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이야기

세상엔 절대적 선도 악도 없다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1. 낙동강의 고향, 태백산으로

세상엔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없다
오후 7, 구미종합터미널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초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3분 안에 도착할 테니 터미널 옆 주유소 앞에 서있으란다.


잠시 후 낙동강 변 도로에 비상등을 깜박거리며 달려오는 카렌스 승용차가 보인다
. 이제 출발이다.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산으로 가는 것이다.


초석님은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회원이다. 내일은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지만 치과의원 문도 닫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대화를 통해 그가 신정일 선생의 열렬한 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신정일 선생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침이 마르는 줄 몰랐다.

 

주말엔 쉬어야지요. 우리나라도 대부분 주 5일 근무가 정착되어 가는데, 그래도 토요일 하루 쉬니까 간호사들은 좋아하겠네요?

, 좋아하지요. 그치만 돈이 안되잖아요. 주말만 되면 이러이 돌아댕기니 우리 마누란 별로 안 좋아해요.

 

자동차는 시원한 고속도로를 달려 금새 안동에 닿았다. 구미에서 안동까지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던가. 이미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점령당해 있었다. 차는 도산서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면 안동시내를 지나가야만 한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다리를 건넜다.

 

강은 저 아래 어둠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어둠이 빛을 가린들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기질마저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줄기가 대지를 어루만지며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내에 들어서자 도로변을 밝히는 불빛들이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다. , 그런데 신호등들이 모두 황색점등 일색이다. 깜박거리는 노란색 신호등 아래로 차들은 잘도 지나다닌다. 초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익숙한 솜씨다. ~ 조수석에 뻗은 두 다리에 쥐가 날 것 같다.

 

다시 어둠에 점령당한 시골길을 달린다. 지금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농암종택(조선 중기 문신 농암 이현보의 종가)이다. 그곳에 <낙동강역사문화탐사>의 저자 신정일 선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일행들의 낙동강답사(안동지역)에 강연을 한다고 했다.

농암종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 안동댐에 수몰되면서 옮겨온 이곳이 아직도 안정이 덜 된 듯했다.

이미 시간은 9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초석님은 걱정이 되는 듯 신정일 선생에게 연신 전화를 걸어 조금 늦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 이거 선생님 추운데 많이 기다리시겠네. 에이, 농암종택 거 군불도 뜨끈뜨끈하게 때 놓았을 텐데 방안에 가만 계시면 되지 뭐. 혼자서 중얼거리며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러더니 깜깜한 시골길에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이 길을 제집 드나들 듯 했을 초석님도 시간에 마음을 빼앗겼던지 길을 잃고 말았다. 깜깜한 비포장 길을 계속 달리다 보니 경운기 한대도 겨우 지나갈 것처럼 길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우리는 어렵사리 차를 돌렸다. 다시 되돌아 나와 국도변에서 보니 농암각자(聾巖刻字)라고 쓰여진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그걸 보고 잘못 길을 들은 것이었다.

 

, 저걸 보고 헷갈렸네. 길도 진짜 비슷하게 생겼습디더. 그래도 좋은 거 하나 알았네요. 저 안에 어디 농암각자가 있는 모양인데 다음에 꼭 한 번 와봐야겠심더. 초석님의 사투리는 속된 말로 완전 오리지널이다. 의사보다는 농군 냄새가 더 물씬한 것이 정겹다.

 

다시 1Km쯤 더 내려오니 이번엔 진짜 농암종택이라고 쓴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꺾어 드니 정말 아까 잘못 들었던 길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한참을 달리니 낙동강이 보인다. 낙동강 변을 달리는데 낭떠러지 아래 물살이 제법 세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결이 무섭기까지 하다.

 

드디어 농암종택 도착. 대문 앞 공터에는 관광버스와 수십 대의 승용차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최신형 제네시스도 보이고 대체로 고급차들이다. , 그러고 보니 오면서 들은 대로 이곳에는 7명의 환노위 국회의원들과 봉화군수와 안동시장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수행원들도.

 

이분들은 오늘 안동과 봉화 일원의 낙동강을 직접 발로 걷고 느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강문화 전도사 신정일 선생으로부터 훌륭한 강연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분들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결심했을까? 글쎄 그게 가장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강연도 모두 끝나고 왁자지껄한 담소 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고색창연한 고가의 적막을 기대했지만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이미 국회의원들과 이 고을 수령들과 수행원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기대는 애초부터 말았어야 했다.

 

바깥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앞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하늘의 별이 유난히 맑게 빛났다.

대신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검은 어둠 위에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맑은 대낮에 보는 하늘보다 더 푸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하늘은 머리 위에 쏟아질 듯 지척에다 별들을 매달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없이 하얗게 빛난다.

 

사랑채와 긍구당(肯構堂)등을 둘러본 다음 이 저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로 가보았다. 안채는 대청에 매달린 불빛만이 사람이 산다는 것을 증거할 뿐 조용하다. 서울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위해 그저 묵묵히 안방만 지키기로 한 것일까.


다시 사랑채 마당으로 나오니 신정일 선생이
MBC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찬스다! 싶어 얼른 카메라를 들이댔다. 항상 자동모드만 고집하는 내 카메라는 번쩍 플래시를 터트렸다. 카메라 기자가 움찔하며 손을 들어 제지하며 당황한다.

 

이런, 이럴 때 플래시를 꺼야 하는데 할 수 없지. 이미 지나 간 일. 나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인터뷰 하던 얼굴에 갑자기 하얀 불빛이 지나가면 민망하고 미안해서 어쩌지? 초석님이 옆에서 훈수를 둔다.

 

이런 데는 플래시 터트리면 안됩니더. 오토에다 놓지 말고요. 항상 플래시발광금지 모드에다 놔 두이소. 사람들이 잘 모르고 무조건 오토에다 놔 두거든예~. 그런데 플래시발광금지가 오토하고 똑같심니더. 플래시만 안 터진다 뿐이지요.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신정일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는 것이여.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낙동강 살리기다 운하다 말들이 많은데, 물론 나는 대운하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어쨌거나 요즘처럼 낙동강에 많은 관심을 보인 시절이 어디 있었나? 그러니까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제. 

 

그러고 보니 낙동강이 오늘날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랬다. 매년 6월 깨나 ‘낙동강전선’이란 피어린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억되었을 뿐 낙동강을 낙동강으로 살펴준 적이 제대로 있었던가.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절대적인 선이란 것도 없다는 그 말.  나는 철학적 심오함이 숨겨진 듯한 그 말의 깊은 뜻을 아직은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낙동강과 함께 길을 걸으며 서서히 그 뜻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멀리 철암역의 불빛이 보인다.

 

쓸쓸한 적막 속에 아스라히 빛나는 역사의 불빛. 언젠가 읽었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느낄 수 있는 불빛이 아마 저런 것이었으리라.       파비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낮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