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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아고라, 니들이 바로 언론이야

한 아고리언이 언론을 향해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언론인 양반들, 발등에 불 떨어지니까 뜨겁습니까?
“도대체 당신들은 뭐하는 겁니까? 이제 당신들이 직접 매를 맞으니 아파서 이렇게 거리로 나온 거 아닙니까? 우리가, 촛불이 아파할 때 당신들은 무얼 했지요? 우리가 그토록 당신들에게 손짓할 때 당신들은 구경만 했지요. 별로 한 게 없지요. 그런데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우리더러 거꾸로 손을 내미네요. 제발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차버리는 짓은 하지 마세요.”

용산참사 규탄집회장으로 행진하는 부산아고라와 미디어행동. 사진 왼쪽 맨 앞, 기자협회 곽?? 기자.

부산아고라 여성회원. 나중에 미디어행동과의 회합에 합석해서 아고리언 줄 알게 됐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제 기억이 맞는다면 이런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불평은 서울에서 내려온 언론인(미디어행동)들과 부산의 아고리언들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나온 친근한 불만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언론인들은 그 불평에 매우 기꺼워하고 격려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조중동 기자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아고리언의 불만도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던 셈입니다. 만약 조중동 기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마치 돼지나 소를 잡고 대화를 거는 거나 마찬가지 부질없는 짓이었을 테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터져 나온 불만은 반갑고 고마운 연대의 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항상 늘 그렇듯이 불만이 있으면 반드시 반격이 있게 마련입니다. 부산의 이름 모를 어느 식당을 떠나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아고리언들과 헤어지는 마지막 인사를 미디어행동의 몇 분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

아고라가 바로 언론이다!
“화기애애한 자리라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 헤어질 시간이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한마디 하겠다. 아까 어느 아고리언 분이 언론인을 질책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당연히 들어야 할 말이고 고마운 말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기 바란다.

도대체 누가 언론인인가? 여기 있는 언론노조 사람들이 언론인인가? 여기 MBC, SBS 기자가 언론인인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언론인이다. 아고라가 언론이다. 그러므로 언론의 자유는 여러분들이 쟁취해야하는 것이다. ‘니네들 잘해라. 우리는 구경꾼이다.’ 그런 생각은 이제 벗었으면 한다. 아고라, 바로 여러분이 언론인 아닌가?”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 홍보물 박스를 들고 있는 부산블로거 커서.

부산 서면에 휘날리는 미디어행동 깃발


역시 내 기억에 의존한 말로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평소 메모하기를 즐겨하지만, 이때는 메모를 못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신학림 위원장,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에다 고명하신 천주교 언론지키기운동의 이필모 선생님, 그리고 몇 분의 이름을 대면 알만하신 분들과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보니 좀 많이 마셨나봅니다.

그러나 나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명언이었습니다. ‘그래, 그렇지. 바로 아고리언들이 언론인이지. 그리고 블로거들도 언론인임이 마땅하고. 그렇고말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보니 언론의 자유는 소위 언론으로 밥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핑계 댈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일임에 틀림없는 일이야.’

교수들이야 늘 차갑게 비판하는 걸 즐겨하는 사람들인데, 이날의 차가운 비평은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박수를 열렬히 쳤음은 물론입니다.

미디어행동,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사람들
부산 아고리언과 헤어져 해운대에 자리 잡은 숙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늦은 관계로 나도 거기에 꼽사리끼어 하룻밤 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지만. 언제 이들과 어울릴 기회가 자주 있겠습니까?

아직 10시도 되지 않았습니다. 방 한가운데 신문지를 깔아 술상을 만들었습니다. 소주와 맥주가 대령했습니다. 국민이 언론의 주인이든 어떻든 그들은 역시 언론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화마다 재치와 위트가 넘쳤습니다. 마치 능글맞은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밤이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커다란 양푼에 맥주를 장약 삼아 소주를 뇌관으로 심어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며 지는 밤을 밝혔습니다.

부족한 장약과 뇌관을 조달하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그 자리에서 가장 어린(아니 젊은) 유민권 변호사(언론개혁시민연대 자문변호사)가 종종걸음으로 수고를 했습니다. 그는 올해 삼십하고 1년을 더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처럼 보였습니다. 모두들 운송단가가 비싸게 치이는 술을 먹는다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부산 서면, 용산참사 규탄집회장의 시민들

가운데가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초를 다투는 언론인들답게 약속된 12시 반, 어김없이 땡!

나는 유변호사에게서 그의 변호사란 직업보다는 그 젊음이 부럽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아직 나도 젊지만, 그는 나보다 더 젊습니다. 그 젊음으로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이렇게 열렬히 나서는 그를 보는 것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그의 동안(童顔)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40대가 될 무렵이면 이 나라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때 우리는 희망을 논할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우리 아이들도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할 테지. 그 아이들에게 세상은 가슴 설레는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내 결론은 희망적입니다. ‘미디어행동과 아고라,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는 한… 역사의 수레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리라….’

2009. 2. 8.  파비

ps; 미디어행동은 다음날 아침 일찍 대구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대절한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들은 이렇게 서울에서 김해로 부산으로 창원으로 다시 대구로 전국을 투어 중이라고 했다.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김해를 거쳐 그들이 타고 온 버스에 함께 타고 부산 서면으로 갔다.
ps2; 아, 참, 조중동 기자는 없었지만, 조중동과 싸우는 중앙일보 지국장 출신의 어른(신학림 기자 옆)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분은 중앙일보에서 쫓겨났고 지금은 전국신문판매노동조합 위원장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너무나 많은 사실을 그분에게서 들었는데요. 조중동, 정말 흡혈귀더군요. 신문판매노조 홈페이지 주소가 npnet.or.kr이랍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가끔 들러주세요. 사실은 저도 아직 못 들렀는데, 오늘 들러보려구요.