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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권영길 의원님, 유감입니다.

얼마 전에 권영길 의원님께서 경남도민일보에 대문짝만하게 난 사진과 함께 평양에 다녀오신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창원에서 방북 기자회견을 하셨더군요. 물론 겨레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하는 명제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모두가 학수고대하는 염원임에 틀림 없습니다.

대북지원을 위해 평양행을 발표하는 권영길 국회의원과 겨레하나 경남본부. 이들은 23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7∼30일 3박 4일 일정으로 평양시 삼석구역 양묘장 착공식에 참석한 뒤 묘향산과 백두산을 둘러본다고 밝혔다. **** 사진/기사 = 경남도민일보 박일호 기자****


고통 받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인도주의적 활동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또 고통 받는 북한 동포들의 고초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한 인도주의적 노력들은 필요하고 꼭 해야만 할 일들이란 것에도 한 치의 이의가 없습니다. 평양 방문을 무사히 마치시고 묘향산과 백두산도 잘 다녀오시기를 빌어마지않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찜찜한 불편함이 소화불량처럼 저를 괴롭힙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을 종북주의 정당이라고 규정하며 뛰쳐나왔다고 해서 권영길 의원까지 몹쓸 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노당에 비록 북한추종세력이 일부 있으며 이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지배적이라고는 하나 의원님의 진심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다만 일각에 ‘출중한 지도자가 정파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허수아비 지도자’라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도 여전히 의원님의 20여년에 걸친 헌신과 열정은 그런 정도의 비난을 덮고도 남음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최근 의원님의 행보는 그런 저의 믿음을 배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남한에선 최소한의 서민복지마저 위협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의원님께서도 최근 마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애인들의 장애인활동보조인예산 삭감에 항의한 삭발농성투쟁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장애인활동보조인에게 지급될 급여예산을 삭감한다고 하는 것은 장애인들을 집안에서 죽으라는 얘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겨울 의령에서는 한 중증장애인이 수도관이 얼어터진 집에서 밤새 고통을 호소하다 얼어 죽었다고 합니다. 장애인활동보조인 예산삭감은 바로 목숨을 내놓으라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입니다.

의원님께선 지금껏 진보진영과 민노당을 대표해서 세 차례의 대선과 세 차례의 총선에 출마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서민대중의 열망을 담아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란 구호를 외치셨습니다. 그 구호는 미래 한국의 진보적 사회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권이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부자들에게는 법인세와 소득세, 나아가 종합부동산세까지 감면해주면서 마침내 내놓은 서민복지정책이란 것이 바로 장애인들에게 책정된 복지예산을 과감하게 삭감한 것이었습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장애인들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호는 다름 아닌 “부자에게 세금감면을! 서민에게 복지삭감을!”이었던 것입니다.

정부의 장애인활동보조인예산 삭감에 항의해 거리시위에 나선 장애인들

그래서 경남지역 장애인들은 한나라당 보건복지담당 정책조정위원장이며 국회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안홍준 의원 사무실 앞 노상에서 열흘을 넘긴 삭발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의원님의 지역구인 창원과 마산의 장애인자활자립센터가 주축이 된 이들 장애인들의 죽음을 불사한 투쟁이 실로 눈물겹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의원님께선 이 정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얼굴 한 번 안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까? 설마 동료 의원의 사무실 앞에서 벌이는 농성이 불편하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당장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장애인들의 생존권투쟁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남북 겨레가 하나 되는 것이 아무리 바쁘고, 북한의 산천을 녹화하는 사업이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당장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힘들게 생존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을 외면할 수야 있겠습니까? 혹시나 의원님께서 바쁘신 국회 일정 탓으로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고 하는 서민들의 희망을 잊어버리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을 지울 길 없습니다.

물론 민노당이 서민복지보다는 민족통일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의원님께서 약간의 관심만이라도 이들에게 베풀어주신다면 참으로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부디 당파를 떠나 어진 마음으로 널리 헤아려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가시는 평양 길과 백두산, 묘향산 관광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2008. 9. 27  정 부권 드림


<이 포스트는 경남도민일보 독자란에도 함께 투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