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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KBS스페셜, 욕에 중독된 10대? 어른들이 더 걱정이다

 ‘졸라’는 ‘존나’가 변형된 말이다. 아마도 ‘존나’를 좀 더 발음하기 쉽고 좀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낸 말이 ‘졸라’인 듯싶다. 그러고 보니 ‘존나’보다는 ‘졸라’가 더 친근감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졸라’든 ‘존나’든 모두 욕설이다. ‘졸라’의 원형이라고 할 ‘존나’도 사실은 그 태생의 원천이 따로 있다. ‘존나게’를 줄여서 더 극적인 효과를 부여한 게 바로 ‘존나’이고, ‘존나게’란 정확하게 발음하면 ‘좆나게’란 말이다.

즉, ‘좆나게’가 오늘날 인터넷 물결을 타고 보다 관능적이고 적나라하며 첨단인터넷시대에 걸맞을 법한 ‘졸라’라는 신조어로 재탄생한 것이다. ‘좆나게’란 ‘졸라’에 비해 얼마나 촌스러운가. 한국인의 조어능력은 참으로 신기막측하다. 요즘 아이들에게 이 ‘졸라’라는 말은 수식어이며 감탄사이자 나아가 어휘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없어서는 안 될 약방의 감초다.

“‘졸라’ 재미없네.” “‘졸라’ 재미있네.” “‘졸라’ 웃기네.” “‘졸라’ 짜증나네.” “‘졸라’ 싱거운 놈.” 뭐, 이 정도가 내가 생각해 낸 ‘졸라’의 용법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이 ‘졸라’의 용법은 실로 무궁무진했다. 게다가  ‘졸라’는 마치 소금과 같아서 이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말에 맛이 없어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졸라’란 욕은 욕 축에도 끼이지 못하는 졸라(매우!) 준수한 언어생활에 속했다.

오늘 『KBS 스페셜』의 제목은 「10대, 욕에 중독되다」였다. 10대 아이들의 서슴없는 욕에 대한  실태보고 다큐멘터리다. 이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KBS가 밝힌 기획 의도는 이랬다.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은 ‘욕’을 얼마나 할까?
그들 대화 내용의 반 이상이 ‘욕’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심지어 선생님이나 부모를 상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욕’을 해대기도 한다. 많이 하다못해 만연해 있는 10대의 ‘욕’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아이들의 언어 습관 속에 뿌리박혀 있는 욕의 사용 실태와 무분별한 욕사용 원인에 대해 KBS스페셜에서 현장 밀착취재 하였다. 

남녀 학생을 불문하고 95%이상이 ‘욕’이 없이는 언어생활이 안돼
조사결과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욕을 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이란 평가를 들을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 욕의 종류도 천태만상이었다. 초등학생의 경우 거의 97% 이상이 일상적으로 욕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중 72%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욕을 한다고 했다. 

                     
                     
                         [자료 - KBS 스페셜 <10대, 욕에 중독되다>]
                         특이한 것은 고교생의 경우 여학생(97.4%)이 남학생(93.7%)에 비해 욕을 더 많이 한다.  

이미 상당수의 아이들이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정상적인 언어생활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KBS 스페셜』이 한 학생의 대화를 분석해보니, 욕을 빼고 남는 건 감탄사 밖에 없었다. 의미전달에 필요한 아무런 내용도 들어있지 않은 그런 말만 가지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참으로 신통했다.

『KBS 스페셜』은 이 아이들이 욕설로 대화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학부모들과 현직 선생님들에게 틀어주며 의견을 물었는데 모두들 황당해서 입을 열지 못했다. 실로 기기 막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을 보면서 거꾸로 그들의 태도가 한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긴 하다. 그리고 이 망각은 때로 인간에게 행복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망각 때문에 역사는 반복되고 실수를 되풀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굳이 별 개연성도 없어 보이는 망각이란 단어를 끄집어낸 것은 우리 기성세대들 역시 10대를 욕설 속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다.

나는 아이들이 욕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면서 기가 차서 또는 착잡하게 우리는 저리 살지 않았는데 하는 표정을 짓는 어른들,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을 보며 나는 저분들이 진정 진심으로 저런 표정을 짓고 저런 함숨을 내쉬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증스럽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욕에 중독된 아이들, 어른들 책임이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 우리 세대들에 비해 욕의 정도가 심하고 보다 더 일상화 됐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그들만의 책임인 것만은 아니다. 그 욕설은 어디까지나 기성세대들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진 하나의 문화적 전통이며, 단지 인터넷 세대의 특성이 더해진 것뿐이다.

실제로 그들이 쓰는 욕 중에 내가 못 알아듣는 욕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3~40대들도 그런 욕을 가끔 혹은 자주 쓴다. 인터넷 댓글들을 살펴보면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들이 돌아다닌다. 과연 쓰레기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그러나 그중 진원지의 상당수는 30대, 40대들이다.

말죽거리잔혹사의 한장면. 리얼한 영화다. 특히 그 생생한 욕설들이 잔혹한 추억사를 더 리얼하게 했다.


심지어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욕을 심심찮게 내뱉는 40대들을 자주 본다. 나도 가끔 아무런 이유 없이 욕을 들어보기도 했다. 작년 봄, 같은 학교를 다녔다면 2~3년 후배쯤이나 될 친구처럼 지내는 이로부터 “씨불탱아~”란 욕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아무 이유도 없었다.   

내 생각엔 그 친구는 보다 친밀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런 욕을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일종의 자기과시를 위해 그런 욕을 했을 수도 있다. 남자들의 경우에 특별히 자기를 과시하거나 어떤 포지션을 획득하기 위해 가끔 이렇게 적당한 욕설을 이용해 쇼맨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어쩌다 이런 태도들을 직면하고 어처구니가 없을 때, ‘장구한 구석기시대를 통해 형성된’ 유전적 특성으로 여성에 비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남성 특유의 자기 생존 방법이라고 이해해주기로 나는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역시 욕을 먹고 나면 기분이 안 좋은 법. 나는 그 이후에 그 친구와 가급적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나 굳이 피할 수 없다면 아예 대화를 회피한다.

다방면에서 자정노력 일어나야
이야기가 많이 비약했는데, 오늘 『KBS 스페셜』「10대, 욕에 중독되다」를 본 소감을 정리하면 이렇다. 많이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아이들이 욕하는 것보다 학부모들이나 선생님들의 태도가 더 걱정된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로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오염된 기성세대의 문화는 그대로 내버려둔 채 백번 아이들을 걱정한들 해결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란 사람이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 앞에서 “아 씨발, 더러워서…” 라고 했다던가. 이게 대한민국 문화의 현주소다. ‘자지’나 ‘보지’ 같은 순 우리말은 떳떳하게 쓰지도 못하고 ‘페니스’나 ‘음부’ ‘옥경’ 등의 알아듣지 못할 말로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이 쓰발 새끼야!”란 욕을 서슴없이 내뱉는 게 기성세대다.

아이들 중독을 걱정하기 전에 어른들 중독부터 걱정하는 게 순서고, 그러면 아이들은 자연히 치유될 것이다.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깨끗할 수가 있겠나. 『KBS 스페셜』이 제시한 미국의 어떤 학교의 예는 참 좋았다. 부적절한 언어생활이 계속되면 경고나 정학까지 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노력도 절실히 필요하다. 『KBS 스페셜』의 실태보고도 아주 적절할 때 나왔다.

그러나 그런 것도 윗물이 맑을 때 효과가 있는 법이다.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