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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사이판에 간 천하무적야구단이 불편한 이유

총격사건 피도 안 마른 사이판 가서 희희낙락 전지훈련, 
네티즌들이 받아낸 사과에 찬물 끼얹는 천하무적 야구단, 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일까?
  

KBS가 사이판에서 찍은 오락 프로그램이 결국 방송되었군요. 천하무적 야구단입니다. 저는 사실 천하무적 야구단이 무얼 하는 팀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천하무적 토요일》이란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연예인 야구단(사회인 야구단인가?)이란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한 1주일 정도 됐을까요.


천하무적 야구단의 전지훈련 장소 사이판은 어떤 곳인가? 

사이판은 작년 11월 20일 대한민국의 관광객 6명이 총기난사 사고를 당한 곳입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중에 한 분은 저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사이판에 도착한 첫 날 무차별 총기 난사에 척추를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야만 움직일 수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이판 당국은 피해보상은커녕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들 나라에선 범죄피해자 보상제도가 없다는 것이 이윱니다. 사이판으로 여행을 주선한 여행사 하나투어도 마찬가집니다. 그들도 여행자보험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상 말고는 한 푼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 게 이유였습니다.

좋습니다. 사이판 당국이나 여행사의 경우엔 사과나 피해보상을 해줄 경우 앞으로 발생하게 될 사고―총기난사와 같은 불의의 사고가 또 일어나게 될 것을 예상한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마다 매번 공식 사과하고 보상해야하는 전례를 만들기 싫어서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사람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어땠을까요? 대한민국 정부는 사이판 당국이나 여행사보다 더 가관이었습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차라리 인터넷에 호소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이게 대한민국 정부의 대답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부산에서 발생한 실내사격장 화재사건으로 일본인들이 사망하자 국무총리가 현장으로 가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과는 대조적인 처삽니다.

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을 일본인보다 하찮게 생각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태도였습니다. 그럼 정부는 그렇다 치고 불의의 총격에 반신불수가 된 피해자가 살고 있는 마산은 어땠을까요? 마산시장도 사이판 당국이나 여행사나 대한민국 정부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뽑아준 시민이 사이판에서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그는 문병 한 번 가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이 사건에 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산시 의원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입을 연 사람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부터 여행사, 마산시장, 마산시 의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사건을 네티즌들에게 미루었던 것입니다. 

네티즌들이 받아낸 사이판 정부의 사과와 보상 약속, 천하무적 야구단이 찬물 끼얹나

대한민국 정부와 유력 언론사들마저 외면했던 이 사건은 결국 지역의 힘없는 언론사(경남도민일보)와 몇몇 뜻있는 네티즌들에 의해 여론화되었습니다. 두 달 넘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네티즌들의 노력으로 외면하던 방송사들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방송3사들이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뒤이어 심층취재 프로그램을 내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사이판 당국이 마침내 공식 사과와 함께 보상을 약속했다는 기사가 1월 29일 경남도민일보에 실렸습니다. 그러나 공식 정부의 보상이 아닌 민간기금을 통한 보상이란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마산시장도 그토록 무겁던 몸을 일으켜 피해자의 병실에 문병을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네티즌들의 노력에 의해 사태가 해결되려고 하는 즈음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사이판에서 전지훈련 하는 장면을 담은 오락프로그램이 어제 저녁 공중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된 것입니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사이판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는 김주완-김훤주 블로그의 기사를 접했을 때만 해도 저는 설마 했습니다.  

그러나 이 참담한 기사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김주완 기자가 자기 블로그에서 지적한 사이판 당국의 로비가 총격사건을 희석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천하무적 야구단을 타겟으로 삼았을 것이란 의심은 방송을 보고 난 후에 거의 진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항공기 2등석에 앉아 희희낙락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그런 의심이 안 든다면 더욱 이상한 일이지요.


김주완 기자 블로그가 의혹을 제기한 북마리아나(사이판) 관광청 한국사무소가 발행한 뉴스레터 2010년 1월호 

물론 이건 저의 의심일 뿐입니다. 시청자들로부터 돈을 물 쓰듯 한다고 따가운 눈총을 받는 그 행위가 사이판 당국의 로비가 아니라 KBS의 자체 제작비로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KBS 시청료 인상과 맞물려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그 행위가 사이판의 로비의 결과였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사이판에 전지훈련 가서 희희낙락하는 연예인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약간의 사회의식이라도 요구한다면 그건 난센습니다. 물론 연예인들 중에도 김미화나 김제동처럼 뛰어난 사회의식을 겸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천하무적 야구단 전지훈련, 꼭 사이판서 해야 되나

그러니 천하무적 야구단의 일원으로 사이판에 간 연예인들에게 거기 왜 갔냐고 따질 필요까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설령 따진다 한들 그들의 귀에 잘 들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하무적 야구단을 만드는 제작진, 감독은 다릅니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했어야 합니다.

사이판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당한 총격에 고통 받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사이판 당국은 웃게 될 것이고, 고통당하는 피해자는 울게 될 것이란 사실도 알았어야 합니다. 그런 생각도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면 평생 딴따라 소리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제 방송된 천하무적 야구단 사이판 전지훈련이 제 1탄이라고 하는 걸 보면 앞으로도 계속 사이판 전지훈련 장면을 방송하겠다는 뜻이겠지요? 아무리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보는 오락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한 일 아닐까요? 거기서 계속 상주하는 것도 아닐 테고 매번 항공기 2등석을 타고 사이판 홍보방송을 하겠다는 얘긴데….

국민의 시청료로 우리 국민을 불구로 만든 사이판 관광을 홍보한다니,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래도 창피합니다. 아무튼 시청료를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이판 말고 딴 데 가서 찍으면 안 될까요? 전지훈련을 꼭 사이판에서 해야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위 배너를 누르면 피해자 박재형씨의 부인 박명숙씨가 네티즌들의 도움으로 만든 <푸른희망 블로그>에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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