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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추노, 업복이 쏜 총탄이 대길을 비켜간 까닭

조선판 메트릭스,
    대길이 총알을 피한 것일까? 총알이 대길을 비켜간 것일까?


방금 추노가 끝났습니다. 역시 재밌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길(장혁)이가 언년이(이다해)의 존재를 눈치 챈 듯 하더군요. 어찌 될까요? 알아볼까요? 아니면 그냥 또 긴가민가하다가 놓치고 말까요? 만약 송태하(오지호)와 같이 있는 여인이 언년이임을 알게 된다면 이제 돈 5천 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죠. 사생결단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질 겁니다. 

미디어다음 이미지 '뷰티풀라인' 캡처사진



업복이의 총알을 피한 것은 순전히 대길의 순발력 탓이었나?

송태하의 뒤에 숨은 언년이도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이 전해 옴을 눈빛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눈과 귀, 코가 아니어도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다가
뒤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을 맨손으로 받아낸 적도 있고, 멍하니 앉아있다 딸아이의 손에서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조각이 땅에 닿기 직전에 손으로 받은 적도 있었죠.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느낌이 왔던 거죠. 아무튼, 각설하고.

그런데 말입니다. 업복이(공형진)가 말을 타고 추노질을 하러 떠나려던 이대길을 향해 화승총으로 회심의 한방을 날렸는데요. 총알이 정확하게 대길이의 이마, 상스러운 말로는 막박을 향해 날아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총알이 대길의 머리에 구멍을 내려는 순간, 대길의 날카로운 그리고 재빠른 눈이 총알을 보고 말았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화면상으로는 분명히 대길이 자기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보았고 순간 머리를 틀었죠. 이런 정도의 경지는 그야말로 등봉조극, 오기조원의 경지를 넘어 입신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이대길의 무공 수위가 이 정도라면 아무리 조선팔도에서 검으로 당할 자가 없는 송태하라도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저는 대길이가 구사일생으로 총알을 피한 것이 순전히 대길의 타고난 순발력과 출중한 무예 탓 만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업복이의 실수도 있었던 것이죠. 마누라 속곳 벗기는 것보다 더 쉽게 호랑이를 사냥한다는 관동 제일의 포수 업복이가 실수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총잡이였는데 말입니다. 

관동제일포수 업복이가 총질에 실수한 까닭은?

만약 그가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면 벌써 호랑이 밥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럼 업복이가 실수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제 생각에 그것은 업복이가 사수로서 지켜야할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남자들 중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오셨을 겁니다. 군대 가면 제일 고통스럽게 배우는 게 바로 사격술이죠. 

피알아이(PRI) 기억나십니까?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훈련과정이라 모두들 이 피알아이(사격술예비훈련) 훈련장을 일러 피가 터지고 알이 배기는 기초사격훈련장이라고들 합니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지만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무르팍이 깨지듯 하던 고통이 느껴집니다. 각개전투도 힘들고 총검술도 힘들지만, 피알아이 만큼 힘든 훈련도 없었지요. 

미디어다음 이미지 '데일리안' 캡처사진

그런데 그때 우리가 늘 주지하던 타겟의 조준 목표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십니까? 바로 가슴이죠. 가슴은 목표물의 정중앙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혹시 조준이 조금 빗나가더라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사수의 조준선 정열은 반드시 가슴을 향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리에 따라서 조준선 정열의 지향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미세하지만 총알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100m 표적은 가슴보다 약간 낮은 지점을, 200m는 정중앙을, 250m는 머리 부분을 조준하는 것이죠. 그러나 물론 이 모든 조준선 정열의 목표는 가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업복이는 왜 대길이의 머리를 겨냥했을까요? 커다란 몸통을 제쳐두고 그 자그마한 머리를 겨냥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업복이의 가슴속에 불타는 복수심이 평정심을 잃게 했을까?

17세기로 돌아가서 업복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업복이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입니다. 업복이를 비롯한 노비들을 잡아들인 대길이가 오포교에게 넘기면서 돈을 받는 모습에 분노한 업복이가 대길을 향해 절규하듯 외쳤었죠. "니놈 대갈통을 부셔버릴 기야." 

그리고 양반들을 모조리 죽여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노비들의 당에 입당한 업복이가 화승총를 시험할 시범케이스로 대길을 지목하고 또다시 말합니다. "내 그놈 대가빠리부터 쪼사버릴 기래요." 복수심에 불타는 업복이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대길의 대갈빡에 어떻게 화승총으로 바람구멍을 낼 것인가, 이것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중요한 순간에 사격술의 FM을 잊어버리고 머리를 조준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불타는 복수심은 오직 대길의 대갈통만 눈에 보이도록 했을 테죠. 만약 업복이의 총이 화승총이 아니라 망원렌즈가 달린 초현대식 저격총이었다면 머리를 조준해도 무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 귀를 조준한들 백발백중을 못 시키겠습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업복이의 총은 임진왜란 때나 보았을 화승총입니다. 총구에 화약을 쑤셔넣고, 쇠꼽(탄환) 재고, 꼬챙이질을 한 다음  불을 붙이고 방아쇠를 당기는 뭐 그런 구닥다리 총이라 이런 말입니다. 그런 총을 가지고 몸통이 아니라 자그마한 머리를 조준해 맞춘다는 것은 아무리 마누라 속곳 벗기기보다 쉽게 호랑이를 잡는 관동제일포수라도 어려운 일이죠. (총알이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면 천하의 대길이라도 쉬 피하진 못했을 겁니다.)  

칼 든 자보다 더 무서운 붓 든 자들

그러므로 업복이의 실수는, 오로지 대길의 대갈빡에 구멍을 내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복수심, 바로 그 복수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하는 건가 봅니다. 저는 업복이를 보면서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송태하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차분하게 대응합니다.

"어찌 이리 태평하십니까? 대감." 당황하여 달려온 같은 당파를 향해 이경식은 이렇게 말하죠. "일희일비 하지 마시게. 정치를 하려면 무릇 가슴엔 불이 일어나도 언행은 깊은 물처럼 잔잔해야 하니…."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대길의 추노꾼 동료 최장군(한정수)의 말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칼 든 자보다 더 무서운 이들이 붓 든 자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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