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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전두환은 오바마와 닮았다?

누가 그랬던가요?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였던가요? 전두환을 전직 대통령으로 부르면 안된다고 했던 거 말입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그래서 그냥 전두환이라고 하죠. 전두환이가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하기 위해 명동성당에 들렀습니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김수환 추기경과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했다고 하는군요. 

뭐, 그 사람 특기가 뭡니까? 남들이 물어보지도 않는데 제자랑 늘어놓는 거 아닙니까? 문득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10년도 훨씬 더 오래전의 이야기 같습니다. 워낙 오래돼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날은 제 친구 종길이와 함께 어디론가 가던 중이었습니다. 글쎄요. 어디로 무엇 때문에 아침부터 회사도 쉬고 가던 중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뒷짐 진 전두환. 조문이 아니라 관람 왔나? 말들이 많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시골도시의 어느 한적한 식당에 들렀습니다. 그때 TV 화면에서는 전두환이가 합천의 자기집에서 새벽에 검찰관에게 체포돼 서울로 압송되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지요. 당시 합천 전두환 집 주변에는 무장한 경찰병력이 밤새 주둔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이런 시시한 말 하려고 케케묵은 오래된 얘기를 꺼내는 건 아닙니다.

전두환이를 압송하던 차가 소나타였나 그랬습니다. 뒷자리 양쪽에는 검찰수사관들이 전두환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지요. 행렬이 대전을 지나 천안으로 향할 때였던가, 그때 전두환이 양쪽에 앉은 검찰수사관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독립기념관 저거 누가 만든 건 줄 알어? 바로 내가 만든 거야. 그리고 충주댐도 내가 만들었지."  

옆에 앉아있던 검찰수사관들이 뭐라고 대꾸했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기사에도 없었을 겁니다. 아무 말도 안 했겠지요. 아니면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라고 했을라나요? 그냥 전직 대통령을 잡아가는 중이라 매우 신중하게, 때로는 매우 황송해하며 근엄하게 앉아있었겠지요. 하여간 전두환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리고 이번에 김추기경을 조문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들른 자리에서 또 뜬금없는 제자랑 늘어놓기 특기를 발휘했다고 하는군요. 기자들이 전두환에게 "김수환 추기경과 인연이 깊지 않느냐?"라고 물어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네요. 

“여러분이 잘 모르시겠지만 나는 추기경과 오랜 관계가 있었다. …… 1사단장 시절 김 추기경이 지학순 주교와 함께 찾아와 성당을 지어달라고 하셔서 지어드렸다. …… 보안사령관 때는 저녁을 대접한 적도 있다.” 

아이구, 정말 대단하십니다. 참 훌륭한 일 하셨군요. 그러면서 그는 “김추기경이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 더 오래 사셔야 하는데 애석하다.”고 말했다 합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하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하긴 워낙 많은 침을 튀겨서 이제 제 입술에 바를 침도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마른 입술로도 저리 말을 잘하니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전두환은 역시 폭이 넓은 사람입니다. 그는 노태우와 달리 두꺼운 전별금 봉투로 유명한 사람이죠. 이는 장세동 같은 충성파들이 그의 주변에 많은 이유로도 설명되곤 합니다. 역시 그는 그냥 이 정도 식사대접으로 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해주는 디저트도 어김없이 내놓았던 것이지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왔는데 그 사람이 젊은 시절 축구선수였다. 나도 육사시절 축구 선수였다.”

기자들이 이 어리둥절한 디저트에 황당해했음은 물론입니다. 기자들이야 황당하건 말건 전두환은 충분히 자기만족을 하고 돌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막상 전두환에게 질문한 추기경과의 악연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군요. 어쨌든 전두환, 역시 장군 출신이라 그런지 통이 참 큽니다. 악연도 이렇게 각별한 인연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저는 전두환 만큼이나 황당하고 어리둥절한 통을 가진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죠.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은 닮은꼴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당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죠?

“둘 다 변화와 개혁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자가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오바마를 좌파라고 몰아세울 땐 언제고 갑자기 오바마의 철학이 이명박의 철학과 같다니? 참 황당해도 이보다 더 황당할 순 없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명박과 전두환이도 많이 닮았습니다. 두 사람의 황당개그 수준이 거의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점도 닮았구요. 이쯤에서 어린 시절 배웠던 어설픈 삼단논법이 생각납니다.

“A=B고, B=C다. 고로 A=C다”

여기서 이런 결론이 유추되는군요.

“전두환=이명박이고, 이명박=오바마다. 고로 전두환=오바마다.”

2008년 대선후보 시절의 오바마. 사진출처=연합뉴스


그러고 보니 저도 참 황당하군요. 돌아가신 분은 추기경이신데 갑자기 제가 정신이 좀 혼미해지는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조문 자리에서 김추기경을 “이 양반이…”라고 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확실히’를 ‘학실이’로 밖에 발음하지 못하는 ‘갱상도’ 특유의 무례한 말버릇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갱상도거든요.

그렇지만, 전두환이는 참 어쩔 수가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양반’은 무례한 정도가 아니라 무식도 이미 초월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듯보입니다. 하여간 오늘은 참으로 황당한 날입니다.

2009. 2. 19.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