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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49년만의 민간인학살위령제, 마산시장은 왜 안 오나

10월 16일(금), 마산공설운동장 올림픽체육관 강당에서는 제59주기 민간인학살희생자 위령제가 열렸습니다. 저는 이 위령제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열린 합동위령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제59주기 2차 마산지역 민간인학살희생자 합동위령제>

위령제는 유교 방식으로 제를 지낸 다음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이 각각 위령예식을 올렸다. 개신교는 안 왔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수많은 민간인들이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학살된 사건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처럼 제 나라 국민, 제 민족을 재판도 없이 무참하게 학살한 천인공노할 만행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죄 없는 민간인들을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이 학살했던 것일까요?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 학살과 유사한 나찌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이 있습니다. 히틀러도 선거에 의해 독일인들의 선택을 받은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국민들을 동원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습니다. 그 희생양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유태인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얼마나 소름끼치는 말입니까?

묵념하고 있는 허정도 전 경남도민일보 사장 등 참석자들


그 홀로코스트가 대한민국 땅에서도 벌어졌다는 상상을 한번 해보십시오. 그것도 남이 아닌 동족의 손에, 이웃의 손에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바로 이곳 마산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천 명의 우리의 이웃들이 영문도 모른 채 손과 발이 묶여 마산 앞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깽이바다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무심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 정권이 국민들의 손에 쫓겨났습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세상도 바뀌었습니다. 숨죽이고 있던 유족들도 늦게나마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누이들의 명복을 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1차 마산지역 민간인학살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열렸던 것입니다.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오열하고 있는 유족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박정희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유족들은 다시 숨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유족회를 주도했던 노현섭 전국유족회장(마산)은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유족으로서 억울하게 희생된 가족의 명복을 빌었다는 것이 죄였습니다. 그때는 법도 상식도 필요 없는 시대였습니다. 노 회장을 비롯한 많은 유족들에게 최고 10년씩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그 이후로 유족들은 오랜 세월을 눈물 속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민주화의 여파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고, 이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나와 겸허하게 정부를 대표해 사과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곧 과거사위원회도 해산해야할 운명에 처했습니다. 아직 일을 다 하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이제 겨우 물꼬를 트기 시작한 일이 커다란 난관에 봉착한 것입니다. 다름 아니라 다시 정권이 바뀐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과거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의 후예들이란 사실 때문이었을까요? 그들은 이제 그만 과거사위원회 따위는 접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외면하고 싶어도 이미 전직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일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국방부장관이 직접 군이 저지른 과거의 학살행위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의 뜻에서 이번 합동위령제에 조화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39사단 강재곤 중령을 대리로 보내 추모사도 하게 했습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각료인 국방부장관의 한계는 분명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고개까지 숙인 일에 대해 그저 유감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사과를 대신했습니다. 유감? 대체 뭐가 유감이란 것이죠? 어쨌든 민간인학살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한 데 대해 더 이상 토를 달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방부장관이 보내 온 추모조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기분 나빴던 것은 바로 황철곤 마산시장의 행위였습니다. 그는 이날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부시장을 대리로 보내고 추모사를 대독하게 하긴 했지만, 다른 일도 아니고 억울하게 죽어간 수천 명의 마산시민들의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내는 곳에 그가 직접 오지 않고 부시장을 보낸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 그는 자기가 마산시장이 아니라 전주시장이나 안산시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게다가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그는 조화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국방부장관과 진실화해과거사위원회, 마산수협장의 조화는 있었지만, 마산시장의 조화는 없었습니다.

혹시, 이분 정말로 자기가 마산시장이란 사실을 잠깐 까먹은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까먹고 싶었거나…. 오늘 10·18 부마항쟁 기념 마라톤대회에 갔더니 제일 먼저 황철곤 마산시장이 축사를 하더군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독재에 항거했던 부마항쟁) 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며 힘차게 뛰어주시기 바랍니다."

희망연대 김영만 상임의장은 추모사에 앞서 위령제에 불참한 마산시장을 성토부터 했다.


저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저토록 뻔뻔할 수가 있을까?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돈도 많이 벌고…. 하긴, 옛날 어릴 때 어른들에게 그렇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요령이란다. 요령이 없으면 거지처럼 늘 남 밑에서 살게 되는 거야. 그러니 아무래도 요령이 최고지."

그러나 역시 제게는 요령부득입니다. 그런데 마산시장은 그렇다 치고, 진보단체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민노총, 진보연합 등 수시로 각종 행사에 이름을 내미는 진보단체들이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그들도 혹시나 마산시장처럼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계륵이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59주기를 맞은 민간인학살희생자 유족 여러분의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결국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라는 말 외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이상 아무런 도움도 돼 드리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