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이야기

노무현 서거에 신영철 함께 묻히나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이 치러지던 날, 저는 중리 삼거리의 한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함안에서 몇 분의 노동자들을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7시를 전후하여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시간이 6시를 갓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때울 겸 중국집으로 들어갔지요.


중국집에는 주인아주머니와 주인아저씨 두 분만 계셨는데, 두 사람 모두 텔레비전에 정신을 팔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해가 연화장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노란 종이비행기가 영구차 위로 날고 오열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화면은 온통 검은색이었습니다. 아저씨는 한숨만 내쉬면서 들어오는 손님―저 혼자였습니다만―은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노무현의 입속으로 들어가던 것은 결국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고 함.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다 절로(저기로) 가야되는 기라. 그기 운명인기라.”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용히 보이소.” 그때서야 저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주인아저씨인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손님이던지 아니면 옆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놀러 온 사람으로 생각했었지요.


물이라도 가져다줄까 하고 한참을 기다리던 저는 짬뽕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아줌마, 짬뽕 하나 해주세요.” 아주머니는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그러나 얼굴에 아쉬움이 섞인 얼굴로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아 짬뽕 한 그릇을 말아왔습니다. 텔레비전은 울음바다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침울하게 응시하는 두 사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 잠깐 통화해도 됩니까?” “아, 네.” “그기 말입니다. 내, 검토해보니까, 기업회생절차 결정을 한 날짜가 아니고 그 앞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날짜가 기준이 되겠네요. 그러면 노동부에 체당금 신청하는 데는 좀  더 유리한 기지요?” 체불임금 문제로 상담을 했던 노동교육원 상담실장님으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그러자 한번도 제게 얼굴을 돌린 적이 없던 주인아저씨가 쌍심지를 켠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빽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봐요. 전화 하려면 밖에 나가서 하시오. 지금 이 장면에서 당신 떠드니까 하나도 안 들리잖아.” 미안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굽실거렸지만, 주인아저씨의 노기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주인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고.


그렇지만 짬뽕을 내버려둔 채 밖에 나가 전화하기도 그렇고 전화를 끊을 수도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떼인 거의 1년 치에 달하는 임금과 10년 치가 넘는 퇴직금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산 사람은 살아야 할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부랴부랴 짬뽕을 비운 저는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수고하이소.” 그러나 두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에… 내 돈 내고 음식 사먹고 이런 대접 받아보긴 생전 처음일세, 그려.’ 아마 전화가 걸려왔던 그때가 노무현 대통령이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이었나 봅니다.


체불임금 때문에 만나자고 했던 분들 중 한분은 제가 잘 아는 선배입니다. 상담을 끝내고 헤어진 후, 그 선배와 중리에서 방앗간을 하는 한사람 그리고 창원의 자그마한 공장에 다니는 선배가 또 한사람 뭉쳐서 어느 대포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노무현 이야기에 빠져있었습니다. 간간이 이명박 욕을 섞어가면서 말입니다. 죽일 놈이라고…


노무현 서거의 충격이 상상 이상으로 컸던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의 아성이라고 하는 경남 마산에서조차 이런 정도라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요? 다른 건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인생은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가 재임 중 펼쳤던 신자유주의 정책, 구체적으로 한미FTA에 격렬하게 반대하였지만, 그의 인품을 존경했다고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밝힌 바가 있었지요.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영철 대법관. 모언론사 기사에서 인용.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을 그때, 온 나라가 국상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그 시간에, 대법원에서는 역사적인 하나의 판결이 무관심속에 해치우듯 처리되었습니다. 바로 삼성의 이건희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표결결과는 6:5였습니다.

6:5! 이 정말 아이러니한 숫자가 아닙니까? 불과 열흘전만 해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의 목소리가 전국을 흔들었고, 인터넷에는 그를 성토하는 글들이 물결쳤습니다. 그러나 그자는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악마의 웃음을 흘렸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삼성재판에 태연히 법복을 입고 들어갔겠지요.


그리고 그자가 이건희의 무죄에 표를 던졌을 거라는 건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그자가 그토록 뻔뻔한 얼굴을 하며 쪽팔림을 무릅쓰고 버텼던 이유가 삼성 때문이었을까요? 김두식 교수(그는 검사였다)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어보면 대법관이란 자리가 법조 최고의 명예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퇴임 후 엄청남 돈이 보장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선망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돈을 보장해주는 최고의 기업은 역시 삼성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그 시각에 해치우듯 처리된 이건희에 대한 무죄판결의 진정성뿐만 아니라 법적 타당성조차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영철, 그자는 우리가 자기를 잊었다고 생각할까요? 그래서 이 전례가 없는 위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여러분, 절대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 자의 음흉한 얼굴에 악마와 같은 미소가 번지는 걸 참고 본다는 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 아니겠습니까.     pa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