도 알아요. 기훈에 대한 사랑이 그렇지요. 아마 그럴 거예요. 은조와 자매로서 나누고 싶은 사랑 때문이기도 할 거라는.

효선이 지금 악에 받쳐 방방 뜨고는 있지만, 극단적으로 가지는 못할 거예요. 그건 그녀의 천성과 맞지 않거든요.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녀의 아버지, 구대성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문득 정신을 가다듬고 곰곰 생각해보면 효선은 그걸 깨닫게 될 거에요. 아버지의 사랑이 계모였으며, 자기의 사랑도 계모라는 것을 말이죠.

송강숙이 약해진 이유? 사랑에 감동 받은 탓

강숙이 이토록 급격하게 변한, 그래서 왜 저렇게 나약해졌을까 하고 궁금하게 만든 배경에는 바로 구대성 모녀의 사랑이 있었어요. 그리고 강숙이 구대성의 사진을 보며 중얼거리던 독백처럼 그 사랑이야말로 강숙의 억척스러웠던 삶보다 훨씬 독한 것이었어요. "당신 부녀는 나보다 훨씬 독해."


자, 어쨌든 강숙이 변한 건 사랑의 힘이었다는 게 제 생각이고요. 그래서 결국 푸시킨의 시 끝부분처럼 기쁨의 날도 오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도 되고 뭐, 그렇게 될까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우리가 강숙의 못된 짓을 보면서도 그녀에게 섣부르게 돌을 던지지 못했던 것도 실은 그녀의 삶에 새겨진 아픔을 잘 알기 때문이었지요.

그것도 생각해보면 사랑의 일종의 아니었을까 그리 생각되네요. 그럼…, 아, 오늘밤부터는 기훈의 비밀이 탄로나 새로운 갈등이 만들어지겠군요. 그러고 보니 푸시킨의 이 시는 이제 기훈에게 들려주어야겠네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힘든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어쩌구 저쩌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