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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함양에 가서 말벌로 담근 술 먹어보니

어제 밤 8시, 마산을 출발해서 함양에 도착하니 밤 10시더군요. 딱 두 시간 걸렸습니다. 고요했습니다. 달은 바로 머리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달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달과 우리는 가까웠습니다. 바로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넋을 빼는 바람에 달을 찍지는 못했네요.

김현태 대표의 집 앞에 있는 정자와 커다란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사진은 다음날 아침 찍은 것이다.


우리를 반겨주는 김현태 대표(함양농민회 지도위원/사민주의연대 공동대표)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이 집과 앞의 개울과 저 정자와 정자나무를 그대로 떠다 마산이나 창원에 옮겨놓으면 장사가 엄청 잘 될 거 같은데요." "아이 뭐할라고 마산에 갖다 놔? 그냥 서울에 가져가지. 거기가 사람이 훨씬 많은데." 하하. 농담이었지만 정말 좋았습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그러나 귀농은 아직 우리에겐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촌에 들어가 황토집을 짓고 산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가끔 듣지만, 그분들은 모두 유한 사람들입니다. 보통사람들, 노동자들이 그런 삶을 산다는 건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습니다. 

실제 농사를 짓기 위해 귀농하는 사람들 중 80% 이상이 실패한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귀농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했습니다. 농촌 현실도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시골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원주민들에게 귀농자는 이방인입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그러므로 그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합니다
.  

1층은 식당이고 2층은 김현태 대표의 살림집이다.


김현태 대표는 이곳에서 <장수버섯오리촌>이라는 식당을 운영합니다. 2층은 살림집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오리훈제요리와 소 생고기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한 번 보시죠. 병속에 말벌들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병속의 액체는 물론 술입니다. 말하자면, 말벌주인 셈이죠. 

"윽~ 완전 몬도가네네." 저는 질겁을 했지만, 우선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물론 오늘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서지요. 드셔본 분도 계시겠지만, 저처럼 처음 본 사람도 있을 거 같아서요. 저는 사실 비위가 약한 편입니다. 겁도 많습니다. 그래서 검증된 음식 아니면 손을 잘 대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어느 졸병 하나가 내무반 막사 옆에 쪼그려 앉아 기어가는 개미를 잡아 머리만 떼어내고 똥구멍 쪽을 빨아먹는 걸 본 적이 있긴 합니다만, 이건 진짜 완전 몬도가넵니다. 접시에 보이는 버얼건 고기가 바로 소 생고깁니다. 말벌주와 생고기, 딱 어울리는 조합이라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술에 담긴 불행한 말벌들


말벌술을 다 비웠습니다. 저는 딱 한 잔 마셨습니다. 먹어보지도 않고 이야기를 풀어서는 안 될 것 같아기 때문입니다. 작정하고 마셨더니 맛이 괜찮았습니다. 약간 단 맛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말벌이 입안에 꿀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음, 몬도가네도 할 만 하구만.'

말벌주는 대부분 저와 함께 간 제 고등학교 동기인 영국이가 다 마셨습니다. 병속 아래쪽을 보시면 술에 진이 빠진 말벌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녀석이 다 마시기 전에 저도 한 잔을 마셨지만, 맛을 보고 나서는 '에이 미리 마실걸. 벌써 다 마셨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몸에 좋다는 것이니까요. 아까웠습니다.

말벌주를 다 비운 뒤의 모습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길에 상림에서 열리는 지리산문학제에 잠시 들렀습니다. 전날 밤 함께 술을 마시던 분이 함양예총(?)의 문인이신데, 이 문학제 준비위원이셨던 모양입니다. 잠시 구경하고 가라고 강권하셔서 돌아갈 길이 바쁘긴 하지만, 짬을 내 잠깐 들렀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하루 더 머물면서 구경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갈 길이 바빠 잠시 눈요기를 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아직 준비 중이었으로 우리가 본 것은 '아, 이곳에서 지리산문학제가 열리는구나!' 정도였습니다. 10월 19일인가? 그때쯤 물레방아축제가 또 열린다고 합니다.

그때는 꼭 시간을 비워두었다가 연락하면 오라는 신신부탁(?)에 고마워하며 우리는 함양을 떠났습니다. 10월달에 꼭 다시 가보아야겠습니다. 그때 오면 맛있는 것도 많이 준다고 하니 아니 갈 수가 없겠지요.

지리산문학제가 열리는 상림 입구


위 사진에 보이는 친구가 제 고교 동창입니다. 이름이 여영국입니다. 이거 초상권 침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친구지간에 뭐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뒤편에 좌석과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걸 보니 오늘 밤 재미있는 공연도 준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무대 뒤편으로 들어가면 상림인데 이곳까지 와서 상림 숲길도 한 번 거닐어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문학제에 출품된 시들을 모두 이렇게 매달아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리산 문학제에 출품된 시들을 이렇게 만장처럼 죽 매달아 놓은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책자로도 나온다고 하니까 나중에 전화해서 한 권 부탁해야겠습니다.

행사 준비 중인 분들. 전날 밤 늦도록 함께 술을 마셨었다.


위에 보이는 두 분이 행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입니다. 아쉽지만 여기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나저나 말벌주 효과는 언제쯤 날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효과가 있긴 있을라나요?


돌아오는 우리 차에는 양파 두 망이 실려 있었습니다. 알이 무척 굵고 맛있게 생겼습니다. 누구보다 우리 마누라가 좋아하시겠습니다. 흐흐. 술도 주고 밥도 주고 오리고기에 소생고기까지, 거기다 말벌주까지 대접해주시고 이렇게 양파까지 들려보내신 김현태 대표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러시면 자주 가게 되는데요. 염치 없이 말입니다.

어쨌든 10월달에 꼭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