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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추노' 배신자의 명분, "범을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조선비의 변절, 송태하를 배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비의 변절은 예상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혁명 운운할 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혁명이란 무엇입니까?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냥 정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신분을 타파해 양반과 상놈의 구분을 없애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구별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게 혁명이죠.

회유에 흔들리는 조선비. 한일자를 그려보지만, 결국 그는 변절할 운명을 타고났다. 왜?


그러나 조선비의 혁명은 무엇입니까? 정치에서 소외된 자기들이 정권을 잡는 겁니다. 역모지요. 우리는 이것을 반란이라고도 하고 쿠데타라고도 말합니다. 한때 이런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부른 때도 있었습니다. 5·16혁명을 기억하시는지요? 군사쿠데타 세력이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쿠데타를 반란이라 하지 않고 혁명이라고 불렀었지요.

5·16혁명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우리는 혁명에 대해 너무나 많이 듣고 배워 마치 우리가 혁명시대를 직접 경험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5·16혁명 기념탑이 세워진 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했으니 그런 착각은 더 심했을 겁니다. 그런데 세월이 꽤 흘러 제법 나이가 든 제 귀에 조선비와 송태하가 논하는 혁명이 들립니다.

그들의 혁명도 혁명일까? 물론 아니라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야욕에 불과할 뿐입니다. 송태하의 혁명은 나름 대의명분이란 기본을 깔고 있긴 합니다만, 역시 혁명은 아닙니다. 처음에 송태하가 소현세자의 심복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그가 서양문물을 접하고 반상의 차별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구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송태하의 대의명분도 뚜렷한 게 없어 

그러나 차츰 그런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그가 구하는 것은 뜬구름 같은 대의명분이었습니다. 사실 송태하의 대의명분이 무엇인지도 뚜렷하지도 않습니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것? 그건 정치를 하는 사람이면 늘 하는 말입니다. 도대체 어떤 백성이 어떻게 도탄에 빠졌다는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구하고 어떤 삶을 주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송태하는 별 의식이 없습니다.

조선비나 송태하는 모두 이들처럼 서민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유희를 즐기는 선민(양반) 출신이다.


왕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까요? 언년이의 물음에 송태하는 바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바뀐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힌트가 없습니다. 만약 송태하의 혁명이 성공해 원손이 왕이 된다고 가정하고서 바뀐 세상을 한 번 그려보시지요. 어떤 세상이 그려질까요? 애석하게도 제 머릿속엔 아무 세상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조선비는 오히려 명확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확실한 출세주의잡니다. 그가 생각하는 혁명은 정권을 뒤집고 권력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그것 밖에 없습니다. 그는 세상을 바꿀 생각도 없으며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 명분은 오로지 스스로가 정권을 잡는 것입니다. 정권만 잡으면 모든 명분은 그의 것이 된다고 믿습니다.

이경식은 그런 조선비의 심중을 제대로 꿰고 있습니다. 그가 보았을 때 조선비의 변절은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할 뿐 이미 예정된 것입니다. 그 몇 가지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송태하와 송태하의 부하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꿈꾸던 혁명, 아니 야망의 비전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려주면 좌절하고 결국 투항할 것이란 사실을 노회한 이경식은 잘 알고 있습니다.

조선비의 자존심은 출세에 눈먼 허영심

그리고 이경식은 조선비가 얼마나 자존심―허영심의 일종인―이 센 인물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존심 때문에 조선비가 더 쉽게 무너지리란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밑에 들어와 자네 큰 뜻을 펼쳐 보이시게." 결국 이 한마디에 조선비는 무너졌습니다. 그는 혁명 동지들의 명단을 이경식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관직을 얻게 되겠지요.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결국은 회유에 넘어가는 조선비. 혁명 동지들의 명단을 이경식에게 넘기고 출세의 길을 선택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송태하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건 불을 지고 섶으로 뛰어드는 꼴이 될 겝니다. 하긴 이제 드라마 <추노>도 막판 라운드에 돌입했으니 마지막 반전이 피치를 가할 때도 되긴 했습니다. 송태하만 위험해지는 건 아닐 겁니다. 이미 월악산 영봉의 존재를 간파한 황철웅이 군사를 이끌고 짝귀의 산채로 향하고 있으니 대길 패거리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저는 조선비의 변절과 배신 보면서 옛날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무수히 보아왔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 실세라고 세상이 인정해주는 이재오 전 의원과 경기도 지사 김문수는 한때 운동권이었습니다. 김문수는 80년대 어떤 조직보다도 과격한 노선을 표방했다는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의 멤버이기도 했었지요.

서노련에서 그는 심상정(전 진보신당 대표)이나 박노해 같은 인물들과 동지였습니다. 물론 오래 전 과거의 일이지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김문수는 이재오와 함께 민중당을 창당했습니다. 민중당의 목표는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조봉암 선생의 진보당 이후 한국사회에서 사라진 진보정당을 재건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을 겁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민중당은 현실정치에서 실패했습니다. 1992년 선거에 참여했지만, 유의미한 득표를 얻는데 실패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은 흩어졌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중당의 최고위급들, 이재오나 김문수 같은 이들이 흩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한나라당(당시 민자당)의 손길이 뻗쳤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조선비처럼 한나라당의 품에 안겼지요.

적을 이용해 적을 잡는 수법을 즐기는 이경식, 과연 정치9단이다.

아마 당시 이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민자당 대표였던 김영삼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재오나 김문수를 조선비에 견준다면 김영삼은 이경식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치9단이라 불렸던 김영삼이었으니 이경식에 비교해도 별 무리는 없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니 어쩌면 작가는 한나라당과 김영삼, 이재오, 김문수를 염두에 두고 조선비의 변절을 그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문수가 민자당(현 한나라당)에 들어가며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나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 조선비도 아마 똑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나도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간다." 그러나 조선비의 운명은 김문수나 이재오가 그랬듯 호랑이를 잡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 젖을 먹고 스스로 맹수가 될 운명을 선택한 것일 테지요.     

어찌 되었건 예상된 변절이었지만, 씁쓸한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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