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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공무원이 주민들에게 뿔난 사연, "에이 분위기 안 좋네"

엊그제 6월 30일, 마산시 진전면 미천마을 회관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가 열린 이유는 이곳에 산업단지가 지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천마을은 마산에서는 보기 드문 산골마을이다. 양촌온천을 지나 오른쪽으로 꺽어 한참을 들어가다보니 진로소주(두산그룹) 표지판과 함께 미천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미천마을 회관에서 바라본 전경. 앞에 보이는 산은 여항산 줄기란다.


이정표를 따라 다시 오른쪽으로 꺽어 올라가니 저수지가 보이고 그 뒤로 험준한 산맥이 둘러쳐져있다. 낙남정맥이다. 실로 높고 깊은 것이 장관이다. 도회지로만 알려진 마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공기 냄새부터가 다르다. 논두렁 아래 내려다 보이는 개울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정겨웁다.
 
먼저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송창우 선생 집부터 들렀다. 송창우 선생은 이 마을에 살면서 경남대학교까지 수업을 하기 위해 마티즈를 몰고 다닌다. 경남대 근처에 집을 구해 살 수도 있겠지만, 이 마을이 좋아서다. 송 선생의 집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우람한 산과 구름과 내려다 보이는 정겨운 마을이 부럽다.  

그런데 이 산골마을에 산업단지가 들어선단다. 도대체 이 산골에 무엇하러 갑자기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것일까?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기도 하지만) 저녁 7시가 가까워오자 마을회관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주민 여러분. 모두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십시오. 산업단지지정에 관한 공청회가 곧 열리겠습니다. 맛있는 부페음식도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 공청회도 참여하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공청회장에 뷔페까지 등장하는 줄은 몰랐다. 평소에 좀 하시지…


마을회관으로 가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잘 차려진 출장 부페다. 하늘에선 굵은 장맛비가 대지를 적시고 곧 이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공청회가 시작되었다. 진로소주 공장에서 나온 직원들이 프리젠테이션으로 산업단지지정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공청회의 주체는 마산시가 아니라 진로소주다.

그때서야 왜 이 산골마을에서 산업단지지정을 놓고 공청회가 벌어지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차~ 제 2의 수정만 사태가 여기서도 벌어질지 모르겠구나.' 국회에서 산업단지 지정신청 및 하가절차를 간소화하는 법률이 통과된 후 전국적으로 이런 현상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 마산에서만도 대략 대여섯 곳 정도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한 주민의 발언에 손을 흔들며 제지하듯 자기 주장하는 도시개발계장님


주민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당장 지하수 고갈로 먹을 물 걱정이 우선이다. 산단이 들어서면 늘어나는 차량과 콘테이너로 인해 주민들의 안전문제도 심각한 고민거리다. 그러나 공청회를 주최하는 진로소주의 답변은 단순함 그 이상 아무 것도 없었다. "차량이 늘어날 일도 없고, 지하수 고갈도 없을 것이다. 산단지정은 그냥 창고를 짓기 위해 하는 것 뿐이다."

진로소주만의 창고를 짓기 위해 산업단지 지정을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수정만 사태에서도 늘 지적되어 오던 문제였지만, 공무원들의 태도였다. 공무원들이 시민의 공복이기보다 기업체의 용역직원처럼 행세하길 더 즐기듯이 보이는 건 왜였을까? 

주민들의 질문에 도시계획과장을 대신해 참석한(도시계획과장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함) 도시개발계장은 매우 짜증난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큰 소리로 싸울듯이 달려들었다. 그는 주민들의 반대의견들이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조용히 설명 듣고 잘 차려진 부페나 먹고 갈 것이지!' 하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보였다.

주민의 질문이 매우 귀찮고 어이없다는 표정. 옆에 마이크를 든 사람은 진로소주 부장.


[동영상 마지막에 보면 질문하는 주민이 공무원 나오라고 하자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등장하는 계장님이 보인다]

공청회가 끝난 후, 주민들은 이왕 차려진 음식이니 먹고나 가자며 마을회관에 차려진 부페에 모여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매우 신경적인 반응을 보이느라 피곤했던지 도시계획계장은 부페 옆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진로소주의 전무가 그의 옆에 다가갔다. 그는 공청회 내내 주민들 뿐아니라 공무원에게도 공손했었지만, 이때는 달랐다. 

마치 아랫사람이나 잘 아는 아우를 다루듯이 말했다. "어이, 음식도 많이 차려놓았는데 좀 먹지 그래." 그러자 계장이 대답했다. "에이, 안 먹을랍니다. 분위기도 안 좋고…" 글쎄,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그 두사람이 얼마나 허물이 없는 사이일지는 몰라도 주민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그래도 되는 것일까? 

그래도 명색이 공무원인데… 공무원이란 말 그대로 공무를 보는 사람 아닌가 말이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 아마도 선입견이 없었다면 이런 사소한 대화를 옆에서 들으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민들을 향해 대들듯이 손을 휘젓던 그가 진로소주 전무 앞에서는 양순하기 이를데 없어 보이니…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 내 생각이 쓸데없는 공상이었기를 빈다. 간절히…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