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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3·15 의거 기념식에서 느끼는 황당 시츄에이션

어제가 3·15의거 49주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김태호 경남도지사,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안홍준 한나라당 의원, 황철곤 마산시장 등이 3·15묘지에 머리 숙여 참배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오늘 경남도민일보 신문 1면 머리에 실린 사진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며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습니다.  3·15 영령들 앞에 엄숙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고개 숙인 저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또, 저분들의 절을 받고 있는 3·15 영령들은 지하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계실까요? 자신들이 돌을 던지며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리하여 마침내 4·19혁명의 불길로 이승만 독재를 몰아냈던 그 자랑스런 역사를 한 순간에 군화발로 짓밟아버린 5·16군사정변의 후예들이 오늘날 갑자기 영령들의 무덤에 근엄한 표정으로 절을 하며 올해 3·15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내년 50주년 행사에는 반드시 이명박 대통령을 모시고 이자리에서 다시 사진을 찍자고 입들을 맞추니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하고 놀라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곳 마산에서는 저런 류의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보기 드문 일도 아닙니다. 지난 가을 10·18 부마항쟁 기념식장은 또 어땠겠습니까? 그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마항쟁의 살아있는 진정한 영웅들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타도를 외쳤던 유신독재의 잔당인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원들과 시장들이 축사를 하고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마산과 부산시민들의 기개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할 때, 쓸쓸하게 부림시장의 막걸리집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산시 구암동 국립 3·15민주묘지에 참배하는 기관장 및 국회의원들. 사진출처=경남도민일보 김구연기자


전언에 의하면 내년에는 3·15의거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될 것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국회의원 전원이 서명한 ‘3·15의거 국가기념일 제정 촉구 결의안’이 국회에 접수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3·15의거 5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참석할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년 오늘 경남도민일보 1면 머리에는 위 사진에다 김태호 경남도지사 옆에 이명박 대통령이 또 엄숙하고 근엄한 듯한 표정으로 영령들에게 절하는 모습이 추가된 똑같은 사진이 실릴 것입니다. 

안홍준 의원은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3·15의거는 유일한 도 기념일인데 이렇게 도 단위 기관장이 적게 참여해서는 국가기념일로 해달라는 명분이 서지 않는다. … 우리 모두 자신이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인지 반성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할지도 모를 내년 기념식에는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안홍준 의원처럼 약자를 괴롭히고 탄압하는데 앞장서는 한나라당 사람이 약자의 편에 서서 독재에 저항했던 3·15열사들 앞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무릎 꿇고 참회의 눈물부터 보이시오. 게다가 내년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이 자리에 서신다고 하니 더욱 그리 하시는 게 옳을 듯하오. 그러지 아니하면 영령들께서 지하에서 돌을 들고 당신들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 틀림없소.”

그나저나 저분들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한들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위에 적은 내 생각은 그저 부질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아무튼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3·15와 4·19의 혁명정신을 기리기 위해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거기에 이의를 달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자꾸 웃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런데 3·15의거 50주년이 되는 내년 오늘은 더 크게 한바탕 웃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숨가쁜 기대로 온몸이 충만합니다. 허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